181화. 진화의 비밀
내가 성장한 만큼 포스 또한 놀고 있지 않았다.
발전된 폭렬권은 기동에도 쓰이며 공격 궤도를 자유롭게 틀어 버리니…….
가진 패가 다양해진 그녀를 상대하기엔 지하란 장소는 그리 좋지 못했다.
포스가 파고드는 걸 막지 못해 말리기 시작했다.
퍼벅! 퍼버벅!
“큭!”
부스터를 달았는지 총탄 같은 주먹에 실컷 두들겨 맞고서 녹다운당했다.
“졌습니다.”
“많이 늘었군.”
“포스 님만큼은 아니지만요.”
브록의 마석을 흡수해 얻은 순간이동 능력과 급속 재생으로 버티면서 공허의 마력으로 포스의 마력을 고갈시키면 승리할 순 있을지도 모르나, 그랬다간 죽기 직전까지 두들겨 맞을 수 있기에 서로의 성장을 확인하는 선에서 끝을 맺었다.
며칠간 산란방에선 나의 귀환 파티가 열렸다.
개미족의 파티란 영양을 가득 쌓아 두고 나눠 먹는 것이었고, 찾아오는 개미들과 더듬이 인사를 나누는 것인데…….
마우스 투 마우스의 영양 교환과 더듬이 비비기가 난무하여 타 종족에겐 퇴폐적으로 보일지도 몰랐다.
“죄송해요! 전 아직 마음의 준비가~”
그동안의 공로로 초대받은 흑탑의 2장로 히나.
무엇을 상상했는지 모르나 인사도 없이 도망갔다.
‘이것 참, 민망한 모습을 보였어.’
파티 중에 깨어난 페르가 개미들을 닦달했다.
“더 가져와! 살아 있는 걸 가져오라고!”
페르는 작아진 몸을 되돌리기 위해 먹고 또 먹었고, 사냥 개미들이 생포해 온 몬스터의 정기를 흡수하거나 고블린, 인간, 오크, 트롤, 꿀벌족, 말벌족과 같이 산하 종족의 사형수를 흡수하는 데 열중했다.
“제르다코, 난 옆방에 가 있겠다.”
포스는 파티가 지루한지 훈련장으로 갔고, 시간이 흘러 상위종들이 각자의 일터로 복귀하며 케어와 면담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케어를 통해 얻고자 하는 정보는 하나.
‘대체 어떻게 진화한 거지?’
나와 포스는 성장 한계에 도달한 상태에서 극적인 상황을 마주했고, 당시 체내의 마력을 비우고 외부의 마력을 끌어오면서 4차 진화종이 됐다.
이번에 진화한 두 여왕에겐 극적인 상황은커녕, 성장 한계에 도달해 있었던 것도 아닌 듯한데.
“어떻게 진화하신 거죠?”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 던진 질문에 케어는 미리 준비해 둔 서류 뭉치를 건넸다.
“나와 페르가 진화 전에 먹은 것들을 일리아나가 정리해 준 것이란다.”
서류 뭉치를 확인한 나는 눈이 절로 동그래졌다.
‘이거다!’
4장로 네트리가 만든 특급 진화석.
주재료는 마력수 원액, 키클롭스의 마석, 특급 로열젤리, 초급(超級) 영양, 그 외의 다양한 부재료…….
하이 팩토리인 네트리가 정제하고 고도로 압축하여 만든 것인데.
‘초급 영양?’
왕급 몬스터가 특급 수준의 영양이 되니, 그 이상의 영양을 만들려면 제왕급의 몬스터가 필요하다.
‘제왕급 몬스터는 미노타우로스들이 신성시한 브록이랑 버드나무 숲 던전에 봉인 돼 있던 베르제붑 뿐이었어.’
숲의 자원으론 특급 이상의 영양을 만드는 건 불가능.
하지만, 예외는 있다.
‘인간인가?’
익스퍼트 최상급만 해도 특급 영양에 해당하니…….
‘확실히 마스터급 인간은 특급을 넘어선 영양이었지.’
나는 일리아나에게 최근 영양화된 인간 목록을 구해 달라고 부탁했다.
“알았어, 잠시만 기다려.”
서류는 받아 본 나는 쾌재를 불렀다.
‘찾았다!’
영양화 재료의 목록 중, 흑탑의 3장로 히스와 8장로 호르카로 추정되는 시체가 있었기 때문이다.
‘특급 진화석 제조의 핵심은 마스터급 인간이야.’
왕국에 보관 중인 마스터급 시체 두 구가 떠올랐고, 쿠드라 공작이라면 마스터급 시체, 혹은 포로를 보유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그럼 필요로 하는 초급 영양을 만들 수 있을 테고.’
동시에 떠오른 또 하나의 가능성.
‘마스터 이상의 인간을 섭취할 수 있다면…….’
4차 진화종의 수명은 400년.
사도인 나르본느는 800년을 넘게 살았다고 했다.
나의 수명도 일반적인 4차 진화종보단 길 듯한데.
여기서 5차 진화를 이룰 수만 있다면.
‘진화할 때마다 5배수로 수명이 길어졌으니…….’
최소 2천 년.
‘거의 불로장생이잖아!’
하지만 아쉽게도 마스터급 이상의 인간은 본적이 없다.
‘그러고 보니 디아가 말해 준 하룬이란 자가 그랜드 마스터였다고 했지.’
제국의 기사 윈스는 죽기 전 하룬이 내게 창술을 전수했다고 오해했었다.
하룬이란 자는 100년 전에 활동하던 인물로 명문 기사 가문 출신의 용병이었고, 지금은 생사가 확인되지 않았으나 아직도 많은 용병이 그를 용병왕이라 부르며 떠받드는 존재였다.
“하룬 수준의 인간이 더 있을까?”
그에 대한 대답은 나의 귀환 파티가 끝난 후, 안식처에서 디아와 나르본느를 통해 듣게 됐다.
“꽤 있을 거다.”
“없었으면 인간이란 종족은 베르제붑 같은 녀석들에게 일찍이 멸종당했겠지.”
그랜드 마스터가 실존한다니.
운이 좋아 그랜드 마스터를 사냥할 수 있다면 5차 진화의 기회를 얻을 수 있겠지만, 까딱 잘못했다간 객사할 수 있어 겸손히 살기로 했다.
‘4차 진화로도 나쁜 건 아니고, 굳이 진화석이 없어도 진화 확률이 0인 것도 아니야.’
포스를 보며 느꼈다.
나는 아직 성장 한계에 도달하지 않았고, 개미기공을 완성함으로써 더욱 강해질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한동안 나는 하루 중 절반의 시간을 수련에 썼고, 나머지 절반의 시간은 세크리와 돌아다니며 둥지의 발전 실태를 확인했다.
히나의 존재로 마력수, 마석, 마광석의 활용도가 다양해졌고, 특수 작물을 키우는 농장이 늘었다.
“이건 뭐야?”
살찐 인삼처럼 생겨선 뽑히면 비명을 지르는 만드라고라.
풍부한 마력을 품고 있는 식물로 일대의 마력 농도를 높여 주고, 복용했을 때 마력 증진에 도움을 주는 식물이었다.
“이건 또 뭐지?”
알로에의 거대화 버전인 자이언트 알로에.
히나가 만들어 낸 개량 식물로 최근 개량된 윤활제의 주재료로 쓰이는 식물이었다.
이처럼 나도 모르는 특수 식물 다수가 페어리 워커들에 의해 재배되고 있었다.
“저건 아무리 봐도 양귀비 꽃 같은데…….”
“저걸로 인간들을 위한 약을 만들고 있어요.”
“무슨 약?”
“행복해지는 약이라 들었어요.”
“…….”
개미족에겐 특별한 작용을 하진 않지만, 인간의 신경계에 작용하는 마약이 재배되고 있었다.
정제된 마약은 가루의 형태로 프릴에게 보내졌다.
“이거 설마 왕국에 유통되는 건 아니겠지?”
“다크 님, 프릴이 말하길 클라우드 왕국 내에선 마약과 담배를 유통하지 않는다고 했어요.”
“뭐? 담배도 있다고?”
“네. 개미족에게 독이 될 수 있어 재배 중지를 요청했지만… 프릴의 강력한 요청이 있어서요. 지금이라도 재배를 멈추고 생산 시설을 폐쇄할까요?”
“공장까지 있다고!”
프릴은 담배와 마약을 타국, 혹은 적대 세력권에 유통해 조직의 운영 자금을 벌어들이고 있었다.
‘이거 참…….’
2회차 개미생.
깨끗하게만 살 생각은 없었지만, 마약까지 팔고 있었다니.
‘흠…….’
이곳 세계의 인간들에겐 유감이지만, 이만큼 효과적으로 적대 세력의 자금을 빨아먹고 고통을 줄 수 있는 것도 없다.
‘전략적으론 나쁘진 않아.’
궁지에 몰린 클라우드 왕국과 한배를 탔다.
클라우드 왕국민을 제외한 대륙의 모든 인간이 우리에게 적대적인 상황.
수단을 가릴 만큼 여유로운 상황도 아니었기에 마약과 담배에 대해선 소극적인 지원을 결정했다.
“왕국 내에서 유통되지 않게 잘 관리하라고 전해 줘.”
“네! 프릴에게 전해 둘게요.”
둥지의 의료 수준도 매우 높아져 다양한 약품이 생산됐다.
‘웬만한 병은 다 고칠 수 있지.’
개미족은 대륙에서 불치병이라 불리는 병들을 연구하여 치료제를 만들어 왔고, 인간을 비롯한 다양한 종족의 생체 데이터를 쌓아 왔다.
이러한 지식은 종족 전쟁을 대비한 연구로 이어졌다.
만약 인간이 우리에게 유용한 자원이 아닌 백해무익한 종족이었다면, 약이 아닌 독에 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됐을 터였다.
의료 개미들의 생산품 중 내 이목을 끈 건 수련환이란 약이었다.
과거 광폭환이라 불리던 약이 개량을 거치며 마력 보충, 마력 순환 가속, 두뇌 활성, 감각 강화, 재생력 강화, 체온 유지 등의 효과를 갖춘 물건이었다.
‘대단하네.’
수련환은 꾸준히 먹기만 해도 강하게 만들어 주는 사기적인 약이었다.
‘이거… 잘하면 개미기공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겠어.’
개미기공은 과도할 정도로 안전성을 추구한 성장 가속형 기공이다.
‘마력의 흡수율을 높이는데 치중된 개미기공은 일정 수준에 도달하기까지 오래 걸리고, 초기 단계에선 신체에 끼치는 영향도 미미해.’
애벌레 때부터 상시 호흡을 터득하는 개미족이 아니고서야 축기로 넘어가는 것조차 어려웠기에, 인간과 홉 고블린에게 가르쳐 봐야 큰 효과를 보지 못했는데…….
‘수련환을 보급하고 일정 수준까지 지도해 주면 상당한 효과를 볼 수 있겠어.’
일찍이 개미족은 개체별 유형을 나눠 최적화된 수련환을 보급하여 성장을 가속시켰다.
‘생산성도 나쁘지 않고, 특급 영양의 수급 확대 차원에서 인간의 전사 육성을 지원해도 괜찮겠지…….’
클라우드 왕국이 제국이 되기 위해서라도 양질의 전사가 필요할 테니, 인간 전용 수련환의 연구 개발을 지시했다.
인간 전용 수련환이 생산되는 동안 나는 모든 개미교도가 일정 수준의 개미기공을 익히도록 의무화했고, 개미교 직영의 전사 육성 학교를 설립했다.
교관으론 다양한 무기를 다룰 수 있는 워커맨을 지원했고, 수련 보조를 위한 의료 개미와 시설 관리를 위한 개미들도 투입됐다.
‘의료 개미의 쓰임이 많아.’
메디에게 의료 개미를 늘리도록 지시한 나는 메탈 워커들로 돌아가는 공장과 홉 고블린으로 돌아가는 공장을 방문했다.
홉 고블린으로 돌아가는 공장에선 용광로를 통해 적당한 품질의 보급품을 대량으로 찍어 냈고, 광물을 자유롭게 다루는 메탈 워커들의 공장은 특별한 시설 없이 최상품의 무기와 액세서리를 만들어 냈다.
그동안 둥지에서 생산된 물품엔 모두 개미 문양이 새겨졌고, 클라우드 왕국에선 개미 문양이 하나의 고급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이대로 문양을 남발하면 희소가치가 떨어지겠어.’
“앞으로 개미 문양의 사용을 줄인다.”
개미 문양은 메탈 워커가 만들어 낸 최상품에만 새겨 넣도록 했다.
히나와 함께 다니며 둥지 곳곳에 쓰인 마법진을 확인하니, 마법을 보수 관리할 마법사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걸 실감했다.
‘개미족이 마법을 배울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아직 그 방안이 나오질 않았어.’
전사 학교와 더불어 마법사 육성 학교도 만들어 히나에게 초대 교장역을 맡겼다.
교육이란 장기적인 투자다.
당장에 마법사 부족은 해결되지 않는다.
‘용병 길드의 마법사는 믿지를 못하겠고.’
마법사 노예가 흔한 것도 아니니…….
“히나, 네 동료를 이곳에 불러올 수 없을까?”
“그건… 힘들 거예요. 다들 경계가 심해서.”
“그럼 정중히 모셔야겠다.”
나는 디아, 나르본느, 타르를 불러 클라우드 왕국 내에 숨어 지내는 흑마법사를 정중히 데려와 달라고 부탁했다.
그렇게 셋이 둥지를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져진 흑마법사가 하나둘 둥지로 실려 오기 시작했다.
“모셔 오라니까.”
과정이 어떻든 결과는 좋았다.
회복한 흑마법사들은 히나의 수족이 되어 개미족을 위해 일해 주니까…….
겨울이 깊어질 무렵.
개미교의 신전이 각지에 지어졌고, 전사 학교와 마법사 학교도 곳곳에 생겨났다.
병원 역할을 충실히 해내는 개미교로 인해 교단 세력의 자금줄이 말라 갔고, 다슬리와의 전쟁 준비로 물가가 폭등해야 할 상황에 오히려 물가가 안정되며 귀족들이 공황에 빠졌다.
“다크 님, 프릴이 보고서를 보내 왔어요.”
왕국의 귀족들과 성직자들이 암흑가를 찾아 사채를 쓰기 시작했다는 내용.
“이걸 프릴에게.”
난 그동안 작성해 둔 살생부를 프릴에게 보냈고, 데이지를 왕궁에 보내 보관 중인 제국 측 시신에 대한 양도를 요청했다.
시간이 흘러 봄이 왔다.
가르탈이 5만에 이르는 군을 이끌고 다슬리 왕국을 침공하여 연일 승전보를 울렸고, 제논에게서 양도받은 시신이 둥지에 도착했다.
무한자원 개미군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