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한자원 개미군단-185화 (184/189)

185화. 기사의 상징 도란드의 검

전쟁으로 인해 클라우드 왕국의 전투 인력이 대거 빠져나갔다.

귀족들이 떠나며 왕국의 남부는 무주공산이 됐고, 다른 지역도 병력이 부족한 건 마찬가지였다.

병력 부족으로 영지 내의 몬스터 토벌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주민들은 언제 습격해 올지 모를 몬스터를 두려워하며 밤을 지새웠다.

몬스터 대책은 일찍이 세워 뒀다.

지역별로 몬스터들이 풍족하게 살아갈 수 있는 지하 서식지, 던전을 조성해 줌으로써 활동 반경을 제한했다.

“이쪽 던전 작업은 모두 끝냈습니다.”

“그럼, 다른 지역의 공사를 지원해 줘.”

내가 영주로 부임한 남부는 이미 대처가 끝나 안전하다고 몇 번을 말해 줬지만, 인간들은 내 말을 믿지 않았다.

개미족이 제공한 던전을 서식지로 삼기 시작한 몬스터는 급속히 증식한다.

일거리를 찾아 떠도는 사냥 개미들을 정기적으로 파견하여 줄여 줘야 했다.

던전 관리는 개미들의 훈련도 되고, 식량과 마석을 수급할 수 있어 매우 유용한 자원 줄이었는데…….

던전이 늘어나니 개미족만으론 관리가 힘들어졌다.

“사냥 개미 충원이 시급합니다!”

“공사 개미가 먼저니까 기다려.”

“그럼 던전 관리는…….”

“외주를 맡겨야지.”

“외주요?”

개미족이 소화 못 한 일은 고블린과 오크를 동원하면 됐고, 그조차 힘들어지면 인간을 투입하면 된다.

일찍이 간부급 인간과 잠재력이 보이는 인간들에겐 충분한 지원과 교육의 기회를 제공했고, 틈틈이 던전에 집어넣어 실전 훈련을 시켜 줬다.

뭐, 실전 훈련 중에는 사망자가 속출했지만.

‘안전장치를 이중 삼중으로 해 줬어야 했나?’

던전에서 살아 나온 인간은…….

‘색이 짙어졌어.’

동료의 죽음을 짊어진 인간은 잠재력이 한층 더 강화된다는 걸 알게 됐다.

‘잠재력이라.’

잠재력은 한 생명체가 도달할 수 있는 성장 한계점이다.

난 주로 대상이 두른 마력의 색으로 잠재력을 측정했다.

잠재력 측정은 나만이 가능한 게 아니다.

케어는 감정안으로, 페르는 페로몬 감지력으로, 포스는 상대의 신체적 움직임과 호흡같이 사소한 부분들을 포착하여 잠재력을 평가했다.

인간들도 각자의 경험을 토대로 상대의 잠재력을 평가했는데…….

누가 더 정확한 판단을 내리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내가 보는 마력의 잠재력은 의지와 연관되어 있어.’

하위 군체의 워커 퀸 중 다수가 대상의 잠재력을 알아보는 각성 능력을 가졌다.

인재는 돈.

대체가 적은 고급 인재일수록 값지다는 걸 알기에, 나는 잠재력 측정이 가능한 워커 퀸과 워커맨을 각지에 파견하여 인간들과 접촉할 기회를 만들어 줬다.

번화가에 상담소, 혹은 점집을 차리게 하여 무료 상담을 진행하거나, 고아원, 노예 수용소, 육성 학교 등에 교육을 담당케 했다.

“제가 몸이 작아서 힘이 부족한데, 지나가는 용병이 제게 검보다 도끼가 괜찮아 보인다고 해서요. 정말 그럴까요?”

어느 상담소에 파견 나온 워커 퀸이 어딘가 부실해 보이는 초보 용병에게 말해 줬다.

“도끼는 날의 무게만으로 강력한 위력을 발휘하지, 몸이 작다고 쓰지 못할 무기는 아니다.”

“그럼 역시 도끼를…….”

“인간, 말은 끝까지 들어라.”

가디언들의 호위를 받으며 상담에 들어간 워커 퀸은 더듬이를 요리조리 움직이며 말을 이었다.

“네 잠재력은 그리 높지 않다. 제대로 다듬으면 트롤 수준의 육질을 갖추겠지만, 지금의 넌 고블린 고기를 옆에 두고 고민해야 할 수준이지.”

“제가 트롤 수준으로 강해질 수 있단 말인가요?”

인간이 눈을 반짝였고, 워커 퀸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오크 수준이 한계다.”

“오크! 성인 남성의 다섯 배만큼 힘이 센, 실버급 용병이 되기 위해 거쳐야 할 시련인 그 오크만큼요?”

“그래. 너도 잘 단련하면 오크 정도로 강해질 수 있다.”

희망에 부푼 인간은 검을 꺼내 보이며 물었다.

“그럼 제가 검의 길을 계속 걸으면 실버급 용병은 될 수 있단 말이죠?”

언제 부서질지 모르는 녹슨 검을 내려다본 워커 퀸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인간, 그 쓰레기는 뭔가? 설마 검은 아니겠지? 허리에 걸린 검집이 더 튼튼해 보이는데…….”

인간이 움츠리는 듯한 기색에 난감해진 워커 퀸, 무기에 대한 건 넘어가기로 했다.

“큼, 약한 자는 뭘 들어도 약한 건 마찬가지다. 그러니, 개미교의 전사 육성 학교에 들어가 몸부터 만들어라. 어떤 무기를 들지는 그 후에 선택해도 늦지 않아.”

“하지만 학비가…….”

“걱정하지 마라. 무료 전형도 있으니.”

“무료 전형은 전쟁터에 나가는 조건이라 들었는데…….”

“그렇다. 무료로 전쟁터에 보내 주기까지 하지.”

“저… 그냥 용병 일이나 하며 돈을 버는 게…….”

“어리석다 인간! 전쟁터에서 산화할 절호의 기회를 날리려 하다니.”

“그렇군요… 전쟁은 기회였군요. 죽을 각오로 임하면…….”

“그렇다. 군체에 공헌할 절호의 기회다! 가서 죽어라!”

“네! 죽을 정도로 노력해서 강해질게요!”

그들은 인간들의 진로, 혹은 일상적인 고민을 지극히 개미족다운 시선으로 상담해 주며 재능 있는 인간에게 표식을 남겼다.

개미족만이 느낄 수 있는 낙인, 페로몬 표식.

표식을 받은 인간은 개미족의 사랑과 지원을 듬뿍 받아 쓸만한 인재로 거듭났다.

잠재력은 쉽사리 변하진 않지만, 제논의 경우에서 봤듯, 영원불변의 요소는 아니었다.

‘데이지, 웨인, 마르코, 크루크, 메틴, 세르티아였던가.’

개미교의 교주 데이지, 암흑가의 웨인, 마르코, 크루크, 용병 으로 활동하는 메틴과 그의 부관 세르티아.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으나, 이들에게선 마스터급 잠재력이 보이기 시작했다.

유망한 인재들일수록 관리가 필요하다.

그들과는 종종 면담의 시간을 가지며 충성심을 확인했다.

대신관이 된 데이지와 마스터의 경지가 목전인 웨인은 특히나 신경 썼다.

데이지는 어린 나이에 숲에 버려져 나를 가족처럼 여기며 자란 아이라 특별한 사연이랄 게 없으나, 암흑가 출신의 웨인은 조금 달랐다.

성향 자체가 악에 가까운 그는 왕국 최강의 기사 가일론 백작의 제자였기도 하여, 사연을 알아볼 필요성이 있었다.

시간과 공을 들여 경계를 무너뜨리고 사연을 들어 볼 계획이었지만, 웨인은 그리 진중한 사내가 아니었다.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면 그에 상응한 보상을 준다고 하니, 자신의 과거를 술술 털어놨다.

그는 슬럼가에서 자란 평범치 않은 꼬마였다.

“살기 위해선 얕보이면 안 됐습니다.”

죽이고 또 죽이다 보니, 슬럼가에선 그의 상대가 될만한 자는 모두 불귀의 객이 됐다.

“손에 피를 묻힐 때마다 강해지는 자신을 느낄 수 있었죠.”

아닌 척했지만, 놈은 살육에 거부감은커녕 희열까지 느끼는 사이코패스.

슬럼가에 버려지지 않았으면 부모의 피를 손에 묻혔을 무서운 놈이었는데…….

오만해진 그는 슬럼의 룰을 어기며 돈 좀 있어 보이는 중년을 습격하게 됐고, 하필이면 그 대상이 가일론 백작이었다.

“이런 곳에서 썩기에는 아까운 재능이구나.”

웨인의 재능을 알아본 가일론은 주변 기사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검술을 가르쳤다.

“슬럼 밖의 세상은 천국이었습니다.”

스릴은 부족했지만, 살 만했다고 한다.

“지옥 같은 훈련조차 제겐 즐거운 놀이였죠.”

가일론은 신전에 갈 때면 꼭 그를 데려갔고, 종종 고아들을 돌보게 하여 측은지심을 길러 주려 했다.

“전 사부 덕에 평온한 일상을 보내게 됐지만, 절 따르던 부하들은… 여전히 그 지옥에 남아…….”

그에게도 인간적인 면이 있었던 걸까?

“굶고 있을 부하들을 위해 살인 청부를 받은 거야?”

웨인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한 대 치고 싶게끔 만드는 표정으로 답했다.

“아뇨. 부하들은 슬럼가를 장악해 잘살고 있었습니다. 오히려 사부에게 잡혀 기사도란 것을 익혀야 했던 그 시절의 제가 불쌍했죠.”

끼리끼리 논다고, 미친놈의 부하들은 미친놈들이었다.

“그래서 왜 살인 청부를 받은 거야? 잘 살고 있었잖아.”

웨인이 자신의 손을 들여다보며 슬픈 표정을 지었다.

“훈련을 마치고 검을 챙겨 집으로 돌아가던 기사들이 부러웠습니다. 아니… 절망스러웠죠.”

집이 없는 웨인은 훈련장 밖에 나가봐야 갈 곳이 없었다.

“그들은 항상 제게 자랑하듯 보였죠. 가진 것 없는 슬럼 출신의 너 따위는 평생 가질 수 없을 거라며…….”

기사들은 매일 같이 가족들을 불러 웨인에게 자랑하듯 소개해 줬고, 집에 초대하여 화목한 일상을 보여 줬다고 했다.

“저도… 가지고 싶었습니다.”

“그랬구나.”

웨인도 인간이다.

따뜻한 가정, 안락한 집.

그런 걸 원했을 테고, 그때를 기점으로 흑화했을 거라 생각했지만…….

그가 닭똥 같은 눈물을 떨구며 한 말은 내게 충격을 안겨 줬다.

“도란드의 미스릴 시리즈의 검을 얻기 위해… 밤낮으로 죽여 가며 돈을 모았는데… 흑흑.”

그가 충분한 돈을 모았을 무렵 도란드는 세상을 떠났고, 그가 남긴 미스릴 시리즈의 검 또한 경매로 넘어가 부유한 기사들의 손에 넘어갔다고 한다.

“그 후, 돈을 버는 족족 검을 수집하며 살았지만, 도란드의 미스릴 시리즈에 비견되는 검은 아직도 못 구했습니다. 지금 왕국에 남은 건 단 두 자루고 나머지는 모든 제국에 있다고 하는데. 언젠가 꼭…….”

놈에게 깊은 사연을 기대한 내 잘못이다.

‘흑화한 게 아니라, 그냥 처음부터 검은 놈이었어.’

웨인은 그저 욕망에 충실한 놈이었고, 검 오타쿠로 전직하여 장비의 중요성을 깨닫게 됐다.

그가 수전노가 되는 과정을 알게 된 나.

며칠간 훈련을 명목으로 놈을 다져 줬다.

놈을 다지면서 문트리아를 통해 도란드의 검을 알아봤다.

품질 자체는 개미표보다 떨어짐에도 기사들 사이에선 돈 주고 살 수 없는 사치의 상징이었다.

‘하.’

이런 미친놈을 프릴이 감당할 수 있을까?

마스터가 된 이후에 개미족을 배신하진 않을까?

고양이 색이 어떻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지만, 그 고양이가 어떤 습성을 가졌는지는 검증을 해야 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묻자, 누군가가 우리보다 더 많은 돈을 준다면… 넌 어떻게 할 거냐?”

개미족의 감각은 섬세했고, 마안까지 갖춘 내겐 거짓이 통하지 않는다.

이러한 사실을 미리 알려 줬던 터라, 웨인은 속내를 털어놨다.

“전 돈 따위에 움직이지 않습니다. 절 움직일 수 있는 건…….”

“그렇단 말이지.”

조금 미덥진 못했지만, 아슬아슬하게 합격점을 주기로 한 나는 그의 마력과 파장과 잘 맞는 파멸의 검을 맡기기로 했다.

“잘 들어, 히나를 통해 조정을 거치긴 했지만…….”

대마법사 수준의 정신력이 없으면 육체가 점유당할 수 있어 자동 대응 기능을 봉인해 뒀다.

“축적된 마력이 떨어지면 사용자의 마력을 흡수해 오러 블레이드를 만들어 내는 검이니, 딱 필요할 때만 써야 해.”

파멸검을 뽑아 든 웨인은 검날을 보곤 미간을 찌푸렸고, 손잡이를 찬찬히 살피더니 눈이 휘둥그레졌다.

“도란드의 명검보다 훨씬 멋지군요.”

웨인을 떠나보내고 몇 개월 후, 프릴이 대대적인 귀족 제거에 나섰다.

루리아와 문트리아를 통해 지원군으로 보내 주고 싶었지만, 그들은 제거당한 귀족들의 빈자리를 하나라도 더 차지하기 위해 움직이느라 여유가 없었다.

메틴은 전쟁터에 있고.

난 둥지를 개혁하느라 바빴다.

‘잘 해내려나…….’

조금 불안한 감이 있었지만, 웨인 정도면 쓸만하니 믿고 맡기기로 했다.

*   *   *

불타는 저택 앞 공터.

“어떤가? 이게 바로 명품의 위력이라네.”

카시안의 부상으로 형세가 불리해진 필라이가 웨인을 행해 외쳤다.

“웨인 경! 원하는 게 돈이라면 충분히 주겠네! 전하를 위해 그 검을 써 주게!”

웨인이 단호하게 답했다.

“돈으로 날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카시안은 가슴을 부여잡고 몸을 일으켰고, 필라이에게 손을 뻗었다.

“검을…….”

필라이의 검을 받아든 카시안은 오러 블레이드를 일으키며 말했다.

“전귀 웨인, 그대에게도 충심이란 게 있을 줄이야. 원죄의 프릴은 그대가 충성할 만한 자였나?”

웨인은 의문 어린 표정으로 답했다.

“충심? 날 움직일 수 있는 건 보다 큰돈이다. 그러니 협상을 하고 싶으면 돈부터 가져와라!”

“웨인!!”

모욕을 당했다고 느낀 카시안.

이를 즐기는 웨인.

두 사내가 격돌하며 일대가 파괴되어 갔다.

장내의 모두가 고래 싸움의 피해자가 되지 않기 위해 장내를 벗어났다.

이어진 십여 분간의 격돌.

서로에게 치명상을 입힌 두 사내는 그러고도 한참이나 싸웠고, 힘을 다해 쓰러졌다.

“재밌었다. 카시안…….”

만족한 듯한 웨인의 말에 인상을 찌푸린 카시안이 허탈해하며 말했다.

“난,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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