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화. 극한의 차별 대우
프릴이 왕국의 썩은 살을 도려내는 동안, 백작이 된 루리아와 문트리아는 자신들의 사람으로 빈 살을 채우기 위해 바쁘게 움직였다.
나 또한 클라우드 왕국 전역에 던전을 만들며 부족한 관리 인력을 공급받기 위해 용병 길드를 찾았다.
하이 페어리 워커로 위장하여 찾은 용병 길드.
실버급 이상의 용병 다수가 전쟁터로 떠난 상황에서 마석과 몬스터 부산물의 가치가 폭락하며 밑바닥 용병들의 생계가 박살 났다.
가정이 있는 용병들은 무기를 팔아 치우곤, 광업이나 축산업 쪽을 알아봤고…….
똥지게 같은 기피 직종을 선택하거나, 망한 농민의 땅을 헐값에 넘겨받아 농사에 도전하기도 했다.
‘농사는 아닌데 말이야.’
나로 인해 겪는 실패의 연속들이겠지만, 구제도 지원도 해 줄 생각이 없다.
내가 그들에게 제공해 줄 것은 사지 멀쩡한 자라면…….
아니, 일할 의욕이 있는 자라면 누구나 직업을 가질 수 있는 그런 세상.
‘노동력이… 노동력이 더 필요해!’
용병들 중 일부가 건축이나 대장간의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고, 여관이나 잡화점 같은 곳에 취업을 원하는 자도 늘었다.
나는 클라우드 왕국의 상권, 암흑가, 종교, 귀족 사회까지 장악해 가고 있어 그들이 선택한 일은 어떠한 형식으로든 나와 닿아있을 수밖에 없다.
좋은 쪽으로 닿아 있다면 생계는 보장된 것이었으나, 모두가 건실한 길을 택하진 않는다.
도적과 뒷골목의 양아치가 늘며, 칠악의 사칭범이 생겨났다.
제논의 경고와 더불어 웨인의 부상으로 인해 전귀의 통제가 어려워진 프릴은 전귀들의 정비를 명하고, 칠악의 전력을 은밀히 움직여 남은 암덩이들을 은밀히 도려내느라 뒷골목 양아치까지 신경 쓸 수 없었다.
안 좋은 예도 있지만, 전투 인력이 생산과 서비스 인력으로 변한 건 죽어가던 왕국에 활력을 가져다줬는데…….
‘던전의 관리 인력이 부족해.’
전쟁 덕에 얻은 양질의 영양.
무한정 공급되는 각종 영약.
히나의 마법적 지식과 진화석이 더해져 하위 군체의 여왕들마저 모두 3차 진화종이 된 상황.
태어난 개미들도 빠른 속도로 빅, 혹은 스몰로 진화했고 3차까지도 빠르게 육성됐으나, 생산과 공사 쪽에 전념하느라 그쪽 개미만 늘고 있는 추세였다.
‘공사 쪽을 줄였다간…….’
내전으로 인해 토벌이 소홀해진 몬스터들.
방치하면 인간들에게 피해를 줄 테니.
‘던전 공사를 늦출 순 없어.’
그래서 찾아온 용병 길드인데…….
길드 마스터는 남은 자금을 긁어 도주했고, 껍데기만 남은 길드는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었다.
안내인이 씁쓸한 표정으로 벽보를 가리켰다.
“죄송합니다. 지금 의뢰는 몬스터 토벌밖에… 위험도가 높아 그리 추천하진 않아요.”
“여긴 지금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남은 몇 분의 용병들로… 근근이…….”
예전 길드의 안내인에게선 볼 수 없었던 암울한 표정.
이 또한 내가 몬스터 부산물을 유통하며 생겨난 일이었기에 살짝 미안하긴 했다.
‘안 되겠다. 용병 길드를 직영해야겠어.’
급히 부하 개미 한 마리를 문트리아에게 보냈다.
문트리아는 마일도스 백작령의 영주가 되어, 상단은 그녀의 부관이 맡고 있었다.
상단주가 된 자는 카피바라.
인간적 시선으로 봤을 때, 상당한 덩치의 남성으로 그 체급만으로 웬만한 사태는 진정시킬 수 있을 듯했고, 동네 아저씨 같은 인상으로 백익무해해 보이는 자였다.
하지만, 그가 풍기는 마력을 보면…….
‘꽤 쓸 만한 놈이야.’
“상단의 자본으로 왕국의 용병 길드를 모두 인수해라.”
“다크 님, 외람되지만 용병 길드로 운영 흑자를 내기는… 아니, 유지조차 버거울 겁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지?”
“부산물 값의 폭락으로 밑바닥 용병들이 버틸 수 없는 시장이 됐습니다.”
“이상하군. 장비값도 꽤 내렸을 텐데?”
“던전의 사냥은 위험을 동반하고, 길드가 제 기능을 못 해 주니 의뢰주와 동료에 대해 신뢰하기 어려운 상황이라…….”
“그래?”
“상단에 푸는 마석의 물량을 줄인다면 용병들의 발길을 다시…….”
늘어난 던전, 거기서 채굴되는 방대한 마석.
지금 풀리고 있는 것도 빙산의 일각일뿐.
앞으로 아스만을 통해 제국과 무역을 하려면 몬스터 부산물에 대한 생산량은 더욱 늘려야 하고, 보관에도 인력과 비용이 들어감으로 유통량을 억제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전투 인력 부족은 내가 해결해 줄 테니까, 넌 쓸 만한 녀석들을 각 길드의 길드장으로 앉혀 놔. 할 수 있겠어?”
“저도 과거 용병이어서 할 수야 있지만…….”
“한 달 준다. 못하면 넌 둥지 심층부에서 무한 특훈이다.”
“히익! 알겠습니다!”
전투 인력의 보충은 그리 어렵지 않다.
각 지역에 노예 수용소가 있다.
지금의 노예 수용소는 칠악이 직접 관리하는 곳으로 개미족의 노예 관리 노하우가 듬뿍 담겨 있었다.
고대 로마에선 노예의 반란을 막기 위해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다.
노예끼리 계급을 만들어 자체적인 통제를 하게 하거나, 간혹 업무 교체로 적응에 바쁘게 한다거나, 주기적으로 포상을 주고 주인의 여행에 동반할 기회를 준다거나…….
이러한 인류의 노하우는 발전을 거듭하여 21세기 자본주의의 시스템에 녹아들었다.
그래서 이쪽 세계에선 노예에게 기존에 없던 등급을 새겼고, 그 등급을 올릴 방법과 등급에 따른 혜택과 불이익을 부과했다.
예를 들어 범죄 노예는 6~10급.
이들은 일반 노예보다 낮은 계급으로 힘든 일을 도맡게 했다.
인권 없는 지옥에서 죗값을 달게 받으며 모범적인 태도를 보이면 등급을 올려 줬고, 6급까지 올라온 자 중 쓸 만해 보이거나 갱생할 의지가 보이면 칠악의 구성원으로 육성하거나 일반 노예로 승급시켜 줬다.
갱생의 여지가 없는 자는 헐값에 팔아 치워 최악의 주인 밑에서 온갖 고욕을 맛보며 일생을 마감할 수 있도록 레일을 깔아 줬다.
5급부터 시작되는 일반 노예에겐 의무 교육 이수를 통해 등급을 올릴 수 있도록 했고, 등급이 오르면 값을 올려 더 좋은 주인과 매칭될 수 있도록 해 줬다.
4급에겐 쓰레기 수준의 식단을 개선해 줬고, 전문 교육, 포상금, 매주 종교 활동을 위한 휴가… 그 외에도 다양한 혜택을 부여했다.
전문 교육 과정에서 두각을 나타내면 노예의 관리역을 맡겼고, 결혼에 대한 권리를 주며 가정을 이룰 수 있도록 지원했다.
즉, 3급 이하의 노예에겐 인간의 최대 욕구 중 하나인 자손을 남기고자 하는 욕구를 제한한 것인데.
솎아내기를 통한 우량화는 기획한 건 아니다.
기본적으로 인간의 영양 등급은 육성 방식에 따라 얼마든지 좋아질 수 있기에 종자 우량화의 필요성이 적었고, 노동력으로써의 가치도 매우 높아 아이는 많을수록 좋다.
그런데도 제한을 건 것은 인간이란 종이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에 흥미를 잃기에, 장애물을 둠으로써 욕구를 한층 더 자극한 것이다.
그래서 굳이 결혼하지 않더라도 자손을 남기는 것에 대해선 막지 않았다.
단지 아이를 낳을 자격이 있고 없고에 따라 낳았을 때의 혜택을 달리했다.
자격을 갖춘 여인이 아이를 낳을 때마다 당사자와 남편에게 지급되는 포상금을 배로 올려 줬고, 수용처의 거주지를 더 좋은 곳으로 옮겨 주며 산후조리와 육아 교육을 지원했다.
거주지 등급이 높아지면 가사 도우미가 지원되고 시설도 달라지니, 아이를 가졌다는 것 자체가 더 나은 미래를 꿈꿀 수 있는 바탕이 되도록 한 것이다.
‘경제가 발전하기 위해선 여성 노동력을 적극 활용해야 한단 말이지.’
치안이 강화되고 여성의 경제활동이 활발해질수록 남성에 대한 의존도가 떨어지며 결혼의 필요성 또한 준다.
아이가 줄수록 내수 시장은 작아지고, 육군 기반의 병력 구성이라면 왕국의 국력은 쇠약해질 것이다.
그렇다고 여성의 인권을 탄압하고, 경제활동을 제한하는 건…….
‘절반의 노동력, 그것도 남자들과 또 다른 특화 인력을 썩히는 어리석은 짓이야.’
출산율이 0.78%로 20대 부모가 증발한 한국을 겪어 본 나다.
기업에서도 축소되는 미래 시장을 우려하여 이 문제를 주목했고, 각국의 상황을 분석해 보기도 했다.
마오쩌둥이 집권한 중국의 인구 폭증 시기.
공산당 집권 체계에서 여성의 인권은 상당한 위치에 있었고, 노동 강도 또한 약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인구가 폭증할 수 있었던 원인은 무료한 농촌 생활과 피임을 권장하지 않는 사회, 그리고 탁아소란 시설과 거주지 제공에 있었다.
아이가 태어나면 키우는 건 정부의 몫.
거주지에 대한 부담이 없고, 육아에 대한 부담을 국가에서 덜어 주니, 출산이 여성들의 경력에 큰 지장을 주지 않았다.
여성 인권의 탄압 없이 인구 증진 계획에 성공한 나라.
아니, 인구 폭증으로 곤란했던 나라가 있었으니, 문제점을 개선하여 노예들과 영민들에게 적용해 봤다.
개미족은 의외로 육아의 전문가들이다.
먹이고 재워 주고 닦아 주고 정서적 교감까지…….
교육 개미들에게 탁아소 운영을 맡기니 아이들은 걷기도 전에 개미 호흡법부터 습득했고, 개미족에 대한 거부감이 전혀 없다.
시설에선 부모의 등급에 따라 아이의 대우를 달리했고, 아이의 잠재력과 학습 능력에 따라 부모에겐 더 많은 혜택이 주어졌다.
대를 연결한 극한의 차별 대우.
그렇다.
전생의 난 자본주의 엘리트.
평등이란 단어 속에 숨겨 둔 불공정을 싫어했고, 철저한 경쟁주의적 사고를 지향했다.
‘난 자선 사업가가 아니었지.’
내가 만들어 가는 조직에서 충분한 대우를 받고 싶다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야 할 것이고, 그렇지 못한 자에겐 내줄 자비는 없다.
‘뭐, 인간은 환경에 지배받는 동물이니.’
잘 조성된 교육 환경에서 충분한 기회를 제공했음에도 불구하고, 룰에 적응하지 못한 자들은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잉여는 어디든 생겨. 그 비율을 최대한 낮춰야겠지.’
잉여에게도 잉여 나름의 역할이 있다.
그들이 사회 밑바닥을 깔아 줘야 위를 향해 손을 뻗는 자들이 우월감을 느낄 테니…….
차별 가득한 세상.
이곳의 종교는 노예의 믿음을 허락하지 않았으나, 개미교는 노예의 믿음을 거부하지 않는다.
다만, 개미교는 신도를 차별했다.
평민 이하는 신물 착용을 금지.
신도들의 등급에 맞는 신물의 디자인이 정해져 있다.
상위종 개미를 모티브로 삼은 장신구는 신관들이나, 나의 직속 간부급 인사들이나 가질 수 있는 신물.
아무리 봐도 볼품없는 디자인의 개미 장신구인데, 누구나 가질 수 없기에 귀하게 여겨졌고, 믿음을 듬뿍 흡수한 장신구는 신물의 역할을 해냈다.
노예 수용소에서 전투 인력으로 육성 받던 자들을 용병 길드에게 등록하게 하여, 몬스터 토벌을 비롯한 각종 의뢰를 처리하도록 했다.
노예는 따로 인건비 지출이 없어 유지비만 들이면 됐고, 길드가 방대한 전투 인력 사이에서 정예를 골라 파견하니, 외부 의뢰인의 만족도가 높아졌다.
하지만 대다수 의뢰인은 노예 용병을 꺼렸기에, 개미교가 운영하는 전사, 마법사 육성 학교와 계약을 맺게 했다.
두 학교는 학생을 일정 기간 용병 길드에 파견하여 경험을 쌓게 했고, 용병 길드는 두 학교의 상위권 학생을 자유롭게 차출하여 부릴 수 있게 됐다.
과거의 길드는 중계자와 보증인의 역할을 했다면, 지금의 길드는 길드원을 직접 관리하며 하나의 거대 무력 단체가 됐다.
몇몇 용병은 변해 가는 길드에 불만을 품었지만, 대다수 용병은 큰 집단에 소속됨으로 신변의 보호를 확실히 받을 수 있다는 것에 만족했다.
인간들을 투입해 던전 문제를 해결한 나는 부족한 충력을 확보하기 위해 생산설비를 점검했다.
‘역시…….’
무욕의 팔찌가 있어, 과잉 생산은 큰 문제가 아니다.
문제라면 동력 장치가 없어 발생한 충력의 낭비.
일찍이 엔지가 마력석을 액화한 연료로 가동되는 내연기관을 개발했으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상용하지 않았다.
‘지금, 필요하다고!’
한동안 엔지와 히나를 데리고 공장 시설의 업그레이드를 준비했다.
셋이서 머리를 맞대니 갖은 아이디어들이 튀어나왔다.
남아도는 최하급 마력석과 마력수를 희석하여 고효율의 연료를 개발함과 동시에, 기계 부품의 규격화와 고무와 스프링을 통한 설비의 업그레이드를 진행했다.
“엔진을 켜라!”
쿵쾅. 쿵쾅. 쿵쾅.
개미 동력 없이 돌아가기 시작한 공장들.
“이로써 개미족은 충력이란 동력 기관에서 해방됐음을 선포한다!”
개미족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역사적인 순간.
기뻐하는 건 나뿐이고…….
히나는 개미족의 압도적 생산력에 할 말을 잃었다.
개미들은…….
“백 마리가 돌려야 하는 건데… 우린 어디로 가야하는 거지?”
“이대로 잉여가 되는 건 아니겠지?”
숙연한 분위 속 일자리 걱정을 하고 있었는데.
인간형은 클라우드 왕국 각지에 파견하고, 개미형은 공사와 사냥을 지원.
남은 충력은 의식주와 관련된 생산 시설과 각종 영약과 화학품에 대한 시설을 늘리게끔 했다.
‘휴.’
생산 쪽 개미를 대거 줄였지만, 이건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급속도로 성장하는 개미족과 거대해져 가는 클라우드 왕국을 먹여 살리려면 더 많은 개미가 필요로 했는데…….
“세크리, 마스터급 시체는 몇 구나 확보됐지?”
“네, 왕실에서 두 구, 쿠드라 공작이 여섯 구, 가르탈 공작이 네 구를 보내 왔습니다.”
“많이 모였네.”
총 열두 구의 마스터급 시체.
4차 진화를 위한 특급 진화석 열두 개를 만들 수 있는 재료였다.
무한자원 개미군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