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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서 온 특종-3화 (3/107)

3. 시간 되시면 식사 한 번 하시죠 170828 수정

“후우-”

난 숨을 길게 내쉬었다.

흥분한 심장을 차분하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어떻게 된 건진 중요하지 않아. 이건 신이 주신 기회다. 무조건 살려야해.’

난 노트북 모니터에 적혀있는 일주일 후의 메일들을 다시 천천히 살폈다.

아쉽지만 파급력 있는 자료는 하나 뿐.

물론 그것만으로도 감지덕지다.

또 양질의 기사가 안 되도 물량 공세를 펼치면 된다.

본래라면 별 가치 없는 보도자료라도 나 혼자만 써낸다면, 독점적 가치를 가질 테니까.

지금 내 입장으론 어떤 기사든 작성할 기회가 주어진다는 게 중요했다.

‘사실 확인만 제대로 하고 바로 기사를 쓰자.’

아무리 자료를 갖고 있다하더라도, 해당 업체 쪽에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증명 받아야 뒤탈이 없다.

난 오후에 보도자료의 주인공인 통신사 KGT에 가기로 결정했다.

다시 자리에 앉은 나는 노트북을 잡았다.

일주일 후의 보도자료 목록을 훑고, 어느 정도 쓸 만한 것들을 갈무리했다.

‘이제 원래 할 일부터 시작할까.’

준비를 마친 난 본래 내가 해야 할 일들을 시작하기로 했다.

갑자기 맞닥뜨린 상황 때문에 경황없이 시간을 보냈으나, 오전업무는 미룰 수 없다.

난 외신 사이트에 접속해 담당중인 IT관련 기사를 살피고 몇 개를 번역하기 시작했다.

“어, 진형. 일찍 왔네.”

시간이 흐르면서 다른 기자들과 김정효 팀장까지 사무실에 출근했다. 난 김 팀장의 인사에 답했다.

“팀장, 오셨습니까.”

보통 기자 사회에선 직급에 님자를 붙이지 않는다.

선배, 팀장, 차장, 부장.

심지어 편집국의 우두머리인 편집국장까지도 그냥 국장이라 호칭한다.

나 또한 선배들에게 한 두번 혼난 후에야 이런 호칭문화를 익히게 됐다.

“어어, 그래. 외신 쓰고 있었어?”

“네. 다 썼습니다.”

나는 마지막으로 번역한 외신기사를 온라인 기사입력기에 등록했다.

이를 김정효 팀장이 검수 후 출고할 터였다.

난 곁눈질로 김 팀장을 바라봤다.

그는 자신의 자리에 앉아 가방서 노트북을 꺼내고 있었다.

‘말하지 않는 게 좋겠지. 아니, 들키지 않아야 돼.’

난 '미래에서 온 이메일'을 생각하며 다짐했다.

한 때 김정효 팀장은 잘나가던 타 매체의 팀장이었다.

그만큼 기자로써 뛰어난 사람이고 난 팀장을 존경한다.

하지만 인간적으로는 전부 믿고 있지는 않다.

그러니 위험하게 이메일 건을 고백할 순 없다.

'이쪽 업계엔 선배와 후배는 있어도 동지는 없으니까.'

같은 매체 소속 기자라 할지라도 다 경쟁자다.

김정효 팀장이 욕심 없는 사람이라면 괜찮을 테지만 그렇지 않다.

만약 내가 솔직하게 이야기한다면, 김팀장은 이 기회를 날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 이용할 가능성이 컸다.

'난 최고의 IT기자가 될 거야. 그러니까 이 기회는 누구에게도 양보해선 안 돼.'

난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얼굴로 기사를 쓰고 보도자료를 처리했다.

"그럼 취재 나가겠습니다."

발제 기사를 마감한 후 나는 사무실을 나섰다.

본래 기자들의 출근은 각자 맡은 담당 기업들의 기자실로 한다.

반면 우린 효율을 이유로 오전엔 사무실서 업무를 해야만 했다.

'효율은 얼어 죽을, 그냥 없는 인원 빡세게 우라까이 시키려는 거지.'

남의 기사를 베껴 쓰는 속칭 '우라까이'.

디지털투모로우 이윤철 대표가 아무렇지 않게 시키는 일중 하나였다.

사실 이는 잘못되면 기자 생명에 큰 타격을 받는 행위다.

난 이 대표의 악랄함을 떠올리며 움직였다.

목적지는 광화문. 일단 KGT 기자실로 들어갈 생각이었다.

지하철로 광화문역에 도착한 난 곧장 통신사 KGT의 건물로 들어섰다.

"어떻게 오셨어요?"

안내직원이 내게 말을 건네 왔다.

"기잡니다. 여기 명함, 신분증요."

KGT 기자실은 등록제다.

등록한 기자들에게 출입증을 나눠주는데, 나처럼 영세한 매체 소속 기자에겐 연이 없는 이야기다.

그러니 방문 시 명함과 신분증을 건네 기자라는 걸 확인받아야 했다.

"죄송합니다. 지금 기자실 자리가 꽉 차서요."

“아, 그래요? 이런.”

KGT기자실은 이 근방서 가장 넓었다.

그럼에도 가득 찼다니. 나는 허탈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난 이곳엔 단순히 기자실을 이용하기 위해서만 온 것이 아니다.

홍보실 직원들은 간간히 기자실로 내려와 기자들에게 인사를 하곤 한다.

나 또한 평소 만나주지 않는 그들에게 그때 마다 접근할 수 있었다.

‘어쩔 수 없네.’

나는 휴대전화를 꺼내 KGT서 정책관련 홍보를 맡고 있는 강동우 차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뚜르르르. 뚜르르르.

하지만 역시나. 신호음만 가고 강 차장은 전활 받지 않았다.

한두 번 겪는 일이 아니다.

난 강 차장에게 사진을 첨부해 메시지를 보낸 뒤, KGT건물을 나왔다.

가까운 을지로 쪽에 기자실이 하나 더 있었지만, 거기까지 갈 생각은 없었다.

‘최대한 빨리 털어보자.’

근처 카페에 자릴 잡은 내가 생각했다.

일주일 후의 보도자료, 이는 일주일 후엔 그 기사 가치가 없어진다는 의미다.

그러니까 한 시간이라도 빨리 기사화를 하는 게 이득이다.

난 갈무리 해놓은 자료를 기반으로 대충 기사를 작성했다.

기사의 뼈대가 되는 보도자료가 내 손에 있으니 기사작성은 식은 죽 먹기였다.

‘이제 낚이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네.’

이미 팩트 체크가 끝난 기사들까지 작성해나가며 난 연락을 기다렸다.

강동우 차장. 그의 전화가 꼭 필요했다.

“!”

이윽고, 한 시간이 채 지나기 전에 휴대전화 벨소리가 울렸다.

발신자명엔 역시나 ‘KGT 강동우 차장’이 적혀있었다.

“네 차장님.”

-아이고 주 기자님, 연락 주셨더라구요!

강 차장은 평소 내 전화를 받았을 때완 전혀 다른 톤으로 말하고 있었다.

“연락은 아침부터 드렸었죠. 보내드린 문자는 보셨죠? 유관 부서 확인 되신 건가요?”

그동안 강 차장에게 설움 받았던 생각 탓인지 말이 곱게 나가질 않았다.

하지만 재밌게도 까칠한 내 말투에도 강 차장은 전혀 불쾌해 하지 않았다.

-아아, 예예. 그게 누구한테 들으신 건진 모르겠지만 저희 쪽은 확인이 안 되는데요······.

‘거짓말이다.’

길게 말을 이어나가는 모양새가 연기하고 있는 티가 났다.

그리고 더 명확한 근거가, 바로 내 손에 쥐어져 있었다.

“제대로 말씀드리지만, 전 지금 확실한 자료 가지고 있구요. 단순 검증차원으로 부탁드린 겁니다. 확인이 안 된다고 하지 마시고 제 자료에 틀린 점이 있는지 답을 주세요. 아셨죠?”

-············

허세 섞인 내 말을 듣고 강 차장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말씀드릴게요. 보내주신 내용으로 진행 중인 건 맞구요. 그렇지만 정확한 건 발표 전날이나 돼야 저도 알 수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답변 감사합니다.”

-아, 저, 잠시 만요. 기자님.

답변을 들은 내가 전화를 끊으려하자 강 차장이 급히 붙잡았다.

-어디서 들으신 건지 좀 여쭤 봐도 될까요?

유출 될 리가 없는 정보가 내 손에 있으니 당황할 수밖에 없겠지.

그러나 난 알려줄 맘이 없었다.

“아시잖아요. 정보원 보호해야 하는 거. 그럼 끊습니다.”

전화를 뚝, 끊고 나서 난 숨죽여 웃었다.

처음 만났던 때, 디지털투모로우라는 이름을 듣고 인상을 찌푸리던 강동우 차장.

그가 내게 이렇게 쩔쩔매는 순간이 올 줄이야.

게다가 ‘정보원 보호’라는 이야길 내 입으로 내뱉은 것도 신기했다.

그동안은 지켜줄 정보원이 전혀 없었으니, 직접 말해 볼 일이 전무했었다.

‘검증은 끝났다. 러쉬만 남았어.’

난 KGT 기사에 강동우 차장의 멘트를 덧붙여 삽시간에 퇴고를 마쳤다.

그리고 온라인 기사작성기에 기사를 등록했다.

[KGT, 요금제 개편···통신요금 오른다 – 주진형 기자]

국내 3대 통신사 중 한 곳인 KGT.

모바일/통신 분야를 담당하는 기자에게 이 기사는 큰 가치가 있었다.

요금제는 통신사 수익의 가장 큰 축이며, 이에 대한 변동은 업계가 촉각을 곤두세우는 부분이다.

그런데 이를 먼저 알고 단독으로 보도한다?

내 존재가 눈에 띌 수밖에 없다.

[팀장, 기사 올렸습니다.]

난 휴대전화로 김정효 팀장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곧 팀장으로부터 답장이 왔다.

[알았어. 확인하고 출고할게.]

내가 김정효 팀장의 답문을 읽은 지 5분이 채 지나기도 전.

그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진형아, 이 기사 뭐냐?

“KGT쪽에 사실 관계 확인 다 끝난 기삽니다.”

-아니 그게 아니라, 이거 어떻게 알아 낸 거야? 보니까 보도자료도 아니던데?

‘아니, 사실 보도자룐데.’

솔직하게 이야기할 순 없었기에 난 최대한 둘러대기로 했다.

“KGT 건물 오가다가 옥상서 직원들 얘기 듣고 바로 확인했습니다. 운이 좋았습니다.”

현실적으론 불가능에 가까운 이야기다.

-정말이냐? 허. 어쨌든 대박 기사 건졌구나. 축하한다. 진형아.

하지만 김 팀장은 믿어줬다.

정말 그런 천운이 있지 않고서는 내게 가능한 일이 아니었으니까.

“감사합니다!”

기사는 김 팀장과의 전화가 끝나고 10분 뒤 출고됐다.

출고된 기사는 우리 사이트 뿐 아니라, 메이버, 내일, 고글, 게이트, 훔과 같은 포털 사이트의 검색에도 노출된다.

이를 보는 건 일반 독자들뿐만 아니라, 업계 종사자들까지 포함된다.

난 뿌듯한 마음으로 공개된 기사를 다시 살펴봤다.

끝 문단을 다 읽어나갈 때 쯤 휴대전화가 울렸다.

발신자는 방금 전 통화했던 KGT 강동우 차장이었다.

"네 차장님. 어쩐 일이세요."

-아 기자님! 기사 잘 봤습니다. 근데 기자님, 저희도 미치겠습니다. 기사 제목이 너무 자극적이라고 위에서 난리에요.

'자극적은 얼어 죽을.'

기사에 대한 하소연을 위한 전화다.

선배들에게 이야길 들은 적은 있지만 나로썬 처음 받아보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강 차장의 속내는 훤히 들여다보였다.

직역하자면 ‘제목이 마음에 안 드는데 고쳐라’다.

'하긴 요금제가 오른다고 써놨으니. 이미지 타격이 있겠지.'

통신사들의 요금제 개편 자료는 겉으론 무척 중립적인 자료로 보인다.

하지만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숨겨져 있는 의도를 발견할 수 있다.

'바로 요금 상승.'

통신사는 ARPU, 즉 가입자 당 평균 통신비가 기업평판에 큰 영향을 끼친다.

ARPU가 높을수록 그 통신사 고객들은 대체로 비싼 요금제를 쓴단 의미.

즉 통신사가 버는 월 고정수익도 높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요금제 개편은 ARPU를 높이려는 수작일 수밖에 없지.'

기존의 저렴했던 요금제가 통폐합됨으로, 소비자 혜택은 축소되고 가격이 오른다.

난 그걸 간파해 기사를 썼다.

단순히 보도자료를 그대로 옮겨 썼다면 이 전화는 오지 않았을 것이다.

돈을 더 낸단 소리는 그만큼 소비자들에게 여파가 크니까.

그러나 난 기사를 고쳐줄 생각이 없다.

"차장님. 제가 기사에 자료를 다 첨부하진 않았지만, 갖고 있거든요. 기존 요금제랑 비교 해본 겁니다."

-아......저 그게 제목만 좀 어떻게 안 될까요? 요금제 오른다 뭉뚱그려 말하기엔 통화나 데이터 제공 량도 많이 달라지는데요.

'아 그 눈속임 말이지.'

데이터 시대로 바뀌고 난 뒤 통화나 문자 기본 제공 량은 사실상 큰 의미를 둘 수 없었다.

그런데도 통신사들은 여전히 저 두 서비스를 이용해 요금제에 장난질을 치곤했다.

그런 걸 일일이 설명하며 논쟁할 필욘 없었다.

난 단호하게 대답했다.

"안 될 것 같구요. 그리고 한 번 출고된 기사는 저한테 수정권한 없어요. 아시잖아요? 저희 팀장께 문의 하시는 게 나을 겁니다."

이 말을 내뱉으며 난 웃음이 새어나왔다.

‘팀장에게 문의하라.’ 업계서 김 팀장의 체면을 세워주는 최고의 대사였다.

-아, 디지털투모로우 팀장님이요? 죄송한데 연락처를 좀 알 수 있을까요?

“문자로 보내드릴게요.”

-아, 감사합니다. 그리고 기자님······시간 되시면 식사 한 번 하시죠. 다음 주 어떠세요?

난 내 귀를 의심했다.

그동안 먼저 인사를 해도 받는 둥 마는 둥, 고개만 까닥이고 말도 없던 강동우 차장이었다.

내가 접근하면 벌레 씹은 표정을 짓던 그가, 내게 먼저 일정을 잡자며 권유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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