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래에서 온 특종-4화 (4/107)

4. 공조 한 번 하시겠습니까

‘언제는 식사하자니까 비웃고 갔으면서.’

그동안 내가 당했던 설움들, 모진 경험들이 떠올랐다.

난 바로 강 차장의 태도변화를 비꼬려다가 멈칫했다.

‘자존심 생각할 때가 아니지.’

마음 같아선 멋있게 거절하고 싶었다.

허나 기자로써 내 자존심보다 중요한 건 취재원을 확보하는 것.

난 강동우 차장의 제안에 순순히 응하기로 마음을 바꿨다.

그게 합리적인 판단이었다.

천운으로 기회를 잡긴 했으나 난 여전히 한명의 취재원이라도 절실한 형편이었으니까.

“그러죠. 그럼 다음 주에 한 번 봬요. 월요일 어때요?”

나는 최대한 감정 없이 대답했다.

괜히 기쁜 내색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아아 좋죠! 알겠습니다. 그럼 월요일 점심 전에 제가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네 그러세요.”

통화를 끝낸 뒤, 난 문자 메시지로 김정효 팀장의 번호를 강 차장에게 전달했다.

강 차장의 행태를 보아 분명 김 팀장에게 전화를 걸을 터.

그러나 내 기사의 제목이나 내용이 수정되는 일은 없었다.

“오오, 주 기자!”

다음날 이른 아침의 사무실.

출근하던 디지털투모로우 이윤철 대표가 감격에 찬 목소리로 날 불렀다.

늘 짜증난 말투로 업무지적만 하던 이 대표다.

그가 이렇게 신이 난 원인은 나도 잘 알고 있었다.

“어제 기사 아주 좋았어. 어? 대단해.”

개인적으로 이 대표를 좋아하지 않지만, 칭찬은 어쨌든 기분이 좋았다.

난 이 대표에게 감사인사를 한 뒤 노트북으로 기사작성기에 접속했다.

[KGT, 요금제 개편···통신요금 오른다 – 주진형 기자]

[조회수 42,644]

놀라운 숫자가 적혀있었다.

‘말도 안 돼. 조회 수 4만 이라니······ 요 근래 우리 전체 페이지뷰의 두 배잖아.’

이게 바로 이 대표 감격을 할 수 밖에 없는 이유였다.

4만이란 숫자는 국내 5천만 국민 수를 생각하면 그리 크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IT업계 기사라는 점, 우리 매체의 평균 기사 조회 수를 고려한다면 어마어마한 수였다.

디지털투모로우는 번번이 대형 포털 사이트의 뉴스 콘텐츠 제휴서 탈락한 언론사다.

독자들이 포털 사이트 메인에 게시되는 뉴스를 접할 때, 우리 매체의 기사는 볼 수 없다는 의미다.

그런 상황서 우리 매체의 단일 기사 조회 수는 만 단위를 넘기 힘들었다.

순전히 검색으로만 독자 유입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이게 단독보도의 힘······인가.’

난 바로 메이버 사이트에 접속해 ‘KGT 요금제’를 검색창에 입력했다.

검색결과 뉴스 란 가장 위에 나타나 있는 게 바로 내 기사였다.

그 밑으로 다른 매체의 우라까이 기사들이 속속 매달려있었다.

나는 5대 언론사 중 한 곳인 ‘전자뉴스’의 기사를 클릭했다.

곧 전자뉴스의 사이트가 뜨며, 기사 내용이 내 눈에 들어왔다.

[12일 디지털투모로우는 KGT가 무선통신 요금제 개편을 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

우라까이를 할 때, 양심 있는 곳과 양심 없는 곳의 차이는 극명하다.

원 기사를 보도한 매체를 언급하느냐, 안하느냐.

그런 의미서 전자세계는 양심이 있는 곳이었다.

‘그러니까 내 기사를 보고 베꼈다고?’

웃음이 터졌다.

난 늘 남의 기사를 베끼기만 했지, 내 기사를 타 기자들이 베끼리라곤 상상한 적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잘나가는 녀석들이 내 글을 우라까이했다니.

믿어지지 않을 만큼 신기했다.

‘이런 기분이구나.’

뿌듯함과 자랑스러움.

여태껏 기자생활을 하며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들이 가슴에 가득했다.

이제야 다른 기자들이 느끼던 성취감을 알게 된 거다.

“참, 진형아. 안 그래도 어제 KGT 강동우 차장한테 전화 왔었다.”

노트북 모니터를 보고 있던 내게 김정효 팀장이 가벼운 어조로 말했다.

“아 네, 기사 제목 바꿔달라고 해서 거절했더니, 팀장께 전화한 모양입니다.”

“응. 그 부분은 안 된다고 했고. 너랑 같이 밥이나 먹자해서 알았다고 했다.”

“다음 주 월요일 점심에 일정 잡았는데, 그 때 같이 가실까요?”

내가 물어보자 김 팀장은 고갤 저었다.

“아니다. 그건 너 혼자 만나고. 나랑은 나중에 저녁에 보자고 하자.”

“알겠습니다.”

김정효 팀장이 내 어깨를 다독이듯 두드렸다.

난 그 행위의 속뜻을 잘 알고 있다.

KGT기사를 통해 난 매체의 이름을 알렸을 뿐만 아니라, 팀장의 체면까지 세워준 것이다.

팀장-부장-국장급 위치의 기자들은 직속 평 기자들의 역량발휘에 따라 업계평가가 갈린다.

김 팀장 또한 전혀 일면식이 없던 KGT 강동우 차장과 전화통화, 이후 식사약속까지 잡게 된 건 모두 내 기사덕분이었다.

“진형아. 근데 이거 후속 하나 써줘도 좋을 것 같은데?”

김정효 팀장이 말하는 후속이란, 후속 기사.

즉 KGT 요금제와 관련해 추가 취재 기사를 써보란 뜻이다.

물론 이미 기사가 나간 KGT를 노리는 게 아니다.

국내 통신사는 모두 3곳. KGT외에 기업들을 대상으로 비슷한 요금제 개편이 있는지 확인하란 거다.

"아- 그렇네요. SBT나 O플러스 쪽도 개편하는지 알아보겠습니다."

난 문제 없다는 식으로 대답했다.

사실 저 두 통신사의 홍보팀은 햇병아리 기자인 날 거의 무시하는 곳이다.

만나자는 이야길 꺼내면 약속이 있다거나 바쁘다며 거절하는게 일반적.

전화를 걸어 자료를 요청해도 귀찮다는 듯이 며칠 뒤에 전해주곤 했다.

그럼에도 당당하게 후속취재를 하겠다 말한 건,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었다.

‘이미 오늘 아침에 다 봤지.’

출근길 지하철 안.

숱한 직장인들 사이서 구겨 탑승한 난 손에 휴대전화를 붙잡고 이메일 부터 확인했었다.

어떤 보도자료가 미리 와있는지, 또 미래의 보도자료가 수신 됐을지.

그렇게 이메일 목록을 열람한 후, 난 웃음을 멈출 수 없었다.

‘SBT와 O플러스도 요금제 개편을 한다.’

SBT와 O플러스 측도 일주일 후, 요금제 개편 보도자료를 기자들에게 배포한다.

마치 3사가 담합이라도 한 것처럼, 하루 정도 간격을 두고 모두 요금 제도를 바꾸는 것이다.

전동차 안이라 자세한 자료파악을 하진 못했으나, 난 이미 향후 기사 작성 방향을 머릿속으로 그려놓은 상태다.

‘문제는 자료출처를 어떻게 만들어내느냐 인데······’

난 이미 모든 자료를 손에 쥐고 있지만, 이를 그대로 노출 시킨다는 건 위험도가 너무 컸다.

출처(소스)를 명백히 밝힐 수 없는 자료만 가지고 기사를 쓴다는 건, 그만큼 많은 의심을 살 수 밖에 없다.

그 의심은 최고의 기자가 꿈인 내 발목을 잡을 거다.

KGT 때처럼 옥상에서 들었다는 황당한 소린 다시하기 힘들다.

김정효 팀장도 두 번은 믿어주지 않을 일이었다.

의심받지 않고 기사를 내기 위해선 정말 확실한 ‘취재흔적’이 있어야 했다.

‘당연히 그쪽에선 알려주려고 하지 않겠지.’

내가 전활 걸자 예상대로 SBT와 O플러스 쪽은 ‘아직 확정된 게 없다’며 대답을 피했다.

이 말인 즉 요금제 개편을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으니 섣부른 기사를 내지 말란 거다.

이미 다른 기자들도 이런 식으로 수차례 확인했을 터.

동일한 방법으론 승산이 없었다.

‘이미 자료를 다 갖고 있음에도 바로 기사를 낼 수가 없네. 뭐,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만 있을 순 없지. 죽어라 뛰기로 했으니까.’

난 을지로에 위치한 SBT타워로 이동했다.

SBT타워 내 기자실로 들어서는 순간, 안쪽에서 큰 목소리가 들렸다.

“옷, 이게 누구신가. 단독보도로 KGT를 발칵 뒤집은 주진형 기자가 아닌가!”

기자실에 먼저 와있던 기문 선배였다.

기문 선배의 호들갑에 기자실에 자리하고 있던 다른 기자들이 모두 나를 쳐다봤다.

창피하기 이를 데 없는 순간이었다.

“아 선배, 왜 그러십니까. 창피하게.”

“뭐가 창피한가. 자랑스러운 후배의 영광을 드높이는 일이네만.”

“이, 일단 나가서 얘기하시죠.”

난 빈 좌석에 가방을 내려놓고 기문 선배를 끌고 기자실 밖으로 나왔다.

기자실엔 ‘정숙’이라거나 ‘조용’이라는 안내 문구는 없다.

그러나 괜히 짬밥도 되지 않는 기자가 까불고 다녀봐야 좋은 소문이 날리 없다.

“이야~ 디지털투모로우서 그런 기사가 나올 줄이야. 성훈 선배나 주연이도 모두 우리 주 후배 칭찬을 했다네.”

SBT타워 지하 1층에 위치한 카페.

나와 기문 선배는 커피 잔을 하나씩 들고 이야길 나눴다.

기문 선배가 말한 성훈 선배나 주연 선배는 모두 디지털투모로우에 있던 기자들이다.

“운이 좋았습니다. 진짜 저도 깜짝 놀랐다구요.”

뭐 그 기사 때문에 놀란 건 아니었지만.

“도대체 소스는 어딘가? 응? 어디서 그런 대어를 낚은 게야.”

궁금함이 가득한 표정으로 기문 선배가 내게 물었다.

본래 기자들끼리 정보소스를 공유하는 일은 거의 없다.

아무리 친한 사일지라도 업계에 있는 한은 서로가 라이벌이니.

이를 앎에도 기문 선배가 묻는 이유는 정말 순수한 의문 때문일 것이다.

난 본래 정보력이 좋았던 기자도 아니고, 인맥도 없다.

요새 아무리 인터넷이 발달하고 여러 커뮤니티가 활성화 됐다지만, 통신사의 요금제 개편안 정보까지 미리 알 수는 없는 거다.

“정말 운이 좋았던 겁니다. KGT 옥상서 있다가 들었어요.”

난 김정효 팀장에게 했던 거짓말을 그대로 기문 선배에게 전했다.

당연히 기문 선배는 믿는 눈치가 아니다.

“그게 말이 되는가? 그쪽 직원들이 바보도 아니고.”

당연 그렇다.

절대 다른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는 공간서 그런 대외비 자료를 떠벌릴 KGT 직원들이 아니다.

“뭐 천운이죠. 아무튼, 선배도 SBT쪽 요금제 개편 물어 보려고 온 겁니까?”

난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렸다.

내가 말하길 꺼려하자, 기문 선배도 깊게 캐물을 생각은 접은 듯했다.

“아아. 그렇네. 근데 SBT나 O플러스나 요금제 개편 관해 입을 전혀 안 여는구만.”

“제 생각엔 얘네 들도 개편을 분명 할 거란 말이죠.”

“근거가 뭔가?”

“흠······ 뭐 대부분의 통신, 모바일 취재 기자들이 알다시피, 통신3사가 요금제나 단말기 가격을 늘 비슷하게 내놓잖습니까. 분명 양사가 KGT의 움직임을 몰랐을 리 없어요. 상대 사 소식에 제일 귀 기울이고 있는 게 이 녀석들이니까요. 게다가 SBT는 시장점유율이 50%되는 1위 통신사지만, ARPU는 2위인 KGT보다 낮죠. 실상 주주들한테 가장 먹히는 건 점유율 보다는 ARPU니, SBT도 KGT의 정책을 쫓을 겁니다. 3위인 O플러스측도 이미 고착화된 시장 점유율을 끌어올리기 보다는 최대한 효율적으로 수익을 올리려고 할 거고. KGT가 선빵을 쳤으니 그걸 비슷하게 내놔서 소비자 반감은 줄이고 수익은 올릴 기회가 주어진 거나 다름없습니다.”

내가 한 추측은 이미 답을 알고 있는 상태서 내린 것이다.

난 내게 날아온 다음 주 보도자료를 이미 읽었으니까.

“그렇다면 혹시 담합 했을 가능성도 있다는 얘기지 않은가?”

기문 선배가 눈을 빛내며 반문했다.

“담합 가능성이라······”

확실히 SBT와 O플러스의 요금제 개편안은 KGT와 흡사했다.

담합 일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으나 단정적인 물증을 잡지 못한다면 적발하기 어렵다.

‘이전에 시민단체도 통신 3사가 담합했다며 공정거래위원회에 고발한 적이 있지.’

하지만 시민단체는 물증을 잡지 못했고, 통신사는 담합이 아니란 판결을 받았다.

내가 그대로 기문 선배에게 답변하려던 순간.

번쩍, 머리를 망치로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

새로운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아!”

난 식어버린 커피를 단숨에 들이키고는 자리서 일어났다.

“왜? 왜 그러는 겐가?”

“SBT 요금제 개편을 확인할 방법이 떠올랐습니다.”

“뭔가! 내게도 얘기를 해주지 않겠나? 주 후배!”

기문 선배도 커피 잔을 들고 일어섰다.

난 잠시 생각하다가 기문 선배에게 입을 열었다.

“선배, 예전에 제가 2진으로 통신 돌 때 선배가 한 말이 있지 않습니까. 위가 안 되면 아래를 털고, 위아래가 안 되면?”

“옆을 털어라!”

기문 선배가 신나서 외쳤다.

“SBT랑 O플러스 홍보실은 막혔고, 그렇다고 그 윗선엔 연이 전혀 없으니 답은?”

“아래? 옆?”

난 기문 선배의 눈을 똑바로 보면 말했다.

“둘 다요. 선배, 저랑 공조 한 번 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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