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래에서 온 특종-5화 (5/107)

5. 자 어떻게 요리할까요

김기문 선배.

한 때 같은 매체에 소속된 내 사수였지만, 지금은 엄연히 타 매체 선배일 뿐이다.

즉 내 취재에 관해 완전한 공유를 할 이유도, 필요도 없었다.

우린 그저 경쟁자니까.

그럼에도 내가 공동취재를 제안한 건 충분히 내게 이득이 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기문 선배가 아닌 척하면서도 관심을 보였다.

“선배가 아래를 털고, 제가 옆을 터는 겁니다. SBT와 O플러스가 요금제 개편을 한다면, 분명 대리점 쪽에도 요금제 관련 공지가 내려올 겁니다. 선배는 대리점 쪽 돌면서 이 내용을 알아내시면 됩니다.”

통신사 본사서 결정된 사항은 전산을 통해 대리점/판매점 등의 유통매장으로 전달된다.

즉 유통점주와 친분만 있다면, 이런 공지, 공문을 알아내는 것쯤은 큰 문제가 안 될 터.

게다가 난 취재과정의 족적도 확실히 남길 수도 있게 된다.

지금 가진 자료는 누군가 출처에 의문을 제기하면 확실한 해명을 할 수 없으니까.

“오호. 그러니까 아래는 대리점인거군.”

기문 선배가 고갤 끄덕였다.

“네. 그리고 전 지금 과천청사로 갈 겁니다.”

정부과천청사.

세종시로 정부부처가 이관됐지만, 여전히 큰 역할을 하고 있는 곳.

통신기자들이 주시해야할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와 미래창조과학부(미래부)가 남아있다.

“갑자기 청사는 왜?”

아직 감을 못 잡은 기문 선배가 내게 물었다.

내가 갑자기 청사를 가겠다고 한 이유, 그건 미래부 때문이다.

미래부 통신정책국은 통신사의 정책, 경쟁, 시장유통 등을 조사하고 감시한다.

방통위의 역할과 겹치는 구석이 있어서 문제가 생기면 서로 책임을 떠넘기기도 하지만, 명백하게 별도로 담당하는 일이 있다.

바로 요금인가제.

“SBT는, 새로 요금제를 내놓을 때 정부에 신고해야 되지 않습니까.”

“앗, 그렇지! 요금인가제가 폐지 안됐으니.”

기문 선배가 손뼉을 탁, 쳤다.

KGT나 O플러스는 요금제를 새로 내놓거나 폐지할 때 정부의 허락이 필요치 않다.

허나 SBT는 다르다.

시장지배 사업자라는 명목으로 정부의 인가가 떨어져야만 요금제를 개편할 수 있다.

“가서 그걸 털어볼 겁니다.”

“흠. 확실히. SBT쪽을 직접 털 수 없으니 옆으로 돌아 털겠다는 얘기구만. 좋은 생각이긴 한데, SBT를 직접 터는 것보다 미래부 터는 게 더 힘들지 않겠나?”

틀린 말은 아니다.

별도의 홍보부서를 놓고 언론대응을 하는 기업들과 달리 정부부처는 실무진들과 대화를 시도해야 한다.

이 실무진들이 굳이 기자들을 상대해 이득을 얻을 점은 없다.

자신에게 주어진 업무를 처리하기도 바쁘니 최대한 기자들을 상대하려 하지 않았다.

나 같은 무명 매체 소속 기자는 더더욱.

그러나 난 자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지, 이미 실제 자료를 손에 쥐고 있었으니까.

SBT와 KGT, O플러스 모두 동일한 요금제 개편을 할 예정.

이는 ‘담합’처럼 비춰진다.

이를 잘 이용하면 미래부를 협상테이블 충분히 앉힐 수 있을 듯했다.

“되든 안 되든 해봐야죠. KGT건도 터트렸으니 이걸 무기로 도전해볼까 합니다.”

기문 선배가 끄덕였다.

“좋은 기자의 자세로군. 맞네.”

난 다시 진지한 얼굴로 가장 중요한 이야길 더했다.

“그래서 결과가 나오면 자료 공유해서 우리 둘만 기사를 쓰는 겁니다. 하지만 만약 선배가 먼저 두 업체의 개편안을 알아내신다면 혼자 기사 내셔도 됩니다. 아무래도 선배가 더 발품 파는 쪽이니까요.”

내가 이렇게 단호하게 얘기할 수 있는 이유는 단순하다.

선배는 절대 나보다 먼저 자료를 구할 수 없다.

두 통신사의 요금제 개편안 발표는 앞으로 일주일 후.

그 말은 SBT의 인가가 적어도 사나흘 이상 걸린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벌써 대리점에 공지가 떴을 리 없다.

‘아마 O플러스도 마찬가지일 거야. 벌써 공문이 내려왔을 리 없어.’

하지만 기문 선배는 혼자 기사 쓸 마음은 없는 듯 했다.

“뭐? 아니야, 아니야. 주 후배한테 얘기 다 들어놓고 나 혼자 쓸 수야 없지.”

“음······물론 선배가 절 버리시지 않으시면 좋지만요.”

“오우. 당연하지. 난 주 후배랑 같이 해보겠네. 이거 공동취재는 디지털투모로우 있을 때 이후로 오랜만이네.”

“후후. 그러네요.”

그렇게 훈훈하게 협의를 본 우린 다시 기자실로 올라갔다.

난 내려놨던 짐을 챙겨 과천으로 향했다.

기문 선배는 통신사 유통 판매/대리점들이 모여 있는 전자상가로 떠났다.

4호선 지하철, 시끄러운 전동차 안에서 난 미래부에 전활 걸었다.

신호음이 6번 가까이 울릴 때쯤에 상대가 수화길 들었다.

-네 미래창조과학부 통신이용제도과입니다.

“예, 정영수 과장님이시죠.”

-네, 뭘 도와드릴까요.

“안녕하세요. 디지털투모로우 주진형 기자라고 합니다.”

-······디지털······어디시라구요?

생소한 매체이름이 귀에 익지 않은지 정 과장이 물었다.

처음 겪는 일도 아니기에 불쾌할 일 없이 난 또박또박 대화를 이어나갔다.

“디지털투모로우 주진형 기자입니다.”

-아 안녕하십니까, 기자님.

이름을 알아들은 정 과장은 일단 친절하게 응대했다.

“네, 다름이 아니라 SBT 요금제 인가 때문에 연락드렸는데요.”

-요금제 인가요? 그걸 왜 저희에게······

“SBT가 요금제 개편 한다고 인가 신청 올린 걸로 아는데요.”

난 정말 눈 하나 깜빡이지 않은 채 거짓말을 내뱉었다.

-아, 그 부분은 제가 파악하고 있지 않구요. 업무관계상 자세한 답변을 드릴 순 없을 것 같습니다. 저 그럼······

더 길게 통화할 생각이 없다는 듯, 정영수 과장은 명백히 통화를 끊고 싶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괜한 일거릴 만들고 싶지 않단 생각일 테니까.

나 또한 쉽게 답변을 들을 수 있을 거라 보지 않았다.

“아뇨. SBT는 미래부에 요금제 신고를 했습니다. 저 어제 KGT요금제 개편 기사 내놓은 디지털투모로우 주진형 기자입니다. SBT쪽 자료도 갖고 있습니다.”

-············

내가 내놓은 가짜 패에 상대가 침묵했다.

하지만 아직 전화는 끊기지 않았다.

난 조금 더 깊숙이 접근해보기로 했다.

“과장님도 요금제 개편 자료 보셨을 것 같은데. 어제 보도한 KGT측 개편안이랑 똑같더군요. 통신사간 담합의 가능성도 있는데, 미래부 쪽에선 어떻게 판단하고 있는지 좀 여쭤 보려구요.”

그러니까 도저히 대답하지 않을 수 없는, 그런 미끼를 던져야 한다.

“오늘이나 내일, 기사 내보낼 겁니다. 담합 관련으로.”

눈치 빠른 사람이라면 대충 이해할 이야기였다.

만일 여기서 침묵을 유지한다면 기사 속 미래부 멘트는 다음과 같이 첨부되겠지.

‘요금인가를 맡고 있는 미래창조과학부 측은 통신3사의 담합 의혹에 대해 침묵했다.’

즉, 무언의 긍정이란 시선이다.

안 그래도 통신사와 정부부처가 결탁했다는 국민들의 시선이 짙은 판국이다.

이런 멘트를 그대로 내보내고 싶진 않을 터.

-기자님, 죄송한데 성함과 소속을 다시 말씀해주시겠습니까?

드디어 정영수 과장이 입을 열었다.

벌써 네 번째 언급이지만, 난 침착하게 대답했다.

“디지털투모로우, 주진형입니다.”

-······네, 주 기자님. 혹시 지금 어디계신가요?

“과천 가는 중입니다. 약 40분 후에 청사 도착할 것 같군요.”

과천은 분명 서울과 가깝긴 하지만, 기자들이 쉽게 오갈 수 있는 거리는 아니다.

이 때문에 통신담당 기자들도 특별한 일 없인 청사에 오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도착하시면 연락 주십시오. 제가 내려가겠습니다.

‘도박, 성공했다.’

난 차창 밖을 보며 왼쪽 입 꼬릴 올렸다.

50분 뒤, 난 과천정부청사에 도착했다.

지하철역서 청사까지 걸어가느라 시간이 더 지체된 것이다.

청사 안, 미래부 건물로 들어간 난 바로 정영수 과장에게 전활 걸었다.

잠시 뒤, 그가 내 앞에 나타났다.

“아 기자님, 반갑습니다. 정영수 과장입니다.”

“네 디지털투모로우 주진형 기자입니다.”

우린 악수를 나눈 뒤, 서로의 명함을 교환했다.

일반적으로 전화까진 가능해도 직접 만나기는 어려운 게 이 공무원들이다.

특히나 실무진들.

난 처음으로 얻어낸 미래부 실무진 명함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일단 저쪽으로 가시죠.”

난 정 과장의 안내에 따라 작은 회의실로 몸을 옮겼다.

정 과장은 준비해온 자료를 원탁에 내려놓고 자리에 앉았다.

나도 그의 맞은편에 착석했다.

“우선 이 이야기부터 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희 미래부는 요금인가를 맡고 있지만, 담합과 관련한 부분은 공정거래위 쪽으로 확인하셔야 할 겁니다.”

정영수 과장은 불리한 기사를 차단하기 위한 말부터 꺼냈다.

“네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프더레코드로 덧붙이자면 말이죠. 요금인가제 때문에 SBT도 비슷하게 요금제를 내놓을 수밖에 없는 겁니다. 기자님도 그 점은 아시지 않습니까?”

내가 왜 이 소릴 SBT 홍보팀이 아닌 미래부 직원에게 듣고 있는 걸까.

너무 당연한 변명이다.

요금인가제는 시장지배적 사업자인 SBT를 규제하기 위해 존재한다.

2등, 3등 업체보다 저렴한 요금제를 내놓을 경우, 50% 점유율이 60%, 70%까지 올라가 시장구조가 파괴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니 SBT는 요금인가를 받기 위해 타사와 동일한 수준으로 요금제를 내놓을 수밖에 없다.

허나 문제는 시기다.

KGT측이 요금제 개편을 발표하기도 전부터 SBT는 움직이고 있었다.

자료공유를 하지 않고선 가능할 리 없다.

아니면 중간에 ‘쁘락치’가 있다든가.

난 정영수 과장을 차갑게 바라봤다.

“KGT 요금제 개편안은 아직 공시적으로 발표 된 게 아니죠. 그런데 SBT가 동일한 요금제로 인가를 신청한다? 과장님. 이게 어떻게 말이 됩니까?”

“어······그, 글쎄요.”

난 정 과장이 SBT의 요금 인가 신청 사실을 부정하지 않았다는 것에 미소 지었다.

“둘 중 하나가 아닐까요. 첫째 두 통신사 요금기획팀 인력들이 힘껏 머릴 굴려 나온 결과가 동일했다. 둘째, 두 통신사 간 자료가 오갔다. 혹시 미래부가 둘 사이 오작교 놔 주신 건 아니겠죠?”

후후, 난 살짝 장난스런 어투로 말을 마무리했다.

하지만 허황된 이야길 한건 아니다.

SBT는 인가제지만, KGT와 O플러스는 신고제다.

이는 요금제를 변경 하겠다 통보 하야 한다.

미래부도 KGT의 요금제 개편안을 알고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큰 일 납니다. 저희가 안 그래도 그런 쪽으로 이미지가 나쁜데 괜한 오해를 살일 할 리가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미래부 쪽에선 KGT와 SBT의 요금제 개편안이 동일하단 건 알지만, 이에 대해 개입한 건 없다. 그런 거죠?”

내가 기사에 넣을 멘트를 정리하려는 것처럼 정 과장을 떠봤다.

그가 급히 반응했다.

“아아. 개입 절대 아니구요. 그리고 KGT와 SBT 요금제는 약간 다릅니다. 기자님 정확히 자료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데이터 제공 량과 망외통화 제공량 모두 SBT 쪽이 더 적습니다. 그건 동일한 게 아니지요.”

‘오케이.’

기사에 쓸 수 있는 멘트 확보를 마친 내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알겠습니다. 제가 다시 한 번 확인하고 기사 쓰겠습니다.”

난 짐을 챙겨 자리서 일어났다.

“어? 가, 가시려구요?”

너무 빠르게 취재가 끝나자, 오히려 정영수 과장이 당황한 듯 했다.

그럴 만하다.

그의 예상과 달리 내 질문이 짧았을 테니까.

난 내가 가진 자료를 증명하는 대사만 필요했을 뿐.

더 상세한 수치를 얻을 생각도, 괜한 트집으로 기사를 쓸 욕심도 없었다.

이정도만으로도 큰 성과였다.

“네.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에 또 연락드리겠습니다.”

의아함에 머릴 굴리고 있을 정 과장을 놔두고, 난 미래부 건물을 빠져나왔다. 그리곤 곧장 기문 선배에게 연락했다.

“선배! 멘트 나왔습니다. SBT, 요금제 개편안 내놓는 거 맞습니다. 자, 어떻게 요리할까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