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원하는 건 홈런. 큰 한방
-뭣? 벌써 말인가 주 후배!?
휴대전화 수화기 너머로, 놀란 기문 선배의 커다란 목소리가 크게 울렸다.
난 잠시 휴대전화를 귀에서 뗐다가 다시 붙였다.
“네 멘트 제대로 땄구요. SBT는 일단 확실합니다. 선배 쪽은 어떠십니까?”
-아, 미안 주 후배. 난 아직 이야. 신도림 몇 군데 돌아봤는데 아직 요금제 공지는 안내려온 모양이네.
‘당연히 그렇겠지.’
기문 선배는 휴대전화 매장이 몰려있는 신도림 집단상가 쪽을 돌아본 모양이었다.
일은 내 생각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난 과천 청사를 나서며 입 꼬릴 올렸다.
-어떻게, 주 후배 그냥 먼저 기사 쓰는 것도 나쁘지 않다네. SBT쪽만 터트려도 대박 아닌가!
선배의 말대로다.
KGT에 이어 SBT까지.
요금제 개편 기사를 터트리면 분명 이루타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눈에 띌 것이다.
하지만 난 그걸로 만족하지 않을 작정이었다.
내가 원하는 건 홈런. 큰 한방이었다.
그러기 위해선 일단 지금은 뜸을 들이고 자료를 모으는 게 맞다.
다른 기자들이 쫓아오지 못할 간격을 갖추기 위해서.
“아뇨. 일단 킵해 두려고 합니다. 선배, 내일도 대리점 쪽 계속 확인해주실 수 있으세요?”
-음······ 뭐 오래 걸리는 일은 아니니까 가능하네.
“저도 내일부터는 같이 돌겠습니다. O플러스까지 확실해지면, 그 때 기사를 같이 쓰는 걸로 해요.”
-그래주겠나? 고맙네.
기문 선배가 고마워 할 이유는 없다.
난 날 위해서 움직이고 있었을 뿐이니까.
내가 대리점을 같이 돌겠다고 한 말은 거짓말이다.
굳이 나까지 대리점을 돌 필욘 없다.
난 따로 확인하고픈 부분이 있었고, 그러려면 다른 사람을 만나야 했다.
[KGT 홍보 2실 강동우 차장]
강동우 차장과 약속했던 월요일 점심.
본래 KGT 보도자료가 배포되기 바로 이틀 전 날.
그리고 SBT, O플러스 보도자료 배포 사흘 전.
나는 광화문 근처 양식 레스토랑서 강 차장과 만났다.
강 차장은 내게 인사와 함께 준비해온 명함을 줬다.
"저희 일전에 명함 교환했는데요."
내가 웃으며 강 차장에게 말했다.
이 말에 그가 당황한 듯 허허 웃었다.
"아, 그런가요? 제가 기억이 잘 안 나서."
그렇겠지.
강 차장이 내 명함을 버리지 않고 어딘가 처 박아라도 뒀으면 다행일 터다.
"아 오늘 월요일이라 좀 바빴네요. 늦어서 죄송합니다. 많이 기다리셨죠."
강동우 차장이 사람 좋은 얼굴로 내게 사과했다.
그는 사실 약속했던 12시 정각에서 10분가량 늦은 후 내 앞에 나타났다.
저 사과는 이에 대한 변명처럼 보이지만, 난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해합니다. 월요일이 가장 바쁠 때죠."
한 주의 시작인 월요일은, 홍보팀이 가장 바쁠 때다.
주말에 나온 기사나 사건들을 처리하고, 한 주 언론대응에 대한 회의까지 해야 한다.
그런 바쁜 시간대엔 보통 일정을 잡지 않는다.
특히 KGT같은 대기업 소속 홍보팀은.
그러니까 강 차장은 그만큼 날 신경써줬다는 생색을 돌려 말한 것이다.
'뭐, 지금 내가 신경 쓸 필욘 없지.'
본래라면 정말 황송하다는 얼굴로 머릴 숙였을지도 모른다.
날 만나줄 리 없는 사람이었으니까.
"아참. 저희 팀장께서는 따로 저녁때에 보자고 하시는데, 어떠세요?"
난 씩, 웃으면서 강 차장에게 물었다.
그에겐 그다지 좋은 권유일 리가 없다.
다른 매체 기자들을 관리하기도 바쁠 터인데, 디지털투모로우에 두 번이나 시간을 뺏기게 되는 거니까.
"아······ 그러시군요. 알겠습니다. 나중에 또 자리를 잡도록 하죠."
떨떠름한 표정을 애써 숨기며 강 차장이 대답했다.
이후 우린 음식을 주문했고,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요즘 날씨부터 개인적인 일까지.
"지난 주에 제가 결혼 10주년 이었는데 야근하는 바람에 와이프가 삐쳤었거든요. 그거 풀어주느라 진땀 뺐습니다."
"아이고. 아내 분이 많이 실망 하셨겠네요."
강 차장의 부부생활엔 1도 관심이 없었지만, 난 잠자코 호응했다.
인간관계를 차근차근 쌓아놔야만 이후 취재가 훨씬 간결해지기 때문이다.
나 또한 강 차장에게 개인사를 드러내야 서로 간 친밀감과 신뢰감도 쌓일 터였다.
"그러고 보니 주 기자님, 내일 모레쯤에 아마 요금제 개편 자료 정식으로 나갈 것 같습니다."
한창 쓸 데 없는 대화만 주고받다가, 드디어 강 차장이 업무 소식을 털어놨다.
그 때 바지 주머니에 넣어놓은 휴대전화가 진동했다.
난 무시한 채 강 차장의 말을 이어 받았다.
"아, 그래요?"
"네. 기자님한테 제일 먼저 알려드리는 겁니다. 뭐 기자님은 이미 다 아시는 내용이긴 합니다만. 하하."
난 눈을 활짝 뜨고 강동우 차장을 바라봤다.
"그렇군요. 그럼 그 다음 날 쯤에 SBT도 요금제 개편 내보내는 건가요?"
"네?"
기습공격. 강 차장의 휘둥그레 해진 눈과 내 눈이 맞닿았다.
"그게 무슨······?"
"SBT도 요금제 개편, 하잖아요. 알고 계실 텐데."
내 말을 듣고 강 차장이 급히 손사래를 쳤다.
"아뇨, 아뇨. 그럴 리가요. 처음 듣는 얘깁니다. 아, SBT쪽도 요금제 개편 합니까?"
연기일까, 아니면 진심일까.
강 차장은 정말 솔깃한 정보라는 듯이 내게 반문해왔다.
뭐가 됐든 사실을 알아내는 건 이제부터다.
"네. SBT도 요금제 개편을 하더군요. 신기하게도 말이죠, KGT가 내놓은 개편안과 흡사해요."
"그런가요?"
"네. 기본 제공 량만 약간 다를 뿐, 요금 단계 체계나 요금가격 모두 같아요. 요금제 명도 흡사하고. 그래서 미래부 쪽에 물어보니까, 웬걸. KGT 공식 발표도 전에 이미 인가신청을 했더라구요?"
강동우 차장의 눈이 좌우로 흔들렸다.
'정말 알고 있던 건 아닌가 보네.'
난 강 차장의 반응을 보고 판단했다.
하지만 그가 몰랐다고 해서 KGT가 담합행위를 하지 않았단 근거는 되지 않는다.
"제가 요즘 저희 업무로도 벅차서, 타사 신경을 못 썼는데. 그랬군요. SBT쪽도 개편 하는 군요."
"이상하지 않나요? KGT가 SBT와 요금제 개편 정보를 공유할 리도 없는데. 거의 같은 시기에 개편안을 내놓는 게."
내 말에 강 차장은 고갤 끄덕였다.
"그러네요. 제가 알기론 4년 전 시민단체서 공정위에 고발한 후로 각 사간 정보 공유는 일절 없어졌습니다."
그 때 공정위의 판결은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그럼에도 통신사들은 서로 몸을 사리게 됐단 얘기다.
"만약, KGT, SBT, O플러스까지. 모두 동일한 요금 개편안을 내놓는다면······ 내부에 유출자가 있다고 봐야겠죠?"
난 던진 낚싯대의 끝을 바라봤다.
물것인가, 아니면 뻔히 보이는 바늘에 코웃음 치며 지나갈 것인가.
언론홍보라는 일은 글을 쓰는 일보다도 능구렁이 같은 면모가 더 필요한 직종이다.
알면서 모르는 척, 모르면서 아는 척.
척척박사 짓을 잘해야 살아남고 성공할 수 있다.
KGT 홍보실 차장급 인사라면, 내가 만만하게 볼 상대가 아니었다.
“글쎄요. 저희도 일단은 미래부 쪽에 안은 제출하니까요. 이유를 특정할 순 없지요.”
그렇게 돌렸나. 난 곧장 반박했다.
“미래부는 그런 일을 할 이유가 없다던데요.”
“실무진들이야 그럴 리가 없죠. 저희끼리만 하는 얘기지만, 윗분들끼리의 커넥션이란 게 있지 않겠습니까. 뭐 저희 같은 아래쪽에선 모를 일이죠. 하하. 이건 순전히 제 상상이라 기사로 쓰심 안 됩니다.”
결국 ‘모른다’였다.
그러면서도 질문의 본질은 쏙 대답하지 않는 강 차장의 능수능란함에 난 감탄했다.
미래부 쪽으로 시선을 돌리게 한 다음, 유출자에 대한 답변은 자연스레 피한다.
게다가 자신의 상상이라고 설명하며 논란이 될 커넥션 언급까지 방어해낸다.
“그럼 유출 쪽은······ 생각 할 수 없다는 거군요.”
나 또한 포기할 수 없어 한 번 더 물고 늘어졌다.
강동우 차장은 여유롭고 완고하게 대답했다.
“세상일에 절대란 건 없으니까요. 일단 알아보겠습니다만, 확인이 될지는 저도 잘 모르겠네요.”
KGT 쪽에서 정말 조사할지도 의문이지만, 한다 해도 진실이 내 손에 떨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요리조리 피해나가는 강 차장의 언변에, 난 더 캐묻는 걸 포기했다.
만일 내가 경력이 오랜 기자라면, 강 차장에게 친근한 척 굴며 대놓고 기 싸움을 펼쳤을지 모른다.
아쉽게도 지금의 난 그러기엔 경력도 나이도 적었다.
허나 내겐, 그 두 가지와 상관없는 패기가 있었다.
“어쨌든 강 차장님. 전 이거 기사로 낼 생각입니다.”
“어떤 거요? ······음, SBT 요금제 개편요?”
“다 묶어서요. KGT, SBT, O플러스 요금제 담합 의혹. 기본 구상은 이렇습니다.”
당연히 강 차장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이야기다.
아니, 선전포고처럼 들릴 지도 모른다.
좋은 분위기를 형성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서, ‘까는 기사’를 쓰겠다고 당당하게 얘기한 거니까.
“음, 주 기자님. 제가 뭐라 말하긴 그렇지만. 이 건은 좀 확실한 물증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지금까지 말씀하신 것만 들어보면 명확한 부분은 없는 것 같구요. 일단 제가 요금기획 쪽에 확인해보겠습니다. 그 이후에 기사를 쓰시는 게 나을 것 같은데요.”
강 차장의 어조는 굉장히 부드러웠지만, 그 말 속의 뼈는 날카로웠다.
기사의 출고를 최대한 연기시키거나, 아예 막아보겠다는 그 의도가 느껴졌다.
‘그러니까, 알아보고서 그런 일 없다는 답만 줄 거잖아.’
난 최대한 자연스럽게 웃으며 물을 마셨다.
“이 기사, 사실 다른 선배 기자하고 같이 준비 중이라 서요. 그 선배가 오늘 내로 확증 잡아 오신다했으니 믿어봐야죠. 일단 말씀 감사합니다.”
물론 거짓말이다.
기문 선배는 이런 얘길 한 적 이 없다.
난 그저 강동우 차장의 가짜 호의를 불쾌하지 않게 거절하고 싶었을 뿐이다.
이후 말수가 줄어든 강 차장을 상대로, 한동안 난 실없는 농담 따먹길 했다.
우리는 오후 1시가 되자마자 자리를 파했다.
“주 기자님, 아무튼 오늘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모쪼록 저희 KGT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식당 문을 나선 후, 도로변에 선 강 차장은 갑자기 내 손을 붙잡았다.
헤어지기 전에 하는 인사치레라고 하기엔, 적잖이 부담스런 태도였다.
“아휴, 별 말씀을요. 저야말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좋은 소식 있으면 연락주시구요.”
내가 화답하자 강 차장은 허리를 꾸벅 숙여 인사했다.
이후 그는 KGT 쪽으로 몸을 돌려 걷기 시작했다.
‘급했나 보네.’
난 강 차장의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그 동안 여러 홍보팀과 만나봤지만, 이렇게 빨리 끝난 미팅은 없었다.
대화가 더 이어지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일정을 끝냈기 때문이다.
‘아마도 대응책을 준비하러 가겠지.’
대놓고 기사를 쓰겠다고 선언했으니, 저쪽도 손 놓고 앉아 있을 린 없다.
그렇지만 어쩐지 그 대응이, 진실에 다가가는데 도움이 되리란 생각이 들었다.
“참, 휴대전화!”
난 바지 주머니서 휴대전화를 꺼냈다.
강동우 차장과 이야기 중에 연락 왔던 게 기억난 것이다.
[부재중 통화 – 김기문 선배]
화면을 확인 한 난, 곧 바로 기문 선배에게 전활 걸었다.
몇 번의 착신 음이 반복된 후에, 기문 선배가 전활 받았다.
“아 선배, 미팅 중이었습니다. 무슨 일이에요?”
난 기문 선배에게 사과하며 차분히 물었다.
그러자 흥분한 선배의 외침이 쏟아졌다.
-오! 주 후배! 잡았다네, 잡았다네!
“네?”
-SBT랑 O플러스, 요금제 개편안 공지 잡았다네!
“앗! 정말입니까? 잘하셨습니다. 선배!”
소식을 들은 난 주먹을 쥐고 소리 없이 환호했다.
-그럼 곧장 기사 쓰겠는가? 주 후배! 지금 어딘가?
“저 지금 광화문입니다. 채널K 본사 쪽이요.”
-아아, 거긴가. 그럼 KGT로 오게.
“네, 알겠습니다. 바로 홈런 치러 가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