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취재하지 않는 기자는 기자가 아니다
대답 직후 난 바로 KGT 사옥으로 이동했다.
걸어서 5분 정도의 거리였기에 금방 도착할 수 있었다.
1층 로비에 들어서자 날 기다리던 기문선배가 반겼다.
우린 함께 기자실로 들어가 기사 작성을 시작했다.
[통신3사, 동시에 요금제 바꾼다...요금↑ – 김기문 기자]
[잇따른 요금제 개편...“통신사 담합 의혹” – 주진형 기자]
40분 뒤, 기문 선배와 내 기사는 포털 사이트에 전송됐다.
기문 선배가 요금제를 중심으로 수치 자료를 비교한 기사라면, 난 담합에 초점을 맞추고 업계 관계자들이 총출동한 멘트 중심 기사를 썼다.
특히 난 각사 홍보담당자들 뿐만 아니라 시민단체인 ‘참여연합’의 멘트를 추가 했다.
참여연합은 통신사들을 두 번 공정위에 제소한 단체다.
[참여연합 고민영 국장은 “통신사들의 이 요금제 개편은 각사 간 동일한 부분이 많고, 시기가 지나치게 빨리 겹치는 만큼 담합의혹이 크다”며 “자료 확인 후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는 기문 선배가 자료를 구하기 전, 내가 미리 따놓은 멘트였다.
미리 가지고 있던 통신사들의 보도자료를 이용해서 말이다.
내가 자리에 앉아 흐뭇한 얼굴로 노트북 모니터를 보고 있자, 기문 선배가 다가왔다.
“여, 주 후배. 나가서 잠시 쉬지 않겠나?”
기문 선배가 휴식을 권유한 이유를 난 잘 알고 있었다.
메이버에 뜬 자신들의 기사. 보고 있으려니 가만히 앉아 있기엔 너무 뿌듯한 거다.
어디 나가서 춤이라도 추고 싶은 거겠지.
나도 기쁨을 한껏 음미하고 싶은 마음은 같았다.
“어, 그러시죠.”
난 기자실에 짐을 남겨둔 채 기문 선배를 따라 나섰다.
승강기를 타고 1층으로 내려온 우린, 북적이는 로비를 지나 KGT 사내카페로 들어갔다.
“주 후배, 뭐 마시고 싶은가? 선배가 사주겠네.”
“그럼 사양 않고. 전 홍차로 하겠습니다.”
“알았네.”
기문 선배가 세상 밝은 얼굴로 주문하는 동안, 난 휴대전화로 기사 조회 수를 확인했다.
[잇따른 요금제 개편...“통신사 담합 의혹” – 주진형 기자]
[조회수 6,477]
기사가 출고 된지 이제 10여분.
그런데도 조회 수의 상승속도가 심상치 않았다.
“어떤가, 기사 상황은.”
“아, 감사합니다.”
어느새 주문한 음료 두 잔을 들고 온 기문 선배가 자리에 앉았다.
난 재빨리 선배가 건네는 음료 잔을 받아들었다.
“솔직히 엄청 좋습니다. 이 시간대에 벌써 6,000을 넘겼어요.”
기사가 가장 많이 읽히는 시간대는 오전 출근/오후 퇴근 시간대다.
그나마 독자들의 여유가 있었을 점심시간도 지난 지금.
내 예상보다 더 빠르게 조회 수가 올라있었다.
“확실히 빠른 속도구만. 내 기사도 마찬가지네 주 후배. 아까 마지막으로 봤을 때만 해도 5,500대였다네.”
기문 선배의 기사도 나 못지않게 빠른 속도로 조회수가 오르는 모양이었다.
“잘 됐네요. 후후. 선배도 저도 거한 신고식 치룬 거 아닙니까.”
“다 주 후배 덕분이지! 정말 고맙네!”
“헤헤 뭘요.”
낯간지러운 기문 선배의 말에 난 부끄러웠다.
명확히 따지자면 신입시절 선배가 날 도와준 일들이 더 많았고, 그건 내 마음의 큰 빚이었다.
“이직 하고 나서, 처음으로 부장한테 엄청 칭찬받고 있다네! 이제 한시름 놓이는구만.”
기문 선배가 이직한 곳은 전자뉴스 소속 온라인 매체인 ‘이뉴스’.
실제론 별도의 팀이지만, 전자뉴스라는 간판을 지고 있는 곳이다.
기문 선배는 현 이뉴스 편집국 차장을 맡고 있는 한 선배 기자의 도움으로 입사했다.
아무래도 그 차장에 대해 그동안 면이 서지 않았던 모양이다.
“진짜 축하드립니다. 선배. 앞으로도 종종 이렇게 공동 취재 했으면 좋겠네요.”
축하하는 마음은 진심이지만, 공동 취재는 그냥 덧붙인 빈말이었다.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일뿐더러, 난 앞으로 다른 이와 특종을 나눠 내고 싶지 않았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주 후배. 이뉴스로 들어올 생각 없는가? 원한다면 내가 말 잘해보겠네!”
“넷? 흡.”
갑작스런 제안에 놀란 나는 마시던 홍차를 셔츠에 흘렸다.
내가 급히 남아있는 물길 털어내고 기문 선배를 다시 바라봤다.
“진심이네. 디지털투모로우처럼 미래 없는 곳보다야 징검다리로 이뉴스 정도면 괜찮지 않겠는가.”
당연한 말씀이다.
디지털투모로우라는 매체는 역시나 최하위 언론.
업계 대우뿐만 아니라 연봉 대비 업무량도 살인적이다.
반면 이뉴스로 이직한다면 난 우라까이같은 쪽팔리는 짓이나 자잘한 기사처리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될 터다.
‘좋긴 하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난 기자질을 시작한지 1년도 되지 않은 신입이다.
내 기자로써의 실력이나 자질을 차치해두고서라도, ‘점프업’을 할 만한 상황이 아니란 거다.
1년도 채우지 않고 다른 매체로의 이직?
다른 매체 기자들, 특히나 팀부장급들이 고운 시선을 보낼 리 만무하다.
게다가 디지털투모로우 이윤철 대표.
그가 날 별 탈 없이 보내줄 것 같지도 않았다.
“선배. 정말, 정말, 정말 고마운 말씀입니다······만. 아시잖습니까. 저 이제 7개월 된 기자란 거. 어디 이직할만한 수준은 아직 아닙니다. 김정효 팀장께도 죄송스럽고요.”
“흠흠. 그런가. 역시, 내 생각이 빨랐던 걸지도 모르지.”
“그리고, 건방진 말일지도 모르지만, 전 제 힘만으로 점프업 해보고 싶습니다. 한 번 제 손으로 올라가보겠습니다.”
그게 내 진심이었다.
지금의 나는 얼마 전까지의 ‘디지털투모로우 주진형 기자’완 다르다.
다른 기자들에겐 없는 특별한 기회가 매일 매일 쏟아지고 있다.
그 기회를 붙잡기 위해 지금처럼 뛰기만 해도 독보적인 존재가 될 수 있다.
“그래, 그래. 좋은 자세네 주 후배. 뭐 그래도 주 후배가 다시 내 직속후배가 된다면 분명 좋을 것 같네. 나중에라도 생각 있으면 말하게! 물론 내가 이뉴스에 언제까지고 있을 것 같진 않지만 말이네 핫핫.”
“하하. 그렇죠. 선배도 더 좋은 데로 가실 겁니다.”
우린 그렇게 훈훈한 덕담을 나누며 차를 마셨다.
요 근래 가장 여유로운 시간이었다.
그렇게 통신사 요금제 기사를 낸 후 며칠 간.
내 이메일 목록엔 눈이 확 떠질만한 자료가 들어오질 않았다.
그다지 이상한 일은 아니다.
이렇게 무난한 자료들만 쌓이는 게 일반적인 일상이었으니까.
대형 보도자료가 연달아 터지는 건 드문 일이다.
“자, 자. 기자 분들, 이거 마시면서 해.”
오전, 디지털투모로우 사무실.
이윤철 대표는 존대와 반말이 뒤섞인 특유의 말투로 기자들에게 비타민 음료를 나눠줬다.
평소 자기 골프 치러 갈 회사 돈은 있어도, 직원들 먹일 돈은 없다던 이 대표다.
그랬던 그가 이러는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어제 KGT광고를 따왔기 때문이다.
정확히 얘기하자면, 내가 따온 건 아니지.
KGT 쪽에서 내게 전활 걸어 ‘광고를 넣고 싶다’고 했던 거니까.
본래 광고와 같은 영업 얘기는 팀장급 이상에게 연락을 취했어야 한다.
KGT가 나 같은 평기자에게 직접 광고 이야기를 꺼낸 건, 일종의 생색내기라 볼 수 있다.
‘우리가 너 때문에 광고를 넣는 거니까, 앞으로 잘 부탁한다.’
그게 KGT측의 속내다.
어쨌든 광고 수주가 잘 성사됐는지, 대표의 기분이 요 근래 가장 좋아보였다.
“감사합니다.”
난 감정 없이 대답 하며 대표가 건넨 음료 병을 받았다.
“우리 주진형 기자. 내가 진짜 믿고 있는 거 알지? 앞으로도 지금처럼만 해~”
“아- 예.”
무미건조하게 맞받아친 다음, 난 바로 모니터에 집중했다.
이 대표의 저런 부담스런 행동들은 큰 감정 없이 무시해야 한다.
저 사람의 마수에 허덕이다 도망친 기자가 내가 본 것만 세 명이다.
괜히 좋은 감정을 품었다가, 노예가 되는 수가 있다.
착실히 경력을 쌓기 전까진 정신을 단단히 잡고 가야 한다.
“진형아. 잠깐 괜찮을까?”
김정효 팀장이 날 불렀다.
외신을 입력한 뒤 발제기사를 쓰는 시간대라 다들 정신없는 와중이었다.
“네 팀장.”
“할 말 있는데 잠깐, 밖으로.”
‘무슨 일이지?’
난 사무실을 나가는 팀장의 뒷모습을 보며 빠르게 머릴 굴렸다.
이렇게 바쁜 와중에 굳이 날 따로 불러 할 얘기란 게 있나.
‘내가 뭘 잘못한 것도 없는 것 같은데.’
KGT요금제 단독 보도, SBT-O플러스 요금제 답합 의혹 기사까지.
업계를 들썩이게 한 대형 사건을 터트렸고, 자잘하지만 단독 기사들도 몇 개씩 내놓았다.
지금껏 혼날만한 일보단 칭찬받을 일을 더 많이 한 게 사실이다.
이 대표 조차 반 농담 식으로 나를 ‘디지털투모로우의 태양’이라 칭할 정도였으니까.
‘일단 가보자.’
생각해봐야 알 도리가 없었다.
난 빠르게 자리서 일어나 김 팀장의 뒤를 쫓았다.
사무실 건물 뒤편에 있는 벤치. 팀장은 거기에 앉아 날 기다리고 있었다.
“요즘 고생이 많다. 진형아.”
김 팀장이 내게 캔 커피를 건네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아닙니다.”
“너 오고 나서 기자들도 많이 나가고 혼자 하느라 힘들었을 텐데, 잘해주고 있어서 고맙다.”
“예.”
어쩐지 핵심은 뒤에 있을 것 같았다.
“자, 이거.”
김정효 팀장이 가슴팍에서 꺼낸 것은 흰 봉투였다.
“······이건?”
얼떨결에 받아들긴 했지만, 이 봉투가 뭔지 알 수 없었다.
난 김 팀장의 설명을 기다리며 그의 얼굴을 바라봤다.
“이거, 네 인센티브다.”
“인센티브, 입니까?”
인센티브. 일종의 성과급이다.
그 뜻은 알고 있지만, 이를 받는 이유는 여전히 오리무중이었다.
기자들이 인센티브를 받을 때는 두 가지 정도다.
하나, 직접 영업을 뛰어 광고나 컨퍼런스 참여를 받아냈을 때.
둘, 연말에 회사 방침에 따른 활동 성과급.
헌데 지금은 그 둘 다 아니었다.
아직 1년도 못된 내가 영업을 뛸 리도 없었거니와, 아직 연초다.
활동 성과급도 말이 안됐다.
“네 기사 때문에 KGT 쪽에서 광고 넣었잖냐. 그쪽에서 콕 집어서 네 이름까지 얘기하더라. 내가 이 대표하고 얘기해서 네 인센티브로 20% 떼 왔다.”
“팀장······”
“이번 광고는 네가 노력해서 따낸 거나 다름없어. 얼마 안 되니까 부담가질 필요도 없고. 잘 받아서 쓰고 싶은데 써라. 다만 다 보는데서 주긴 뭐해서 그냥 불러낸 거야.”
“감사합니다.”
“그래. 나중에 시간되면 술이나 한잔 사고. 하하.”
농담 섞인 김정효 팀장의 말에 내가 알았다며 진심으로 고갤 끄덕였다.
자린고비 이윤철 대표와 싸워서 내 몫을 챙겨준 사람이다.
언제든 가능할 때에 보답하는 게 맞다.
“그나저나, 우리 매체 사이트에 KGT같은 대기업 광고가 뜨는 건 처음이겠네.”
김 팀장이 감회가 새롭다는 듯 중얼거렸다.
“다른 애들도 너 만큼만 하면 정말 소원이 없겠는데 말이야.”
“뭐, 누가 문제 있습니까?”
내친김에 김 팀장의 하소연이나 들어줄 생각으로 내가 물었다.
“너도 알다시피, 지금 우리 매체가 엉망이잖냐. 회사가 크려면 기자 양성을 해야 되는데, 들어오는 족족 얼마 못 버티고 나가니. 게다가 네 후임으로 인터넷에 영기를 넣으려고 했는데, 얘가 기사는 어느 정도 쓰는데 자꾸 사람을 못 만나겠다고 해.”
박영기.
디지털투모로우에 이제 들어 온지 한 달 된 신입기자.
기문 선배가 회사를 나간 뒤, 급히 뽑은 인재 중 한명이다.
본래 기문 선배 담당이었던 통신/모바일을 내가 물려받으면서, 공석이 된 인터넷 분야를 그에게 맡길 계획이었다.
그런데 박영기씨는 대인기피 증세를 호소하며 취재에 거부반응을 보여 왔다.
“이 대표는 얘가 취재를 못하니까 그냥 5개월 뒤 내보내라 하는데, 지금 우리 상황이 그러기 어려우니 문제지.”
이 대표의 말은 박영기 씨가 수습을 떼고 정직원 계약을 맺는 5개월 뒤, 계약하지 않겠단 의미다.
‘취재하지 않는 기자는 기자가 아니다.’
이는 김정효 팀장의 평소 말버릇이다.
김 팀장 또한 박영기 씨가 맘에 들리 만무하다.
그럼에도 쉽게 내칠 생각을 못하는 건, 현 디지털투모로우 편집국의 형편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디지털투모로우 편집국 소속 기자는 총 6명뿐이다.
그 중 평 기자는 5명.
취재 분야를 간신히 5개로 나눠 분담하고 있는데, 한 사람이라도 빠진다?
‘누군가의 업무가 가중될 건 뻔한 이치지. ······어?’
내 눈이 커졌다. 이건 악재가 아니라 호재였다.
“저한테 방법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