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오늘부터 나랑 다닐겁니다
내 말에 김정효 팀장이 궁금한 표정을 지었다.
“방법이 있다고?”
“네. 박영기씨를 제 2진으로 넣는 겁니다.”
한 취재 분야에 1진, 2진으로 담당자를 두 명 두는 것.
사실 우리같이 작은 매체선 비효율적인 분류다.
사람 수가 적기 때문에 각자 큼직한 일을 나눠 맡아야 했기 때문이다.
“2진으로 넣은 다음 제 보도자료 처리나 우라까이는 전담시키고, 대신 제가 인터넷까지 담당하겠습니다.”
“뭐? 뭐 하러? 네 일만 늘어날 텐데. 통신 쪽도 이제 들어 간지 얼마 안됐고.”
“통신 쪽은 어느 정도 적응했습니다. 신고식 치룬 덕분에 예전보다 대우도 좋구요. 인터넷 분야는 어차피 제가 해왔던 거니까 딱히 부담스러운 것도 아닙니다.”
“어 그래도······”
김정효 팀장이 고민 하듯 말끝을 흐렸다.
분명 나를 걱정하는 모양새를 보여주고 싶은 거겠지.
이대로 내가 말한 대로 진행될 경우, 내 취재 분야가 두 배로 늘어난다.
특히 IT업계서 가장 중요도가 높은 통신 분야와, 인터넷 분야다.
본래라면 그걸 혼자서 처리할 수 있을 리 없다.
하지만 지금의 나라면 가능하다.
일주일 뒤에 발송되는 이메일을 볼 수 있으니까.
‘악재처럼 보이지만, 엄청난 호재다. 그만큼 두각을 나타낼 기횐 더 많아질 테니까.’
IT업계의 심장과 얼굴, 그 두 분야를 모두 내가 맡는 다는 것.
내가 쓸 수 있는 특종의 범위도 두 배가 된다는 의미다.
게다가 보도자료나 우라까이 작성같이 귀찮은 일들, 모두 박영기 씨에게 떠넘길 수 있다.
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이다.
“흐음, 진형아. 정말 괜찮겠어?”
김 팀장이 확인하려는 듯이 한 번 더 내게 물었다.
난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네. 괜찮습니다. 그리고 팀장. 가능하면 제가 한동안 박영기씨 데리고 다녀보겠습니다.”
“어?”
김 팀장이 안경을 고쳐 쓰며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괜히 짐만 되지 않겠어?”
“음 아뇨. 이것저것 일도 시키고, 업무 지시도 바로 하려면 데리고 다니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사실은 옆에 두고 철저하게 부려먹을 생각이다.
“그래 알았다. 그건 내가 올라가서 이 대표한테 얘기해볼게.”
“감사합니다.”
“감사하기는, 내가 고맙지. 네가 고생한 건, 나중에 내가 어떻게든 보답하마.”
김정효 팀장의 보답한단 소린 빈 말이 아닐 터.
난 감사의 의미로 웃으며 고갤 끄덕였다.
김 팀장이 먼저 사무실로 올라가고 난 뒤, 난 조심히 돈 봉투를 열었다.
거기엔 5만 원 권 지폐가 꽤 많이 담겨있었다.
‘광고비의 20%라고 했지.’
차분히 한 장씩 세어보자, 총 20장이었다.
100만 원.
입이 자동적으로 벌어졌다.
생각지도 못한 큰 돈 이었다.
KGT선 500만 원 짜리 광고를 신청한 모양이었다.
“와······ 장난 아닌데.”
기쁨에 웃음이 새어나왔다.
돈을 목적으로 하는 일은 아니었지만, 일한 댓가가 주어진다는 건 기쁜 일이다.
당장 돈이 필요한 일은 없었기에, 난 근처 은행ATM엔 들려 돈을 입금한 뒤 사무실로 올라갔다.
뭐가 됐든 아직 할 일이 많았다.
난 사무실 자리에 앉아 다시 기사 작성에 매진했다.
“박영기씨. 오늘부터 주진형 기자 따라다니면서 배우도록 해.”
잠시 후 내가 발제 기사를 기사작성기에 송고하자, 김정효 팀장이 발언했다.
이 대표와는 이미 협의를 끝낸 모양이었다.
박영기씨는 이외라는 얼굴이었지만, 천천히 고갤 끄덕였다.
[주진형 : 박영기씨. 오늘부터 나랑 같이 다닐 겁니다. 조금 있다 나갈 거니까, 필요한 짐 챙기세요.]
나는 곧장 사내 메신저 프로그램으로 영기씨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박영기 : 네 알겠습니다.]
답장은 바로 돌아왔다.
난 영기씨가 어느 정도 짐을 정리했을 때, 자리서 일어나 팀장에게 갔다.
“팀장, 그럼 저랑 영기씨는 일정 나가보겠습니다.”
“어어. 그래. 오늘 점심은 누구지?”
김정효 팀장이 물어보는 건, 만날 대상이다.
“네 웨스트소프트 김신욱 팀장입니다.”
본래 김신욱 팀장 단 둘이 잡은 일정이었다.
난 김 팀장에게 후배를 데려가겠다는 문자 메시지를 보내놓았다.
“알았어. 잘 다녀와.”
“네. 가자 영기씨.”
“넵.”
난 뒤따라오는 박영기씨와 함께 사무실로 나왔다.
웨스트소프트의 김신욱 팀장과 만나기로 한 장소는 사무실이 위치한 여의도.
약속시간 또한 여유가 있었지만 일찍 나온 이유가 따로 있었다.
나는 영기씨를 사무실서 조금 떨어진 도로변으로 데려왔다.
“영기씨, 영기씨 나이가 스물 아홉이죠?”
“네.”
“알고 계실지 모르겠지만 전 스물일곱입니다. 영기씨 보다 나이가 어려요. 그래도 미안한데 앞으로 선배노릇 해야 하니 말 놔도 될까요?”
대부분의 회사들이 그러하듯, 기자 업계도 군대와 비슷하다.
나이가 아니라 입사 순으로 위아래가 정해지고 매체가 다르더라도 모두 선배, 후배다.
물론 본인 입장에선 충분히 불쾌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이 때문에 나도 먼저 양해를 구해놓을 생각이었다.
“네. 괜찮습니다. 말 편하게 해주세요. 그냥 영기라고 부르셔도 됩니다. 헤헤.”
“그럼 그렇게 할게.”
속마음이야 어떻든 내뱉은 말을 책임져야 하는 건 본인이다.
난 부담 없이 영기의 대답을 받아들였다.
영기는 정말 괜찮은 건지, 실없이 웃음을 짓고 있었다.
“팀장께 얘기 들었을지 모르겠지만, 영기 씬 앞으로 내 2진을 맡게 될 거야. 내가 통신/모바일, 인터넷/유통 담당이고. 왜 이렇게 됐는지 이유는 알지?”
“네?”
영기가 당황한 듯 반문했다.
“영기씨가 취재를 못하고 있잖아. 대인기피증 있다며?”
“아- 네. 맞아요.”
나한텐 아무렇지 않게 말을 건네고 있는 이 사람이, 대인기피증이라니.
사실 잘 믿겨지진 않았다.
난 말을 이어나갔다.
“아무튼, 개인사정이 뭐가 됐든 기자는 사람을 만나는 직업이야. 전화? 인터넷? 아무리 정보통신 기술이 발달하더라도 기자는 발로 뛰어야 돼.”
유선으로는 얻을 수 없는 수많은 정보, 기업인들과의 친분 쌓기나 행사 참여.
면대 면으로 얼굴을 맞대야만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취재를 못한다니 어쩔 수 없어. 저기 영기씨, 기자 계속할 마음은 있는 거지?”
“엣, 네, 네. 계속 하고 싶습니다.”
‘왜인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기자를 하고 싶다 이거지.’
나 또한, 광피리같은 기자가 되고 싶단 목표가 있다.
영기도 모종의 이유가 있는 거겠지. 굳이 캐묻진 않기로 했다.
“그렇다면 일단은 날 잘 따라다니면서, 내가 시키는 일에 집중해줘. 취재하는 부분에 대해선 강요하지 않을 테니까.”
“네, 넵.”
대인 기피는 마음의 병이다.
증상이 심하다면 나로썬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
하지만 영기는 적어도 생활이 불가할 정도의 기피 증세를 보이진 않았다.
그렇다면 극복할 수 있다. 사람이 두렵다고 피하면 피할수록 증세만 심해질 뿐.
“우선 지금 만날 사람은 웨스트소프트 김신욱 홍보팀장이야. 영기씬 나와 김 팀장 대화를 잘 듣고 정보보고 형태로 정리해줘. 따로 녹음을 해도 좋아.”
정보보고는 기자들이 상사에게 취득한 정보를 제출하는 양식이다.
“네 알겠습니다.”
난 영기에게 몇 가지 기본사항을 숙지시킨 뒤, 약속장소로 이동했다.
여의도 국제금융로 식당가.
난 김신욱 팀장이 미리 알려준 두부 전문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두 분 이신가요?”
식당 카운터를 지나자 직원이 나를 맞았다.
“아뇨. 세명입니다. 김신욱으로 예약 했을 겁니다.”
직원이 예약 장부를 넘겨보더니 이내 미소를 지었다.
“아, 네. 예약자 분 먼저 와서 기다리고 계세요. 안쪽으로 들어가시죠.”
나와 영기는 직원의 안내에 따라 가게 안쪽의 방으로 향했다.
미닫이문을 열자, 자리에 앉아있던 김신욱 팀장이 일어서며 인사했다.
“어 주 기자님, 어서 오세요.”
“아이고, 오랜만입니다~ 팀장님. 이쪽은 인터넷 2진 맡게 된 박영기 기자입니다.”
내가 소개하자 영기가 쭈뼛 이며 앞으로 나섰다.
“아, 안녕하세요. 디지털투모로우 박영기 기자입니다.”
“오오, 그렇군요. 박 기자님 만나서 반갑습니다. 웨스트소프트 김신욱입니다.”
김 팀장은 재빨리 명함을 영기에게 건넸다.
이를 본 영기도 허둥지둥 명함을 꺼냈다.
여유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영기에게선, 신입의 태가 줄줄 새어나오고 있었다.
“박 기자님은 새로 들어오신 건가요?”
김신욱 팀장도 모르는 척 할 수 없었는지 자연스럽게 질문했다.
“네, 이제 한 달 정도 됐습니다.”
아이고 저런. 내가 마음속으로 이마를 짚었다.
기자는 너무 솔직할 필요가 없다.
솔직하다고 칭찬받지도 못하고, 오히려 업무에 지장이 생길 때가 많으니까.
“일단 자리에 앉으시죠. 식사는 제가 두부 정식으로 3인분 시켰는데 괜찮으신가요?”
“저야 뭐든 좋죠. 하하.”
“참, 주 기자님. 지난번에 기사 내주셨던 거, 감사합니다.”
김신욱 팀장이 이야기하는 건, ‘훔 인터넷 허브 개편’에 대한 기사였다.
내가 일주일 뒤의 보도자료를 처음 받기 시작한 날.
그 때 받았던 보도자료이기도 하다.
“뭘요. 그게 제 일인데요.”
“아니 그런데 개편은 정말 어떻게 아신 겁니까? 훔 쪽에 아는 분이라도 계세요?”
김신욱 팀장이 신기하다는 듯 물었다.
그럴 만하다.
훔 인터넷은 메이버, 내일, 게이트와 같은 포털 사이트.
하지만 이용자 점유율은 정말 미비한 상태.
1위인 메이버와 비교하자면 수십 배의 점유율 차이가 났다.
그만큼 대중의 관심은 소원하다는 거다.
이런 상황에 내가 보도자료 보다 빠르게 기사를 써냈으니, 김 팀장으로썬 묘할 터.
내가 훔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거나 관계자를 알지 않고선 불가능하니까.
“하하. 어쩌다가 알게 된 겁니다. 말씀하신 분도 주변에 기자가 있을 거라곤 생각 안 했을 거예요.”
나는 마치 누군가로부터 엿들은 것처럼 김신욱 팀장에게 설명했다.
대충 알겠다는 듯이 김 팀장이 연신 고갤 끄덕였다.
“그렇군요. 아무튼 훔에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웨스트소프트는 밥집이라는 압축해제 프로그램으로 유명한 업체였고, 나름 중견기업이다.
하지만 포털 쪽은 역사가 짧은 신생이었고, 성과를 못 내고 있었다.
홍보팀장으로써도 기자 한명 한명이 소중하겠지.
그 덕에 소속매체가 별로인 내게도 잘해주는 거고.
곧이어 식사가 나왔다.
우린 밥을 먹으면서 계속 이야길 나눴다.
늘 그렇듯이 김신욱 팀장의 개인사와 업무 내용이 뒤섞인 대화였다.
그동안 영기는 조용히 식사만 할 뿐이었다.
“으음. 그러고 보니 기자님. 요새 ‘내일’ 쪽이 많이 부산스럽더라구요.”
‘내일’은 국내 점유율 2위인 포털 사이트다.
내일커뮤니케이션이 운영 중이다.
“내일 쪽이요?”
“네. 제 친구가 내일에 있는데, 뭔 일 인진 모르겠고 어쨌든 크게 개편하려는 거 같기도 하구요.”
“그런가요? 한 번 알아봐야겠네요.”
꽤 유용한 정보였다.
다음 취재할 거리를 얻게 된 거니까.
김신욱 팀장 또한, 이렇게 떡밥을 던져서 내게 경쟁사의 상황을 확인하려는 심산일터지.
우린 20분가량 더 이야기 한 뒤, 자리를 파했다.
“그럼 또 연락드리겠습니다. 기자님. 저희 훔 인터넷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아유,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식사를 마친 뒤, 식당 앞에서 우린 인사를 나눴다.
김 팀장이 떠나고 난 뒤, 난 영기에게 입을 열었다.
“영기씨, 정보보고 잘 쓸 수 있겠지?”
“넷, 녹음해놨어요.”
영기가 휴대전화길 들어 보이며 말했다.
“그래, 특히 ‘내일’이 부산스럽다는 부분, 빠트리지 말고 정리해.”
“네넷, 알겠습니다.”
“그리고, 영기씨, 앞으론 6개월 지나 수습 뗐다고 거짓말해도 좋아. 어차피 경력 없다고 얘기해봐야 무시당하는 것도 사실이고. 스스로 면도 안 설 테니까.”
“아 넵!”
이건 나도 겪었던 문제다.
당시 날 담당했던 기문 선배도 내게 같은 말을 해줬었다.
내가 영기를 데리고 이동하려는 그 때, 휴대전화가 울렸다.
“잠깐만, 영기씨.”
멈춰 선 난 바지 주머니서 휴대전활 꺼냈다.
화면을 확인 해보니 전화가 아니라 이메일 수신 알림이었다.
‘이 시간에 새 메일인가? 뭐지?’
휴대전화를 조작해 이메일 앱을 켜자, 눈이 휘둥그레 해 질 제목이 표시됐다.
[내일과 코코아의 합병식 초청장을 보내드립니다 -코코아]
바로 다음 주에서 날아온 이메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