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래에서 온 특종-9화 (9/107)

9. 자존심 없이 매달리는 것만큼은 자신 있다

수년 전, 스마트폰의 대중화가 시작됐을 때.

모바일 메신저 앱은 문자 메시지의 대체재로 각광받았다.

초기엔 미국의 왓어앱이란 서비스가 국내외 할 것 없이 주로 쓰였다.

하지만 왓어앱이 유료화 되며 상황은 급변했다.

많은 이용자들은 왓어앱을 버리고 새로운 무료 메신저로 옮겨갔다.

결국 국내시장을 정리한 건, 발 빠르게 선수를 쳤던 '코코아톡'이었다.

그리고 이 코코아톡을 만든게 바로 '코코아'다.

코코아톡의 현 국내 점유율은 98%.

스마트폰 대중화 전까진 작은 벤처기업에 불과했던 코코아.

이젠 명실상부 국내 최고 IT기업 중 하나가 됐다.

사원규모와 사업범위 모두 수십 배 증가.

코코아는 코코아톡을 중심으로 그 영향력을 확장 중이다.

‘이젠······내일까지 흡수하는 건가.’

[내일과 코코아의 합병식 초청장을 보내드립니다 –코코아]

난 다시 한 번 메일 제목을 읽었다.

굳이 내용을 확인하지 않아도 명확하게 사태를 파악할 수 있었다.

‘김신욱 팀장이 말한 부산스럽다는 거, 이 얘기였구나.’

내일커뮤니케이션은 초기 인터넷 보급 시절엔 지금의 코코아만큼 잘나갔었다.

허나 이메일 서비스에 우표제를 도입하면서 몰락하기 시작했다.

우표제는 유료정책이었고, 이용자들은 반발했다.

내일 측은 대다수의 이용자들을 메이버에 뺏긴 후에야 이메일 우표제를 철회했다.

이후 메이버와 내일의 점유율 차는 점차 커진거다.

‘한 쪽은 진 해. 한 쪽은 뜨는 해인가.’

뭐가 됐든, 이 사건이 IT업계에 엄청난 지각변동을 일으킬 거란 점은 분명해보였다.

이를 보도했을 때의 파장 또한 어마어마하겠지.

‘그나저나.’

난 따가운 시선을 느끼며 휴대전화서 화면을 뗐다. 내 앞에 서 있는 박영기.

그가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날 보고 있었다.

‘이 친구에게 들키지 않고, 취재해야겠네.’

난관이었다.

과연 내가 미래의 이메일을 가졌단 사실을 들키지 않고, 같이 행동할 수 있을까.

“자, 영기씨. 일단 이동하자.”

내가 발을 떼며 영기에게 말했다.

그가 뒤따라오며 물었다.

“네? 어디로 가나요?”

본래 계획대로라면 KGT 기자실로 가야했다.

하지만 난 예정을 바꾸기로 마음먹었다.

곧장 내일과 코코아의 취재를 하는 거다.

“아까 김신욱 팀장이 말했던 ‘내일’ 이야기 있지. 그걸 바로 확인하러 가자.”

“아, 아 네.”

내일 사옥은 한남동에 있다.

우린 곧장 지하철을 타고 한강진역으로 이동했다.

“아 강 팀장님, 저 주진형 기자입니다.”

난 흔들리는 전동차 안에서 내일커뮤니케이션의 강수경 홍보팀장에게 전활 걸었다.

-······아 기자님, 어쩐 일 이세요?

강 팀장과는 김정효 팀장의 도움으로 안면을 튼 사이다.

다만 그다지 살가운 대우는 기대할 수 없다.

“팀장님, 지금 많이 바쁘세요? 잠깐 뵙고 싶은데요.”

-······기자님 죄송한데, 오늘 일이 좀 많아서요. 시간 내기 힘들 것 같은데요.

“팀장님 저희 지금 한남동 가고 있거든요. 한 이십분만 시간 내주세요.”

-이쪽으로 오신다구요?

보통 기자들이 홍보팀원들을 만날 땐, 자신에게 가까운 곳으로 불러내곤 한다.

헌데 내가 직접 사옥까지 찾아가겠다니, 강수경 팀장의 마음도 누그러진 듯 했다.

“네. 곧 한강진 역 도착합니다. 잠깐이라도 좋으니까 좀 뵙죠.”

-전화론 힘드신가요?

“네. 뵙고 얘길 나누는 게 맞을 것 같네요.”

내일커뮤니케이션과 코코아의 합병. 무턱대고 전화 너머로 꺼낼 화제는 아니다.

영기도 지켜보고 있고.

어떻게든 사옥 내 상황을 직접 확인해야 했다.

-알곘어요. 그럼 로비서 연락주세요. 내려가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한참 고민하던 강수경 팀장의 허락이 떨어졌다.

난 영기의 얼굴을 보며 오케이 사인을 날렸다.

통화를 끊자 영기가 신기하다는 듯 내게 말했다.

“선배, 어떻게 그렇게 약속을 잘 잡으세요?”

“영기씨, 미안한 얘기지만 이건 약속을 ‘잘 잡는다’의 범주에 전혀 속하지 않아.”

“아······”

내가 말한 의미를 잘 알아들었는지, 영기가 고갤 끄덕이곤 더 입을 열지 않았다.

그래, 이런 일은 기자로써 일상다반사다.

특별할 것도 없다.

난 만약 강수경 팀장이 거절했다 해도 무작정 사옥에 들어갈 생각이었다.

그렇게 하지 않고선 합병의 실마리를 잡아챌 구석이 없다.

곧 한강진역에 도착한 우리는 지하철서 빠져나왔다.

내일커뮤니케이션 사옥은 한강진역에서 남동쪽으로 떨어진 곳에 있다.

우린 10여분을 걸어 사옥에 도착했다.

사옥 1층은 전체가 로비다.

여기서 승강기를 타야만 직원들이 일하는 사무실로 갈 수 있다.

“영기씨. 만약 올라가게 되거든, 주변을 잘 살펴줘. 특히 뭔가 이상한 게 보이면 화장실 가는 척하고 쫓아가서 제대로 확인해줘.”

난 강수경 팀장에게 도착했단 메시지를 보내놓고, 영기에게 당부했다.

“네? 그래도 될까요? 저······쫓겨날 것 같은데.”

“그럴 일 없으니까, 걱정 붙들어 매.”

난 영기의 소심한 걱정을 단칼에 잘랐다.

그가 불안한 표정으로 날 바라봤지만 지금 내 머릿속에는 합병 취재 뿐.

친절히 달래줄 여유는 없었다.

잠시 후 우리 앞에 있던 투명한 승강기가 내려왔다.

자동으로 승강기 문이 열리자, 그 안에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성이 서 있었다.

강수경 팀장.

그가 굳은 얼굴로 우릴 맞았다.

“오랜만이네요, 주 기자님.”

“그러게요. 참, 강 팀장님. 이쪽은 제 2진으로 들어온 박영기 기자입니다. 앞으로 연락드릴 거예요.”

“아, 안녕하세요. 박영기입니다.”

영기가 조심스럽게 명함을 건넸다.

강 팀장은 그걸 쓱 받아들곤 자신의 명함을 꺼냈다.

“네, 반갑습니다. 내일커뮤니케이션의 강수경입니다.”

서로 명함을 교환한 뒤, 다시 강 팀장이 말을 이어나갔다.

“우선 다른 데로 가실까요?”

강 팀장은 이렇게 이야길 하며 자연스레 우릴 밖으로 이끌었다.

그러나 내 목적은 사무실 내부.

그 목적 달성을 위해 우선 강 팀장을 제지했다.

“아, 아뇨, 아뇨. 팀장님. 박 기자가 내일 사옥 처음이라, 구경도 할 겸 위가 괜찮을 것 같은데요.”

굳이 이렇게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사옥까지 온 손님을 일부러 외부서 맞는 경우는 없다.

그러니까 분명, 위에 뭔가가 있다.

강수경 팀장이 비효율적으로 굴면서 사옥서 우릴 떼어놔야 할 이유.

‘당연히 코코아와의 합병 관련이겠지.’

난 씩 웃었다.

“내일 응접실도 좋잖아요. 사내카페도 있고. 굳이 나갈 필요 있나요. 올라가시죠, 팀장님.”

내 말에 강 팀장이 입술을 깨물었다.

한 3초간, 말을 잇지 못하던 그가 결국 변명을 시작했다.

“아, 지금 사무실이 좀 어수선해서요. 배치도 좀 바뀌고. 공사도 하고 있거든요.”

“에? 그래요? 봄맞이 새 단장인가요?”

“-뭐 비슷하죠.”

강수경 팀장이 애써 웃음을 지어보이며 대답했다.

“괜찮아요. 뭐 어떤 풍경인지 한 번 봐두고 싶네요. ‘내일커뮤니케이션, 봄맞이 개편’ 이런 기사도 하나 쓸 수 있겠는데요? 하하.”

난 빠르게 머릴 굴려 나온 소릴 있는 그대로 지껄였다.

실제론 저런 기사, 대가성으로 쓰는 기획기사로나 적합하다.

취재기사로는 인정받기 힘들다.

“그게 짐들을 옮기고 있어서, 기자님껜 죄송하지만 앉을 자리가 없을 것 같아요.”

“뭐 취재를 앉아서 하나요. 그냥 서서 얘기 나눠도 됩니다. 어차피 길게 있으려고 온 것도 아니구요.”

이쯤 되면 강 팀장도 눈치 챘을지 모른다.

내가 뭔가 ‘냄새’를 맡고 여기에 왔다는 걸.

그만큼 서로 오가는 대화가 억지스러웠고, 특히 난 집요했다.

“후우-. 알겠습니다. 정 그러시다면 올라가시죠.”

잠시 생각하던 강 팀장이 결국 포기했는지, 백기를 들어보였다.

우리 셋은 열려있던 승강기에 탑승했다.

강 팀장은 4층 버튼을 눌렀고, 이내 승강기 문이 닫혔다.

투명한 승강기 너머로 보이는 내일 사옥의 풍경은, 척 봐도 평소보다 소란스러웠다.

내 옆에 선 영기도 대기업 사옥의 신기한 듯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있었다.

“자 바로 들어오시죠.”

4층에 도착한 승강기 문이 열리자, 강 팀장이 응접실로 빠르게 앞장섰다.

누가 봐도 어색한 안내다.

난 강 팀장의 뒤를 따르며 좌우 복도를 살폈다.

직원들이 근무하는 사무실 쪽은 본래 없었던 파란 천막으로 가려져있었고, 큰 짐을 든 사람들도 오가고 있었다.

“이사를 하시는 건가? 짐들이 꽤 많네요.”

응접실에 들어서며 내가 흘리듯 말했다.

“아 네. 부서 이동이 있어서요. ······아.”

말실수 한 걸 깨달은 듯 탄식.

난 그렇게 강 팀장이 흘린 증거를 놓치지 않았다.

“부서이동이요? 뭐가 어떻게 되는데요?”

“-일단 들어가셔서 이야기하시죠.”

체념한 걸까, 아니면 시간을 벌려는 걸까.

강수경 팀장은 우릴 응접실 안쪽으로 안내했다.

로비서 그가 미리 말했던 것과 달리, 응접실은 한적했으며 앉을 자리도 많았다.

‘딴죽을 걸 필욘 없겠지.’

강 팀장도 꽤 난감해하고 있을 터.

괜히 더 건드려봐야 득 될 것도 없다.

“뭐 드시겠어요?”

자리에 앉고 난 뒤, 강 팀장이 음료 주문을 받았다.

“아 전 따듯한 차 아무거나 주세요.”

“저, 전 아메리카노요.”

강수경 팀장이 음료를 주문하러 사내카페에 간 후, 난 영기를 봤다.

“영기씨, 부탁해. 내가 강 팀장하고 이야기 하고 있을 테니까. 저 천막 뒤에 뭐가 있는지 알아봐줘.”

“······네.”

여전히 내키지 않는 듯 했지만, 영기는 거부하지 못한 채 자리서 일어났다.

다행히 강수경 팀장은 그런 영기를 보지 못한 채, 음료 제조에 시선을 두고 있었다.

난 휴대전화를 꺼내 다시 이메일 목록을 열었다.

내일과 코코아의 합병식 초청장 메일.

그 내용을 열자 CI, 즉 합병기업의 새 로고가 메일 내용 윗부분에 표시됐다.

‘내일코코아······ 이게 새 이름인가.’

내일과 코코아를 합쳐 내일코코아. 단순하면서도 명확하다.

로고색상도 기존 내일과 코코아의 상징인 파란색과 노란색 대신 검정색으로 통일 돼 있었다.

‘로고 의미는 아직 모르겠네. 합병 일 날 발표하겠지.’

내가 미리 자료를 보며 분석하던 중, 강 팀장이 쟁반을 들고 돌아왔다.

“여기 차 가지고 왔습니다. 어? 박 기자님은 어디 가셨어요?”

“화장실 갔습니다.”

난 강 팀장에게 대충 둘러대며 음료 두 잔을 테이블 위에 올렸다.

“······네에. 기자님, 근데 오늘은 어쩐 일로?”

미리 일정도 잡지 않고 급하게 왔느냐, 라는 말이다.

“아아. 안 그래도 내일 쪽이 부산스럽단 얘길 들어서요. 무슨 일 있나 궁금해서 와봤습니다. 그랬더니 부서이동을 하고 계신 모양이네요. 하하.”

난 그대로 직구를 던졌다.

더 숨길 필요도 없다. 이미 강수경 팀장도 알고 있을 거다.

“네. 후- 업무관련해서 통합과 분화가 좀 있어서요.”

그렇겠지.

같은 IT기업이라 해도 내일과 코코아는 영역이 많이 다르다.

서비스 간 시너지를 내고 카니발라이제이션(자기잠식)을 피하기 위해선 사전조율이 필요할 것이다.

“뭐 어떻게 바뀌나요? 인력배치까지 바뀔 정도면, 내일 사이트도 크게 달라질 것 같은데.”

당연한 얘기지만 진심은 없는 질문이다.

루어 낚시를 하듯 허상의 미끼를 던진 것 뿐.

“자세한 건 지금 말씀드리기 어렵구요. 아마 다음 주 쯤, 정식으로 자료 낼 것 같아요.”

강수경 팀장은 표정하나 바뀌지 않고 내 미끼를 무시했다.

보면 볼수록 정감이 안가는 사람이다.

“에이, 그러지 마시고. 여기까지 왔는데 힌트라도 좀 주세요. 짤막한 거라도 좋습니다.”

난 분위기 못 읽는 사람인양 의뭉을 떨었다.

자존심 없이 매달리는 것만큼은 자신 있다.

“아직 확답드릴 부분이 아니라서요. 죄송합니다.”

그렇게 나와 강 수경 팀장이 실랑이 아닌 실랑이를 반복하는 사이.

영기가 응접실 입구 쪽에서 나타났다.

한손에 든 휴대전화를 내게 흔들어 보이며, 그가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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