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기사는 쌍방의 이야기를 모두 듣고 써야 해
‘저 흥분한 표정은······’
난 강수경 팀장의 어깨너머로 영기의 얼굴을 보며 깨달았다.
‘녀석, 뭔갈 찾아 낸 것 같다.’
“어?”
내 시선을 눈치 챘는지, 강 팀장이 뒤를 돌아봤다.
영기는 그런 강 팀장에게 눈길을 주지 않고 빠르게 내 옆자리에 앉았다.
“잘 싸고 왔어?”
“네? ······아, 네넷.”
눈치가 없는 건 아니었는지, 영기가 내 말뜻을 알아듣고 대답했다.
그 모습을 멋대로 해석한 강 팀장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아 그나저나 강 팀장님. 좀 알려주세요. 어차피 부서이동 기사 나갈 건데, 좀 정확하게 쓰는 게 내일 쪽에도 좋잖아요.”
나는 정말 간절하다는 듯 강 팀장에게 매달려봤다.
어차피 영기가 제대로 된 증거만 잡아왔다면, 강 팀장의 증언 따윈 필요 없다.
이는 단순히 연막을 치는 것뿐이다.
“그게, 저도 딱 잘라 말씀드리기가 곤란해서요. 진짜 확정이 돼야 공개할 수 있는 부분이라 지금 말씀드리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죄송해요.”
처음이다.
강수경 팀장으로부터 죄송하다는 소릴 듣는 건.
내가 지금껏 봐온 강 팀장은 자기 위치에 대한 자부심이 굉장히 강한 사람이었다.
다른 홍보실 직원들과 다르게 늘 꼿꼿한 태도로 기자들을 대하곤 했다.
그 뿐만 아니라 빈말로도 죄송하단 이야긴 절대 꺼내지 않았다.
그러니까 강 팀장의 죄송하단 말은, 정말 곤란하단 뜻이다.
‘이쯤 하면 충분하다.’
절묘한 시기에 내가 본사로 찾아온 덕분일까.
난 생각 이상으로 강 팀장을 몰아붙인 모양이었다.
“흠. 팀장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면, 어쩔 수 없죠. 그럼 부서이동 기사는 짤막하게 써도 되죠?”
“······”
난 강수경 팀장이 뭐라고 대답할지 궁금했다.
자존심을 지키고 그냥 쓰라고 할 건가, 아니면 자존심을 버리고 회유를 할 건가.
강 팀장은 바로 대답하지 못한 채, 잠시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기사 쓰시는 거야 기자님 마음이죠. 전 안 써주셨으면 좋겠지만요.”
강 팀장이 웃음기 하나 없는 얼굴로 말했다.
보는 것만으로도 몸서리쳐질 정도로 차가웠다.
자존심은 지키고 자신의 의견까지 확실하게 표현한다.
역시나 강수경 팀장.
“하···하. 일단 알겠습니다. 제가 생각보다 시간 많이 빼앗진 않았죠? 그만 일어나보겠습니다.”
“그러시겠어요? 그럼 엘리베이터 앞까지 배웅하겠습니다.”
자리서 일어난 나와 영기를 따라, 강 팀장이 승강기 앞까지 쫓아왔다.
사실상 배웅이라기 보단 감시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그럼 들어가세요. 기사는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잘 부탁한다는 말이 무언의 위협처럼 들리는 이유는 뭘까.
승강기 안에 탄 난 애써 미소 지으며 강 팀장에게 인사를 했다.
문이 닫히고, 승강기가 곧 1층으로 우릴 내려놨다.
“영기씨, 알아낸 게 뭐야? 확실한 걸로 잡아온 거 맞지?”
로비로 나오자마자, 난 영기에게 물었다.
지금 중요한 건 강수경 팀장의 안색이나 기분 따위가 아니다.
바로 합병에 대한 명확한 증거다.
“네! 선배. 이거 정말 확실한 것 같은데, 제가 찍어왔어요.”
영기가 내게 자신의 휴대전화를 내밀었다.
휴대전화의 화면 안엔 방금 찍은 사진인지, 내일커뮤니케이션 사무실의 일부가 담겨있었다.
“확대를 해봐야 알 것 같은데, 잠깐 줘봐.”
난 영기에게 휴대전화를 받아, 사진을 직접 확대해봤다.
“내일······코코아······”
그 문구였다. 내가 방금 전 봤던 보도자료 속 CI.
내일코코아의 새로운 회사로고가 사진 속에 담겨있었다.
명확히는 로고가 담긴 행사안내용 패널을 영기가 찍은 거였다.
이 패널은 아마도 합병 식에서 사용할 예정이겠지.
“박영기씨.”
“네, 넷.”
난 고갤 들어 영기를 불렀다.
그에게 휴대전화를 넘긴 뒤 다시 입을 열었다.
“정말 잘했어.”
내가 영기의 등을 퍽 치며 활짝 미소 지었다.
영기도 이내 따라 웃어보였다.
“저, 정말인가요?”
“그래, 그래. 진짜 잘했어. 확실한 증거다.”
“근데 이게, 무슨 뜻인가요? 내일이 코코아를 흡수하는 건가요?”
영기가 흥미로운 눈빛을 띠며 물었다.
“아니야. 그 반대겠지. 겉으로 보기엔 오래된 내일이 더 커 보이지만, 실상 주도권을 지고 있는 건 코코아야. 코코아가 내일을 흡수 합병하는 거겠지.”
내 추론일 뿐이었지만, 난 확신하고 있었다.
지금의 ‘내일’은 코코아같이 국민 메신저를 만든 회사를 살 능력은 되지 못한다.
메이버라면 모를까.
하지만 애초에 코코아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다.
경영진이 회사를 팔 리가 없다.
“와······대박사건 아니에요?”
“맞아. 대박 사건.”
“우아. 선배 바로 기사 쓰실 거 에요?”
어딘가 기대감에 가득 차 음성이었다.
하긴, 이런 특종을 직접 마주하고 기사까지 쓰게 되다니.
영기도 신이 안날 수 없겠지.
하지만, 당장은 쓸 수 없었다.
“아니, 아직.”
“네? 왜, 왜요?”
“내일 쪽에서 하나 건졌지만, 아직 기사를 다 쓰기엔 내용이 좀 부족하지. 그럼 어디? 바로 코코아를 털어봐야겠지.”
“아······”
“영기씨도 잘 기억해둬. 기사는 쌍방의 이야기를 모두 듣고 써야 해. 어느 한쪽의 말만 싣는 건 홍보 글일 뿐이야. 이런 합병 기사도 마찬가지야. 내일 뿐만 아니라 코코아까지 그 대답을 들어봐야 하는 거야. 그래야 신뢰도 있는 기사가 돼.”
난 영기에게 기사 작성의 규칙에 대해 설명했다.
수많은 언론매체들.
그 중에서도 온라인 매체들은 이런 규칙조차 잊고 기사를 쓰는 곳이 많다.
그들은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주장만 싣고, 사태를 악화시키거나 분란을 조장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기자들 사이선, 그런 기자를 기레기로 불렀다.
“아, 알겠습니다.”
“좋아. 그럼 바로 움직이자.”
난 사옥의 출입구를 향해 걸었다.
다음 목적지는 코코아 본사가 있는 판교.
한남동서 판교까지 퇴근시간 전까지 가려면 나도 바삐 움직여야 했다.
“참, 영기씨.”
대로변으로 나온 뒤, 난 영기에게 말을 걸었다.
“네?”
“여기서 흩어지자.”
“네?”
영기가 반문했다. 갑자기 흩어지자니, 당황한 모양이었다.
어차피 이유는 설명할 생각이었다.
“난 판교로 갈거야. 영기씬 지금부터 서울 내에 있는 대형 호텔에 직접 찾아가든, 전활 걸든. 뭘 해서든 내일코코아 합병식이 어디서 열리는지 확인해줘. 내 말 무슨 뜻인지 알지?”
보통 큰 기업들의 주요 행사는 호텔이나 대형쇼핑몰의 컨벤션홀서 열린다.
많은 인원을 수용해야 하는데다가, 프레젠테이션, 식사까지 모두 한 곳서 해결해야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대형 호텔로 한정한 이유는, 단순하다.
내일코코아 합병식 초청장에 적힌 장소.
[서울시 중구 소공동 이스턴선 호텔 그랜드볼룸]
혹시나 운 좋게 영기가 이를 알아낸다면, 그걸 로도 좋다.
못 알아낸다면, 내가 나서면 될 일이었다.
그러나 일단 난 코코아 본사가 있는 판교에 들려야 했다.
“네, 넷? 합병식이 어디서 열리는 지요?”
“그래. 나도 같이 해야 하지만, 난 코코아 쪽에도 가보는 게 맞을 것 같아.”
이해는 한 모양인데, 영기의 반응이 영 반응이 좋지 않았다.
시원하게 일을 맡기고 판교로 갈 생각만 하던 내게, 달갑지 않은 꼬임이 예견되는 얼굴이었다.
“······저 혼자 가서 물어봐야 되나요?”
‘아차. 이 사람······’
영기의 물음을 들은 난 내 뒷머릴 쳤다.
그 경도가 약하고 여태껏 아무 문제없었기에 잊고 있었던 사실.
‘대인기피증이었지.’
그러고 보니 영기는 다른 건 곧잘 하면서도 취재원들과의 대화는 일절 하지 않았다.
왜, 어째서 그런 건진 모르겠으나 지금은 상황이 급하다.
구구절절 영기의 이야길 들어줄 수도, 받아줄 수도 없다.
“그래 맞다. 영기씨 사람들이랑 말하기 힘들다고 했지?”
“······네에.”
“내가 지켜보니까, 영기씬 사람을 무서워하는 것 같진 않아. 맞지?”
“······네.”
난 분명 영기와 많은 대화를 나눈 적이 없다.
그나마 오늘이 제일 얘길 많이 날이다.
그런데도 영기는 날 어려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친근하게 굴려는 기색이 강했고.
“그런데 왜 업계 사람들만 만나면 입을 다무는 걸까. 난 솔직히 영기씨에 대해 잘 모르지만, 어쩐지 자기 ‘위치설정’을 잘 못하는 게 아닐까 싶어.”
“위치설정이요?”
“어, 영기씨. 기자는 나이, 경력과 상관없이 기자야. 우리가 주로 상대하는 차장이든 부장이든 대표든, 우리보다 높은 사람들이 아니라고. 주눅 들 필요 없이 동등하게 생각해야 돼. 근데 영기씬 겁을 집어먹고 있는 것처럼 보여. 무시 당할까봐 일까?”
“······”
자존감이 낮은 사람일수록, 자존심이 센 경우가 있다.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없다보니 타인에게서 그 가치를 확인하려 한다.
그런데 자신의 가치가 확보되지 않는 경우엔, 아예 도망을 친다.
지금 영기가 그래보였다.
삼류매체 소속에, 나이는 있는데 경력은 없다.
기자로써 당당할 자신이 없으니 자신보다 높아 보이는 사람들을 대하기 불편하다.
그런 게 아닐까 싶었다.
“좋아, 뭐가 됐든지 지금 시간이 없어. 영기씨한텐 미안하지만 어쨌든 업무를 맡겨야해.”
내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영기씨, 호텔 안내데스크 직원에게 기자로써 취재한다고 생각 하지 마. 그냥 물어 보는 거야. 마치 편의점에 들어가서 ‘생수 있어요?’하고 물어보는 거랑 똑같아. 가서 ‘내일코코아 행사가 며칠이에요?’라고 묻기만 하면 돼. 만약 모르겠다-하면 알아봐달라고 하고, 알려줄 수 없다-면 그냥 나오면 돼. 가서 묻는 것조차 힘들면 전화로 해. 나머진 내가 다 알아서할게.”
“저, 전화로 해도 되는 거죠?”
거기까지가 영기의 마지노선인 듯 했다.
난 고갤 끄덕여 수긍했다.
“오케이. 그럼 전화로 알아봐줘. 받아들인 거지?”
“네, 넷. 해볼게요.”
“좋아. 아마 기자들 취재동선 배려해서 서울 중심가 주변 호텔서 열 확률이 커. 참고해서 알아봐.”
이건 내가 덧붙인 거짓 조언이다.
그저 영기가 빨리 이스턴선 호텔에 접근하길 바라고 한 말이었다.
“넵, 알겠습니다.”
‘휴. 어떻게든 달랬나.’
간신히 발걸음을 뗀 영기의 뒷모습을 보며 난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다루기 까다로웠던 탓이다.
‘그래도 도움은 되니까. 좀 더 참아볼까.’
나도 멍하니 있을 시간은 없었다.
난 서둘러 가까운 지하철 역을 향해 뛰었다.
판교에 도착하기 까지 걸린 시간은 1시간 여.
카카오 본사에 도착한 난, 바로 코코아 홍보팀 정열성 매니저에게 연락했다.
“아, 여보세요? 딜라스?”
-엇, 기자님. 안녕하세요.
코코아 홍보팀 정열성 매니저. 약칭 딜라스.
코코아는 수평적인 직원 관계를 위해 직급을 통일하고, 이름대신 영어 별명을 부르는 문화가 있다.
홍보팀 매니저들은 기자들에게도 영어 별명을 불러달라곤 했다.
나도 처음엔 손발이 오글거렸으나 적응 하고보니 꽤 편했다.
“딜라스, 저 지금 코코아 와있는데. 잠깐 볼 수 있을까요? 갑작스럽겠지만 꼭 보고 할 말이 있어서요.”
-아아, 기자님 여길 오셨어요?
“네 그렇게 됐네요. 미리 연락 못해서 좀 그렇긴 한데 부탁드릴게요.”
-네, 알겠습니다! 곧 내려갈게요.
“네. 고맙습니다.”
정열성 매니저의 시원시원하게 대답에 내가 화답했다.
코코아는 벤처시절이 길었기 때문인지, 작은 매체 소속 기자에게도 친절함이 배어있다.
특히 정열성 매니저는 사람을 편안하게 대해줘 기자들 사이서 평이 좋다.
“아 기자님!”
5분 뒤, 정열성 매니저가 로비로 내려왔다.
마른 몸매에 유약해 보이는 얼굴. 안경이 참 잘 어울리는 사람이다.
“오랜만이에요 딜라스.”
“그러게요 기자님. 그런데 판교까지 오실 줄은 몰랐어요. 미리 연락 주시기 그러셨어요.”
“하하. 오늘 갑자기 올 일이 생겨서······저도 오전까진 예상도 못했네요.”
“무슨 일이신데요? 뭐 중요한 일인가요?”
정 매니저의 순진무구한 물음에 내가 입 꼬릴 올리며 답해줬다.
“네, 내일코코아. 합병 건 때문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