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저희 내일코코아는, 내일커뮤니케이션과 코코아의 합성어로, 두 기업의 정체성과 방향성을 모두 안고 가겠다는 의지를 표현했습니다. 이제 두 기업은 한 몸이 돼 양사의 비전을 공유하고 시너지를 만들어 갈 것입니다."
이적우 코코아 대표가 말을 마쳤다.
그러자 이 대표와 함께 등장한 최재훈 내일 대표가 마이크를 들어올렸다.
"양사의 이사회는 통합 운영될 겁니다. 저희도 공동대표 체재로 내일코코아를 운영할 예정입니다. 내일코코아는 인터넷 생태계의 상생에 기여하고 나아가선 글로벌 시장서 뒤쳐지지 않는 경쟁력도 갖추게 될 것입니다."
뒤이어 이적우 대표가 바통을 넘겨받듯 이어나갔다.
"모바일 플랫폼 내 결합을 통해 여러 산업 군에 새로운 시장이 만들어 지고 있습니다. 내일코코아는 앞으로 이를 빠르게 대응해 나갈 예정입니다. 특히 모바일 경쟁력을 확보하고,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가도록 하겠습니다."
그 뒷부분은 미리 준비된 보도 자료에 적힌 내용과 동일했다.
향후 어떤 서비스를 내놓을 것인지에 대해선 명확하게 서술돼있지 않았지만, 그건 앞서 본 영상만으로 충분히 짐작 가능했다.
나는 보도자료와 두 대표의 발표를 종합해 행사기사를 빠르게 썼다.
어차피 행사기사는 다른 매체 기자들도 모두 똑같이 쓰는 기사다.
굳이 공들일 필욘 없었다. 그저 빨리 써서 출고 하는 게 이득이다.
"선배, 찍은 사진은 메일로 보내 드리면 될까요?"
무대 사진을 찍고 돌아온 영기가 내게 물었다.
"응. 찍은 거 전부 보내줘. 확인하고 첨부하게."
"네, 넵."
난 우선 쓴 기사를 기사입력기에 등록 해놓은 뒤, 영기가 보내준 사진을 검토했다.
인물사진을 자주 찍어보지 않았는지, 생각보다 쓸 만한 사진이 없었다.
'사진 찍는 법부터 가르쳐야 하나.'
일단 지금 당장 알려 줘봐야 소용없는 일이다.
난 그나마 가장 인물이 정중앙에 또렷이 찍힌 사진을 골랐다.
사진 보정 프로그램을 켜고 손을 본 뒤, 바로 등록해 둔 기사에 그 사진을 덧붙였다.
[등록][기사 송고][송고 완료]
차례대로 노트북 화면에 뜨는 알림 창을 보고 내가 안도의 한숨을 내둘렀다.
속도 경쟁에선 꽤나 상위권의 자릴 차지했다.
초반에 기사가 나온다는 건, 우리처럼 유명하지 않은 매체에겐 중요한 일이다.
이제 QnA(일문일답) 기사만 남았다.
기업 발표식의 백미는 발표 내용이 아니라 질문시간에 나온 문답이다.
미리 준비해온 내용들은 당연히 재미가 없지.
질문을 통해 얼마나 기업들에게 새로운 정보를 내뱉게 하느냐.
기자들의 정보력과 창의성, 언변이 공개적으로 평가받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럼 지금부터 이적우, 최재훈 공동대표님과 기자 분들간의 질의응답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질문하실 분들은 손을 들어주십시오."
다시 무대에 등장한 정열성 매니저가 사회를 진행했다.
진행 요원들이 곧 기자들 사이사이 배치됐다. 마이크를 넘겨주기 위함이었다.
"네, 네. 앞줄에 계신 한국일간 최철용 기자님. 마이크 드리겠습니다."
여러 기자들과 면식이 있는 정열성 매니저가, 손을 든 최철용 기자를 지목했다.
진행 요원 한 명이 건넨 마이크를 받아든 최 기자가 일어섰다.
"안녕하십니까. 한국일간 최철용 기자입니다. 우선 내일코코아 합병을 축하드립니다. 전 합병 후 조직 개편에 대해 여쭙고 싶은데요. 합병 후 각 부서 간 개편이나 통폐합은 어떻게 진행됩니까? 또 컨트롤 타워에 대한 부분은 어떻게 됩니까?"
최철용 기자의 질문에는 최재훈 공동대표가 대답했다.
"최대한 서로의 영역을 합치는 쪽으로 부서배치가 이뤄질 예정입니다. 다만 아직 명확하게 정해진 건 없습니다. 서로의 간극을 줄이는 게 지금 최우선 사항이라는 것만 말씀드리고 싶군요. 지휘체계에서 대해선, 아까 말씀 드린 대로 이적우 대표와 공동대표 체계가 될 겁니다."
최 기자의 질문에 대해, 난 그다지 똑똑한 질문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미 공동대표 체제라고 발표한 상태고, 합병 후 부서개편은 당연히 양사의 힘을 모으는 방향으로 하겠지.
당장 그 많은 부분을 정해놨을 리도 없으니, 명확하게 답할 수도 없는 내용이다.
큰 소득이 없다는 걸 알았는지, 최 기자도 머쓱하게 제자리에 앉았다.
"네, 다음은 마주경제 정광현 기자님."
"합병한 내일코코아의 지명도를 감안하면, 유가증권 시장으로 이전해 볼 만하다고 사료 되는데요. 코스피로 이전 상장할 계획, 있으십니까?"
이후 몇몇 경제지 기자들의 질문 세례가 이어졌다.
주식 발행의 규모, 내일코코아의 대주주 중 하나인 중국 기업에 대한 우려와 흡수합병의 이유 등이었다.
나는 모든 질의응답 내용을 빠르게 타자로 옮겼다.
연습을 위해 영기에게도 시키긴 했지만 도통 믿음이 가질 않아 직접 해 두는 것이다.
"네, 이디넷 김예인 기자님."
"네 안녕하세요. 이디넷 김예인 기자입니다."
방송국 카메라에 가려 보이진 않았지만, 꽤나 젊은 여성의 목소리였다.
"제가 듣기론 내일과 코코아의 결합 과정이 그리 순탄치 않았던 것 같은데요. 이렇게 인수 합병하는 동안 가장 큰 걸림돌은 무엇이었고, 어떻게 해결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이야 장난 아닌데?'
질문의 날카로움과 패기에 난 두 번 놀랐다.
우선 인수합병 과정이 순탄치 않았단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다.
이는 나도 모르는 내용이었다.
어느 시점에 저 정보를 얻었든, 꽤나 발이 넓은 기자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두 번째.
인수합병의 걸림돌은 당연히 각사의 민감한 부분들 일거다.
그걸 아무렇지 않게 물어보는 패기, 즉 배짱이 대단했다.
보통 기업과 친분 있는 기자들은 이렇게 공개적 질의응답 시간에 절대 물어보지 않는 질문이다.
"와 강단 있네!"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다른 기자들이 김예인 기자의 얼굴을 보려고 상체를 이리저리 움직이기 시작했다.
'궁금할 만도 하지.'
나도 호기심이 일었지만, 일단은 기사가 중요했다.
"아아, 그건 말이죠······"
"그 부분은 제가 대답하도록 하겠습니다."
마이크를 잡았던 최재훈 대표가 말끝을 흐리자, 옆의 이적우 대표가 나섰다.
''네,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합병 과정이 그렇게 순탄치 만은 않았습니다."
운을 뗀 이 대표를 향해 장내 사람들이 집중했다.
"당연히 지금껏 내일이 걸어온 길이 있고, 코코아가 해온 일들이 있습니다. 각사가 여러모로 다른 부분이 있어 조율을 하는 데에도 시간이 꽤 걸렸습니다. 특별히 짚어 보자면 운영 철학을 말씀드릴 수 있겠군요. 게다가 최종결정을 앞두고 합병 자체가 무산될 뻔 했습니다. 정말 이대로 안 되는 건가 싶었을 때, 업계 관계자 분의 도움으로 무사히 넘어갈 수 있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그분께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표합니다."
웅성거림.
이적우 대표가 두루뭉술하게 대답했지만, 그 안에 포함된 내용을 이해 못하는 기자는 없었다.
인수합병이 실패할 뻔했다. 그런데 누군가의 도움으로 성사됐다.
과연 그 누군가의 정체는 뭐고, 어떤 도움을 준 건가.
모두들 이 생각을 하고 있는 상황일 터.
"그 업계 관계자 분이 어떤 도움을 주신 거죠? 누구인지도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반면 김예인 기자는 답변에 만족하지 못하겠다는 듯이 질문을 더했다.
명쾌하게 풀리지 않은 의문을 꼭 해결하겠다는 강한 의지가 보였다.
"도와주신 부분은 간단합니다. 양사가 함께 가야할 이유, 그리고 방향에 대해서 짚어주셨습니다. 하지만 누구인가에 대해선 본인의 동의를 구해야 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이적우 대표가 명백한 거절의사를 표했다.
최대한 질문한 김예인 기자가 무안하지 않게 부드러운 분위기였다.
"네, 그럼 다음 기자 분께 질문 기회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상황을 정리하기 위해 정열성 매니저가 치고 들어왔다.
발언 기회를 잃은 김예인 기자는 자리에 앉은 모양이었다.
다른 기자들은 의문의 인물에 대해서 '김범주 의장'을 떠올린 듯 했다.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지.'
나도 마찬가지다.
코코아 창업주이자 한 때는 메이버의 대표이사 였던 사람.
지금은 의장이라는 직함을 달고 코코아를 실제로 움직이고 있다.
"내일코코아가 메이버의 독주를 막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시는지요. 특히 메이버와 차별점을 둔 부분이 있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다른 기자들의 질문이 이어지고 있었다.
나도 질문할 타이밍을 재고 있었다.
“지금 저희로써는 각사가 잘해왔던 업무를 힘을 합쳐 더 나은 방향으로 만들어내는 데에 집중하려 하고 있습니다. 모바일은 아직······”
이적우 대표의 답변이 길게 이어 진 뒤, 다음 차례.
‘지금이다.’
난 손을 들고 자리서 일어났다.
나와 무대 사이에 세워진 카메라들이 걸리적거렸기 때문에 눈에 띄어야만 했다.
난 강렬한 시선으로 정열성 매니저를 위협하듯 쳐다봤다.
"하하, 네. 마지막으로 뒤쪽에 서신 디지털투모로우 주진형 기자님! 마이크 가져다 드리세요."
"어? 디지털투모로우?"
"그 주진형이야?"
정 매니저가 내 이름을 부르자마자 장내가 소란스러워졌다.
난 묘한 부담감을 느끼며 주위를 둘러봤다.
자리에 앉아있던 기자들이 모두 놀란 눈으로 날 올려다봤다.
그리고 놀란 영기는 나보다 더 경직돼 있었다.
'뭐, 뭐지 이 상황은. 설마 단독 기사 낸 것 때문인가.'
난 진행 요원이 준 마이크를 오른 손에 쥐고, 헛기침을 했다.
"크흠, 네 안녕하십니까. 디지털투모로우 주진형 기자입니다."
내가 운을 뗐음에도 소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난 개의치 않고 말을 이어나갔다.
"아까 전 보여주셨던 비전 영상을 보면 배달 서비스로 추정되는 장면도 있던데, 향후 배달앱 업체들과 협력하실 예정입니까? 아니면 독자적으로 사업을 구축하실 예정인가요?"
내 질문에 대답한 건 이적우 대표였다.
"네, 주 기자님. 질문 감사합니다. 영상 내용은 저희의 비전을 담은 것일 뿐 아직 구체적인 사업이나 방향에 대해선 정해진 부분이 없습니다. 배달 서비스를 할지 안할지도 딱 잘라 말씀드릴 수가 없군요. 다만 하게 된다면 여러 방향을 열어놓고 진행할 생각입니다. 타사와의 협력도 긍정적으로 검토하겠습니다."
"그럼 이것으로 질의응답 시간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혹시 더 궁금한 점이 있으신 분들은, 행사 후 홍보실 쪽으로 문의주시면 모두 답변 드리겠습니다."
본래 예정돼 있던 시간을 초과한 탓일까, 정열성 매니저가 급하게 마무리 지었다.
난 더 묻고 싶었지만 자리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다음 취재 방향은 잡아냈네.'
"그럼 바로 식사를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기사 쓰실 기자 분들은 자유롭게 기사를 쓰시고, 식사를 하시기 바랍니다."
말은 식사 시간이라고 하지만, 실제론 피 터지는 경쟁시간이다.
대부분 감이 빠른 기자들은 무대를 향해 뛰어간다.
나 또한 아직 굳어있는 영기를 붙잡고 뛰었다.
이렇게 달려들어야만 대표들과 명함도 나누고 한 두 마디일지라도 직접 대활 나눌 수가 있다.
"우앗 선배!"
"영기씨 뛰엇! 빨리 가야 승산 있어!"
"대표님! 조선일간 표동수 기자입니다!"
"대표님! 명함 드리겠습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땐, 이미 무수한 인파에 두 대표가 둘러싸인 상태였다.
"아이고 늦었다."
내가 그렇게 들리지도 않을 소리로 중얼거릴 때, 이적우 대표가 나와 눈을 맞췄다.
"아아, 주 기자님! 오셨군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수많은 기자들을 헤치고 그가 다가온다. 양팔을 벌린 채 날 안으려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