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아뇨. 주 기자님 따라 갈 건데요?
갑작스런 이적우 대표의 행동에 놀란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그를 둘러쌌던 기자들의 시선이 모두 날 향했다.
내일코코아 홍보팀 직원들도 모두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어··· 저, 반갑습니다. 이적우 대표님.”
내게 다가온 이 대표에게, 난 천천히 인사했다.
후배인 영기에겐 창피한 일이었지만, 나 또한 몸이 자동적으로 굳었다.
“예, 주 기자님. 오늘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실제로 뵈니 기쁘네요. 지난 번 일은 다시금 감사드립니다.”
지난 주, 이적우 대표가 내게 전활 걸었던 저녁.
난 왜 이 대표가 내게 직접 전화를 걸었고, 감사를 했는지 방금 전 까지도 영문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젠 어쩐지 짐작이 갔다.
-도와주신 부분은 간단합니다. 양사가 함께 가야할 이유, 그리고 방향에 대해서 짚어주셨습니다.
김예인 기자의 질문에 대한 답변.
-지금은 자세하게 말씀드리긴 힘들지만, 저희를 긍정적으로 평가해주신 부분. 감사하다는 말씀 꼭 드리고 싶었습니다.
내게 했던 말.
이 모든 게 내 머리 속에서 연결되고 있었다.
‘설마, 그런 걸 줄이야.’
내가 무산 될 뻔한, 내일코코아의 합병을 성사 시킨 거라고?
난 이적우 대표의 눈을 바라봤다.
내 생각을 긍정 하듯 이 대표의 눈이 반짝였다.
“오늘은 길게 얘기할 시간이 없어서 아쉽습니다만, 조만간 기회가 되면 식사를 함께 했으면 좋겠습니다.”
“아- 전 언제든 좋습니다.”
“그럼 커뮤니케이션실 통해서 연락드리도록 하죠. 식사 맛있게 하시기 바랍니다.”
커뮤니케이션실, 즉 홍보팀을 통해 언질을 주겠다는 소리다.
“······예 대표님도 맛있게 드십시오.”
나 혼자 어색한 대화가 끝나고, 이적우 대표는 직원들의 경호를 받으며 무대를 빠져나갔다.
한참 우릴 지켜보던 기자들은 마치 닭 쫓던 개처럼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그들로써는 이 대표와 한 마디라도 나누고, 명함을 교환 하려던 목표가 나 때문에 완전히 실패한 것이다.
헌데 생각해보니 명함을 못 받은 건 나도 마찬가지다.
‘아, 물론 번호를 알고 있긴 하지.’
난 휴대전화를 들고 연락처 목록을 살폈다.
[이적우 코코아 대표 010-50XX-XXX7]
지난 주 연락 온 번호 그대로 저장해 둔 거다.
“선배, 이제 어떡합니까?”
영기가 혼이 빠진 얼굴로 내게 묻고 있었다.
“어? 아, 명함이라도 교환하려 했는데 실패했네. 영기씨, 자리로 돌아가자.”
난 주변 기자들의 따가운 시선을 느끼며, 일부러 이렇게 이야기했다.
“근데 선배, 아까 이적우 대표가 말한 게 무슨 뜻인가요?”
우리 자리로 돌아온 뒤, 영기가 내게 질문했다.
이 대표가 감사인사를 한 부분에 대해서 잘 이해가 가지 않는 모양이었다.
“아, 우리 저번에 낸 내일코코아 합병 기사 있잖아. 그걸 코코아 쪽에 긍정적으로 썼다고 생각 하더라고. 그게 고마웠나봐.”
“그렇군요.”
영기가 납득했다는 듯이 고갤 끄덕였다.
그러더니 곧 진지한 표정으로 다시 내게 물어왔다.
“저도 나중에 선배처럼 기업 대표한테 감사 인사를 받을 수 있을까요?”
“-무슨 소리야, 영기씨도 같이 취재한 거잖아. 앞으로 영기씨가 똑같이 취재하고 혼자 기사를 쓸 정도가 되면, 이런 일 당연히 생겨날 거야.”
물론 내일코코아와 같이 대형특종을 물기란 쉬운 일도, 흔한 일도 아니다.
나 또한 [일주일 뒤의 이메일] 덕분에 이런 경험을 하고 있는 거니까.
그렇다고 벌써부터 영기의 기를 죽일 이윤 없다.
“자, 영기씨. 밥이나 먹자고. 다 먹고 살자고 하는 건데.”
“네, 넵.”
난 호텔 직원들이 서빙 해온 도시락을 받아들며 말했다.
다른 기자들 역시 취재를 마치고 식사를 시작하고 있었다.
“주진형 기자님이시죠.”
내가 밥 한술을 떠 볼 한가득 밀어 넣었을 때, 등 뒤서 날 부르는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에, 예?”
밥알을 쩝쩝 씹고 있던 난 고갤 돌려 뒤를 봤다.
그리곤 나도 모르게 입을 벌리고 말았다.
"······저기 씹던 게 다 보이는데요."
"아? 앗, 실례했습니다."
그녀의 지적에 난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시선은 그대로.
앞 여성의 얼굴을 향했다.
새로 데뷔한 연예인인가, 싶을 만큼 또렷하고 단정한 이목구비.
너무나 잘 어울리는 긴 생머리가 여성의 청초한 분위기를 더해주고 있었다.
‘아니, 연예인들 중에서도 이정도로 예쁜 사람이 있었나.’
내가 멍하니 그녀의 얼굴을 보고 있자, 다시금 물음이 날아들었다.
“주진형 기자님, 맞으시죠?”
“아, 네, 네. 제가 주진형입니다. 저, 실례지만 누구세요?”
“이디넷 김예인 기자에요.”
이디넷, 김예인.
분명 아까 질의응답 시간에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던 사람이다.
김예인 기자의 미모 탓일까, 아니면 나 때문일까.
주변을 살펴보자 다른 기자들도, 우리 둘의 만남을 주시하고 있었다.
“아, 아까 질문하셨던 김예인 기자님이시구나.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근데, 어쩐 일로······?”
그러게. 내가 생각해도 뜬금없다.
‘아니면 안면이나 트자는 걸까?’
기자끼리 서로 친분을 쌓는 장소는 주로 송년회나 신년회.
기업들이 주최한 자리에 같은 출입처를 담당하는 기자들이 만났을 때 이뤄진다.
사실 오늘처럼 공식 행사는 일로 바쁘기 때문에 기자끼리 통성명하는 경우는 드물다.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요. 아까 주 기자님하고 이적우 대표가 나눈 대화에 대해서요.”
‘그쪽인가. 꽤나 저돌적인 사람이네.’
이건 일종의 취재다.
취재 대상이 동종업계에, 같은 출입처를 맡은 기자라는 게 특이할 뿐.
“글쎄요. 그 부분에 대해서 제가 드릴 말씀이 별로 없을 것 같은데요.”
혹여 있다하더라도 말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이적우 대표가 몇 가지 힌트를 줬다하더라도, 본인 입으로 인증하지 않는 이상 모든 건 내 추측일 뿐.
그걸 자랑하듯 떠벌리고 다닐 만큼, 난 얼굴이 두껍지 않다.
“이적우 대표가 직접 감사하다고 말할 정도 인데, 왜 별로 없나요.”
“글쎄요. 저도 사실 이 대표님이 왜 그렇게 얘기하시는지 잘 몰라요. 지난번 합병 기사 쓴 게 다거든요.”
“그럼 그 기사랑 연관이 있나보죠?”
아-! 이 여자, 끈질기다.
나 또한 이런 식의 취재를 선호하지만, 지금의 난 취재원이 아니다.
“잘 모르겠네요. 근데 이디넷이라고 하셨죠? 거기 백봉사 선배는 잘 계세요? 선배가 인터넷 담당인 걸로 아는데.”
난 환하게 웃으며 대화주제를 바꿨다.
이디넷 소속 백봉사 선배는 일전에 인터넷 업계 협회가 주최한 행사서 면을 텄었다.
“-네. 백봉사 선배, 저와 같이 인터넷 담당 하고 있어요. 오늘은 스타트업 취재하러 가셨지만요.”
“그렇구나. 백 선배랑 같이 일 하신다니 부럽네요. 그럼 인터넷 2진이신 거에요?”
“네······”
예상외의 대화 흐름에 당황했는지, 김예인 기자는 짧게 답한 뒤 불만스런 표정을 지었다.
“아무튼 알겠습니다. 나중에 또 봬요. 식사 맛있게 하시구요!”
난 상쾌한 말투로 마무리 한 뒤, 몸을 돌려 도시락으로 손을 뻗었다.
맞은편에 앉아있던 영기가 눈짓으로 내게 신호를 보내왔다.
-아직 그대로 있는데요? 선배 뭐라도 말해야 되는 거 아니에요?
-신경 쓰지 말고 밥이나 먹자.
내 뒤로 불만의 아우라가 거세게 느껴졌지만, 무시하기로 했다.
더 상대해봐야 김예인 기자가 원하는 답은 내 입에서 나올 수가 없으니까.
김 기자는 결국 포기했는지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 직후.
낯익은 목소리가 내 귀에 들려왔다.
“이야, 주진형~ 제법인데?”
“어! 상 선배.”
서른 후반의 나이라곤 믿기지 않는 젊은 외모와 기자치고는 화려한 복장.
디지털투모로우 출신의 상성훈 선배였다.
난 바로 일어나 선배에게 인사했다.
“어 오랜만. 못 본 새에 진형이 잘 나가네? 코코아 대표한테 밥 먹잔 소리 듣고, 저런 미인한테 대시도 당하고.”
성훈 선배가 특유의 능글맞은 표정으로 김예인 기자 쪽을 가리켰다.
“하하, 아닙니다. 선배.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마이뉴스는 어떠십니까?”
대형 종합일간지 마이뉴스24. 성훈 선배가 세달 전 이직한 매체다.
“마이뉴스야 좋지~ 나 오늘 여기 기사만 올리면 할당 끝이야. 큭큭.”
부러운 소리였다. 이런 행사 기사만 올려도 취재가 끝이라니.
디지털투모로우는 취재기사를 별도로 준비해 매일 올려야했다.
“참, 선배. 이쪽은 인터넷하고 통신 2진 맡고 있는 박영기씹니다.”
내 소개에 영기가 잔뜩 긴장한 태도로 성훈 선배에게 인사했다.
“어어~ 신입이구나. 애들 나가고 진형이가 고생 많네. 네가 디지털투모로우의 가장이다.”
“하하, 고생은 팀장이 제일 많으시죠 뭐.”
그렇게 근황에 대한 이야길 나누던 선배가, 본격적으로 속내를 드러냈다.
“그나저나, 너 김예인 기자랑 친하냐? 방금 무슨 얘기했어?”
“아뇨, 오늘 처음 봅니다. 아까 이적우 대표가 무슨 말 한 거냐고 묻던데요.”
“그래? 아아, 김예인 내가 예전부터 점찍어둔 앤데. 워낙 철벽이라. 혹시 연락처 있어?”
‘오늘 타깃은 김예인 기자인가.’
성훈 선배는 대인관계 능력, 영업 능력이 뛰어난 기자다.
그 덕분에 이직도 수월하게 했고.
다만 취재보다 여자를 더 밝힌다는 심각한 단점이 있다.
“아뇨, 없습니다. 연락처 주고받을 사이도 아니구요.”
“에잉. 그러냐. 알았다. 그럼 또 나중에 보자고~ 밥 잘 먹어라.”
흥밋거리가 떨어졌는지, 성훈 선배가 급히 대화를 끝냈다.
“네. 선배도 맛있게 드십시오.”
나와 영기는 그 뒤론 평온한 식사시간을 보냈다.
다 먹은 도시락을 깨끗이 정리한 난, 이동을 위해 짐을 챙겼다.
기사도 전부 다 써서 출고 된 상태였고, 이곳에 더 있을 이유는 없었다.
영기를 이끌고 이스턴선 호텔의 정문을 나서는 순간,
“주 기자님.”
“아잇, 깜짝이야.”
또 김예인 기자의 얼굴이 옆에서 튀어나왔다.
오래 기다린 걸까. 약간 지친 듯, 그녀는 벽을 몸에 기대고 서있었다.
“······후우. 김 기자님. 안녕하세요. 식사는 잘 하셨어요?”
내가 예의상 말을 던지자, 그녀가 표정변화 없는 얼굴을 내게 들이댔다.
“저희 명함이나 교환하죠.”
“예?”
당돌한 그녀의 태도에 내가 반문했다.
“기자는 서로 명함 교환하는 거 아닌 걸로 아는데.”
내가 곤란하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김예인 기자는 한숨을 쉬더니 휴대전화길 내밀었다.
“그럼 연락처 교환해요.”
뜬금없긴 하지만 친하게 지내자는 의사 표시다.
물론 단순히 친분만 쌓는 게 목적인 건 같지는 않지만.
‘뭐, 기자들 간에도 정보교류 정도는 하니까.’
그들만의 리그랄까. 유명매체 소속 기자들은 끼리끼리 모여 그룹을 형성한다.
내가 기문선배와 공동취재를 했듯이, 그들도 정보를 교환하고 기사를 같이 쓰기도 한다.
‘나도 그런 그룹생활을 할 기회가 생긴 걸까.’
김예인 기자.
질의응답 시간의 질문 수준이나 태도, 모두 눈에 띄는 기자다.
가까이 둬서 손해 볼 부분은 없을 것 같다.
“아 그럼요.”
난 김예인 기자의 휴대전화를 받아들곤, 내 번호를 입력했다.
그 번호로 통화를 시도하자, 곧 내 휴대전화의 벨소리가 울렸다.
“이디넷, 김예인 기자. 저장해 둘게요. 이쪽은 인터넷 2진인 박영기 기자에요.”
“아, 안녕하세요.”
드디어 영기가 김 기자에게 입을 뗐다.
하지만 그녀는 영기에게 고개만 살짝 숙여 인사할 뿐, 별다른 말은 없었다.
“하하, 참. 그러고 보니 김 기자님은 입사년도가 언제세요? 전 작년 4월 인데.”
머쓱해하는 영기를 대신해, 내가 말을 이었다.
사실 난 작년 8월에 입사했다. 4월은 대외적으로 뻥튀기한 날짜였다.
“······저도요.”
“아, 그럼 동기네. 앞으로 잘 지내봐요.”
“그러죠.”
예인은 내가 내민 악수를 받아들었다.
“그럼, 나중에 또 봐요. 하하.”
난 그렇게 깔끔하게 마무리 한 뒤, 영기를 데리고 걷기 시작했다.
다시 지하철을 타고 다음 일정 장소로 이동하기 위해서다.
헌데 어쩐지 묘한 위화감이 계속 등골을 서늘하게 했다.
“······”
아무 말도 없이 예인이 우릴 따라오고 있었다.
“저기, 김 기자도 지하철로 가요?”
결국 내가 멈춰 서서 예인에게 말을 걸었다.
“네.”
“아, 그렇구나. 그럼 같이 가요. 다음 취재 어디 가는데요?”
자연스러운 대화를 시도하며 다시 걷는다.
“오늘 취재는 끝났어요.”
“아, 아. -네?”
“오늘 제 취재는 여기가 끝이에요.”
“아, 그럼 기자실로 가나 봐요?”
내가 아하, 웃으며 묻자 폭탄 같은 예인의 발언이 돌아왔다.
“아뇨. 주 기자님 따라 갈 건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