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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서 온 특종-16화 (16/107)

16. 알고 싶은 게 있거든요 170828 수정

따듯한 공기가 만연한 오후, 강남역 먹자골목의 한 카페.

나와 영기, 그리고 김예인.

우리 셋은 한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앉아있었다.

도대체 왜 저 여자가 여기에 앉아있는 건지, 나도 황당했다.

-주 기자님 따라 갈 건데요?

저 말을 내뱉고는, 시청역서부터 이곳까지 계속 쫓아온 거다.

예인은 무표정하게 아이스 아메리카노에 빨대를 꽂아 마시고 있었다.

난 그녈 보며 고갤 절레절레 저었다.

다시 봐도 현실감 없는 외모의 소유자다.

그 외모만큼이나 상당히 이상한 성격이고.

“저 사람 연예인 아니야?”

“와- 뭐하는 사람이지?”

예인을 향한 주변 사람들의 시선과 웅성거림은 꽤 노골적이었다.

당사자는 아무것도 신경 쓰이지 않는 듯 태연했다.

반면 전혀 상관없는 영기가 한껏 주눅 든 채 거의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다.

“영기씨, 나 잠깐 통화 좀 하고 올게.”

“아, 예, 예.”

난 영기에 이야기 한 후 카페 밖으로 나왔다.

그리곤 휴대전화 연락처에 등록돼있는 ‘이디넷 백봉사 선배’를 선택했다.

신호음이 몇 번 울린 뒤, 백 선배가 전활 받았다.

-어, 진형아. 무슨 일이니.

“아, 선배 안녕하세요. 지금 통화 가능하세요?”

-응. 가능해.

“예, 다른 게 아니라······ 선배 2진으로 김예인 기자 있죠?”

-아 예인이. 응, 맞아. 우리 인터넷 2진이야. 왜?

“오늘 내일코코아 합병 식 있었잖아요. 거기서 김 기자를 만났는데, 계속 절 쫓아오네요. 일정 있어서 강남 와있는데, 취재일정 있다고 해도 막무가내에요. 이거 어떡하죠?”

기자들의 기사는 취재를 통해 나온다.

만약 허락없이 내 취재일정에 다른 기자가 끼어든다면, 화내고 항의하는 게 맞다.

그런데 예인은, 말이 안 통했다.

취재하러 간다니까 ‘취재 방해는 하지 않겠다’며 꿋꿋이 따라온 거다.

-아, 그랬어? 내가 미안하다.

“아, 아뇨. 선배가 사과하실 일은 아니죠. 그보다 김 기자한테 말 좀 해주심 안 될까요?”

-······

잠시 묘한 침묵.

-저, 그게 말이지. 내가 일단 말은 해볼게. 근데 애가 워낙 또라이라 통할지는 모르겠다. 미안.

“에? 또라이요?”

-어. 걔 또라이야. 뭐 좋게 말하면 기자로써 뚝심 있는 거고, 나쁘게 말하면······알지? 개념이 없어. 막무가내야.

“그럼 어쩌죠?”

-그래도 너나 디지털투모로우에 피해 끼칠 순 없으니까, 일단은 내가 잘 말해볼게.

이디넷 출신인 김정효 팀장을 생각한 걸까.

백봉사 선배는 디지털투모로우를 언급하며 말했다.

“넵, 감사합니다. 선배.”

-뭘. 나중에 보자.

“네! 들어가세요. -휴.”

한시름 놓았단 생각에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아무리 돌아이라고 해도 직속상사 말은 듣겠지.’

난 가벼운 발걸음으로 다시 카페로 돌아왔다.

내가 환한 얼굴로 제자리에 앉자, 예인이 미심쩍은 듯 물어왔다.

“누구랑 통화하고 오신 거에요?”

“곧 알게 될 겁니다.”

“······?”

내 말 뜻을 파악하지 못한 예인이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 곧, 내가 기다렸던 알림이 울렸다.

예인의 휴대전화가 진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녀는 한 3초간 미동 없이 휴대전화 화면을 보더니, 결국 통화버튼을 눌렀다.

“네, 선배.”

이름을 말하지 않아도, 전화하고 있는 상대가 누군지 명확했다.

휴대전화에선 백봉사 선배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네, 맞아요. ······네. ······아뇨. 네 괜찮습니다. 신경 쓰지 말아주세요. ······네 피해주는 일 없도록 할게요.”

백봉사 선배가 강하게 질타를 하는지, 예인의 고분고분한 대답이 들려왔다.

잠시 후에 조용히 통화를 끝낸 예인이 고갤 돌려 날 바라봤다.

“왜 그러세요?”

난 자신만만한 얼굴로 예인에게 물었다.

“이런 거였군요.”

예인은 여전히 표정변화 없는 얼굴로 짧게 답했다.

그런데, 그 말 뿐.

이전과 다를 바 없이 커피를 느긋하게 마시는 게 아닌가.

“······그게 다에요?”

참다못한 내가 다시 입을 열었다.

“네?”

“아니, 계속 거기 계실 거예요? 곧 ‘배겨’ 쪽에서도 올 텐데.”

“네. 오면 자리 비켜드릴거예요. 취재방해도 안할 거고.”

“······”

참 돌아이의 면모에 난 할 말을 잃었다.

선배의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듣는 건가.

난 깊은 한숨을 내쉬곤 팔짱을 꼈다.

더 이상 신경써봐야 헛수고라는 걸 알았다.

“어- 주 기자님~”

때마침, 카페에 기다리던 사람이 등장했다.

큰 키에 검은 뿔테안경을 쓴 남성.

‘배달의 겨레’ 성경호 홍보 팀장이었다.

“성 팀장님, 오셨어요.”

“예. 아이고 차가 좀 막혀서 늦었네요. 죄송합니다.”

“에이 아니에요. 갑자기 뵙자고 한 건 전데요.”

배달의 겨레 본사는 잠실에 위치하고 있다.

거기서부터 차를 몰고 온 모양이다.

“어, 근데······ 이 두 분은?”

성 팀장이 예인과 영기를 보곤 말끝을 흐렸다.

“아참. 문자로 미리 말씀드렸죠. 이쪽은 인터넷 2진 맡고 있는-”

“이디넷 김예인 기자에요.”

기가 막히게 치고 들어오는 예인을 보며 난 관자 놀을 눌렀다.

“아, 이디넷 김 기자님이시구나. 배달의겨례 성경호 팀장입니다. 미모가 장난 아니시네요. 만나 봬서 영광입니다. 오늘은 주 기자님하고 같이 보러 오신건가요?”

성 팀장의 오해를 풀기 위해 내가 급히 끼어들었다.

“아, 아뇨. 김 기자는 그냥 시간이 남아서 온 거고, 이쪽이 2진인 박영기 기자에요.”

“아, 안녕하세요. 디지털투모로우 박영기입니다.”

“어, 어 예. 잘 부탁드립니다.”

사태파악이 안됐는지, 성 팀장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인사를 나눴다.

그럴 만도 하다.

사전에 아무런 고지도 없이 나타난 예인이나, 그녀를 불편해 하고 있는 나나.

난해한 상황이다.

“일단 좀 앉으실까요.”

성경호 팀장의 말에 일어서있던 나와 영기가 착석했다.

반면 예인은 말없이 짐을 챙기더니 거리가 좀 떨어진 테이블로 이동했다.

‘뭐, 약속했던 대로 취재방해는 안하겠다는 건가?’

난 다행스런 맘으로 예인을 힐끗 바라봤다.

성 팀장은 예인의 그런 행동에 당황한 듯 보였다.

“저, 김 기자님은 왜 저러시는 거죠?”

“놔두세요. 제 취재 방해 안한다고 저러는 거니까.”

“예?”

“뭐 저한테도 예기치 않은 손님이라서요. 신경쓰지마세요.”

이렇게 얘기하니 성 팀장도 대충 납득한 모양이다.

그는 고갤 몇 번 끄덕이더니 내게로 시선을 돌렸다.

“일단 오늘 이렇게 갑자기 뵙자고 한 건, 급히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섭니다. 아시죠? 오늘 내일코코아 합병한 거.”

“아, 네. 그거 맨 먼저 쓰신 게 주 기자님이시죠? 그 때 기사 잘 봤습니다. 이야, 저도 주 기자님 기사로 합병 소식 접했네요.”

“하하, 혹시 오늘 나간 기사도 보셨어요?”

내가 눈을 반짝이며 묻자, 성 팀장이 고갤 저었다.

“아뇨. 오전에 업무가 좀 있어서 아직 못 봤습니다. 왜요? 무슨 일 있나요?”

“합병식 시작하면서 내일코코아의 비전이라며 영상 하나를 틀어줬거든요. 거기에 배달 서비스 내용도 나오더군요. 단순 비전영상이라고 하긴 했지만, 그쪽도 진출을 고려하고 있다는 얘기거든요.”

성경호 팀장이 뿔테안경을 고쳐 쓰며 관심을 보였다.

“배달 서비스를요?”

광고전단지를 보고 전화를 걸어 음식을 주문하는 기존방식 대신, 모바일로 음식메뉴를 보고 바로 주문결제 까지 하는 서비스.

배달의 겨레는 이 배달 서비스 3인방 중, 가장 높은 시장점유율을 지닌 업체다.

당연히 배달앱 시장의 형세 변화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네. 그래서 혹시 코코아 측하고 사전에 접촉하신 부분이 있나 좀 여쭤 보려구요.”

코코아는 코코아톡이라는 커뮤니케이션 플랫폼에 여러 서비스를 중무장할 계획이다.

그렇다면 배달 서비스도 포용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다만, 이미 시장의 주도권을 진 업체들이 내일코코아와 파이를 나눌 이유는 적다.

이를 알면서도 난 짚고 넘어가기로 했다.

“아뇨. 그럴 리가요. 제가 아는 바로는 전혀 없습니다. 정말 처음 듣는 얘기네요.”

오히려 성 팀장은 놀란 듯 했다.

경쟁자가 아니었던 상대와 싸워야 할 수도 있단 얘기였으니까.

“기자님도 아시다시피, 저희 배달의 겨레나 다른 업체들도 단순 배달 서비스만 하고 있는 게 아니잖습니까. 저희도 하나의 플랫폼이거든요. 솔직히 코코아 측하고 협력할만한 부분이······없진 않지만 많지도 않죠.”

“그러게요. 저도 그래서 그 부분이 궁금하거든요. 내일코코아는 과연 배달 시장에 어떤 형태로 진출한 건가? 그 때 파트너가 있을까, 있다면 누구일까.”

“지금으로썬 저희는 가능성 없다고 보셔도 됩니다.”

성경호 팀장은 단정적으로 이야기 했다.

하지만 난 그런 그의 자신감을 십분 이해하고 있다.

배달의 겨레는 이미 시장 1위 업체다. 굳이 코코아의 영향력을 끌어들일 필요가 없다.

“하지만 조기요나 배달갑 같은 곳은 어떨지, 저도 모르겠네요. 하하.”

그런 내 마음을 읽은 듯 성 팀장이 타사들을 언급했다.

“그러고 보니 요즘 그쪽은 어때요? 조기요나 배달갑 다 잠잠하던데.”

“아아, 기사 못 보셨구나. 이쪽엔 지금 큰 일이 하나 있죠.”

성 팀장이 어깨를 으쓱하며 내 예상과는 다른 이야길 꺼냈다.

최근 내일코코아 합병에 정신없어 꼼꼼히 확인 못했더니, 놓친 기사가 있는 모양이었다.

“에? 뭐 있나요?”

“네. 배달갑 쪽이 투자받으려고 접촉하고 있는 곳이 딜리버리 빌런이거든요.”

“딜리버리 빌런요?”

놀란 목소리로 내가 받아쳤다.

딜리버리 빌런.

독일서 설립된 업체로, 배달이 생소했던 유럽에 큰 변화를 일으켰다.

그 덕분에 유럽 최고의 스타트업으로 선정됐고 단기간 내에 회사가치는 뛰어올랐다.

그리고 배달 종주국인 한국까지 손을 뻗쳐 ‘조기요’라는 서비스를 운영 중이기도 하다.

“아니, 조기요를 서비스하면서 뭐 하러 배달갑까지?”

“뭐 딜리버리 빌런 쪽에선 뭐가 됐든 점유율 높고 수익나면 그만이니까요. 그리고 솔직히 두 업체 모두 저희보다 점유율이 안 되지 않습니까.”

성경호 팀장이 장난스럽게 눈웃음을 쳤다.

난 성 팀장의 저런 솔직함을 좋아한다.

난 엄지를 치켜세우며 성 팀장을 칭찬했다.

“역시 성 팀장님. 배달의 겨레 자부심 좋아요.”

“하하. 뭐 자부심이랄까, 사실이죠. 광고 쪽도 저희가 하면 두 업체가 쫓아오는 형국이고.”

그의 말대로다.

배달의 겨레는 배달앱 3사 중 가장먼저 TV광고를 선보였다.

헌데 이 B급 정서 가득한 TV광고가 젊은 층을 중심으로 대박이 났고, 이에 다른 업체들도 부랴부랴 광고를 내기 시작했다.

“어쨌든 투자가 어떻게 진행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요. 우선은 그 정도.”

성 팀장이 화제를 정리했다.

그 뒤로 우린 성 팀장의 신혼생활에 대한 이야기, 어색해하는 영기에 대해 가볍게 대화했다.

“그럼 또 연락주세요. 다 같이 식사도 하구요. 제가 이쪽 맛 집을 좀 잘 압니다.”

먹자골목 거리로 나오며 성경호 팀장이 말했다.

“네, 그러죠. 그럼 조심히 들어가세요, 팀장님.”

“예, 기자님도요. 박 기자님, 김 기자님 모두 나중에 뵙겠습니다.”

성경호 팀장이 떠나고 난 직후.

난 바로 옆에 서있던 예인에게 말을 걸었다.

“후- 일단 취재에 끼어들지 않은 건 고마워요. 근데 김 기자. 굳이 절 따라 다닐 필요가 있어요?”

“주 기자에 대해 알고 싶은 게 있거든요.”

예인이 내게 얼굴을 바싹 내밀며 말했다.

갑작스러운 그녀의 접근에 당황한 내가 뒷걸음질을 쳤다.

“내일코코아 합병. 어떻게 알아낸 건지.”

“······그거 기자들한텐 업무비밀 아니에요?”

무례하다를 최대한 돌려 말한 거다.

“소스를 공유하잔 얘기가 아녜요. 이상해서 물어보는 거지.”

“네?”

갑자기 예인의 눈빛이 날카롭게 바뀐다.

“전 내일 최재훈 대표를 팠었거든요. 봉사 선배가 주식시장에 이상한 소문이 돈다고 해서였죠. 며칠 최재훈 대표 집 앞에서 뻗치기도 하면서. 이동하는 곳을 줄곧 쫓아다녔어요.”

뻗치기. 죽치고 기다리는 걸 뜻한다.

유명 정치인이나 연예인들 숙소 앞에 밤을 새가며 인터뷰 멘트를 따거나, 사진을 찍는 것.

“그래서 코코아 이적우 대표와 접선한다는 걸 포착했고 합병을 논의한다는 것도, 겨우 알아냈어요. 기사를 준비 중일 땐, 합병이 무산될지도 모른단 얘길 듣고 있었구요.”

‘뭐랄까, 정말 근성 있는 사람이네.’

이야길 듣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힘들게 취재를 했는지 느껴졌다.

“그런데 그 때. 주진형 기자의 기사가 터졌어요.”

“에? 아, 그렇죠.”

“내가 접근했던 루트엔, 주 기자가 접촉한 흔적이 전혀 없어요. 그게 가능할 수도 없고. 그런데 어떻게 합병정보를, 이렇게 빨리 캐치했죠? 이적우 대표한테 감사인사까지 받으며?”

예인의 날카로운 의심이 내 눈을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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