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서로 특종, 노려보자구요 170828 수정
“······저, 그게 말이죠.”
난 당혹감을 감춘 채 침착히 머릴 굴렸다.
예인은 큰 눈망울로 날 무섭게 노려보고 있었다.
어쩌면 속으로 이 의구심에 대한 결론을 벌써 내렸을지도 모르지.
‘역시 속도 때문인가.’
기업간의 합병, 인수 같은 고급정보는 사실 고위임원과 가깝지 않은 이상 접하기 어렵다.
보통 기자들이 수일, 수주 뻗치기를 해서 얻을까 말까한 정보다.
헌데 난 조그마한 단서만 들고, 단숨에 진실에 접근했다.
물론 그건 내 실력이라기 보단 당연히 [미래에서 온 이메일] 덕분이다.
‘장황하게라도 설명을 해야 하나? 아니면 그냥 웃어넘길까.’
기이한 이메일 덕분이긴 하나, 어찌됐든 내가 취재를 했다는 건 거짓이 아니다.
실제로 취재를 같이한 영기도 바로 옆에 있고.
‘그래, 영기에게 돌려볼까.’
난 최대한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예인에게 영기를 가리켰다.
“뭐 여러모로 운이 따라줬다고 봐야겠지만. 가장 큰 건 여기 있는 박영기 기자가 찍은 사진 덕분이죠. 박기자가 합병 CI를 찍어왔거든요. 내일 최재훈 대표 쪽을 파셨다고 했죠? 저희가 증거를 잡은 곳도 내일 본사였습니다.”
내 말에 예인의 눈이 조금 흔들렸다.
-이이이잉
그 때, 타이밍 좋게 내 휴대전화가 울렸다.
“아, 잠시 만요.”
난 예인에게 바로 양해를 구하곤 내용을 확인했다.
화면을 보니 전화가 걸려온 게 아니라, 새 이메일이 도착한 거였다.
[배달갑이 조기요와 공동 대표 체제를 도입 합니다 –배달갑]
메일 제목을 읽은 난, 망치로 머릴 얻어맞은 것처럼 굳어버렸다.
‘······새 특종의 등장이다.’
난 침착하게 글자를 두세 번 곱씹었다.
그리곤 아무 일 없는 것처럼 태연히 웃으며 예인을 바라봤다.
“자, 그럼 의문이 좀 풀리셨어요? 김 기자가 내일코코아 특종 노리시던 건 아쉽게 됐지만, 이게 끝은 아니잖아요? 또 서로 특종, 노려보자구요.”
“······”
예인은 여전히 개운하지 않다는 표정으로 날 봤다.
역시 의문이 모두 풀린 건 아닌 모양이다.
“참, 이적우 대표가 감사인사 표한 건. 저도 정말 모르겠으니까. 만약 김 기자가 취재하다 알게 되면 저 좀 알려주시고요. 오늘은 여기서 그만 헤어지죠.”
난 영기에게 이동자하고 손짓했다.
“영기씨, 가자.”
“네, 네 선배.”
말없이 서있는 예인을 놔둔 채, 난 걸어 나갔다.
우리 둘 사이서 눈치를 보던 영기도 결국은 날 쫓아왔다.
“좋아요!”
뒤에서 들려온 예인의 외침에 내가 멈춰 섰다.
몸을 돌리자, 왜인지 재미있단 표정을 짓고 있는 그녀가 있었다.
“서로 특종 노려보자는 말, 행동으로 보여주세요. 또 같은 곳을 취재하게 될 진 모르겠지만. 다음번엔 이기든 지든 제가 납득할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그러니까 내일코코아 건은, 납득할 수 없는 패배라 이건가?’
황당한 예인의 사고방식에, 어이가 없었지만 불쾌하진 않았다.
기자 간 특종 경쟁이 치열하긴 하다.
허나 애초에 기사를 쓰는 것에 승리와 패배란 개념은 없다.
그런 면에서 예인은 참 독특하다.
그리고 이 독특함이 날 자극하고 있다.
‘이기든 지든 납득할 수 있으면 좋겠다라······’
그 정체모를 노숙자에게 뛰고 싶다, 기회를 잡겠다 밝힌 후.
난 부여잡은 기회를 무조건 살리겠다고 다짐했다.
놓치지 않는다.
상대가 아무리 강하고 날카로운 눈을 가졌다 해도, 들키지 않을 거다.
완벽하게, 이 미래의 이메일을 내 능력으로 만든다.
‘그래, 완벽하게······더 완전하게 취재를 하는 거다. 두 번 다시 의심치 않게.’
난 예인을 향해 말했다.
“그럼 이 다음에, 단독 기사를 누가 먼저 쓸지 내기 할까요?”
“내기요?”
이전까지 딱딱하고 무정해보이던 예인의 얼굴이 생동감 있게 움직인다.
마치 TV속 배우를 실제로 만난 기분이 들만큼 묘한 이질감을 느꼈다.
또한 비현실적이고 아름답다.
“네. 먼저 단독 기사 쓴 사람, 소원 들어주기. 어때요?”
뜬금없는 제안이긴 하다.
허나 강한 경쟁심을 가진 예인이라면 거절하지 않을 거라 예상했다.
그리고 내가 ‘무조건’ 이긴다는 예상 하에.
소원이란 건 굉장히 다용도로 쓸 수 있을 거다.
“······그러죠.”
예상대로 예인은 고갤 끄덕였다.
“그럼, 무슨 소원 빌지 김 기자도 잘 생각해둬요. 써먹을 수 있을 진 모르겠지만. 하하.”
난 도발하듯 가벼운 웃음을 흘리며 그 자릴 떠났다.
뒤로 예인의 시선이 이어짐을 느꼈지만, 더는 돌아보지 않았다.
지하철을 타고 여의도로 돌아가는 길.
“저······ 선배. 근데 왜 그런 내기를 하셨는지 여쭤 봐도 돼요?”
영기가 조심스레 내게 내기의 진의에 대해 물어왔다.
“글쎄. 그렇게 해둬야 더 귀찮게 굴지 않을 것 같았다고 할까. 괜히 우리가 어떻게 취재했는지 알아낸답시고 계속 쫓아오면 곤란하니까.”
“아, 아. 그렇군요.”
난 영기에게 적당히 변명했다.
영기는 나와 함께 다녔기 때문에, 우리의 취재가 기연 덕분이라곤 생각지 않는다.
내 입장에선 알리바이를 증명해줄 든든한 목격자인 거다.
“아, 참.”
난 손으로 내 머리를 쳤다.
잠시 잊고 있었던 내 할 일을 기억해낸 것이다.
‘이기기 위해선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지.’
배달갑과 조기요의 공동대표 체제 도입.
그 사실을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한다.
난 재빨리 바지주머니서 휴대전화를 꺼내 등록돼 있는 연락처를 뒤졌다.
[원모어플랜 홍선유 실장 010-234X-XX47]
통화 버튼을 누르자, 한 10초 후에 젊은 여성의 목소리가 날 반겼다.
-어머, 주 기자님~
“홍 실장님, 안녕하세요. 주진형입니다. 오랜만이에요.”
홍보 대행사 원모어플랜 소속, 홍선유 실장.
배달갑의 홍보대행을 전담하고 있는 담당자다.
-그러게요. 잘 지내셨어요?
“저야 잘 지내고 있죠. 홍 실장님은 어떠세요?”
다른 홍보팀 직원들과 통화하듯,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네. 저도 별 일 없죠. 그러고 보니 주 기자님 요즘 기사 많이 쓰시더라구요. 잘 보고 있어요.
“아, 그런가요? 요즘 보도자료도 다른 친구가 처리하는데. 하하”
영기와 함께 다니고 난 뒤부터, 난 보도자료 작성서 거의 손 뗐다.
인터넷 및 통신 분야의 웬만한 자료는 거의 영기가 처리하고 있다.
뭐 그중에서 중요한 것만 골라내 내가 직접 쓰긴 하지만.
-아, 그게 아니라 단독 기사를 여러 번 쓰셨더라구요.
“아아, 단독 기사요. 네 어쩌다보니 그렇게 됐네요.”
내가 머쓱하다는 듯이 말끝을 흐렸다.
-그래서, 요즘 열일 중이신 주 기자님. 어쩐 일이세요?
‘본격적으로 이야기할 시간인가.’
난 목을 가다듬고 다시 진지하게 운을 뗐다.
“네, 홍 실장님. 일전에 배달갑 대표님하고 인터뷰 한 번 하자고 하셨죠?”
대략 두 달 전쯤이었을 거다.
배달갑 측은 홍선유 실장을 통해 내게 인터뷰를 제의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배달갑은 배달앱 3사 중 가장 약체.
효율적인 홍보수단 중 하나인 언론을 적극적으로 이용하고자 했던 모양이다.
‘디지털투모로우 소속만 아니었으면, 쌍수 들고 환영할 일이었지만······’
문제는 우리 매체가 인터뷰 기사를 발제기사로 쳐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취재를 선호하는 김정효 팀장의 의지가 반영된 규정일 거다.
‘그러니까 굳이 시간 날려가며 인터뷰를 할 일이 없었지.’
물론 이전까지는.
허나 오늘은 다르다.
배달갑 대표를 만날 기회를 만들어야 했으니까.
-네! 주 기자님 시간 되실 때 한 번 하자고 말씀드렸는데, 어때요? 시간 괜찮으세요?
그 때의 제안이 아직 유효한지, 홍 실장은 들 떠 있었다.
하긴 그동안 배달갑 대표의 인터뷰 기사가 포털에 뜬 걸 본적이 없다.
“네, 시간이 되긴 하는데. 혹시 내일이나 내일 모레 곧장 가능할까요?”
하루라도 빨리 일을 처리해야 했기에, 난 무리인 줄 알면서도 우선 물어 보기로 했다.
-내일이요? 음, 그건 일단 확인을 해봐야 할 것 같아요. 아무래도 너무 갑작스러워서.
“당연히 그러셔야죠. 먼저 알아보시고, 가능하면 말씀해주세요.”
-네, 그럴게요. 그럼 최대한 빨리 다시 연락드릴게요, 주 기자님.
“네, 기다릴게요.”
그 말을 끝으로 난 홍선유 실장과 통화를 마쳤다.
30분 뒤. 우린 여의도로 돌아왔다.
바보같이 가슴 막히는 사무실로 들어갈 생각은 전혀 없었다.
목적지는 기자실이다.
난 영기를 데리고 여의도 증권가에 위치한 HT코리아 빌딩으로 향했다.
“영기씨, 영기씬 일단 보도자료 처리하고 정보보고 작성해.”
“네넷, 알겠습니다.”
출입하는 기자가 드물어 텅 빈 HT 기자실.
난 영기에게 지시를 내린 뒤, 나 또한 노트북을 꺼냈다.
‘배달갑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우선 알아둬야겠어.’
사실 배달앱을 서비스 중인 3사 중, 그동안 가장 신경 쓰지 못한 곳이 배달갑이었다.
화제가 될 만한 일도 드물었고, 세가 약하다 보니 다른 업체에 더 주력했었다.
난 노트북을 이용해 배달갑 관련한 최근기사를 하나씩 읽어나갔다.
[배달갑 김상운 대표, 의장으로 물러난다]
[배달갑 대표 교체...신임 김대훈 대표]
[배달갑-딜리버리빌런 접촉...투자인가 인수인가]
[배달갑 “투자자 모색 중...매각 아냐”]
내가 신경 쓰지 못한 근 한달 사이, 배달갑의 변화는 폭풍처럼 몰아치고 있었다.
설립자였던 김상운 전임 대표가 의결권을 가진 의장으로 물러났고, 초기 멤버였던 김대훈 본부장이 후임 대표가 된 것이다.
‘어쩐지 묘하다.’
왜 이 시점에 갑자기 대표직을 물러난 걸까.
이전 기사를 검색해봤지만, 그 이유로 지목될만한 일은 없었다.
‘의결권을 가진 의장과 초기 멤버였던 대표라······’
웃긴 건 ‘김대훈 대표’의 직함이 두 달도 채 가지 못한다는 거다.
[배달갑이 조기요와 공동 대표 체제를 도입 합니다 –배달갑]
분명히 일주일 뒤 날짜서 날아온 이메일이다.
이 이메일 내용에 따르면, 배달갑은 딜리버리 빌런으로부터 투자유치에 성공한다.
동시에 배달갑의 대표직을 조기요 나지원 대표가 겸임하게 된다.
회사를 합치진 않지만, 실질적으로 하나가 되는 거나 다름없다.
이런 판단은 조기요를 설립한 딜리버리 빌런이 내렸을 가능성이 크다.
‘경영권 자체를 넘겼다고 봐야 할 것 같은데.’
난 노트북에서 눈을 떼고 허공을 보며 골똘히 생각했다.
배달갑은 김상운 의장이 대부분의 주식을 소유하고 있다.
즉 경영권을 가진 건 김 의장이다.
그런데 김 의장이 두 달 만에 자신이 정한 대표를 경질시키고 경쟁사의 대표를 자리에 앉힌다?
말이 되지 않는 이야기다.
‘즉, 단순한 투자가 아니란 얘기겠네.’
답은 인수합병이다.
배달갑 측이 언론에 밝힌 해명과 다른 결과가 되는 거다.
‘아직 투자유치를 했단 기사는 없어.’
혹시나 싶어 난 다시 한 번 기사를 검색해봤다.
역시나 배달갑이 딜리버리 빌런으로부터 투자 받았다는 말은 없었다.
그렇다면 투자유치와 대표교체는 거의 비슷한 시기에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그럼 배달갑의 투자유치, 이거부터 파야한단 이야기네.’
결론을 지은 난 휴대전화를 잡았다.
난 곧장 김정효 팀장의 전화번호를 검색해 통화를 걸었다.
-어, 진형아. 무슨 일이야.
바로 전활 받은 김정효 팀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팀장, 취재 관련해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난 간략히 배달갑의 상황을 설명했다.
다만 내가 일주일 후의 이메일로 알게 된 내용은 제외했다.
“그래서 말입니다. 허락만 해주시면, 집중취재를 좀 하고 싶습니다.”
-집중취재?
디지털투모로우같이 작은 매체는 한 명의 기자가 여러 역할을 해야 한다.
기자가 하나의 특종만 바라보고 며칠씩 탐사취재하기가 어려운 환경이다.
난 그렇기 때문에 미리 허락을 구하려는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김정효 팀장의 취재에 대한 가치관이다.
-확실하게 딸 자신 있어?
“네, 가장 먼저 기사로 내놓겠습니다.”
만일 예인처럼, 먼저 취재를 시작한 다른 누군가가 있다면 우린 그 사람을 제쳐야 한다.
쉽게 단언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난 자신 있게 대답했다.
그래야만 했기 때문이다.
-좋아, 그럼 내가 대표하고 잘 얘기해볼게. 취재하는 쪽으로 하자.
“감사합니다. 그럼 내일 영기는 현장출근 시켜도 됩니까?”
내 말에 보도자료를 치고 있던 영기가 반응했다.
매일 아침 사무실로만 출근하던 녀석에게, 새로운 경험을 시켜줄 참이었다.
-그래 알았어. 그럼 어디로 가서 누굴 만날 건지 정보보고로 다 올려줘.
“알겠습니다.”
김정효 팀장과의 통화를 끝낸 후.
날 힐끔 보고 있는 영기에 말을 건넸다.
“영기씨, 들었지? 내일은 서초로 직출해.”
“서, 서초요?”
영기가 당황하며 반문했다.
“응. 영기씨가 김상운 의장을, 내가 김대훈 대표를 맡는 거야. 투트랙 전략으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