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래에서 온 특종-18화 (18/107)

18. 그게 현실로 일어 날 거라니까?

봄 날씨라곤 믿기지 않을 만큼 쌀쌀한 바람이 불었다.

난 머리칼을 휘저어놓는 강바람을 맞으며 강남대로를 걸었다.

양재역 부근에 위치한 배달갑 본사를 가기 위함이다.

‘아직 3시네.’

난 휴대전화로 시간을 확인했다.

김대훈 배달갑 대표의 인터뷰 일정은 오후 4시.

앞으로 한 시간 정도 여유가 남아있었지만 미리 몸을 움직여야 할 이유가 있다.

‘영기가 잘하고 있을지 모르겠네.’

영기는 내 지시대로 아침 일찍 배달갑 본사 부근으로 출근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곳에 죽치고 있을 터.

뻗치기.

내가 영기에게 시킨 게 바로 그거다.

‘일단 가서 직접 확인해봐야 겠군.’

배달갑 김대훈 대표의 인터뷰 일정이 확정된 건, 오늘 아침이었다.

-주 기자님~ 원모어플랜 홍선유입니다.

오전 9시, 원모어플랜 홍선유 실장이 사무실에 있던 내게 전활 걸었다.

-연락 늦게 드려서 죄송해요. 대표님하고 일정 조율하느라 늦었네요. 대표님은 오늘 오후4시에 시간이 빈다고 하시는데, 괜찮으세요?

“오후 4시요? 그 이전에는 안 되나요?”

사실 시간은 상관없었다.

그저 이유를 알고 싶었을 뿐.

-아, 중간에 회의가 있어서 4시쯤에나 가능하시데요. 죄송해요.

‘수요일인데 회의라······ 냄새가 난다.’

대부분의 기업은 월요일이나 금요일에 주간회의를 한다.

한주의 시작과 마무리, 그 시기가 가장 적절하기 때문이다.

보통 그 외 회의는 긴급 사안을 처리하기 위함인 경우가 많다.

‘문제는 영기 쪽이 너무 조용하단 말이지. 뭐······ 가보면 알겠지.’

난 발걸음 속도를 높였다.

그리 먼 거리는 아니었기에 약 15분 후, 난 본사 건물이 보이는 사거리에 도착했다.

난 횡단보도 앞에 서서 휴대전화를 꺼냈다.

영기에게 전화를 걸기 위해서다.

-네, 선배!

“여보세요? 어 영기씨. 어디야?”

영기는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빠르게 전활 받았다.

-저, 배달갑 건물 맞은편 편의점입니다.

“알았어. 내가 그쪽으로 갈게.”

난 신호에 맞춰 횡단보도를 건너 영기가 있는 편의점으로 들어섰다.

“선배.”

편의점 안에는 짙은 검은색 선글라스와 모자를 눌러쓴 영기가 있었다.

난 그의 과한 복장에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어, 영기씨. 어때 별 일 없었어?”

“네. 계속 지켜봤는데, 김상운 의장으로 보이는 사람은 못 봤습니다.”

영기는 자신의 휴대전화에 저장된 김상운 의장 사진을 내게 들이 밀었다.

어제 내가 보내준 사진이다.

“그래? 혹시 놓쳤을 가능성은 없어? 건물에 출입구가 한 곳이야?”

“가보니까 출입구가 두 곳이긴 한데, 한쪽은 1층 음식점을 통해야 들어갈 수 있더라구요. 정문은 전자인식기가 있구요. 두 군데 다 보고 있었는데 김상운 의장은 없었어요.”

“그래? 흠······”

내 예상과 다른 대답에, 실망감이 밀려왔다.

수요 회의라는 돌발 상황이, 여러 흔적들을 보여줄 거라 기대했다.

‘잘못된 기대였나.’

난 태연한 척 웃으며 영기에게 식사를 거르진 않았는지 물었다.

“참, 점심 식사는 했어?”

그래도 아침부터 고생한 사람이다.

일의 결과야 어떻든 내가 챙기지 않으면 안 된다.

“네, 옆에 버거갓이 있어서 거기서 빨리 먹고 나왔어요.”

“그래? 괜찮겠어?”

“네. 괜찮습니다.”

빈 말로 하는 소린 아닌 듯 했다.

“그래도, 혹시 배고플지 모르니까. 받아둬.”

난 영기에게 간식거릴 사먹으라고 만 원짜리 지폐를 쥐어줬다.

“앗, 감사합니다.”

영기는 거절하지 않고 넙죽 돈을 받았다.

“그럼, 나 들어간 뒤에도 계속 감시 부탁할게.”

“네, 넵.”

영기에게 인사한 뒤, 난 바로 편의점을 나왔다.

그리곤 홍선유 실장에게 전활 걸었다.

“홍 실장님, 저 주진형 기자입니다. 지금 배달갑 본사 왔는데, 어디로 들어가면 될까요?”

-아 기자님, 오셨어요? 잠시 만요. 정문 앞에 기다리시면 제가 내려갈게요.

그렇게 통화를 끝내고 3분 정도 지났을 때.

잠긴 유리문 너머로 보이는 계단에 급한 발걸음이 내려왔다.

30대 초중반쯤 된 순한 인상의 여성, 홍선유 실장이다.

홍 실장은 출입문 옆에 설치된 출입통제기에 카드를 갖다 댔다.

이내, 닫혀있던 문이 자동으로 열렸다.

“주 기자님, 오랜만이에요. 잘 지내셨어요?”

전화로는 수없이 주고받은 말이지만, 직접 만나서 나누는 건 또 다르다.

난 홍 실장의 인사를 받으며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하하. 네, 실장님. 잘 지내고 있죠.”

“이쪽으로 오세요. 사무실은 4층이에요.”

홍 실장은 자신이 내려온 계단 대신, 복도 끝의 승강기로 나를 안내했다.

승강기를 타고 4층에 도착하자, 배달갑 로고와 홍보용 패널 등이 나를 맞았다.

‘자기주장 확실한 사무실이네.’

모르는 사람이 보더라도 배달갑 사무실이란 걸 확실하게 알 수 있을 듯 했다.

“우선 휴게실로 가시죠.”

난 홍선유 실장을 따라 휴게실로 이동하며 내부를 훑었다.

사무실 내부는 생각보다 아담했다.

열명 가량 직원들이 각자 자리에 앉아 모니터에 집중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주진형 기자님. 저는 배달갑 홍보팀 소민영 대리라고 합니다.”

휴게실에 도착하자, 작은 키의 여직원이 날 맞이했다.

“예, 안녕하세요. 디지털투모로우 주진형 기자입니다.”

명함을 교환한 뒤, 우린 휴게실 한편에 자릴 잡았다.

곧 홍선유 실장이 음료를 내왔다.

“홍 실장님에게서 얘기 많이 들었어요. 제가 먼저 연락 못 드려서 죄송합니다.”

무슨 얘기를 들었을 진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도 웃으며 화답했다.

“아니에요. 이참에 인사하면 되죠. 근데 배달갑에 홍보팀이 있었네요.”

내가 홍 실장과 계속 연락을 주고받은 것도, 배달갑 직통선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지, 없는 걸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지.

솔직히 말해서 외주인 홍보대행사와 사내 홍보팀은 정보의 질에 큰 차이가 있다.

게다가 향후 관계의 지속성을 생각해봐도, 기자로써 대행사보단 홍보팀에 직접 접근하는 게 훨씬 이득이다.

“네에. 실은 홍보팀이 생긴 지 얼마 안됐어요. 인력도 저 혼자구요. 헤헤. 앞으로도 홍 실장님하고 열심히 할 테니 이전처럼 연락주시면 돼요.”

완곡하게 표현했지만, 소민영 대리의 의도는 그다지 달갑지 않다.

‘귀찮은 일은 홍보대행사에게 맡길 테니, 연락은 자제해 달라. 후후.’

난 가소로움에 슬쩍 웃었다.

소 대리는 내 웃음이 불쾌함의 감정이라곤 생각지 못한 모양이다.

“참, 대표님이 아직 회의가 끝나지 않아서 잠시 기다리셔야 할 것 같아요.”

소 대리가 상큼한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듣는 순간 난 어이가 없었다.

‘자기들이 4시로 불러놓고 기다리게 하는 주제에 왜 이렇게 당당해?’

내가 홍선유 실장 쪽을 쳐다 보자, 나와 눈이 마주친 홍 실장이 당황하는 기색을 보였다.

“아하하······ 주 기자님 죄송해요. 회의가 좀 길어졌나 보네요.”

홍 실장이 빠르게 사과했지만, 소 대리는 뭐가 문제인지 아직 파악하지 못한 모양이다.

아니면 삼류매체 기자니 자사 대표를 기다리는 것쯤은 당연하다 생각한다든가.

뭐든 상관없다.

푸대접을 받든 멸시를 당하든 난 정보만 얻으면 되니까.

“근데 배달갑은 수요일이 정기회의 날인가 봐요?”

내가 은근슬쩍 미끼를 던져 물어보자, 소 대리의 대답이 바로 돌아왔다.

“아, 그렇진 않은데요. 오늘은 추가회의할 일이 생겨서요.”

“어떤 부분인가요?”

“가맹점 관련인 것 같아요. 자세한 건, 저도 잘 모르겠네요.”

거짓말을 하는 모양샌 아니었다.

그다지 회의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게다가 곧 대표와 직접 만날 예정이었기에, 난 굳이 집요하게 굴지 않기로 했다.

“······이 휴게실은 바깥 테라스와 연결 돼 있어서 점심시간에 쉬러 오는 직원 분들이 많아요······”

소민영 대리는 한동안 배달갑 사무실의 특이점과 장점에 대해 설명했다.

그렇게 한 20여분 정도 사무실 이곳저곳을 끌려 다닌 후.

“저 주 기자님. 지금 준비 되셨다고 하네요. 대표실로 가시죠.”

난 김대훈 대표를 만날 수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대표 김대훈입니다.”

김대훈 대표가 얼굴에 밝은 미소를 띠며 내게 악수를 청했다.

‘포근한 인상이네.’

모난데 없이 친근하고 부드러워 보이는 40대 남자였다.

“안녕하십니까. 디지털투모로우 주진형 기자입니다.”

“여기까지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앉으시죠.”

타원형으로 놓인 소파 중 한 곳에 내가 앉았다.

김 대표는 내 맞은편 자리에 착석했다.

“오늘 날씨가 좀 쌀쌀했죠? 오시는데 문제는 없으셨습니까?”

정중한 인사였다.

“네. 괜찮았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회의가 길어졌던데, 무슨 일인지 여쭤 봐도 될까요?”

20분을 기다린 사람이라면, 이정도 물을 권리는 있다고 생각했다.

“아, 기다리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저희 가맹점 관리에 대해 논의하다가 시간이 좀 지체됐네요.”

김 대표의 자연스러운 어투에 허점은 보이지 않았다.

‘정말······투자와는 상관없는 건가.’

어쩐지 불길한 기분이 들었다.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김 대표는 인터뷰를 속행하고 싶어 했다.

“저 인터뷰는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요?”

난 준비해온 질문지를 꺼내며 대답했다.

“글쎄요. 대표님이 말씀하시는 분량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한 시간 이내로 끝납니다.”

“허허. 그러면 좀 빨리 말해야겠군요. 다음 회의가 또 있어서요.”

“네, 그러시죠. 저 녹음기, 사용하겠습니다.”

난 휴대전화를 이용해 인터뷰 녹음을 시작했다.

인터뷰는 간결하게 진행됐다.

“저희는 5년 전 역삼동에 있는 인큐베이팅 센터서 시작했습니다. 그 때 멤버가 단 4명이었고, 사무실엔 선풍기 두 대 뿐이라 무척 더운 여름이었죠······”

마침 스마트폰이 보급되던 시기였다.

앱의 활용성에 대해 고민하던 이들이 떠올렸던 게, 배달주문 앱.

그런 배달갑의 성장 스토리를 들으면서 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김 대표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곧 바뀔 대표의 인터뷰 기사는 중요하지 않다.

‘이 사람은 자신이 일주일 뒤에 대표직서 물러난단 걸 알고 있을까?’

회사의 창립멤버이자 현직 대표다.

그럼에도 일주일 뒤 대표직을 다른 사람에게 내주게 된다.

만약 그걸 아는 사람이라면, 지금 나와 인터뷰를 할까?

‘아니겠지.’

더 확실하게 알아보기 위해선, 색다른 질문을 할 필요가 있다.

“저, 대표님 신임되신지 이제 두 달 정도이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네 맞습니다.”

내 말에 김대훈 대표가 고갤 끄덕였다.

“대표님이 꿈꾸는 배달갑의 미래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너무 멀리는 말고 대표로써 취임 후 5년 정도 후가 좋겠군요. 대표님 운영 하에 배달갑이 어떻게 성장하고 달라질 거라 보십니까?”

난 ‘대표님 운영 하’를 강조하며 김 대표에게 질문했다.

당신이 대표가 아니란 전제라면 들을 가치가 없단 답일 거다.

내 질문에 김 대표는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전 배달앱 서비스가 단순히 음식주문에 국한될 거라 보지 않습니다. 배달갑이 구축한 인프라를 바탕으로 그 외 다양한 서비스를 도입하는 게 제 궁극적인 목표입니다. 하하. 물론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사업으로 차례차례 열어나갈 생각입니다. 그렇게 5년 후 배달갑은 종합유통 기업이 되어있지 않을까 싶네요.”

사업 청사진의 끄트머리가 보였다.

다부진 포부를 말하는 김대훈 대표에겐 자신감이 보였다.

‘이건 어딜 봐도 곧 경질될 대표의 얼굴이 아닌데.’

그러나 일주일 후의 보도자료가 거짓이 아닌 이상, 김 대표는 자리서 물러나게 된다.

결국 자신이 처한 상황을 전혀 파악치 못하고 있단 얘기다.

‘과연 이 사람한테서 쓸 만한 투자 정보를 얻어낼 가능성이 있을까?’

잠시 고민하던 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말을 이었다.

“참, 요즘 딜리버리 빌런으로부터 투자받는 단 얘기로 떠들썩하던데. 상황은 어떤가요?”

“아- 투자부분은 저희 김상운 의장이 전담하고 있어서, 저도 드릴 말씀이 없네요.”

“혹시나 투자가 긍정적으로 이뤄졌을 때, 조기요와 합병하는 일은 없을까요?”

내 말에 김대훈 대표가 말도 안 된다는 듯,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그럴 리는 절대 없을 겁니다. 김상운 의장이 대표서 물러나긴 했지만 배달갑에 대한 애정이나 경영의지는 확실하니까요.”

즉, 경영권을 딜리버리 빌런에게 내놓을 리가 없다는 거다.

‘하지만······그게 현실로 일어 날 거라니까?’

난 자신의 미래에 대한 걱정 없이 웃고 있는 김 대표에게 연민까지 느꼈다.

그만큼 김상운 의장을 믿는단 얘긴데, 믿음만큼 배신감도 클 터.

‘어쨌든, 이로써 분명해졌다. 이 사람은 더 파봐야 나올게 없어.’

내가 속으로 한 숨을 쉬며 실망하고 있을 때.

내 휴대전화로 문자 메시지가 도착했다.

[선배! 지금 사무실로 김상운 의장 들어가요! - 박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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