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더 가까이 가야겠어
“자 그럼 인터뷰는 끝난 건가요?”
김대훈 대표의 목소리는 여전히 부드러웠지만 확실하게 끝내 달라 재촉하고 있었다.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를 보던 난, 황급히 돌려 김 대표를 봤다.
“아아, 네에. 인터뷰할 부분은 다 끝났습니다.”
“하하. 수고하셨습니다. 그럼 전 회의가 남아있어서, 먼저 일어나보겠습니다.”
김 대표가 내게 양해를 구하며 자리서 일어났다.
“네. 대표님.”
“아참, 기자님. 저희 배달갑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김대훈 대표가 내게 다가와 오른손을 내밀었다.
그의 손을 보니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
난 김 대표의 손을 잡으며 나지막하게 그에게 말했다.
“······대표님도 힘든 일이 있더라도 잘 헤쳐나가시기 바라겠습니다.”
내 말을 들은 김 대표는 잠시 의아한 얼굴을 지었다.
아무래도 이상하게 들릴 소리긴 하다.
다행히 그는 이내 허허 웃어 넘겼다.
“네. 감사합니다.”
김 대표는 그 말을 끝으로 대표실을 빠져나갔다.
나도 짐을 챙겼다.
비록 원하는 정보에 접근하지 못했지만, 어쨌든 인터뷰는 끝났다.
이제 이동해야 할 참이다.
그리고 영기가 보낸 문자의 진위여부를 확인해야 했다.
“참, 대리님. 사무실 사진을 좀 찍어도 될까요?”
난 카메라를 꺼내며 소민영 대리에게 물었다.
명목상은 인터뷰 기사에 사용할 사진을 찍으려는 것이나, 실제론 시간을 더 끌기 위함이다.
“아, 그럼요. 제가 다시 안내 해 드릴게요.”
난 소 대리, 홍선유 실장과 함께 대표실을 나왔다.
소 대리는 기사 사진으로 쓰기 좋은 장소로 날 이끌었다.
“대리님. 회의실 사진도 찍으면 좋을 것 같은데요. 대표님 일하는 모습도 나오고.”
근무 중인 직원들 사진을 찍은 뒤, 난 소 대리에게 제안했다.
내 예상으론 지금 회의실엔 김대훈 대표 뿐 아니라 김상운 의장까지 자리하고 있을 터.
지금 들이 대봐야 했다.
“아- 회의실 사진이요. 잠시 만요.”
소민영 대리가 휴대전화를 조작하기 시작했다.
회의실에 있는 직원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모양이었다.
잠시 기다리고 있자, 곧 답장이 온 듯 알림소리가 났다.
“음, 안될 것 같아요. 회의실에 다른 손님이 계셔서 방해하기가 어렵다고 하네요.”
‘다른 손님? 김상운 의장을 말하는 건가.’
그걸 확인하기 위해선 당연히 직접 회의실로 쳐들어가는 게 맞다.
허나 그렇다고 여기서 억지를 부리거나 막무가내로 들어갈 순 없는 노릇.
난 일단 물러나기로 했다.
“그럼 어쩔 수 없죠. 여기만 찍고 가도록 하겠습니다.”
“네.”
난 마지막 사진으로 사무실 전경을 집중해 촬영했다.
어차피 김대훈 대표의 인터뷰 기사가 나갈 일은 없을 거다.
그럼에도 사진에 심혈을 기울인 이유는, 다른 기사에 쓰일 예정이기 때문이다.
‘그 기사의 제목은 아마도 [배달갑 사무실 이사, 조기요와 한솥밥]이 되겠지.’
난 카메라 디스플레이를 통해 마지막 사진을 확인했다.
만족스러운 결과물이었다.
“오늘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무실 밖, 승강기 앞.
난 배웅하기 위해 따라나온 소민영 대리와 홍선유 팀장에게 말했다.
“아니에요. 여기까지 와주신 기자님이야말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하죠.”
홍 팀장이 빠르게 대답했다.
“네, 기자님. 앞으로도 자주 연락해주시고 찾아와주세요. 언제든 좋아요.”
소 대리의 말에 내가 웃었다.
“하하. 알겠습니다. 앞으로 좀 귀찮게 해드리더라도 양해 부탁드릴게요.”
“귀찮기는요, 그게 제 일인데요.”
‘아니, 충분히 귀찮아하는 것 같은데.’
난 소 대리의 얼굴을 보며 저 말을 꾹 참았다.
곧 4층에 도착한 승강기에 난 몸을 실었다.
“아, 멀리 안 나오셔도 됩니다.”
난 승강기의 1층 버튼을 누르곤 빠르게 말했다.
괜히 이들이 따라 나와 봐야 좋을 게 없다.
“그럼 살펴 들어가세요.”
두 사람이 내게 인사했다.
나도 가볍게 목례로 답했다.
승강기 문이 닫히고, 난 삽시간에 1층에 도착했다.
“영기씨, 아직 그 편의점이야?”
건물 밖으로 나서며 난 영기에게 전화했다.
-네, 선배. 지금 선배 나오는 거 보고 있습니다.
난 통화를 종료하고 곧장 영기가 있는 편의점으로 다시 들어갔다.
“영기씨, 아까 보낸 문자 진짜야?”
김상운 의장이 배달갑 사무실로 들어왔단 이야기.
“네, 확실해요. 제가 사진이랑 대조해봤습니다.”
“혼자 들어갔어? 아니면 다른 사람도 있었어?”
“혼자였습니다.”
“······그래?”
혼자라면 딜리버리 빌런 쪽 인원은 오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난 찬찬히 생각을 정리했다.
투자가 확실시 되고, 배달갑이 이를 공개하는 시점은 다음 주.
그리고 바로 대표 교체와 사무실 이전이 진행된다.
-그럴 리는 절대 없을 겁니다. 김상운 의장이 대표서 물러나긴 했지만 배달갑에 대한 애정이나 경영의지는 확실하니까요.
난 김대훈 대표가 단호하게 대답한 내용을 떠올렸다.
저 말이 사실이라면, 김상운 의장이 딜리버리 빌런 측 의견을 쉽게 받아들었을 리 없다.
‘그럼, 벌써 협상이 타결되진 않았을 것 같은데. 사무실로 온건 투자건과 상관없는 걸가?’
난 휴대전화를 꺼냈다.
휴대전화를 조작해 연락처서 찾은 이름은, 조기요 양호명 과장.
조기요서, 언론대응을 맡고 있는 사람이다.
난 화면에 표시된 양 과장의 연락처를 눌러 바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양호명 과장님. 디지털투모로우 주진형 기자입니다.”
-······네, 주 기자님.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나요.
사실 양 과장은 마케팅 담당으로, 홍보를 업으로 사람이 아니다.
별도 홍보팀이 없는 조기요 내에서, 얼굴마담으로 기자들을 응대하는 정도.
잡무는 계약한 홍보대행사 측에서 처리하고 있다.
그 탓에 양 과장은 기자를 상대하는 게 무척 서툴렀다.
‘오히려 내겐 이점이지.’
기자에게 해야 할 말, 하지 말아야 할 말을 칼같이 구분하는 개념이 없는 사람이니까.
“네. 저야 잘 지내고 있죠. 양 과장님은 어떠세요. 조기요는 별 일 없나요?”
-네, 저희도 문제없이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근데 무슨 일이세요?
“아 다름이 아니라, 여쭙고 싶은 게 좀 있어서요. 딜리버리 빌런이 배달갑에 투자했던데, 사무실도 합치게 되나요? 그런 소문이 돌던데요.”
난 저 말들이 진짜 사실인양 태연하게 연기했다.
-네? ······아뇨. 아직 투자가 확정된 것도 아닌데요. 사무실 합친다는 소리는 금시초문이구요. 저희는 평상시와 똑같이 일하고 있습니다.
양 과장이 말하는 투를 보니, 정말 처음 듣는 이야기인 듯 했다.
그가 차분히 말을 덧붙였다.
-저희 모사 쪽에서 내려온 지침도 아직 없어요. ······저, 기자님. 죄송한데 제가 다른 업무를 해야 돼서 나중에 다시 통화해야 할 것 같네요. 혹시 따로 물어보실 부분이 있으면 대행사 쪽으로 문의주세요.
정말 급한 일 때문인지, 양호명 과장이 다짜고짜 대화를 끝내려 했다.
“아, 아 네. 알겠습니다.”
난 약간 당황했으나, 어차피 알아야 할 건 모두 들었기에 통화를 종료했다.
‘아직 투자 협상은 진행 중이군······.’
100% 확신할 순 없지만, 양 과장의 반응이 거짓이 아닌 건 맞다.
남은 의문은 시간이 해결해줄 문제다.
“영기씨. 늦어질 것 같은데 영기씬 혼자 여의도로 돌아가. 6시 되면 팀장께 말씀드리고 퇴근해. 정보보고 정리해서 올리는 거 잊지 말고.”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지경으로 꽁꽁 싸맨 영기에게 내가 지시했다.
난 오늘 계속 김상운 의장의 뒤를 쫓을 생각이었다.
언제 퇴근할 수 있을지 확언할 수 없기에, 수습인 영기를 먼저 보내려 한 것이다.
“선배는 계속 여기 계실 겁니까?”
“아아. 그래야지. 배달갑이 투자를 받는지 아닌지는, 김상운 의장을 쫓아야만 알 수 있으니까.”
“그, 그럼 저도 같이 있겠습니다.”
이외의 대답이었다.
사람들의 시선받기가 싫어, 얼굴을 꽁꽁 싸매고 온 녀석이다.
그 차림새로 나와 계속 있어준다는 부분에서 놀랐다.
“어? 괜찮겠어? 언제 집에 갈 수 있을지도 모르고, 계속 그 모습으로 있어야 되는데.”
“그, 그래도. 선배랑 있겠습니다. 저도 일해야죠.”
기특한 소리를 하는데 굳이 돌려보낼 필욘 없을 듯 했다.
“좋아 알았어. 그럼 같이 있자.”
우린 편의점서 컵라면과 김밥 등 요깃거리를 사 먹으며 전방을 감시했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해가 기울어 져갈 무렵, 영기가 내게 소리쳤다.
“서, 선배. 지금 나옵니다. 김상운 의장입니다.”
“어? 어디 어디?”
휴대전화를 보고 있던 내가 황급히 고갤 들었다.
배달통 본사 1층 입구에 김상운 의장과 김대훈 대표가 걸어 나오고 있었다.
“영기씨, 김상운 의장 혹시 자차타고 왔어?”
내가 묻자, 영기가 유리창 너머 한편을 손으로 가리켰다.
“네. 주차장 저쪽에 주차된 차에요.”
“그럼, 영기씨. 지금 당장 나가서 택시 한 대만 잡아 놔 줘. 빨리!”
“네? 넵!”
내 급한 목소리에 영기가 곧장 편의점 밖으로 튀어나갔다.
그가 도로로 달려가 택시를 붙잡는 동안, 난 김상운 의장과 김대훈 대표의 행동을 주시했다.
두 사람은 뭔가 대화를 길게 주고받더니, 곧 웃으며 헤어졌다.
‘김대훈 대표, 얼굴이 밝아.’
만일 대표 경질이나 경영권 양도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다면, 김 대표의 얼굴이 좋을 리 없다.
‘역시 인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것 같진 않다.’
나도 나갈 채비를 마치고 편의점을 나섰다.
김상운 의장은 이미 자신의 차문을 열고 들어간 상태였다.
“선배! 여깁니다!”
내가 빠르게 도로변으로 나오자, 택시 앞좌석에 타고 있던 영기가 손을 흔들었다.
“오케이!”
난 택시 뒷좌석 문을 열고 들어가 앉았다.
“기사님 잠시 만요. 저기 주차장에 검은색 세단 보이시죠? 지금 시동 켜진.”
난 택시기사에게 시동 걸린 차량을 설명했다.
50대쯤으로 보이는 택시기사는 잠시 눈을 찌푸리더니 대답했다.
“아, 네. 저 차요?”
“네. 좀 있다 차 나오면, 쫓아가주세요.”
“알겠습니다.”
본래라면 박봉인 기자 월급으로 택시를 탈일은 없었을 거다.
그래도 상황이 상황이니 만큼, 어쩔 수 없었다.
다행히 지난 번 광고 인센티브로 받은 돈이 넉넉히 있다.
“저······ 근데 무슨 일 하시는 분들이세요?”
택시 기사의 질문이 향한 곳은 영기였다.
워낙 수상한 차림새였으니 의심 할 만도 하다.
내가 명함지갑에서 명함을 한 장 꺼내 그에게 내밀었다.
“기자입니다. 취재 중이라서 그러니 이해해주시구요.”
“아아, 기자 분들이시구나. 알겠습니다.”
택시기사를 납득시키고 난 뒤, 난 김상운 의장의 차를 주목했다.
김 의장의 차는 주차장을 빠져나와 사거리에 끼어들 타이밍을 재고 있었다.
곧 그 차는 강남대로를 타고 북쪽으로 주행했고, 우리가 탄 택시도 뒤를 쫓았다.
한남대교를 건너 한남대로를 달리던 김 의장의 차가 좌회전 했다.
“저쪽은······”
“그랜드하이 호텔 있는 곳이에요.”
내 중얼거림을 들은 택시기사가 설명했다.
‘어쩐지, 제대로 따라온 것 같다.’
택시는 그랜드하이 호텔의 정문 앞에 멈춰 섰다.
이미 김 의장은 차에서 내려 발렛파킹 요원에게 차키를 맡기고 있었다.
난 택시기사에게 카드를 건네 정산된 요금을 결제했다.
그리고 김 의장이 로비로 들어갈 때쯤, 택시서 내렸다.
“감사합니다. 수고하세요.”
택시기사에게 인사하며 차문을 닫은 뒤, 나와 영기도 호텔 안으로 들어섰다.
고풍의 인테리어로 치장된 로비가 우리 앞에 펼쳐졌다.
내가 급히 김상운 의장의 행적을 눈으로 쫓았다.
“선배, 저쪽이에요.”
나보다 먼저 김 의장을 찾은 영기가 말했다.
김 의장은 호텔 로비에 마련된 카페에 가는 모양이다.
“우리도 가자.”
나와 영기는 최대한 침착하게 카페에 들어섰다.
빈자리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니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김 의장이 자리하고 있었다.
“영기야, 네 뒤쪽에 있다.”
난 영기의 귀에 속삭이듯 조용히 이야기했다.
“어, 어떡할까요. 선배.”
“넌 그냥 자연스럽게 있어. 내가 사진 찍고 있을게.”
난 휴대전화의 카메라 기능을 켜고, 동영상 촬영을 시작했다.
굳이 손을 계속 대고 있지 않아도 증거확보를 쉽게 하기 위해서다.
세워진 휴대전화가 티 나지 않도록 영기가 몸으로 살짝 가렸다.
5분 후.
말끔한 양복을 차려입은 한 사내가 김상운 의장에게 다가왔다.
사내의 손에는 두꺼운 문서케이스가 들려있다.
사내를 알아본 김 의장이 자리서 일어났다.
“············”
안부를 묻는 건지 악수 후 한동안 두 사람의 대화가 이어졌다.
그러나 내겐 하나도 들리질 않았다.
호텔 내 재생되는 음악과 주변 사람들의 말소리 탓이었다.
“-안되겠다.”
두 사람이 착석하는 걸 본 난, 자리서 일어났다.
“서, 선배. 왜 그러세요.”
당황한 영기가 말리듯 나를 불렀다.
“여기 있어봐야 아무 의미 없다. 더 가까이 가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