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래에서 온 특종-20화 (20/107)

20.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야지

“드, 들키면 어떡하려구요.”

잔뜩 긴장한 목소리로 영기가 걱정했다.

“어차피 김 의장은 우리 얼굴 몰라. 괜히 이상하게 굴지만 않으면 신경 쓰지도 않을 거야.”

난 대화에 몰두하고 있는 김상운 의장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건 물론 내 개인적인 판단일 뿐이다.

김 의장이 홍보팀 직원처럼 일개 IT전문지의 기자들 얼굴까지 세세하게 알고 있을 리 없을 거란 생각이었다.

우린 직접 만나 인사를 나눈 적도 없으니까.

“어쨌든 여기선 대어는 못 낚을 것 같아. 여기까지 와서 아무것도 못 얻고 갈 순 없잖아. 가자 가까이.”

난 영기를 기다리지 않고 바로 근처의 빈 테이블로 향했다.

다행히 서로의 대화에 집중하고 있는 김 의장과 의문의 사내는 내 움직임을 신경 쓰지 않았다.

내가 두 사람 옆에 앉은 뒤에도, 여전히 영기는 고민 중인지 안절부절 못했다.

손짓하자 잠시 멈칫하더니 결국 내가 앉은 자리로 어색하게 걸어왔다.

“자, 지금부터 최대한 자연스럽게 행동해.”

이렇게 얘기해봐야 소용없다는 걸, 난 영기의 굳은 표정을 보며 깨달았다.

‘그냥 말을 말아야지.’

난 영기에게서 시선을 떼고 김 의장을 바라봤다.

두 사람의 대화 모습은 격앙되거나 무거운 분위기가 전혀 아니었다.

서로 웃고 있었고, 김 의장도 편안한 자세로 친한 사람과 대화하듯 행동했다.

난 동영상 촬영 중인 휴대전화를 그 둘에게 돌려놓고, 귀를 기울여 이야길 들었다.

“김 의장님. 김 의장님도 아시다시피 조기요의 타깃 층은 이미 굳어졌습니다. 배달갑하곤 거리가 좀 있죠. 딜리버리 빌런은 양사가 공존하며 한국 시장을 다른 전략으로 공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절대 배달갑을 없애지 않는단 말이죠.”

양복 입은 사내가 김상운 의장을 설득하려는 듯 말하고 있다.

흥미진진한 전개다.

사내의 정체가 대충 짐작됐지만, 난 좀 더 들어보기로 했다.

“한국은 배달 강국이잖습니까. 상징적인 의미가 크죠. 배달의 나라에서 딜리버리 빌런이 시장선도자가 되는 거 말이죠. 저희 래클라스 대표도 한국 시장에 대한 의지가 강합니다.”

딜리버리 빌런의 대표의 이름, 래클라스 괴스트벅이 튀어나왔다.

이로써 확실해졌다.

저 사내는 딜리버리 빌런 측 인원이다.

임원, 아니면 M&A협상 전문가겠지.

“김 변이 무슨 말 하려는 진 잘 압니다. 하지만 저번에도 말했듯이 경영권 전부를 내놓긴 힘듭니다.”

김상운 의장의 표정은 부드러웠지만, 어조만큼은 딱딱했다.

“딜리버리 빌런과 함께 사업을 이끌어가는 부분에 있어선 긍정적으로 보고 계시지 않습니까?”

“당연하죠. 다만 경영권은 드리기 어렵다는 거고요. 그 이하로는 얼마든지 투자받을 생각입니다.”

김 변이라 불린 사내는 한동안 말이 없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의장님. 솔직히 저희 측도 사실상 배달갑 인수를 목적으로 투자요청서를 받아들인 겁니다. 저희도 그 이하로는 투자가 어렵다는 게 본사 의견입니다. 하지만 만약 김 의장님이 지분을 전부 처분하신다면 최대한 원하시는 만큼 드리겠습니다.”

김 변도 강경한 태도로 나왔다.

“의장님이 걱정하시는 일은 없을 겁니다. 배달갑은 배달갑 그대로 유지될 거고, 조기요는 조기요 나름대로 운영 될 겁니다. 지난번에 식사자리서 이렇게 말씀하셨죠? 배달갑의 5년, 10년이 다 계획돼있다고. 저희가 그 미래, 책임지겠습니다.”

‘김 의장이 경영권을 놓고 고민하는 모양인가 본데.’

딜리버리 빌런은 이미 국내에 조기요라는 지사를 갖고 있다.

그런 상황서 배달갑이라는 또 다른 업체가 필요할까?

나조차도 의문이다.

괜히 경영권까지 모두 넘겼다가 배달갑의 인력, 제반기술, 소비자만 흡수당하고 버려질 수도 있다는 걱정.

김상운 의장이 하고 있는 걱정이다.

“······그럼 제 지분 전체에 추가 발행 500주, 해서 전체 800억. 어떻습니까.”

‘800억 원이라니!’

난 김 의장이 내뱉은 숫자에 자동적으로 입을 벌렸다.

상장된 기업도 아니고 비상장 기업의 장외주식을 800억 원에?

배달갑의 미래가 아무리 밝다고 해도, 적자구조인 현 배달앱 시장에선 지나치게 큰 금액이다.

“800억······ 일단 알겠습니다.”

내 판단과는 달리 김 변은 간단하게 대답했다.

“다만, 금액에 대해선 회사와 조율해야 하니까, 자세한 건 내일 모레 또 얘기하지요.”

김 변이 웃으며 인수협의를 일단 마무리했다.

“식사나 하러 가실까요?”

김상운 의장이 웃는 얼굴로 말했다.

곧 두 사람이 자리서 일어났다.

나와 영기는 그들을 향해있던 시선을 거두고, 테이블 위에 놓인 메뉴판을 훑는 척 연기했다.

“선배, 쫓아가야 되는 거 아닐까요?”

김 의장과 김 변, 두 사람이 카페를 빠져나갈 때쯤.

영기가 들고 있던 메뉴판을 내려놓으며 내게 물었다.

난 휴대전화의 촬영을 종료시킨 뒤, 영기에게 대답했다.

“아니. 어차피 투자 이야기는 더 안 할 거야. 김상운 의장이 말한 금액을 딜리버리 빌런 측에도 물어본 뒤에 협상을 재개해야 할 테니까.”

비상장주식 한 주의 가치를 산정하는 건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딜리버리 빌런 측은 그 방법들을 바탕으로 김상운 의장과 가격조율을 하겠지.

“일단 우리는 김 의장이 갖고 있는 주식이 몇 주인지 부터 파악해야 돼.”

그래야만 500주 추가해, 합산 가치 800억에 대한 분석을 할 수 있다.

그 분석 후에 김 의장이 생각하는 배달갑의 가치, 그리고 딜리버리 빌런의 실질적 투자규모.

모두 다 알 수 있게 된다.

“그럼 오늘은 이만 돌아가자.”

우리는 자리서 일어서서 카페를 빠져나왔다.

호텔 로비를 지나치며 허기를 느낀 내가 영기에게 말을 건넸다.

“그러고 보니 영기씨. 우리 제대로 된 식사는 아직 이잖아. 밖에 가서 밥이라도 한 끼 하고 들어갈까?”

현재 시각은 오후 7시.

아까 편의점서 간단히 먹긴 했지만, 배가 찰 정도는 아니었다.

“아앗, 네, 네. 전 좋아요.”

영기의 밝은 대답을 들으며 호텔 문 밖으로 나서려던 순간,

“어? 주진형 기자님?”

날 부르는 남성의 목소리에 몸을 돌렸다.

굳이 소리의 진원지를 찾을 필요도 없이, 눈에 띄는 얼굴이 날 보고 있었다.

“이······적우 대표님.”

내일코코아 이적우 대표다.

이 대표는 함께 있던 사람들로부터 떨어져 나와 내게 다가왔다.

“여기서도 뵙는군요. 일정이 있으셨나 봅니다.”

“아 네- 취재가 있어서요. 참, 이쪽은 박영기 기자입니다.”

난 영기를 가리키며 소개했다.

“아! 같이 취재하셨던 박 기자님이시군요. 반갑습니다.”

이적우 대표는 내일코코아 취재기사에 적힌 영기의 이름을 본 모양이다.

“네, 넷.”

영기가 얼떨결에 이 대표의 악수를 받았다.

“두 분 또 어떤 취재 중이신지 궁금한데, 여쭤 봐도 될까요?”

이적우 대표는 허허 웃으며 내게 물었다.

가볍게 묻고 있지만, 쉽게 답할 만큼 사소한 이야긴 아니다.

“이 대표님이 만나고 계신 분들이 누군지, 말씀해주신다면 기꺼이요.”

난 이 대표 뒤쪽에 서있는 낯선 사람들을 봤다.

부하직원이라고 보기엔 지나치게 무관심한 태도와 숨 막히는 양복 차림새.

분위기만 놓고 보면 내일코코아 측 인사는 아니었다.

‘그렇다면 누구지. 합병 식을 한지 하루밖에 안됐는데, 외부 인사를 만나고 다니는 건가.’

내 질문에 이 대표는 당황하지 않았다.

“하하. 그렇죠. 제가 먼저 답을 드려야겠네요. 저 분들은 금융위 쪽 관계자입니다.”

“금융위요?”

금융위, 즉 금융위원회.

국내의 금융 활동과 정책 등을 틀어쥐고 있는 권력 기관이다.

‘내일코코아가 왜······? 아니, 설마.’

“예상하셨겠지만, 저희는 곧 금융 서비스를 내놓을 계획입니다. 이건 이전부터 준비해온 거라 서요. 최대한 빨리 출시할 생각인데 생각처럼 쉽지 않네요.”

“······너무 쉽게 말씀해주시네요. 저야 좋지만.”

지금 이적우 대표가 말하고 있는 건, 내일코코아의 신 서비스다.

아직 언론에 공개된 적도 없고, 합병 식의 비전 영상으로도 확인할 수 없었던 부분이다.

그런데 어째서 이렇게 간단히 내게 말하고 있는 거지.

“기자님께서 저흴 한 번 더 도와주실 일이 있을 것 같아서요. 자, 다시 여쭤보자면. 혹시 오늘 저희를 취재 중이신 건가요?”

이 대표가 능숙하게 대화의 흐름을 바꿔나간다.

“-아뇨, 아쉽지만 아닙니다. 저흰 지금 배달갑을 취재 중입니다.”

“아하, 배달갑. 하하. 그러고 보니 배달갑이 투자유치 중이라고 하던데.”

“네, 딜리버리 빌런 측과 투자협상 중이죠. 그걸 취재 중입니다.”

상대가 솔직하게 나온 이상, 나도 감출 마음은 없다.

“그렇군요. 그러고 보니 주 기자님은 어제 질문도 배달 쪽으로 하셨죠.”

“뭐 그 질문 때문에 여기까지 온 거나 다름없습니다.”

“그러셨구나. 취재는 어떤가요? 잘 되셨나요?”

“네- 뭐. 잘 된 것 같네요.”

난 눈을 낮게 내리깔며 대답했다.

오늘 꽤 많은 정보를 얻었지만, 사실 내가 원하는 한 칼은 아직 이다.

“허허. 그럼 곧 기사 나오겠군요.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그리고 일이 마무리 되시면 한 번 따로 뵙지요. 그 때 제대로 말씀도 드리고 싶습니다만.”

이적우 대표가 왜 이렇게 적극적으로 내게 접근하는지, 그 의도에 대해선 짐작 가는 바가 전혀 없다.

허나 거절한 이유도 없다.

상대는 국내서 가장 핫한 IT기업인이다.

누군가는 만나고 싶어 해도 만날 수 없는 사람이란 뜻이다.

그런 인물이 보자는데 내가 마다해서야 쓰겠나.

“······알겠습니다. 연락주세요.”

“그럼, 그 때 뵙죠.”

이 대표는 마지막 인사를 끝으로 본래 무리로 돌아갔다.

“우리도 돌아가자.”

멀어져가는 이 대표 일행을 보며 내가 말했다.

영기는 대기업 대표와의 짧은 대화가 숨이 막혔었는지, 길게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우리는 호텔 정문을 나와, 대기하고 있던 한 택시에 탑승하기로 했다.

“내가 앞에 탈게.”

난 택시 보조석 문을 열고 몸을 넣었다.

뒤따라 영기도 뒷좌석 문을 열고 택시 안으로 들어왔다.

“어? 아까 그 기자 분들이시네요.”

운전석을 확인하니, 우리가 호텔까지 타고 온 택시의 기사였다.

난 놀라움과 반가움이 섞인 목소리로 인사했다.

“엇, 안녕하세요.”

내가 택시기사와 목례하는 사이, 뒷좌석의 영기가 심상치 않은 소릴 내기 시작했다.

“으아아, 어, 잠깐만- 선배에!”

“뭐야? 왜 그래, 영기씨?”

“뭐, 뭐에요?”

택시기사와 함께 뒤를 돌아봤다.

거기엔 좌석에 앉아있던 영기를 밀어내며 택시에 탑승하는 또 다른 인물이 있었다.

사태를 파악한 택시기사가 실내등을 켜자, 환하게 그녀의 얼굴이 보였다.

“김, 기자-.”

이디넷 김예인.

저 돌아이 기자가 또 어디서 튀어나온 건지, 우리가 탄 택시에 말없이 쳐들어온 거다.

“도대체 어디서 나타난 건지, 모르겠는데 뭡니까 이건?”

내가 화가 난 체 하며 예인을 몰아붙였다.

그러나 예인은 전혀 신경 쓰는 눈치가 아니다.

“어차피 여기서 나가는 길 아닌가요? 같이 가요.”

“······”

택시기사가 어떻게 하냐는 눈빛을 보내왔다.

“일단 출발하시죠. 이태원 사거리로 가주세요.”

“알겠습니다.”

택시가 출발 하고나서, 난 바로 예인에게 말했다.

“어디 있다가 나타난 겁니까? 설마 우릴 미행한 건 아닐 테고.”

“특종 경쟁하기로 했잖아요. 취재하고 있었죠.”

맞받아치는 예인의 말이 조금 날이 서있었다.

“저야말로 주진형 기자가 여기에 있을 거라곤 생각 못했어요. 전혀 다른 쪽을 취재하고 있는 줄 알았거든요. 예를 들면 배달갑 같은.”

‘무슨 소리야. 배달갑 취재 중인데.’

난 고갤 갸웃거렸다.

아무래도 예인이 뭔가 오해하고 있는 모양이다.

“배달갑 취재, 맞아요. 그럼 어디라고 생각 하고 있는 거예요?”

“······내일코코아 취재한 거 아니었어요? 이적우 대표랑 이야기 하던 것도 봤는데.”

“그건 우연히 만난 거고. 우린 지금 배달갑 취재하는 중이에요.”

“······그렇군요.”

‘뭐? 그렇군요? 그게 끝이야?’

맥 빠지는 예인의 대답에 황당했지만, 뭐 어쩌겠는가.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야지.

난 다시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래서, 우리가 내일코코아 취재 중이라고 생각했던 건가? 혹시 김 기자 지금 취재 중인 게- 이적우 대표?”

내 물음에 예인은 대답하기 싫은 듯, 한참 미적이다가 결국 입을 열었다.

“그래요. 내일코코아 취재 중이에요.”

“핫하. 그래서- 어때요? 성과는 좀 있어요? 이쪽은 꽤~ 진척됐는데 말이죠.”

난 일부러 예인의 자존심을 건드리기 위해, 장난스럽게 말을 흘렸다.

“네 저도요.”

“그래요?”

의외의 대답에 내가 반문했다.

예인의 급한 태도로 봐선 아직 큰 정보를 물지 못해 보였기 때문이다.

“네. 방금 전 이적우 대표와 중요한 이야기를 나눈, 두 사람이 바로 제 앞에 있거든요.”

예인의 싸늘한 미소가 룸미러를 통해 내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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