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래에서 온 특종-22화 (22/107)

22. 아뇨, 승낙하실 겁니다

[배달갑의 비상장주식은 총 1,000주 발행 돼있고 의장님 지분율은 50%입니다 – 소민영

소민영 대리와 통화를 끊은 후 30분 뒤.

내 휴대전화에 그녀가 보낸 문자 메시지가 수신됐다.

‘전체 1,000주에 김상운 의장이 가진 건 500주. 거기다가 500주를 더 발행해 800억 원을 불렀다는 건······’

소민영 대리의 메시지를 읽으며 난 계산했다.

배달갑의 총 발행주는 1,500주가 된다.

딜리버리 빌런이 김 의장 제안대로 1,000주의 주식을 사는 경우, 김 의장과 배달갑에 각각 400억씩 투자하는 꼴이 된다.

‘······만약 저렇게 투자가 성사된다면, 딜리버리 빌런이 본 배달갑의 가치는 1,200억 원 규모.’

난 노트북에 문서작성 프로그램을 켜고 머리를 굴렸다.

기사 제목이 하나씩 그려졌다.

[배달갑, 딜리버리 빌런에 400억 투자요청]

[딜리버리 빌런, 배달갑 800억에 인수하나]

지금껏 갖춰진 재료만 잘 버무려도 어느정도 기사는 나온다.

하지만 난 추측성 기사를 쓸 생각은 없었다.

'어차피 김 변을 만나야 모든게 확실해 진다.'

난 화면에 떠있는 김재승 변호사의 사진을 유심히 바라봤다.

딜리버리 빌런의 고문 변호사라지만, 아마도 한국과 독일 본사를 잇는게 주역할일 터.

난 영기를 다시 불렀다.

"영기씨. 오늘도 점심먹고 배달갑 본사로 가줘. 어제 했던 것처럼 김상운 의장 행적 감시해주고."

"네, 넵. 알겠습니다."

"난 다른 쪽 취재하러 갈게. 혼자 할 수 있지? 취재하는 거 아니니까."

"네······ 문제 없어요."

약간 말을 흐리긴 했어도, 무리는 아닌 모양이다.

어쨌든 난 혼자 따로 만나야 할 사람이 있다.

조기요 양호명 과장.

난 영기와 점심식사를 함께 한 후, 곧장 지하철을 탔다.

"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양 과장님, 디지털투모로우 주진형 기자입니다."

빠른 속도로 달리는 9호선 열차 안에서, 난 양 과장과 통화를 시도했다.

-어, 주 기자님. 어쩐 일이세요.

"하하. 또 금방 연락 드리게 되네요. 식사는 하셨어요?"

-네에······ 방금 먹고 나왔습니다.

"잘됐네요. 저 지금 역삼 가는 중입니다. 조금 있다가 잠깐 뵐 수 있을까요?"

-아-

내 물음에 양호명 과장은 잠시 침묵했다.

난 그 이유에 대해 대충 짐작하고 있다.

양 과장은 영기와 비슷하다.

사람만나는 걸 그리 달가워 하는 성격이 아니다.

심지어 그는 홍보팀 소속이 아니라, 마케팅부 과장이지 않은가.

"잠깐이면 됩니다. 시간 많이 안 뺏을게요. 커피 한 잔 정도 마실시간만 내주세요."

내가 부탁한다는 어조로 얘기하자, 그제야 양 과장도 입을 열었다.

-네. 알겠습니다. 직접 오신다면 봬야죠.

"그럼, 도착해서 연락드리겠습니다."

-네에.

난 환승하지 않고 9호선 신논현역에서 하차했다.

괜히 고속터미널을 경유해 두번 환승 하면서 시간을 낭비 하긴 싫었다.

신논현역에서 10분 가량 걸어 올라가, 난 강남역에 도착했다.

[과장님, 도착했습니다. 아래서 기다리겠습니다. -주진형]

난 조기요 본사 근처에서 양 과장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3분이 지나기 전에, 양 과장이 건물서 내려나왔다.

"아, 주 기자님. 오랜만입니다."

"잘 지내셨어요?"

전화통화는 자주했지만, 직접 만나는 건 근 몇달만의 일이다.

난 반갑게 양 과장과 악수했다.

"일단, 저 쪽 카페로 가시죠."

난 양과장을 따라 주변의 한 카페에 들어갔다.

사람들이 듬성듬성 앉아있는 카페 중앙 좌석에 우린 앉았다.

"여기까지는 어쩐 일로 오셨어요?"

양 과장이 내게 어색한 눈 맞춤을 시도하며 물었다.

난 그의 노력에 미소 지으며 답했다.

"어쩐 일이긴요. 과장님 뵈러 온 거죠. 다른 일은 없습니다."

최근 난, 배달갑 투자건에 집중하며 일정도 잡지 않고 무계획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갑작스런 방문에 양호명 과장으로썬 당황스러운 모양이었다.

"에······ 그러시군요."

의문스럽다는 말투다.

"네. 정말입니다. 사실, 양 과장님께 여쭤보고 싶은게 좀 있어서요. 전화로 묻긴 그래서, 이렇게 오게 됐습니다."

"네. 어떤 부분인가요? 아시다시피 제가 마케팅 쪽이라······ 사실 제 업무 외엔 모르는게 많습니다."

홍보팀은 각 부서 실무자들과 협력해 사내서 벌어지는 온갖 일을 파악해야 한다.

그래야 홍보를 하고 언론대응을 할테니까.

하지만 마케팅은 소비자(사용자)를 주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꼭 그래야만 할 필요가 없다.

“알고 있죠. 그래서 일단 확인 삼아, 저번에도 여쭤봤지만 배달갑 투자건 말인데요.”

“아- 그건 제가 정말 아는 게 없습니다. 저희 조기요도 자회사라서, 본사가 하는 일을 다 알진 못합니다.”

내가 뒷말을 이어나가기도 전에 양 과장이 뚝 잘라냈다.

‘나도 알아, 이 사람아.’

이 사람이 배달갑 인수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다는 것쯤은, 일전의 통화로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그러니까 내가 묻고 싶은건, 그 과정에 대한 부분이 아니다.

“아뇨. 투자가 어떻게 되고 있냐고 물으려는게 아닙니다.”

“······아, 그럼?”

“이 투자협상을 맡은 분. 그 분에게 컨택하고 싶습니다.”

난 김재승 변호사와 만나고 싶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투자협상 담당자요? 저도 모르는데요.”

“딜리버리 빌런서 가끔 조기요로 사람을 보낸 적 없습니까?”

“글쎄요······”

모르는 눈치가 아니다.

양호명 과장의 말 흐림은 명백하게 ‘곤란하다’는 의미다.

“김재승 변호사. 딜리버리 빌런 측 고문 변호사로 알고 있습니다.”

내가 김 변호사의 이름을 꺼내자, 양 과장의 눈이 커졌다.

“딜리버리 빌런 측 인물이 한국에 오더라도, 혼자서 오진 않겠죠. 통역할 사람도 필요 할 테고, 국내 사정에 밝은 인물도 있어야 하고. 그게 아마 김 고문이 아닐까 싶은데요.”

추측하듯 말을 흘렸지만, 이미 알고 있다는 말을 돌려 표현했을 뿐이다.

“······김재승 변호사님을 알고 계시는 군요.”

“네. 알게 된 건 얼마 안됐지만요.”

직접 본 건 어제, 이름을 알게 된 건 오늘 아침이다.

“사무실서 몇 번 뵌 적은 있습니다. 그래도 저랑 직접적으로 교류한 적은 없구요.”

양 과장이 설명했다.

아무래도 본사 측 사람이다 보니, 실무자로써 직접 대화할 일은 없을 만하다.

김 변이 독일에서 한국으로 왔다 해도, 조기요 대표나 임원들과 시간을 보낼 테지.

“전 직접 일정을 잡고 싶은데요.”

내가 담담하게 요구하자, 양 과장이 고갤 갸우뚱 하며 어렵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음. 아. 제가 연락처를 갖고 있지도 않구요. 혹시나 알아내더라도 그분이 승낙하실 것 같지 않네요.”

꽤나 솔직한 대답이다.

보통 홍보팀과의 대화였다면 ‘한 번 알아보겠지만, 시간 관계상 어려울 수 있습니다’ 등으로 돌려 말했겠지.

난 활짝 웃으며 양호명 과장에게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아뇨, 승낙하실 겁니다.”

“네?”

예상대로 양 과장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김 변호사님께 800억, 대표 교체- 이 두 가지 내용을 전달해주세요. 그럼 분명 저와 만나자고 하실 겁니다.”

“······?”

아직도 모르겠다는 표정이지만, 더 양 과장에게 설명할 필요는 없다.

“그냥 그렇게만 전해주세요. 주진형 기자가 꼭 봬야겠다고.”

“네에······ 일단 알겠습니다.”

양호명 과장의 대답을 듣고, 난 자리서 일어났다.

내 모습을 보고 양 과장도 몸을 일으켰다.

“드리고 싶었던 말은 이게 답니다. 귀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양 과장님.”

“예에. 여기까지 오시느라 힘드셨을 텐데, 제가 바빠서 대접 못해드린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하하, 뭘요.”

양 과장과 나는 조기요 본사 앞에서 헤어졌다.

이제는 김재승 변호사의 연락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그가 정말 내게 접근해 올지는 나도 확신이 서질 않는다.

만일 실패한다면 난 다시 한 번 김상운 의장과 김 변의 랑데부를 쫓을 수밖에 없다.

‘그러고 보니, 영기 쪽은 연락이 없네.’

난 휴대전화를 꺼내 영기에게 연락했다.

“어, 영기씨? 그 쪽 별 일 없어?”

내가 묻자, 영기는 지루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넵. 김상운 의장은 안보입니다.

“음. 알았어. 조금만 더 고생해줘.”

-네.

오늘 김 의장의 별다른 행적이 보이지 않는다면 그것으로 됐다.

어차피 오늘 김상운 의장은 김재승 변호사를 만나러 가지 않을 테니까.

-다만, 금액에 대해선 회사와 조율해야 하니까, 자세한 건 내일 모레 또 얘기하지요.

어제, 김 변은 분명 이렇게 말했다.

즉 오늘은 각자 다른 시간을 가질 터.

혹시나 김 의장이 김대훈 배달갑 대표와 다시 만나 의논할지도 모른다 생각했으나, 틀렸다.

‘역시 김 의장은 김 대표에겐 말하지 않고 인수를 진행할 생각이야.’

김대훈 대표는 김 의장이 경영권을 놓지 않을 거라 확신했었다.

그러니까 김 의장은 김 대표를 실망시키기 싫었다거나 혹은 말할 수 없는 이유가 따로 있다는 거겠지.

난 일주일 후의 이메일 내용을 떠올렸다.

‘그럼 김대훈 대표가 경질되는 일에 김 의장도 동의하게 되는 걸까?’

물론 이 부분에 대한 논의는 현실에선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그게 내일이 될지, 모레가 될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건 없는 것 같네.”

난 시간을 확인했다.

아직 오후 두시도 되지 않은 이른 시각이었다.

“기자실로 가야겠다.”

영기가 이틀 간 잠입취재를 맡은 탓에, 보도자료 처리가 제대로 되지 못했다.

난 남은 시간 동안 기자실에서 중요한 보도자료를 작성하고 놓친 기사들을 확인하기로 했다.

여기서 가장 가까운 기자실은 역삼역 고글 코리아 본사 안.

하지만 대기업답게 들어가는 절차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다.

게다가 날 그리 달가워하지 않는 곳인지라, 가기가 꺼려졌다.

‘전화도 안 받고······이메일을 보내야만 며칠 뒤에 답장 주는 곳이니. 지금 간다고 말해봐야 들어갈 수가 없겠네.’

결국 난 다시 근방의 카페로 들어갔다.

난 계산대에서 차가운 아메리카노를 주문한 뒤, 카페 내 구석진 자리를 차지했다.

노트북을 켜고 이틀간 제대로 신경 쓰지 못했던 이메일함을 다시 확인했다.

휴대전화로 수신알람이 뜨긴 하지만, 빠트린 게 있을지도 모른다.

“헤에. 이건 뭐야. ······KMR?”

그다지 쓸 데 없는 보도자료들을 넘기다가, 처음 보는 이름을 발견했다.

KMR이라는 발신자가 보낸 이메일은 [지상파 3사, 미튜브 참여 중단 결정]이란 제목이었다.

내용을 보니 KMR은 지상파 3사가 합작해 만든 회사인 듯 했다.

“이거- 꽤나 재밌는 일이 되겠는데.”

미튜브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동영상 스트리밍 플랫폼이다.

본래 독립 플랫폼으로 시작했으나 지금은 고글이 인수해 운영 중이다.

이용자 수나 시청시간은 타 플랫폼 보다 압도적으로 많다.

지상파 3사가 정말 미튜브에서 콘텐츠를 뺀다면, 국내외 이용자들의 불만이 작지 않을 거다.

“사람들의 관심이 큰 만큼, 다각도로 이야기할 ‘꺼리’가 생기겠네.”

당장이라도 취재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허나 KMR에 대한 정보도 미비한데다가, 난 방송국 쪽과는 접점이 없다.

고글에게 무턱대고 물어보기엔 아직 구실도 부족하다.

‘일단 시간 날 때 정보 수집을 좀 해야겠다.’

그렇게 정하고, 난 오늘자 보도자료를 수정해 온라인 기사작성기에 송고했다.

이후 IT커뮤니티의 게시물들과 인터넷 포털 사이트의 기사들을 보며 시간을 보냈다.

오후 5시.

영기로부터 연락은 여전히 없다.

내가 휴대전화 화면을 빤히 내려다보던 그 순간.

[010-87XX-45XX]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난 이 번호의 주인이 누굴까 생각하다, 5초 후 수신버튼을 눌렀다.

“네. 주진형입니다.”

침착하게 입을 떼자, 수화기 너머로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녕하십니까, 기자님. 김재승 변호사라고 합니다. 양 과장으로부터 얘기 들었습니다. 지금 뵐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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