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그분들 연락처를 좀, 알 수 있을까요
“사례는 확실하게 해드리겠습니다.”
장도현이 덧붙였다.
난 미처 예상치 못한 제안에 잠시 할 말을 잊었다.
‘정보를 주겠다는 게 아니라, 받고 싶다는 거였나.’
상대는 증권사 직원이다.
법인영업본부라면 아마도 기업을 상대로 브로커를 하는 거겠지.
일단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을 묻기로 했다.
“-그런데. 왜 제게 그런 부탁을 하시는 건가요?”
난 그저 IT업계를 취재하는 기자일 뿐.
주식이나 경제에 관해선 잘 알지 못한다.
그런 내게 굳이 이런 부탁을 하는 이유를 알고 싶었다.
“주 기자님 기사 잘 읽고 있습니다. 요즘 단독기사를 많이 쓰시더군요.”
“예에······ 운이 좋아서.”
도현이 안경을 고쳐 씀과 동시에 눈빛을 달리했다.
온화함은 옅어지고 좀 더 날카로운 느낌이다.
“운이라 하더라도 다른 분들 보다 먼저 큰 정보를 안다는 건 굉장히 중요한 일이지요.”
“그거야, 그렇죠.”
“게다가 전, 그게 단순히 운이라고 생각지 않습니다. 그저 운이 좋아서 내일코코아나 배달갑의 인수합병을 알 수 있진 않거든요. 저희도 애널리스트가 기자 분들처럼 취재를 다니고, 업계 소식을 가까이서 접하고 있습니다만. 쉽지 않죠.”
“그러면?”
난 긴장하며 물었다.
도현은 내게 특별한 뭔가가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틀린 건 아니다.
다만 내가 그 특별함을 들키고 싶지 않을 뿐.
“뭐가 됐든, 고급 정보를 갖고 계시다면 그것으로 좋습니다. 기사 쓰시기 전에 제게만 미리 정보를 주신다면, 정보로 얻은 인센티브의 반을 드리죠. 참고로 작년 제 총 인센은 4억 이었습니다.”
인센티브만 4억이라니.
증권사가 어떤 구조로 돌아가는 진 자세히 모르겠으나, 절대 적은 금액은 아니다.
‘능력 있는 증권맨이란 건가.’
“주 기자님이 확실한 정보만 주시면 더 많은 수익을 낼 수도 있겠죠. 그리고 원하신다면 주식거래도 도와드리겠습니다.”
“말씀은 감사하지만, 기자들은 주식 못하게 돼있습니다.”
기자는 취재하는 업계에 큰 영향력을 가진 직군이다.
주요 언론사들은 기자의 주식매매를 금지해, 중립을 지키도록 노력하고 있다.
주식 때문에 특정기업을 띄우거나 공격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말이다.
‘뭐 우리 회사는 제재하지 않지만.’
반면 디지털투모로우는 기자의 주식투자를 자유롭게 허용한다.
아마도 이윤철 대표 본인의 욕심 때문이겠지.
그럼에도 도현의 주식매매 제안을 거부한 건, 돈에 휘둘리는 기자가 되고 싶지 않아서다.
“음, 그렇군요. 그렇다면 정보제공만 부탁드리겠습니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내가 말했다.
즉각 확답을 줄만큼 간단한 일이 아니다.
나로썬 이 거래를 놓고 고민해야 할 부분이 많다.
갖고 있는, 혹은 갖게 될 정보를 이 사람에게 넘겨줘도 문제없을까.
거래를 함으로써 내가 얻는 실익은 뭐고, 어느 정도인지도 따져봐야 한다.
“그렇지요. 생각하시고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수수료 조정도 어느 정도 가능합니다.”
“일단 알겠습니다.”
대충 이야기가 마무리 된 것으로 보고, 난 자리서 일어났다.
“그럼 긍정적인 대답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네.”
난 딱히 부정하지 않은 채 카페를 나섰다.
‘4억이라······’
거리를 걸으며 손익계산을 시작했다.
인센티브는 늘 변동한다.
그래도 보통 그 금액의 전후를 받는 다고 생각하면 되겠지.
‘절반이면 2억이다. 1년에 2억······’
사람이 혹 하는 금액임은 부정할 수 없다.
게다가 내가 정보를 준다면 인센티브가 더 많아질 확률이 크다.
도현 또한 그렇게 예측했기에 내게 이런 제안을 해온 것일 터.
‘그렇지만 내가 기사를 쓰는데 지장이 없어야 해. 그게 첫 번째니까.’
분명 돈으로 세상의 많은 것들을 살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목표, 최고의 기자.
그건 돈이 많다고 해서 될 수 있는 게 아니다.
“사장님, 여기 김밥 한 줄이랑 라면 하나 주세요.”
난 선배들과 자주 가던 여의도역 근처 김밥 집에 들어와 앉았다.
점심약속은 없고, 이 대표와 식사하긴 싫을 때 들리던 곳이다.
‘아무리 비싼 음식을 차려줘도, 마음 편히 먹는 것만 못하지.’
분식으로 간단히 요기를 해결 한 나는, 오후 1시쯤 영기와 합류했다.
다음 행선지는 역삼역 고글코리아 본사.
아직 고글코리아 선주경 부장으로부터 연락은 오지 않았다.
하지만 멍하니 기다리고만 있을 순 없다.
“네, 지금 가려는데. 기자실 좀 이용하고 싶어서요.”
지하철로 이동 중에, 난 고글코리아 홍보대행사 직원에게 전활 걸었다.
급하게 기자실을 빌리기 위해서였다.
-알겠습니다. 고글 쪽에 말씀드릴게요. 근데 바로 안 될 수도 있어요.
“네. 일단 알겠습니다.”
대행사 직원과 대화를 끝내자, 영기가 내게 물어왔다.
“선배, 지금 고글 가는 거예요?”
“어. 영기씬 처음이지?”
고글은 국제 IT업계를 선도하는 기업이다.
웹 검색과 광고를 중심으로 모바일 운영체제까지, 우리 실생활에 밀접해 있기도 하고.
영기로써는 유명한 기업을 찾아간다고 하니 꽤 흥분된 모양이다.
“네에. 좀 신기하네요.”
“신기해?”
“저희가 고글 같은데도 갈 수 있고.”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당연히 갈 수 있지. 기죽지 마.”
이렇게 말하는 나도, 위축 되는 게 사실이다.
“뭐······대단하긴 하지.”
난 일전에 가봤던 고글코리아 사무실의 규모를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우린 40분 정도 걸려 역삼역, 테헤란금융센터에 도착했다.
고글코리아는 이 30층 건물에 입주해 있다.
난 다시 휴대전화로 홍보대행사 측에 연락했다.
“도착했는데, 올라가면 될까요?”
-네, 오셨다고 말씀드릴게요. 22층으로 가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가자, 영기씨.”
나와 영기는 승강기를 타고 22층 버튼을 눌렀다.
도착 후 승강기에서 내리자, 통유리로 된 문이 우릴 막아섰다.
“여기, 보안카드 있어야만 들어갈 수 있나 본데요.”
영기가 유리문 옆에 부착된 디지털 도어락을 가리키며 말했다.
“응 잠시 기다려봐. 직원 나오기로 했거든.”
내 말대로 5분 뒤 미모의 여직원이 유리문 너머로 나타났다.
그가 도어락 인증부위에 카드를 갖다 대자 문이 열렸다.
“주진형 기자님이시죠?”
“네, 안녕하세요.”
“이쪽으로 들어오세요.”
사무실 입장 후, 직원은 우리를 입구에 설치된 기계 쪽으로 안내했다.
고글은 사무실 안에서도 보안카드로 인증을 해야만 부서 간 이동이 가능하다.
이 때문에 우린 우선 방문자 등록증을 만들어야 했다.
“우와, 역시 고글.”
수 분 간 기계와의 사투 끝에, 방문자 등록증이 출력됐다.
이를 본 영기가 호들갑을 떨었다.
나야 지난 번 간담회 때 이미 겪어본 일이었기에, 그나마 의연할 수 있었다.
방문 증을 가슴팍에 달고 난 뒤, 우린 기자실로 향했다.
“여기가 기자실이에요. 필요하신 것 있으시면 말씀해주세요.”
고글코리아의 기자실은 카페테리아 내부에 있었다.
타 기자실처럼 한 공간에 여러 개의 책상이 있는 게 아니라, 독립된 방이 달랑 두 개.
그 방에 유선 랜과 책상을 구비해 놓아 구색만 맞춘 꼴이었다.
허나 지금 내게 중요한 건 이런게 아니다.
“아아, 제가 선주경 부장님과 좀 뵙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미팅일정 이메일 보내드렸는데 답이 없으셔서요.”
필요한 걸 말하라고 하니, 망설이지 않고 물었다.
“선 부장님이요? 아 지금 미팅 중이셔서······. 끝나면 여쭤볼게요.”
생각보다 수월하게 풀릴 지도 모르겠다.
“그래주시면 좋죠. 감사합니다.”
“음료는 필요하시면 저 쪽 냉장고에서 가져다 드시면 되요. 그럼 수고하세요.”
이 설명을 끝으로 직원은 자리를 옮겼다.
“와, 선배. 여기 음료 진짜 많아요.”
사람이 없어서 긴장이 풀린 건지, 들뜬 건지.
영기는 직원이 카페테리아를 나서자마자 냉장고로 달려가 떠들었다.
“······알았으니까 너무 창피하게 굴진 말아줘.”
“헤헤, 넵.”
난 우선 짐을 기자실에 놔두곤, 바로 나왔다.
“영기씬 보도자료 정리 부탁해. 난 잠깐 화장실 좀 갔다 올게.”
“네.”
영기가 방 안에 들어가는 걸 본 후.
난 화장실이 아닌 사무실 입구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선주경 부장이 미팅을 하고 있다는 게 어딘가 걸렸다.
‘미팅룸은 저쪽이었나.’
컨퍼런스나 간담회를 할 때 고글이 주로 쓰는 방이 있다.
난 기억을 더듬어 그 방이 있는 곳을 찾아 나섰다.
‘이거 인증해야 넘어갈 수 있군.’
낯익은 통로 앞에서, 난 디지털 도어락이 설치된 철문을 맞닥뜨렸다.
혹시나 싶어 내 등록증을 갖다 댔다,
하지만 역시 삐삑, 하는 부정적인 소리만 날 뿐.
문은 열리지 않았다.
‘이런. 코코아 때처럼은 안 되려나.’
내가 아쉬움에 머릴 감싸 쥐던 그때.
삑, 하는 짧은 소리와 함께 문이 덜컥 열렸다.
“어!?”
예기치 않은 눈 맞춤에 서로 놀라고 말았다.
“주 기자님?”
방금 전 날 안내했던 여직원을 포함해, 대여섯 명의 남녀무리가 내 앞에 서있었다.
“아, 화장실을 찾다가 헤매서요. 여기 카드 찍는데 어쩐지 승인이 안 되더라구요.”
“누구?”
30대 후반의 단발여성이 약간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 옆에 서있던 직원이 답했다.
“오늘 기자실 방문하신 주진형 기자님이세요.”
“······아아, 주진형 기자님.”
단발여성은 그다지 반기는 기색 없이 내게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기자님. 메일 주셨죠. 선주경 부장입니다. 바빠서 답장 못 드렸네요.”
“아 그러셨구나. 안녕하세요.”
“일단 이 분들 배웅을 해야 돼서, 잠시 후에 다시 말씀드리도록 하죠.”
선 부장은 옆에 대동한 남성들 쪽으로 눈짓하며 말했다.
“아, 네 알겠습니다.”
선 부장은 일행을 데리고 입구로 향했다.
“기자님, 제가 화장실까지 안내해드릴게요.”
여직원은 친절히 날 다시 카페테리아로 이끌었다.
“근데 방금 나오신 남자 분들은 어디서 오신 분들인가요?”
난 걸어가며 자연스럽게 직원에게 물었다.
“아 저도 자세히는 모르는데, 미튜브에 지상파 콘텐츠 공급하시는 분들이에요.”
“네!? 혹시 KMR이라는 곳?”
“아- 맞아요. 그런 이름이었어요.”
난 조그마한 탄식을 내뱉었다.
좋은 타이밍에 접근했지만, 아무것도 못했던 거다.
직원에 안내에 따라 난 카페테리아 안 쪽에 있는 화장실로 들어왔다.
‘하긴 알았다 해도 명분도 없이 갑자기 들이댈 수야 없지.’
소변기에 일을 보며 난 방금 전 봤던 일행의 표정을 떠올렸다.
‘어쨌든 미튜브와 지상파의 협상이 아직 진행 중이란 거지? 분위기는 나빠 보이지 않았는데······.’
현 상황은 잘 모르지만, 그 결말을 놓고 보면 순탄한 과정은 아닐 거다.
‘미튜브와 지상파의 결별. 그 과정, 지금부터 알아내야지.’
10분 뒤.
나와 영기는 카페테리아의 한 좌석에 앉았다.
맞은편에는 단발머리의 선주경 부장과 여직원이 자리했다.
“오래 기다리셨죠.”
선 부장이 무미건조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듣기만 해도 미안한 감정이 1도 없다는 걸 잘 알 것 같다.
“아닙니다. 부장님 바쁘신데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난 최대한 낮은 자세로 선 부장에게 인사했다.
이렇게 숙이고 들어가는 내가 낯설었는지, 지레 겁먹은 영기가 잔뜩 주눅이 들었다.
“아, 그러게요. 요즘 좀 일이 많아서. 음, 주 기자님이 저한테 미튜브 관련해서 취재하고 싶다고 하셨죠?”
“네. 미튜브 BJ들을 소재로 해서 자세한 1인 방송 시장 기사를 써볼까 하거든요.”
“아, 좋은 것 같네요.”
여기서 ‘좋은 것 같다’는 건, 고글에게 미치는 영향을 뜻하겠지.
미튜브에 긍정적인 기사가 나가는 걸, 이 사람들이 싫어할 리 없다.
거만하게 기사를 좌지우지하는 태도지만, 취재협력을 얻으려면 감수해야 하는 부분이다.
“하하하 다행이네요.”
난 살짝 웃었다.
지금 말하고 있는 내용은, 어차피 선 부장의 환심을 사기 위한 것 뿐.
“시장얘기도 좀 하고. 또 독자 분들이 제일 좋아하는 게, 아무래도 돈 얘기거든요. BJ들 연봉 같은 거 말이죠.”
“아- 그 부분은 저희가 딱히 도와드릴 수가 없는 게, BJ분들이 공개를 꺼려하시거든요.”
“상관없습니다. 그냥 BJ분들과 접촉 시켜주시기만 해도 됩니다.”
사실 마음에도 없는, 시답잖은 이야길 나누면서 난 선 부장과 의견을 조율했다.
물론 이것도 취재만 잘 된다면 나름 괜찮은 기사다.
더 커다란 펀치가 기다리고 있으니, 굳이 신경 쓸 겨를이 없는 것 뿐.
“네, 일단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참, 아까 얘길 들어보니까 지상파 분들과 회의하셨다는데. 무슨 회의였나요?”
난 지나가는 말투로 선 부장에게 본심을 던졌다.
이 말을 들은 선 부장의 동공이 커진다.
그는 곧 옆에 앉아있는 직원에게 시선을 돌렸다.
“······아, 제가 말씀드렸어요······”
묘한 분위기에 난감한 듯, 직원이 답했다.
“그러셨군요-. ······별 건 아니고 지상파 콘텐츠 관련해서 협의 할 부분이 좀 있어서요.”
“궁금한데, 어떤 부분인지 여쭤 봐도 될까요?”
두루뭉술하게 피해가려는 걸, 콕 집어 꺼내본다.
“하하. 광고비 같은 문제인데 별 건 아니에요.”
별 게 아닐 리가 있나.
난 환히 웃으며 선 부장에게 입 열었다.
“그럼 그분들 연락처를 좀, 알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