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래에서 온 특종-30화 (30/107)

30. 하나 쫓아왔더니, 사은품처럼 하나가 더

“쫑, 났다구요?”

내가 굳은 얼굴로 되물었다.

아까부터 최대한 동요한 티를 내지 않으려 애를 썼다.

하지만 저렇게 급작스런 얘길 들으면 어찌할 도리가 없다.

“예에. 뭐 한 번 더 만나기야 하겠지만, 워낙 부정적이니까. 다 예상되는 거죠.”

박진종 대표의 답변을 들으며, 난 그를 조금 파악할 수 있었다.

이 사람은 기자를 스스럼없이 대한다.

대부분의 홍보팀 직원들이라면, 협의 중인 사안에 대해 자세한 언급은 절대 하지 않는다.

한 번의 말실수로 잘되던 협의는 물론, 기업 간 신뢰관계도 무너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박 대표는 전혀 그런 걸 신경 쓰고 있지 않다.

그게 언론으로부터 자유롭기 때문인지, 단순히 언론응대 경험이 적어서인지는 모른다.

‘어느 쪽이든, 나한텐 이득이니까.’

이유가 뭐가 됐든 난 이를 확실하게 살려 이용하면 된다.

“아까 전에 고글에서 보니까 그다지 분위기가 나빠 보이지 않던데요. 선주경 부장도 별 문제 없다하고.”

호숫가에 가라앉은 사연을 알기 위해, 난 작은 돌을 던져봤다.

“그거야 표면적으로는 얼굴 붉히고 싸울 일이 없으니 그렇지. 게다가 우리 콘텐츠가 빠지면 국내 미튜브에도 타격이 있으니 안 좋다고 말도 못할 거고. 실은 수수료 문제 때문에 얼마 전부터 계속 충돌해 왔어요.”

“수수료 문제요?”

조금은 핵심에 가까워진 것 같다.

“정확히 말하면 PIP 때문이지.”

처음 듣는 용어였다.

“PIP가 뭔지 여쭤보고 싶은데요.”

“에에, 플랫폼 인 플랫폼이라고. 우리가 제작한 API에요. 거 왜, 미튜브도 미튜브 사이트서만 영상을 볼 수 있는 게 아니라 다른 사이트서도 공유해 볼 수 있잖아요? 우리도 똑같이 하는 겁니다. 우리 API를 쓰면 미튜브 안에 KMR의 재생 플레이어가 담겨서 영상을 보는 거죠. 광고도 우리가 직접 선정해서 넣고.”

“그건······”

내가 더 말을 잇지 않아도, 박 대표는 알아들은 모양이다.

그는 씩 웃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

“예에, 맞아요. 미튜브와 똑같죠. 광고수수료도 조정해야 되고. 그러니까 그쪽은 규정에 어긋난다며 결정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는 거고.”

“그럴 수밖에 없는 일 아닐까요. 만약 PIP를 도입하게 되면 굳이 미튜브가 존재할 필요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같은 플랫폼인데. 게다가 광고 삽입도 애매해질 테고요.”

간단하게 말하면, KMR은 미튜브라는 인지도만 빌릴 뿐.

자기들 콘텐츠를 자사 플랫폼에 직접 업로드 및 스트리밍 하겠단 얘기다.

미튜브는 동영상 스트리밍 플랫폼이다.

수익원은 이용자들이 영상을 보기전 시청하게 되는 광고비.

그런데 미튜브의 영상 플레이어를 사용하지도 않게 되면, 미튜브 측에서 광고를 조종하기 힘들어진다.

‘뭐 하러 이걸 미튜브가 받아줘?’

그랬다.

이건 애초부터 성사될 리 없는 협상이었던 거다.

“그쪽에선 그렇게 얘기하죠.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우리도 변화에 맞춰 살아남으려면 PIP를 꼭 해야 하는데.”

여기서 박 대표가 말하는 ‘우리’라는 건, 지상파 방송사를 뜻하는 듯했다.

“인터넷 보급 이후, TV시청률은 계속 떨어지고. 떨어진 시청률에 따라 광고주 규모도 작아졌어요. 그래서 영상 클립을 만들어서 여러 플랫폼에 공급했는데, 돈이 안 되잖아요. 미튜브 트루뷰 광고는 스킵이 가능해요. 조회 수에 비해 수익이 안 나는 이유가 있죠. 애당초 그 조회 수를 믿을 수도 없지만.”

마음에 걸리는 말들이 한 둘이 아니지만, 우선 원론적인 걸 묻기로 했다.

“돈 때문에, PIP를 하신다는 말씀입니까?”

“당연하죠. 지금 방송 콘텐츠 제작비는 이전하고 많이 차이나요. 근데 그 비용수급이 안된단 말이에요. 우리가 인터넷 방송처럼 퀄리티 떨어지는 걸 내보낼 순 없는 노릇이고. 결국 광고를 따야 되는 거죠. 광고를 따려면 말이에요, 광고주들한테 우리 스트리밍 콘텐츠의 영향력을 증명해야 돼요. 예? 근데 지금의 파편화된 시스템으론 통계 데이터를 한눈에 보기도 어렵고, 우리가 광고를 직접 수주할 수도 없어요. 그저 미튜브가 주는 대로, 광고 받고 수익을 받는단 말이죠.”

왜 지상파가, KMR이 PIP를 하려는지 이해가 됐다.

자체 플랫폼으로 자사 콘텐츠의 주도권을 확 틀어쥐겠다는 의지다.

“올해 방송사들 다 적자에요. 그 적자폭, 내년엔 더 커질 걸요?”

“그럼, 미튜브 측에서 PIP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면?”

“콘텐츠 공급 중단. 우리 방 뺄 거예요.”

어이가 없을 만큼 너무나 간단하게.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이 튀어나왔다.

난 흥분으로 빠르게 뛰는 심장을 느끼며 입술을 깨물었다.

물론 이는 확정된 일이 아니다.

부정적이라곤 하나 아직 협의는 진행 중이었으니까.

“방 빼시면, 자체 사이트를 만드실 겁니까? 아, 폭이 있죠.”

폭(PoQ), 방송사들이 공동 설립해 운영 중인 스트리밍 플랫폼이다.

“아니죠. 플랫폼 인 플랫폼이니까 다른 플랫폼에 들어가야죠. 지금 메이버와 내일코코아도 협의 중이에요.”

‘뭐!? 메이버와 내일코코아?’

난 그저 더 자세한 KMR의 진로를 듣기 위해 질문 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예기치도 못한 거물들이 튀어나온 거다.

고갤 돌려 영기를 보자, 녀석 또한 놀란 눈초리를 나를 보고 있었다.

“오히려 그쪽은 될 거에요. 미튜브가 받아주든 받아주지 않든, 우린 두 플랫폼에 콘텐츠 공급하기로 결정했어요. 수수료만 협상하면 끝이에요 그쪽은.”

결정타.

난 더 주체하지 못하고 실실 웃음을 터트렸다.

그런 날 보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건지, 박진종 대표도 호탕하게 웃었다.

영기도 굳은 얼굴로 나와 박 대표를 번갈아 보며 상황파악을 하고 있었다.

‘특종 하나 쫓아왔더니, 사은품처럼 하나가 더 딸려오네?’

이건 완벽한 기삿거리다.

단순히 협의 중이 아니라, 수수료만 책정하면 끝나는 기실 확정.

두 포털업체의 멘트도 받아내야겠지만, 박 대표가 저렇게 말한 이상 큰 변동은 없을 터.

[메이버-내일코코아, 지상파 품는다...미튜버와 경쟁]

번뜩, 기사 제목이 떠올랐다.

‘그래. 국내 영상 스트리밍 서비스를 두고, 국내 포털이 주도권을 되 찾아온다는 거지.’

기사의 흐름이 물처럼 졸졸졸 머릿속으로 써내려가진다.

그 내용을 생각하기만 해도 신이 날 지경이다.

“대표님, 이거 고글 측도 알고 있습니까?”

“뭐 협상하면서 얘기했으니 알고 있겠죠.”

“그렇군요. 뭐, 알겠습니다. 말씀 충분히 들었으니 미튜브 쪽을 다시 확인해야겠네요. 혹시 언제쯤 다시 대화하러 가십니까?”

“뭐, 대화가 될지 통보가 될 진 모르겠지만. 내일이나 모레쯤 그쪽에서 연락을 주겠죠.”

“음, 알겠습니다. 오늘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뭘요. 자주 오세요. 전 대부분 여기 있으니까, 오실 때 연락만 하시고.”

“후후, 그러죠.”

우린 아주 화기애애하게 헤어졌다.

뭔가 기자로써 인터뷰한 느낌은 아니었지만, 이런 친근한 접근도 나쁘진 않다.

12층에서 승강기를 타고 내려가던 중.

“선배, 이거 엄청 특종 아니에요? 내일이랑 메이버에 공급한다는 거.”

영기가 내게 물었다.

“아아, 그렇지 특종이지. KMR이 미튜브에서 빠지겠다는 것도 그렇고.”

“그럼 오늘 바로 기사 쓰실 건가요?”

난 잠시 생각했지만 나온 결론은 ‘아니’였다.

“아니. 그 전에 해결해야 할 게 있어.”

“네? 뭐, 뭘요?”

“우선, 내일하고 메이버에 전화 해야 돼. 박진종 대표가 거짓말 하진 않았겠지만, 그래도 틀린 건 없는지 확인해야 되니까.”

“아, 맞다. 그렇죠.”

영기가 손바닥을 치며 대답했다.

내가 그동안 누누이 설명해줬던 ‘양측에 사실 확인’을 까먹고 있었나 보다.

“그리고 하나 더. 고글 선주경 부장이 우릴 속인 것도, 다시 물어봐야 겠지.”

선 부장은 KMR에 연락해준다고 말로만 하곤 실제론 하지 않았다.

그런 기만행위를 그냥 넘어갈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다.

“아······ 그, 그렇긴 하죠. 왜 그랬냐고 물어봐야 겠네요.”

“그래, 얘기해야지. 그리고 명확히 따져봐야지. 무슨 자신감으로 그런 짓을 벌였는지 말이야.”

난 욕설이 튀어나올 것 같은 강한 분노를 느꼈다.

“네, 넵······”

곧 승강기 문이 열리고, 우린 SBC사옥을 빠져나와 거리에 섰다.

“다만 오늘은 내일과 메이버만 접촉할 거야.”

“에? 왜요?”

내 말에 영기가 반문했다.

“내가 KMR과 접촉해서 모두 들었다는 걸 알면, 선주경 부장도 언플 총가동하겠지. 기자들 벌떼처럼 달라붙어 단독보도는 안녕일 테고. 그러니 선 부장은 미리 기사 준비해놓고 내일 접촉하자.”

“아, 넵!”

우린 다시 지하철을 타고 여의도로 돌아왔다.

사무실 대신 HD기자실로 들어온 난, 영기에게 메이버 측 접촉을 지시했다.

난 대신 내일코코아 정열성 매니저에게 전활 걸었다.

-네 주 기자님! 잘 지내고 계신가요?

전화 받자마자 정 매니저의 활기찬 기운이 쏟아진다.

“아, 아주 좋아요. 딜라스는 어때요? 합병 후 분위기 좋나요?”

-예, 뭐. 저야 아주 좋죠. 근데 어쩐 일이세요?

“네 간단하게 물어볼게 좀 있어서요. 내일코코아가 지상파 영상콘텐츠 공급받는다는 거, 사실이에요?”

뜸들이지 않고 본론으로 들어갔다.

-어어, 얘기 들으셨어요?

“네에. 간단히요.”

-하하, 뭐. 네 일단 협의중이구요. 정확히 정해진 건 없는 걸로 알고 있어요.

“그래요? KMR쪽에선 수수료 협상만 남았다고 하던데요.”

-그런가요? 사실 이건 제 담당이 아니라 핫하. 제가 한 번 알아보겠습니다.

정열성 매니저가 의욕적인 것처럼 나섰지만, 딱히 알아보고 싶진 않을 거다.

“아뇨, 됐어요. 협의 중인 것만 맞으면.”

-아 그렇습니까? 그나저나 주 기자님, 요새 정보가 진짜 빠르시네요.

정 매니저가 순수한 감정을 담아 감탄했다.

“열심히 발로 뛰고 있습니다.”

내가 농담조로 얘기하자, 정 매니저가 웃었다.

“어쨌든 딜라스, 이 얘기 다른 기자들이 물어본 적 있어요?”

-아, 아뇨. 없어요.

“그럼 부탁할게요. 혹시 다른 기자들이 물어보면 저한테 알려줘요.”

-아, 기사 먼저 쓰시게요? 알겠습니다. 바로 답 드릴게요.

“네 고마워요.”

그렇게 정성열 매니저와 통화를 끝냈다.

난 정 매니저의 멘트를 노트북에 기록하고, 영기 쪽을 봤다.

“선배. 차윤정 과장이라는 분, 세 번 걸었는데 다 전화를 안 받는데요?”

메이버 차윤정 과장은 메이버TV캐스트를 담당하는 홍보팀 직원이다.

차 과장이 연락이 안 된다면 적어도 그 윗선으로 연락을 거는 게 안전하다.

‘그렇다면 김우정 차장인데······’

한 달 전쯤, 내가 만나자 떼를 썼지만 결국 거절했던 메이버 김우정 차장.

“그럼 김우정 차장한테 전화해야 해야겠네. 일단 알았어, 영기씨. 영기씨는 그냥 정보보고 바로 작성해줘.”

“네? 제가 전화 안 걸구요?”

영기가 의아하다는 듯 내게 질문했다.

“어. 김 차장은 내가 직접 전화하는 게 나을 것 같아.”

헌데 솔직하게 말하면, 나도 자신 없다.

능수능란한 거절 스킬과, 대놓고 무시하지만 절대 꼬투리는 안 잡히는 능력까지.

나도 꺼려지는 상대다.

별 수 있나, 난 김 차장의 전화번호를 찾아 통화를 시도했다.

신호음이 끝나고, 통화가 연결됐다.

“차장님 디지털투모로우 주진형입니다. 통화 가능하세요?”

-······아, 기자님. 오랜만입니다. 무슨 일이세요?

“메이버 영상 콘텐츠 관련해서 질문 드리고 싶은데요.”

-그 부분이라면 차윤정 과장에게 문의 주시겠어요? 제 담당이 아니라서요.

예상은 했지만 너무 무성의한 대답이 돌아왔다.

난 살짝 짜증을 참고 다시 말을 이었다.

“차 과장이 연락을 안 받아서 차장님께 전화 드린 겁니다. 복잡한 질문은 아니구요.”

-아 그러셨나요. 흠, 그럼 잠시 후에 다시 전화 해보시죠. 지금 회의 중인 것 같습니다.

퉁명스럽게 이어지는 김 차장의 대꾸에 내 자존심이 불같이 달아올랐다.

‘아니 이자식이.’

나와 통화하는 시간이 아무리 아깝다 해도, 이런 식으로 구는 건 매너가 아니다.

홍보팀원들 간 각자 맡은 분야가 다르긴 하나, 업무는 동일한 언론대응이다.

자신의 담당분야든 아니든, 어차피 홍보팀이 실무진에게 물어보고 답하는 과정은 똑같다.

방금 전 내일코코아 정열성 매니저가 ‘제가 한 번 알아보겠다’고 말했던 건, 입발린 소리가 아니다.

충분히 쉽게 할 수 있는 일이기에 그렇게 대답한 거다.

“후우-.”

김우정 차장이 아직 전화를 끊지 않았지만, 난 화를 꾹 참으며 한숨을 쉬었다.

‘예전의 나라면······알겠다고 하고 전활 끊었겠지.’

단독, 특종은커녕 남들이 쓴 기사를 베껴 쓰던 삼류기자.

하급 매체 소속이라는 피해의식과 실제로 당해온 모멸들.

난 피할 줄 모르고 그대로 받아왔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으니까.

‘하지만 난 더 이상 한 달 전의 주진형이 아냐.’

지금의 내겐 남들보다 먼저 쓸 기사가 있다.

기자에겐 그게 최고의 무기이자 자신을 증명하는 가치다.

더 이상 소속매체 때문에 움츠러들 필요도, 바보같이 당하고 있을 이유도 없다.

“김우정 차장님. KMR, 지상파 콘텐츠 공급. 메이버가 받기로 한 걸로 압니다. 당장 확인해주세요. 5분 내로 답 안주시면, 바로 기사 낼 겁니다.”

허세 섞인 협박이었지만, 그만큼 강한 내 마음을 표현한 것이기도 하다.

-네? ······네?

못 알아들은 건지, 내 태도에 당황한 건지.

김우정 차장이 반문했다.

“지상파 영상 콘텐츠, 메이버에서 서비스 한다면서요! 맞다, 아니다 사실 확인 좀 해 달란 말입니다!”

-······어어, 알겠습니다. 제가 알아보고 바로 다시 연락드릴게요!

그제야 상황 파악이 된 건지, 김 차장이 반론 없이 내 요청을 수긍했다.

김 차장과 통화를 끊고, 난 쿵쾅거리는 가슴에 손을 댔다.

저질러 버렸다.

“선배, 괜찮으세요?”

내가 소리 지른 탓에 놀랐는지, 영기가 다가와 있었다.

“아아, 미안. 난 괜찮아. 이럴 것 같아서······그냥 내가 전화했던 거야.”

난 아무렇지 않은 척 대답했지만, 묘한 시원함과 후폭풍에 대한 두려움이 동시에 밀려왔다.

평소 만나자고 애걸복걸 매달리던 상대에게 소릴 지르다니.

‘아냐, 잘했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었어.’

난 스스로를 다독였다.

‘날 우습게 대하는 사람에게, 나도 더 이상 친절하게 굴 필요 없어.’

그리고 그 불친절을 되갚아 줘야 할 사람이 한명 더 남아있다.

도대체 나를, 기자로써 나를 어떻게 보고 거짓말을 한 건지 들어는 봐야 겠다.

비록 그 행위를 용서할 생각은 없지만.

‘고글코리아 선주경 부장. 기다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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