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희대의 난타전을 여는 팡파르
영등포의 고시텔 방.
난 몸을 씻은 후, 다시 책상 앞에 앉아 업무를 시작했다.
기자질을 하면서 알게 된 건, 이 직업이 일과 생활의 분리가 되지 않는다는 거다.
‘그걸 즐기고 있는 나도······ 기자가 어울린단 거겠지.’
난 피곤한 눈을 깜빡이며 노트북 화면을 봤다.
화면 안 워드프로세서에는 메이버 김정우 차장의 말들이 적혀 있다.
-네, 기자님. 메이버TV팀에 알아보니까 KMR과 협상중인 게 맞습니다. 저희가 최대한 낮은 자세로 협상 중이구요. 정확한 수치는 말씀드릴 수 없으나 KMR측이 광고배치나 수수료 배분에 대해서 권한을 갖고 유리한 방향으로 진행 중입니다.
약 1시간 전, 김정우 차장이 내 요구대로 유관부서에 확인 후 설명했던 내용이다.
그는 정말 내가 요구했던 5분이 지나기 전 연락했다.
말투도 굉장히 정중했다.
우리의 밀고 당기기 위치가 역전된 거다.
그 통쾌함에 난 기자실 안에서 실실 웃어버렸다.
영기가 보고 있었는데, 좀 한심하게 여겼을지도.
[메이버 관계자는 “KMR과 협상중인 게 맞다”며······]
난 노트북 화면에 담긴 말들을 수정해나갔다.
구어체 문장을 기사에 실을 수 있게 인용구로 바꾸는 거다.
기사 중간부분엔 내일코코아 정열성 매니저의 멘트도 더했다.
[내일코코아 측도 “일단 협의 중”이라며 KMR과의 협력을 인정했다. 다만 수수료 협상은 아직 진행 전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두 업체와 KMR 박진종 대표의 설명을 곁들였다.
[국내 동영상 스트리밍 시장 80%이상을 차지한 고글과 대항하기 위해 메이버와······]
곧 기사 하나가 뚝딱 완성됐다.
제목은 [메이버-내일코코아, 지상파 영상클립 품는다].
본래 목표가 아니라, 의외의 소득으로 얻은 기사였기에 왠지 더 뿌듯했다.
‘자, 다음은······ 고글이다.’
난 일단 기사의 제목부터 정했다.
[고글-KMR 결별, 지상파 콘텐츠 미튜브서 못 본다]
아직 확정된 사실이 아니기 때문에, 기사의 전체적 뼈대만 잡아 놓기로 했다.
집중해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다 문득, 정신 차려 보니 시간을 보니 두 시간이 훌쩍 흘러 있었다.
‘이정도면 준비는 다 됐어.’
난 뻐근한 어깨를 돌리며 자리서 일어났다.
밤 11시.
난 고시텔 방을 나와 옥상으로 올라갔다.
건조대에 걸려있는 빨래들을 지나, 난간 앞에 섰다.
“후우.”
가끔씩 이렇게 확 트인 공간에서 숨을 쉬어줘야 한다.
바깥 창이 없는 내 방은, 복도의 퀴퀴한 공기로만 환기 되고 있으니까.
내가 이렇게 고시텔에 살게 된지는 거의 2년째다.
기자가 되겠다고 없는 살림에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었지.
가장 싼 고시텔 방을 하나 잡고, 언론고시 보다가 1년을 날렸다.
“그래도 지금은- 기자가 돼 돈도 벌고 있으니까.”
사실 이것만으로도 무척 행복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멈출 생각은 추호도 없다.
‘아무도······날, 무시할 수 없도록 최고가 될 거니까.’
그건 진심이자, 내가 바라는 미래다.
다음 날 점심시간 직후.
난 회사 사무실로 돌아와 KMR 박진종 대표에게 전화했다.
“대표님, 어제 찾아뵀던 디지털투모로우 주진형 기자입니다.”
-예에, 주 기자님. 무슨 일이세요.
내가 인사를 건네자, 박 대표는 특유의 시원시원함으로 대답했다.
“고글 본사 측에서 답 들으셨는지 궁금해서요.”
-대답이요? 안 왔어요. 뭐, 신경 안 씁니다. 그냥 빠지려고요.
“네?”
이 사람과는 대화할 때마다 당황하게 되는구나.
생각 과정이 너무 짧아서 거의 없다시피 하다 보니, 따라갈 수가 없다.
-어차피 안 될 거 확실한데 뭘 쓸데없이 기다릴까. 그냥 뺀다고 하면 되지. 그렇게 됐어요.
“그럼, 미튜브에서 철수하신다는 건가요?”
-에에, 그렇죠. 저희도 방금 결정했어요.
무슨 회의를 점심식사하면서 했는지, 빠르기도 하다.
“······저, 그럼 콘텐츠 공급중단 기사 내도되겠습니까?”
아무튼 좋다.
나 또한 질질 끌지 않고 바로 기사를 쓸 수 있게 됐으니까.
-그럼요~ 내세요. 고글 쪽이 떼 가는 광고 수수료가 과해서 개선 좀 해보고 싶었는데 안됐다. 의견차이로 공급 중단한다. 이렇게요.
박 대표가 능숙하게 기사 흐름을 설계하고 있었다.
역시 이 사람, 언론에 낯선 게 아니라 지나치게 익숙한 거였다.
‘애초부터 날 가지고 언론 플레이 할 생각이었단 거네.’
그래도 괜찮다.
아니 대 환영이다.
“알겠습니다. 바로 기사 올리죠.”
-예에. 좋아요.
박 대표의 기세에지지 않게 나도 간단히 대답했다.
하지만 기사를 쓰기 전, 마지막 관문이 하나 남아있다.
고글코리아 선주경 부장을 상대하는 거다.
‘자, 이제 철저히 부수는 시간이야.’
난 어제 선 부장으로부터 받은 명함을 지갑서 꺼냈다.
명함에 적힌 선 부장의 전화번호를 휴대전화에 입력한다.
선 부장이 명함을 내게 주며 ‘이메일이 편하다’고 했지만, 지금 내 알 바는 아니다.
“부장님. 디지털투모로우 주진형 기자입니다.”
-아 기자님. 어쩐 일이세요? 갑자기 전활 하시고.
귀찮다는 듯, 말에 가시가 돋아있다.
“메일로 연락하려다가 급한 사안이라 전화 드렸습니다.”
-네 뭔데요?
“어제 KMR 박진종 대표와 만나서 이야길 들었습니다.”
이 말 한 마디에, 수화기 너머가 고요해졌다.
-······
“왜 거짓말 하셨습니까?”
-네? 뭐, 뭘요?
내 추궁을 무시하듯 반문하지만, 선 부장은 명백히 말을 더듬고 있다.
“박 대표님은 선 부장님한테 연락받은 게 없다고 했습니다. 왜 취재문의 연락을 안 하셨습니까? 분명 메시지를 보냈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딱딱하고 감정 없는 말투.
하지만 이건, 그 어느 때 보다 큰 화를 꾹 눌러 담아 참고 있는 거다.
-어······보냈어요. 보냈는데······잠시 만요.
뭘 하려는 건지.
선주경 부장이 휴대전화를 두드리는 소리가 내 귓가에 전해졌다.
20초쯤 흘렀을까, 선 부장이 다시 전화길 들었다.
-아아! 제가 박 대표님께 이메일을 보내드렸는데, 이메일 발송이 실패 돼 있네요.
누가 들어도 연습한 번 안한 어색한 연기 톤이다.
이런 내 마음도 모른 채,
-아이고~ 제가 실수했네요. 잘 확인해봤어야 하는데. 죄송해요, 주 기자님.
선 부장은 심증만 있지 물증은 없지 않느냐는 듯, 당당히 말을 이어나갔다.
“······”
순간적으로 할 말을 잃었다.
정말 듣도 보도 못한 저질 급 대응에 기가 찬 거다.
-그것 때문에 전화주신 건가요?
선주경 부장이 이젠 날 희롱하기 시작한다.
별 것도 아닌 걸로 예민하게 구느냐 이거다.
“······부장님. 이런 식으로 나오실 겁니까?”
-네? 제가 뭘요?
“부장님은 제게 메시지를 보냈다고 했지, 메일을 보냈다고 한 적이 없습니다.”
-저한텐 그게 그 말인데요.
대답을 듣는 순간,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났다.
말장난도 상황과 때를 가려서 해야 하는 거다.
“그럼 지금 박진종 대표님한테 이 얘기 까고 평소에도 고글하고 이메일로 연락했는지 물어볼까요?”
-······
“박 대표님 성격이 화통하시니 금방 대답 해 줄 거라 생각합니다만.”
-죄송합니다.
결국 이 대답이 나왔다.
너무 오래 걸렸고, 못 들을 소릴 너무 많이들은 후다.
“죄송하다구요? 이제 와서? 장난하십니까!”
내 목소리가 회사 사무실에 울렸다.
이윤철 대표가 칸막이 아래서 빠끔히 고갤 들어 내 쪽을 확인했다.
-정말 죄송합니다. 기자님.
“제가 비록 큰 매체 소속 기자는 아니지만, 이런 식의 대접은 정말 처음 받아봅니다.”
-······
“짐작은 가지만 정말 왜 그러셨습니까?”
-저희 쪽에 민감한 부분이라, 되도록 알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너무 예상했던 그대로라 기운이 빠질 지경이다.
“부장님은 그 민감한 부분을 지키기 위해 회사 전체를 위험하게 만드신 겁니다.”
난 이를 악 다물고 말했다.
-기자님, 정말 죄송하지만 제가 사과드리는 것으로 용서해주시면 안될까요?
“그런 건 모르겠구요. 곧 KMR이 미튜브에 콘텐츠 공급 중단을 선언했다는 기사 내보낼 겁니다. 부장님, 미튜브 측 입장은 뭡니까? 답변해주세요.”
-네? 뭐라······진짠가요? 기자님!?
“두 번 말할 시간 없습니다. 간단하게 답해주세요.”
-저는, 저희는, 잠시 만요. 파악할 시간이 필요한데. 제가 잠시 후 다시 연락드리면 안 될까요?
“그 사이 기사는 나갈 겁니다. 지금 답변하는 게 이로울 텐데요.”
-하지만 저희가······ 저, 자세한 내용을 좀 알려주시면 바로 답해드릴게요.
“끊겠습니다.”
뚝.
전화를 끊자마자 주변에 앉아있던 김정효 팀장과 영기가 내 눈치를 살폈다.
내가 이토록 화를 내는 모습을 본 일이 없는 사람들이다.
당연하지, 입사 후 한 번도 이렇게 황당하게 분노할 일은 없었으니까.
“팀장, 지금 바로 기사 작성해 올리겠습니다.”
난 김 팀장에게 말했다.
“어-어, 그래. 알았다.”
내가 기사 작성에 들어가자, 휴대전화가 울기 시작했다.
화면을 보니 선주경 부장이었다.
난 전화기의 전원버튼을 눌러 무음모드로 바꿔버렸다.
그리고 다시 노트북을 두드렸다.
[지상파-고글 결별······악조건 미튜브 탈출한다]
난 어제 미리 준비했던 제목을, 고글 측에 부정적인 어감으로 바꿨다.
특히 KMR 박진종 대표가 언급했던, 고글의 단점들을 기사에 나열했다.
[고글과 KMR은 이전부터 영상 콘텐츠의 광고수수료를 두고 충돌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KMR측은 미튜브의 트루뷰 광고가 지나치게 콘텐츠 생산자에게 불리하다 지적했다.]
[박진종 대표는 미튜브 조회수 자체도 믿을 수 없다 주장했다. 조작이 의심된다는 뜻이다.]
[KMR은 긍정적인 조건으로 메이버 및 내일코코아와 콘텐츠 제공을 협상 중이다.]
그래도 고글 측 의견을 전부 배제할 순 없는 노릇이다.
난 기사 뒷부분에 짤막한 문장을 추가했다.
[고글 관계자는 KMR과의 협상에 대해 파악할 시간이 필요하다며 대답을 피했다.]
마음 같아선 ‘기자의 취재를 고의적으로 방해했다’, 혹은 ‘일부러 연락에 혼선을 줬다’고 적고 싶었다.
그 정도로 개망신을 줘야만 내 분이 풀릴 것 같았다.
하지만 곱씹어보니 너무 감정적이 돼 버린다.
‘······아냐, 기사는 감정전달을 위한 도구가 아니야.’
난 한숨을 내쉬며 머릴 감싸 쥐었다.
이제야 슬슬 내 이성이 돌아오는 모양이다.
‘기사, 개판이겠지. 흥분해서 썼으니.’
다시 훑어 봤지만 다행히 오탈자는 없었다.
문제는 편중된 내용이다.
철저히 KMR측 시선으로 써진 기사.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이미 선주경 부장에게 모두 말해버렸으니, 수정할 시간은 없다.
고글의 언론 플레이가 먼저 터지기 전에, 내가 선수를 쳐야한다.
‘까짓것······기레기 한 번 돼보자.’
난 포기한 심정으로 그냥 온라인 기사작성기에 기사를 등록 했다.
“팀장, 기사 올렸습니다.”
“어어, 확인할게.”
잠시 후, 기사 내용을 확인한 김 팀장이 조심스레 내게 물어왔다.
“진형아, 고글이 너한테 뭐 잘못 한 거 있어?”
통화 모습, 기사의 감정적인 어조까지.
정황만으로 충분히 유추 가능한 일이다.
“네, 어제 제가 KMR측 접촉하려던 걸 방해했습니다. 일부러요.”
“뭐? 진짜냐?”
팀장이 인상을 쓰며 되물었다.
“네. KMR측에 연락해준다더니 거짓말이었고, 추궁하니까 이메일 발송을 실패했다는 말도 안 되는 변명을 했습니다.”
내 말을 듣고 팀장이 눈을 감았다.
아무래도 선 부장의 정신 나간 대처에 팀장 또한 어처구니없는 모양이었다.
“······알았다. 기사 내자.”
잠시 생각하던 김정효 팀장이 입을 열었다.
본래 최대한 중립적으로 기사를 쓰라고 당부하던게 팀장이다.
그럼에도 출고를 허락해줬다는 건, 내 기분을 배려해서겠지.
팀장의 결재에 따라, 내 두 기사는 이윤철 대표 손에 넘어갔다.
“고글이 우리한테 뭐 해 준거 없잖아? 그냥 기사 올려!”
이런 식으로 이 대표의 마지막 승인까지 떨어졌고,
[메이버-내일코코아, 지상파 영상클립 품는다 –주진형 기자, 박영기 기자]
[지상파-고글 결별, 악조건 미튜브 탈출한다 –주진형 기자, 박영기 기자]
곧 두 기사가 포털을 강타했다.
하지만 이건, 희대의 난타전을 여는 팡파르일 뿐이었다.
곧 고글과 KMR의 완전한 이별을 향한 티키타카가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