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가만히 서서 고래 고기 먹는 새우
“선배······저, 전화 바꿔달라는 데······”
사무실, 자기 책상자리에 앉아있던 영기가 내게 다가왔다.
녀석은 자신의 휴대전화를 내게 건넸다.
휴대전화 화면엔 ‘고글 선주경 부장’과 통화중 표시가 떠있었다.
‘내가 전활 안 받으니까 영기한테 했나보군.’
급하긴 했던 모양이다.
신입인 걸 빤히 아는 영기에게 까지 전활 하다니.
충분히 이해는 간다.
내가 쓴 기사의 조회수가 이미 1만을 넘겼으니까.
기사가 출고 된지 아직 15분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말이다.
대기업 고글과 지상파 방송사(KMR)의 다툼.
그건 미튜브 이용자들만의 관심사가 아니다.
영상 스트리밍 플랫폼들과 관련 IT업계 인원들, 방송업계까지.
이 사건이 가져올 생태계 변화에 민감한 모든 사람들이 내 기사를 읽는다.
‘물론 기자들도 마찬가지지.’
내 단독 기사의 우라까이는 출고 10분 정도부터 등장하기 시작했다.
선주경 부장에게 수많은 기자들의 전화가 빗발쳤을 테지.
“네, 선 부장님.”
-기, 기자님. 주 기자님. 정말 죄송해요. 제가 꼭 뵙고 사죄드릴게요.
“괜찮습니다. 그럴 수도 있는 거죠.”
난 더 이상 이 여자와 엮일 생각이 없다.
필요한 정보가 있으면 차라리 정이영숙 상무에게 컨택하고 말리라.
-아, 아니에요. 기자님, 제가 기자님 편한 때에 꼭 식사 대접해드리고 싶어요.
“그럼, 편한 날 있으면 연락드리죠.”
-자, 잠시 만요!
내가 통화를 끊으려 하자, 선 부장의 급한 목소리가 크게 울렸다.
“왜요.”
-기자님, 기사 잘 읽어봤는데, 저희 입장이 너무 없어서······그리고 틀린 내용도 있구요. 그 부분만 좀 말씀드리면 안 될까요?
틀린 부분이라-.
기사에 실수나 잘못된 정보가 있다면 고쳐야 한다.
하지만 박진종 대표가 거짓말을 하지 않은 이상, 기사가 틀렸을 린 없다.
‘또 시답잖은 장난질을 하려는 건가.’
내가 말을 하지 않고 있자, 선 부장이 다시 말을 이었다.
-저, 그게 기사에 미튜브 광고수수료 지나치게 높다고 쓰셨던데······
“박진종 대표의 의견이죠. 문제 있습니까?”
-아, 저희 광고수수료는 모든 고객 분들에게 동일하게 적용하고 있어요. 그리고 수치를 정확하게 말씀드릴 순 없지만, 지나치게 높다고 표현할만한 정도가 아니구요. 미튜브 조회수 시스템도 본사서 공정하게 운영 중······
선주경 부장의 해명이 길게 이어졌다.
뻔뻔하게 이제와 홍보 일을 제대로 해보겠다는 거군.
다만 상대할 가치가 별로 없다.
“그래서요?”
-네?
“어쩌라는 겁니까?”
-······아, 저······ 기사를 좀 수정해주시거나 제 멘트를 넣어주셨으면······
“정확한 수치를 밝힐 수도 없다면서요. 조회수 시스템도 공개 못하고.”
물론 본래라면 수치가 없더라도 인용구로 추가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지금 내가 그런 호의를 선 부장에게 베풀어야 할 이유가 없다.
-네, 네. 둘 다 대외비 사항이고 조회수 체계를 공개하면 악용될 우려가······
“제 알 바 아닙니다. 제가 그런 내용을 추가한들, 저 기사가 달라집니까?”
기사의 논조라는 건, 그리고 관통하는 핵심은 몇 마디 추가한다고 달라지지 않는다.
-기, 기자님! 제발 부탁드려요! 기자님 기사가 너무 많이 재생산되고 있어요.
내가 고갤 들어 김정효 팀장의 자리로 시선을 옮겼다.
김 팀장은 내 기사를 적나라하게 베낀 매체에 전활 걸어 항의 중이었다.
“안 그래도 우라까이하는 매체들 다 잡고 있습니다. 걱정 마세요. 그건 저희가 알아서 할 테니까.”
-주 기자님!
선주경 부장이 절규하듯 날 불렀다.
“할 말 더 없으시면 그만 전화 끊으시죠. 부장님하고 통화하고픈 기자들도 많을 텐데.”
-······알겠습니다.
포기한 건지, 낮은 목소리로 선 부장이 말했다.
“그럼.”
통화를 종료하려던 순간,
-광고수수료 비율, 말씀드리겠습니다.
“······네?”
예기치 않은 대답이었다.
-이건 정말 KMR측과 신의를 생각해 말 안하려 했는데. 말씀드릴게요.
난 자리에 앉았다.
고갤 기울여 휴대전화를 어깨에 얹고, 자유로워진 양손을 노트북 자판위에 얹었다.
자존심을 세울 때는 세우더라도, 정말 중요한 걸 놓치면 안된다.
바로 이런 고급정보 말이다.
“말씀해보세요.”
-네. 저희는 광고수익을 5.5:4.5로 나누고 있어요. 여기서 5.5가 KMR입니다.
“미튜브가 아니고요?”
-네. 수수료로 45%를 저희가 받아가지만, 거기엔 서버비용과 광고수주비용, 콘텐츠 필터링 관리 등 다양한 관리비가 포함돼 있는 거예요. 게다가 제가 듣기론 KMR이 메이버와 내일에 제시한 수수료 비율은 5:5로 알고 있어요. 사실상 지금보다 방송사가 받는 비율이 5%p 줄어드는 거예요.
난 선주경 부장의 말들을 재빠르게 받아 적었다.
KMR 박진종 대표한테서도 듣지 못한 얘기가 쏟아지고 있었다.
-그리고 조회수 시스템에서 말인데, 그건 저도 모르는 부분이에요. 본사에서 관리하기 때문에 고글코리아 내에선 관여하는 부분도 아니구요. 하지만 저흰 최대한 공정한 조회수 체계를 지향하고. 광고수익을 목적으로 한 비정상적 접근만 막을 뿐, 조회 수를 조작하는 일은 없습니다. 저희도 카운트 된 숫자로 광고주에게 수익을 받는 건데, 그걸로 장난칠 리가 없죠.
오케이, 대충 이해했다.
“좋아요. 선 부장님. 하지만 이미 나간 기사를 고칠 순 없습니다.”
-네!? 주 기자님!
당황한 듯 선 부장이 소리쳤다.
“대신, 새로 기사를 낼게요.”
-아, 아! 알겠습니다. 주 기자님. 부탁드릴게요.
기사를 쓰기로 결심한 건, 선주경 부장이 극히 낮은 자세로 굴기 때문이 아니다.
그가 말한 내용이 이제껏 누구도 다루지 않았던 특종이었던 까닭이다.
‘다시 통화해야겠다. 박진종 대표와.’
난 급히 박 대표에게 전화했다.
기자들이 KMR도 들쑤시고 있는지, 통화중이라는 안내만 들려왔다.
[대표님 디지털투모로우 주진형 기자입니다. 미튜브 측에서 광고수수료 비율 공개했습니다. 통화 가능하실 때 연락주세요.]
난 박진종 대표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내놓고, 새 기사를 작성했다.
1분도 지나지 않아 박 대표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에에 주 기자님.
“네 대표님, 보내드린 내용 그대롭니다. 고글 측이 광고수익 비율은 5.5:4.5로 KMR이 더 많이 가져간다고 하더군요.”
-예에. 뭐 맞아요.
순순히 인정한다.
‘이 놈도 날 갖고 놀았구만.’
자신들의 수수료 비율이 더 크다는 걸 내게 숨긴 채, 유리하게 거짓을 꾸며낸 거다.
“그렇게 간단히 말씀하시면 안되죠. 기사는 이미 미튜브 측이 과하게 많이 가져간다는 식으로 돼있는데요.”
-에에이. 과하게 많이 가져가는 거죠. 45%면.
‘독종일세.’
막상 공략하려니 역시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어쨌든 전 고글 측 의견도 반영해야 돼서. 새로 기사 쓸 겁니다. 참, 조회수 문제도 광고주에게 보여주는 거라 조작할 리 없다고 하더라구요.”
-당연히 그렇게 얘기하겠죠. 그렇지만 우리가 직접 확인할 수가 없으니 진실을 알겠습니까? 그런데 수수료 공개는 영업비밀인데, 누가 말한 거예요? 선주경 부장?
“네. 선 부장이 말해줬습니다.”
-허. 알겠어요. 알겠어.
“그리고, 포털 쪽하고 5:5 비율로 수수료 정한 건 사실입니까?”
-······그것까지 말했어요?
맞는 모양이다.
늘 칼같이 대답하던 박 대표가 처음으로 뜸을 들였다.
-하, 이거 곤란하네. 솔직히 밝히기도 어렵고. 그래도 주 기자님이니까 말해 줄게요. 5:5 아니고 1:4:5에요.
“예? 1:4:5요?”
뭐냐 이 해괴한 비율은.
-에에. 그거 포털이 1이고 KMR이 4. 방송사가 5에요. 아주 합리적이지.
그러니까 정확히 방송사가 9할을 가져간다는 소리나 다름없다.
“뭐 합리적 인진 모르겠고, 훨씬 높긴 하군요. 근데 KMR이 4할 가져가는 건 왜?”
-플랫폼 개발보수, 서버유지비 등등이에요. 광고도 저희가 직접 따니까 그것도 포함.
“그러니까 미튜브를 떠나도, 아무 문제없다. 아니 더 낫다는 말씀이죠?”
-예에. 그 말입니다.
여기까지.
난 알겠다고 말한 후 통화를 끝냈다.
이 정도만 해도 충분히 새로운 기사를 쓸 수 있다.
[KMR은 고글 미튜브가 과도한 수수료를 가져간다고 주장했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난 머리에 떠오르는 대로 야마(발문)를 잡았다.
그 뒤로 선주경 부장과 박진종 대표의 주장을 순차적으로 배치했다.
제목은 [KMR-미튜브 수수료 공방...진실은 45%].
“팀장, 후속 기사 올렸습니다.”
“어어? 뭐?”
두 개의 기사를 올린 지 반나절도 안됐는데 벌써 후속이다.
팀장이 황당해할만 하다.
“기사작성기에 송고해놨습니다. KMR과 미튜브 관련입니다.”
“어 알았다. 확인할게.”
정신없이 포털 뉴스를 모니터링 하던 김정효 팀장은, 뒤늦게 내 말에 끄덕였다.
김 팀장이 세 번째 기사를 확인하는 사이.
난 웹브라우저를 이용해 메이버 사이트에 접속했다.
메이버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미튜브와 지상파가 나란히 1, 2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여파가 크네.’
잠시 독자들의 반응을 살피고 있자, 세 번째 기사도 곧 포털검색에 등록됐다.
‘이정도 했으면 충분하다.’
대부분의 기자들에게 하루에 세 개의 단독기사를 쓴다는 건, 정말 흔치않은 일이다.
비록 동일 대상을 취재한 기사일지라도, 그간 누구도 하지 못한 성과를 내가 해 낸 거다.
‘고생했다 주진형. 이제 좀 쉬자.’
난 잠시 스스로에게 휴식을 주기 위해 자리서 일어났다.
밖에 나가 바람이나 쐴 요량이었다.
[구글 선주경 부장]
그 때 내 휴대전화가 울렸다.
잠시 고민하던 난, 통화 버튼을 눌렀다.
-기자님! 기사 확인했어요. 감사합니다. 근데 KMR측이 수수료비율이 1:4:5라 했나요?
“네 보신대로요. 미튜브 측에서 굳이 KMR 서버 걱정은 안 해도 되겠더군요.”
내가 비꼬듯 말했지만, 선주경 부장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아니죠, 기자님. 비율이 전부가 아니잖아요. 저희는 전 세계 이용자들이 볼 수 있는 플랫폼이에요. 국내 포털하고는 조회 수에서 엄청 큰 차이가 있을 거고. 그게 곧 광고수익으로 이어져요. KMR이 비율을 개선한다고 무조건 긍정적일 순 없다고 봐요.
“그래서요?”
또 어쩌라는 거냐고 대꾸하고 싶은 심정이다.
-지금까지 지상파가 한류콘텐츠를 탄생시킬 수 있었던 데에는 저희 미튜브의 영향력도 무시할 수 없다 이거죠. 특히나 국내 이용자 분들도 미튜브 안에서 편하게 모든 영상을 보기 원하지, 귀찮게 포털을 오가는 건 불편하거든요. 분명 유효한 시청자 수를 확보하기 어려울 거예요.
‘이건 분석을 하는 거야, 아니면 악담을 퍼붓는 거야.’
난 고갤 절레절레 흔들었다.
“왜 이런 말씀 하시는 겁니까. KMR이 미튜브 나가서 더 잘된단 소리에 화가 나서?”
-아뇨. 현실적으로 말씀드리는 거예요. 미튜브는 한류 콘텐츠의 글로벌 진출 기반이니까.
“뭐든 알았어요.”
-이 내용 기사 쓰실 건가요?
“······고려해보겠습니다.”
뚝-.
난 바로 전활 끊었다.
이건 기사를 또 쓸 만큼 중요한 내용은 아니다.
그냥 선주경 부장의 하소연에 가까웠으니까.
‘하아-. 그래도 마지막으로 물어보자.’
나도 명색이 기자란 걸까, 호사가 기질이 귀찮음을 이겼다.
결국 난 박진종 대표에게 전화해 선 부장의 말을 전했다.
-에에, 기자님. 그건 고글 쪽이 모르는 소리 한거고. 우리가 미튜브서 1년간 번 수익이 20억이에요. 메이버는 연 최소 30억 수익을 보장했어요. 광고 단가 상승시키고 15초 광고 넣어서 수익성 오히려 개선한 거예요. 거기다가 내일까지 넣어 봐요. 두 배 되는 거지. 그리고 지금까지 미튜브에 계약하고 콘텐츠 공급한 거, 사실상 미튜브가 저작권 무시하고 불법 콘텐츠를 방치해서 울며 겨자 먹기로 한 거예요.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그대로 이어서 선주경 부장과 통화.
-저희 트루뷰 광고만 있는 거 아니에요. 15초 광고 저희도 하고 있는데 무슨 말 하시는 건지 모르겠네요! 그리고 미튜브가 불법저작권 영상으로 성장했다는 것도 말도 안 되는 소리죠. 요청만하면 필터링으로 다 걸러낼 수 있는 일이었는데요.
다시 박진종 대표.
-에? 메이버하고 내일이 2006년 저작권 이슈 터졌을 때 저작권 걸린 영상은 물론 UCC까지 다 내렸어요. 미튜브는 어땠냐고 그때, 어? 이제와 필터링 얘기를 하고 있네.
마치 호각의 탁구 선수 둘이 핑-퐁, 공을 주고받는 걸 보는 기분이다.
이쯤하면 그냥 두 사람이 직접 통화하도록 하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이 진흙탕 싸움, 최후의 승자는 나다.’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진다고 하지.
난 가만히 서서 고래 고기 먹는 새우가 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