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큰돈을 벌어야 한단 목표가 생겼으니까
우리 집은 넉넉한 형편이 아니었다.
변명 같지만, 내가 인서울 대학을 포기하고 지방 국립대로 들어간 것도 돈 때문이었다.
그래도 돈이 내 삶의 목표가 된 적은 없었다.
언제나 내 꿈은 유명한 기자였다.
IT업계서 알아주는, 영향력 있는 기자.
그게 이뤄만 진다면, 내 몸 하나 건사 하는데 큰 문제없을 거라 생각한 거다.
하지만.
한 통의 전화를 받고나서, 난 자신이 너무 이기적이었다는 걸 알았다.
SBT 스터디 후, 집으로 돌아가던 지하철 안.
[엄마 010-27XX-59XX]
빈 좌석에 앉아있던 내게, 어머니의 전화가 걸려왔다.
“어. 엄마. 어쩐 일이에요?”
-응······ 진형아, 잘 지내고 있니.
오래간만에 어머니의 음성이 귓가에 들려왔다.
디지털투모로우에 취직된 때, 그러니까 약 8개월 전.
축하할 겸 내려간 고향에서 뵌 이후 처음이다.
“저야 잘 지내고 있죠. 일도 잘하고 있고. 아버진 어때요? 가게 일 괜찮으시데?
내 부모님은 고향의 시장에서 작은 청과물 가게를 하고 있다.
아버지는 과일상자를 들고 옮기다가 시장을 오가던 오토바이에 다리를 치인 적이 있다.
그 뒤로 오른쪽 다리가 약간 불편해지셨다.
-응······ 그것 때문에 말인데. 진형아 미안한데 돈 좀 보내줄 수 있니?
‘갑자기, 무슨 일이지?’
한 번도 내게 작은 부탁 않던 부모님이다.
그런 분들이 별 일없이 돈을 보내 달라 할 리가 없다.
난 불안한 기분이 들었지만, 최대한 침착하게 상황을 묻기로 했다.
“무슨 일인데요?”
-아버지 몸이 많이 안 좋아지셨어. 병원에 갔더니 입원하고 정밀검사를 받아봐야 한다더라.
“아······진작 말씀하시지. 많이 안 좋으세요?”
-응. 그래서 요즘 가게도 못 열고 있어.
“걱정 마세요. 돈 바로 보내드릴게요. 필요한 금액만 문자로 보내주세요.”
-고맙다. 진형아. 너도 힘들 텐데 서울서.
“아뇨······”
전화를 끊고, 흔들리는 전동차 안에서 난 계속 생각했다.
잊고 있었지만 부모님도 내년이면 환갑이었다.
뒤늦게 취직해 제대로 된 보답도 못했는데, 부모님은 어느새 저만치 늙어버리신 거다.
‘가능하다면, 더 이상 일하지 말고 쉬라고 하고 싶지만······’
현실적으로는 힘든 일이다.
‘전세는커녕 월세조차 힘들어 2평 남짓한 고시텔에 사는 주제에, 무슨.’
혼자 사는 데에는 문제는 없지만, 아직 두 분의 노후를 책임질 여력은 없다.
앞으로도 두 분이 계속 청과물 일을 해야만, 먹고 살 수 있다는 거다.
‘내가 돈을 좀 더 잘 벌었다면······’
그렇게 자괴감에 빠졌 때.
문득 며칠전 만났던 장도현 과장의 제안이 떠올랐다.
-정보를 공급받고 싶습니다. 사례는 확실하게 해드리겠습니다.
-정보로 얻은 인센티브의 반을 드리죠. 참고로 작년 제 총 인센은 4억 이었습니다.
도현이 받는 억 단위의 인센티브, 아니 그 절반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괜찮다.
빠른 시일 내, 부모님이 편안히 노후를 보낼 여건만 만들 수 있다면.
그렇게 난 새로운 목표를 세웠다.
며칠 뒤 정오.
난 장도현과 처음 만났던 카페서 재회했다.
도현은 유리잔에 담긴 커피를 마시곤 내게 말했다.
“제 예상보다 빠르게 답을 주셨군요.”
얼마나 더 기다려줄 수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리 빠르다고 보진 않는다.
도현과 처음 연락해 만났던 날로부터 약 일주일이 흘렀으니까.
“뭐, 좀 더 빠르게 결정할 수도 있었는데. 일이 좀 바빴습니다.”
괜한 허세라기보다도, 난 정말 바쁜 하루하루를 보냈다.
고글-KMR 기사 때는 물론, 그 이후로도 행사가 겹치면서 일이 늘어난 탓이다.
“이해합니다. 기자님 최근 보도도 모두 챙겨봤습니다. 고글, KMR을 가장 먼저 단독보도 하셨더군요.”
“예. 좀 고생하긴 했지만요.”
난 장황한 말을 늘어놓는 대신, 어깨를 으쓱하며 담담한 체 했다.
이 사람은 금융권 종사자 일 뿐.
취재를 하거나 탐문하는 사람이 아니다.
내가 취재한 과정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할 필욘 없겠지.
“하하. 기자님 별명이 새로 생기셨던데, 미친 탈곡기라고. 들어보셨나요?”
저게 어떻게 이 사람 귀까지 흘러들어간 건지 미스터리다.
“······처음 듣습니다.”
난 아닌 척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어쨌든 기자님께서 제공하기로 마음먹으셨으니, 자세한 조건에 대해 다시 상의해볼까요.”
도현은 서류가방서 서류철을 하나 꺼냈다.
서류철을 펼치자, 계약서라고 적힌 용지가 바로 보였다.
“읽어보시죠.”
난 도현이 내민 서류를 받아 읽어나갔다.
[계약서. 갑은 정보제공자로써 을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이를 통해 을이 얻는 수익의 50%를 나눠 받는다. 을은 갑의 정보제공 사실을 누설하지 않고······]
지난 번 들었던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내게 문제될 만한 부분들도 세심하게 신경 쓴 티가 났다.
하지만, 그럼에도 수정을 요청하기로 했다.
“몇 가지 사항을 수정하고 싶습니다.”
“네, 말씀하시죠.”
도현은 커피 잔을 들고 여유롭게 대답했다.
“우선, 수익 배분 퍼센티지를 60%로 올려주세요.”
“-알겠습니다.”
예상범위 내였던 건가.
도현은 잠시 침묵하더니 이내 고갤 끄덕였다.
“그리고 제가 드리는 정보에 대해서, 정보수수료를 별도로 주셨으면 합니다. 수익창출과는 상관없이.”
난 얼굴에 철판을 깔고 당당하게 요구했다.
돈독이 한껏 오른 기자 소릴 들어도 상관없다.
지금 내겐 큰돈을 벌어야 한단 목표가 생겼으니까.
“얼마 정도, 원하십니까?”
늘 돈 얘기를 하는 직업이란 걸까, 거부감 없는 얼굴로 도현이 물었다.
“건당 50만. 대신 유한회사나 비상장 기업정보의 경우 그 반인 25만으로 하겠습니다.”
“음······ 알겠습니다. 저도 그럼 조건을 하나 추가하고 싶습니다.”
“네.”
갑자기 저쪽에서도 조건을 추가한다고 하니, 긴장감이 들었다.
“우선 주 기자님이 정보를 제공하실 기업목록을 미리 확인하고, 원하지 않는 항목은 뺄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러니까 내가 쓸데없는 기업 정보를 보내는 건, 원천 차단하겠다는 얘기다.
단순히 수익금을 배분하는 거면, 쓸 데 없는 정보라도 상관없다.
일단 수익이 나야 배분을 하는 거니까.
하지만 정보 수수료를 매기게 되면, 도현 쪽에서도 부담이란 거다.
그러니 안전장치가 필요하단 거겠지.
“네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하나 더. 저도 명확하게 도현씨의 수익과 제 수수료를 확인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제 정보로 도현씨가 어느 정도의 수익을 냈는지, 제가 모르면 소용없으니까요.”
“아, 그 부분은 염두에 둔 바가 있습니다. 제 사내계정을 공유 해드리겠습니다.”
직접 명세서를 확인하란 얘긴가.
그렇다면 내가 거부할 이유가 없다.
난 수긍했다.
“좋아요. 그렇게 하도록 하죠.”
“네, 그럼 이 내용으로 계약서를 수정하겠습니다. 계약서를 다시 작성해서 뵙도록 하죠.”
우린 웃으며 악수한 뒤 자리서 일어났다.
근시일 내에 다시 만나기로 기약하고 자리를 파했다.
그리고 이틀 뒤.
나와 도현의 계약은 성립됐다.
“이건 제가 처음으로 드리는 정보입니다.”
여의도 증권가에 위치한 한식당 집.
계약 겸 도현과 점심식사를 함께하던 도중.
난 그에게 한 장의 서류를 건넸다.
오늘 아침 회사 사무실서 출력한 그 용지엔, 국내외 기업의 명단이 적혀있었다.
“빠르시군요. 여기서 한 번 봐도 되겠습니까?”
“네, 괜찮아요.”
도현이 받은 기업명단은, 모두 ‘일주일 후의 보도자료’가 온 곳들이다.
최대한 주식거래에 도움이 될 만한 정보로 간추려 그에게 전달한 거다.
“······좋습니다.”
훑어본 도현이 서류를 내려놓고 내게 말했다.
“여기 있는 이 7개 목록, 모두 보내주십시오. 수수료는 바로 이체하겠습니다.”
실로 화끈한 대답이다.
도현은 바로 휴대전화를 조작했다.
곧 내 휴대전화에 은행 입금을 알리는 문자 메시지가 도착했다.
[함께은행 장*현 님이 주*형 님 계좌로 3,500,000 원 이체]
메시지를 읽은 후, 난 가방에서 종이 한 장을 더 꺼냈다.
“잘됐네요. 재 출력하지 않아도 돼서.”
이게 진짜, 내가 준비한 기업정보다.
손을 뻗어 도현에게 넘겼다.
“감사합니다.”
도현은 받자마자, 진지한 표정이 돼 내용을 읽어나갔다.
수 분 뒤.
조용히 밥을 먹고 있던 내게 도현이 나지막이 물었다.
“기자님, 이 정보들은 대체 어떻게 입수하신 겁니까?”
“그걸 답변해드리면 전 뭐먹고 삽니까.”
“하하. 그러네요. 아무튼 귀중한 정보 잘 받았습니다. 근데 역시 주 기자님이십니다. 사성전자 일사분기 실적에 대한 것까지 파악하고 계시다니.”
사성전자, 국내 최대의 재벌그룹 사성의 간판 계열사다.
모바일 시대 이후, 사성전자의 스마트폰이 대성공하며 실적은 크게 오르고 있었다.
참고로 도현이 언급은 안했지만, 내 자료엔 LC전자 실적도 함께 명시돼있다.
사성전자와 LC전자가 하루 이틀 간격을 두고 실적발표를 하는 덕분이다.
뭐, LC전자 실적은 애널리스트들도 예상하고 있다시피 그리 좋지 못했다.
“이것도 기사로 쓰실 겁니까?”
도현이 내게 물었다.
실적과 관련해서는 주로 애널리스트들의 분석, 전망을 기반으로 한 예상 기사가 대다수다.
헌데 내가 적은 상세한 수치를 보니, 그 수준을 한참 뛰어넘는다는 걸 그도 아는 거다.
“아니요. 실적기사를 내봐야 큰 임팩트는 없습니다.”
이 말도 거짓은 아니다.
하지만 본심은 취재족적을 만들기 어렵기 때문이다.
기업의 실적 정보를 알고 있는 건, 역시 기업 내 재무회계 부서와 고위임원들.
그리고 사성전자와 계약한 회계 법인이다.
셋 다 지금의 내 수준으로는 접근할 수 없다.
단순히 일정을 잡고 미팅을 할 수 있는 상대들도 아니거니와, 업무상 비밀유지의무로 인해 입을 열지 않을 확률이 크다.
‘그러니까 이 사람과 정보거래 하게 된 건, 여러모로 내게 잘된 일이지’
내가 당장 기사로 쓸 수 없는 정보들을 도현에게 팔 수 있게 됐으니까.
“정보제공과 관련해서 비밀유지는 꼭 지켜주셔야 합니다.”
난 도현에게 한 번 더 계약조항을 상기시켰다.
이런 정보,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많은 이들의 의심을 산다.
“당연합니다. 저도 주 기자님 같은 정보원을 잃을 생각 없습니다.”
남은 시간동안 우리의 식사는 훈훈하게 이어졌다.
“그럼 또, 정보가 있으실 때 연락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식사를 마친 뒤, 우린 식당 앞에서 인사하고 헤어졌다.
난 여의도역을 향해 걸어가며 전활 걸었다.
[엄마 010-27XX-59XX]
-응 진형아.
“네 엄마. 돈 보냈어요.”
폰뱅킹으로 어머니 계좌에 이체 한 상태였다.
-고마워. 은행가서 확인할게.
“네. 병원비 아끼지 말고 쓰세요. 시간 나실 때 엄마도 정밀검사 받으시구요.”
-응. 그럴게. 진형아 너도 몸조심해.
어머니와 통화를 끝내고, 난 여의도역사에서 영기를 기다렸다.
기다린 지 10분이되기 전, 영기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역사로 내려왔다.
“선배 식사하셨어요?”
인사 겸 영기가 물었다.
“당연하지. 넌 대표랑 먹느라 고역 이었겠다?”
“아뇨 괜찮았는데요. 대표님 저한테 별로 신경 안 써요.”
그것 참······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되는 건지.
영기도 나름 성과를 내고 있는 기자 중 한명인데, 대표가 큰 관심을 두지 않는 것 같다.
“어쨌든 이동해 볼까.”
“오늘은 삼성역이죠?”
“응. 소셜커머스 한 바퀴 돌자. 너도 인터넷 담당인데 얼굴 한 번 봐야지.”
소셜커머스, 소셜(사회)와 커머스(상거래)의 합성어다.
한 때 ‘온라인 공동구매’ 붐이 불면서 이 이름을 단 상거래 사이트가 우후죽순 생겼었다.
하지만 현재 그 인기가 많이 식었고, 점차 수는 줄어들었다.
결국 살아남은 곳은 대표적으로 세곳.
유메프, 쿠퐁, 티마.
이 세 업체 모두 삼성역 근처에 터를 잡고 있다.
“영기씨 잠깐만.”
같이 개찰구를 넘어가려던 순간.
내 바지주머니에 넣어진 휴대전화가 울렸다.
[내일코코아 정열성 매니저]
정열성 매니저로부터 전화였다.
‘이 시간에 웬일이지. 코코아 관련해 쓴 기사도 없는데.’
난 우선 통화를 받기로 했다.
“네, 딜라스. 어쩐 일이세요?”
-아 기자님, 잘 지내셨어요? 기사 잘 보고 있습니다. 요즘 미친 탈곡기로 불리신다고 하던데요. 대단하십니다.
또 저 소린가.
난 어색하게 웃었다.
“하 하 하- 그런가요. 듣도 보도 못한 얘기네요.”
-모르시는구나. 참, 이렇게 연락드린 건 다름 아니라 저녁식사 때문입니다.
“저녁식사요? 저희 일정 잡은 거 없는 걸로 아는데.”
-후후, 저희 대표님과 식사 한 번 하기로 하셨잖아요? 더 일찍 말씀 못 드려서 죄송하지만 오늘 저녁 괜찮으신가요?
난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진짜 식사를 하자고 나올 줄은 예상치 못했던 거다.
“이거, 일정이 있어도 괜찮다고 해야죠. 이적우 대표님과의 식사인데.”
-하하하, 꼭 그러실 필욘 없는데. 아무튼 알겠습니다. 참 아마 이디넷 김예인 기자도 동석할 겁니다.
“에? 그 여잔 왜요?”
갑자기 튀어나온 이름에, 난 순간적으로 언성을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