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래에서 온 특종-36화 (36/107)

36. 요즘 너무 못왔잖아요. 삼성역에

-하하하, 주 기자님 김 기자님하고 많이 친하신가 보네요.

정열성 매니저의 말에 내가 실소했다.

친하긴 개뿔.

난 그저 이적우 대표와의 단란한 저녁식사에, 뜬금없이 왜 예인이 껴드는지 진심으로 의아했을 뿐이다.

솔직히 약간의 거북함도 있긴 하다.

그 여자와 엮여서 뭔가 즐거웠던 기억이 없으니.

“아뇨. 그보다 저와 식사하기로 했는데 왜 김 기자는?”

내가 묻자, 정 매니저가 솔직한 듯 아닌 듯 뭔가 털어놓는다.

-아아, 김 기자님 요청이었어요. 사실 지금 저희 저당 잡힌 일이 있거든요.

저당이라니, 뭔가 코코아에 일이 있긴 한 모양이다.

“무슨 일 인진 모르겠지만, 제가 도매 급으로 엮여 들어가야만 할 일이란 거죠?”

-에이, 기자님도. 도매 급이라뇨. 김예인 기자님도 주 기자님이 좋으니까 같이 보자고 말씀하신 거겠죠.

‘아니야, 그 여자가 그럴 리가 없지.’

나는 불안함으로 두근거리는 심장박동을 느꼈다.

이미 학습된 내 심장이 다가올 위협을 아는 것 같았다.

“아무튼 알겠습니다. 근데 장소는 어딘가요? 아직 안정해 졌나요?”

-장소는 강남입니다. 자세한 건 제가 잠시 후에 코톡으로 안내 드리겠습니다.

“네. 수고하세요, 딜라스.”

전화를 끊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정열성 매니저의 코코아톡 메시지가 도착했다.

[주 기자님! 7시까지 서울특별시 강남구 청담동 1-2 원층빌딩 3층 스시노아지로 오시면 됩니다]

난 해당 장소를 지도 앱에서 찾아낸 뒤, 즐겨찾기에 저장해 뒀다.

그리곤 다시 지하철을 타기 위해 움직였다.

“가자 영기씨.”

“네.”

여의도역에서 삼성역을 가려면 환승을 두 번해야 한다.

난 늘 그게 귀찮아 9호선을 쭉 타고 봉은사역에서 하차하곤 했다.

그러면 6-7분 정도 걸어서 삼성역에 도착할 수 있다.

“여기가 유메프 건물이야.”

삼성역 7번 출구 바로 앞에 세워진 큰 빌딩.

“우와 엄청 크네요.”

영기가 건물을 보곤 놀란다.

하긴 지리조건에, 건물 규모까지.

유메프가 이정도 규모 일 줄은 몰랐던 듯 했다.

“유메프 창업자가 던전앤파이트 개발사 창업주거든. 돈을 아주 긁어모았지.”

유메프 창업자 ‘허진’은 네오펄이란 게임 개발사로 먼저 성공했다.

허진은 네오펄과 던전앤파이트를 국내 대형게임사 렉슨에 매각한 뒤, 자본력을 앞세워 유메프를 만든 거다.

“진짜요? 그거 저도 예전에 했었는데.”

“지금은 그쪽 매각하고 유메프 주주로만 활동해. 야구단 구단주도 하고 있긴 한데 별로 중요한 얘기는 아니고. 자, 들어가자.”

유메프 빌딩 1층엔 유메프 카페가 입점해 있다.

대부분 유메프 MD(상품기획자)들이 판매자들과 미팅하는 공간이며, 유메프 사내외 활동이나 이벤트 등도 이 공간을 이용해 이뤄진다.

우린 1층 안쪽에 마련 돼 있는 룸에 들어갔다.

그리곤 유메프 홍보팀에게 전활 걸었다.

“대리님. 저 지금 도착했어요. 1층 가운데 룸에 있습니다.”

-어머, 주 기자님, 오셨어요? 바로 내려갈게요! 음료는 아메리카노죠?

“네. 좋아요.”

2분 뒤.

방문이 열리며 30대 초반의 여성과, 역시 30대 초반의 남성이 룸에 들어왔다.

“주 기자님 정말 오랜만이에요! 잘 지내셨어요?”

인사해오는 여성은 김봄 대리.

적어도 내 기준에선, 나와 매우 가까운, 친근한 사이다.

그도 그럴게, 내가 처음으로 홀로 취재를 시작할 때부터 만난 사이니까.

“봄 대리님 머리 자르셨네요. 잘 어울려요.”

“어머, 진짜요? 감사해요~. 기자님 받으세요. 아메리카노에요.”

봄 대리가 음료 두 잔을 내게 건넨다.

유메프 카페서 만든 거다.

“기자님, 저도 있어요! 헤헤 잘 지내셨슴까?”

30대 초반의 수더분한 남성, 김유동 대리가 기세 좋게 끼어들었다.

유동 대리 또한 나와 꽤 친하게 지내는 홍보인 중 한 사람이었다.

술을 특히 좋아해 김정효 팀장과 함께 술자리도 여러 번 가졌다.

“잘 지내고 있죠. 대리님. 요즘 어떠세요. 따님이 아빠, 아빠 부를 때가 된 것 같은데.”

“아 그것참, 엄마는 하는데 아빠를 안 해요. 안 그래도 자주 못 보는데 서럽슴다.”

“하하, 대리님이 너무 바빠서 그런가 보다. 참, 이쪽은 박영기 기자라고 제 2진 맡고 있어요.”

“아 박 기자님~ 안녕하세요. 처음 뵙네요.”

영기와 유메프 홍보팀의 인사가 가볍게 이뤄졌다.

유메프는 그 규모에 비해 홍보인원이 많지 않다.

이렇게 두 사람이 실무진이고, 그 위로 바로 홍보실장이 자리한다.

“오늘 그냥 근황토크 좀 하려고 들렸어요. 박 기자도 소개하고. 제가 요즘 너무 못 왔잖아요. 삼성역에.”

말 그대로 내가 통신 분야까지 담당하게 된 이후, 소셜커머스를 챙길 시간이 없었다.

한 때는 일주일에 한 두번은 꼭 볼만큼 자주 미팅을 했지만, 거의 최근 두 달 간은 전화통화 조차 하질 못했다.

뭐, 그만큼 소셜커머스나 오픈마켓, 전자상거래 쪽이 사건 없이 잠잠 했다는 거기도 하다.

“기자님 요즘 잘 나가시던데요. 고글하고 지상파 기사 진짜 깜짝 놀랐어요. 기자님 이름이 적혀있어서.”

“저도 놀랐슴다. 우와 주 기자님이 이 기사를? 연락드리려고 했는데, 너무 바쁘실까봐 헤헤.”

나로썬 머쓱한 칭찬이다.

이럴 땐 영기를 팔면 된다.

“여기 박 기자랑 같이 취재했거든요. 도움이 많이 됐어요. 이 친구가.”

“와 그렇구나. 대단해요.”

한동안 내 단독기사를 칭찬하던 봄 대리가 다른 얘길 꺼냈다.

“아 참, 기자님 말씀 드리려고 했는데, 이번에 저희 홍보팀장이 새로 오시거든요. 그래서 기자님들 모시고 환영회 겸 못한 신년회를 할까 하는데. 오실 수 있으세요?”

드디어 유메프 홍보팀에 인원이 추가되는 건가.

이건 새로운 정보다.

난 영기를 팔꿈치로 치며 잘 기억해두란 눈치를 줬다.

다 정보보고에 쓸 내용이니까.

“아 당연히 가야죠. 유메프와 정이 있는데. 그럼 이제 두 분이 좀 편해지시려나? 그동안 힘들다고 토로 하셨잖아요.”

사실 유메프의 전 홍보업무를 대리 둘이서만 하기엔 내가 봐도 벅찬 감이 적지 않다.

“아 그렇긴 한데, 아무래도 상사가 오는 거라. 크게 다를 거란 생각은 않고 있슴다.”

유동 대리가 대답했다.

충분히 그럴 수도 있다.

“게다가 새로 오시는 분이 업계에서 유명하신 분이라 서요. 좀 부담되기도 해요.”

봄 대리의 말에 내가 물었다.

“그래요? 어디서 오시는데요?”

“아 원래 CBV라고, 아시죠. 영화관이랑 유통하는······”

“아아. 영화 홍보 일 하셨구나.”

새 홍보팀장에 대한 얘기는 여기까지.

“참, 박 기자님은 기자되신지 얼마나 되신 거예요?”

이제야 화제가 영기에게로 넘어갔다.

봄 대리의 질문에 영기가 깜짝 놀라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저, 네 6개월 됐습니다.”

약간 어눌했지만 떨지 않고 잘 말했다.

“아 그렇구나. 그러고보니 주 기자님도 6개월 정도 되셨을 때 저랑 만났었는데. 인연이네요.”

“하하하. 회사서 6개월 지나야 혼자 내보내주거든요.”

는 완전 거짓말이다.

당연히 내가 봄 대리를 만났을 때도 입사한지 갓 한 달 됐던 햇병아리 기자였다.

홍보팀 상대로 꿇릴 수 없으니 6개월은 지났다고 허세 부렸던 것 뿐이다.

두 사람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니, 최근 소셜커머스 근황에 대해서 대충 파악이 됐다.

“그러니까, 티마 재정 상태가 별로 안좋다구요?”

소셜커머스 티켓마스터, 줄여서 티마.

“네, 요즘도 소셜커머스 망한단 소리 많은데 그건 아마 티마가 가장 먼저 일검다. 순익이 적자 상태인 건 소셜 삼사 다 같은데, 아시다시피 저희는 돈이 많잖슴까. 쿠퐁은 투자자 찾고 있던데 된다면 한숨 돌리는 거고. 티마는 본사인 미국 올쿠폰 자체가 흔들리고 있어서 자금 확보가 안 되고 있슴다.”

유동 대리가 설명했다.

소셜커머스는 최근 공격적인 마케팅 행보를 걷고 있다.

마케팅이란 건 다름아닌 쿠폰 뿌리기를 뜻한다.

이 쿠폰을 많이 뿌릴 수록 소셜커머스가 벌어들이는 플랫폼 수수료는 줄어드는데, 그 정도가 심하면 영업익이 적자가 되는 수가 있다.

근데 한 회사가 쿠폰 뿌리길 시작하면, 다른 업체는? 손 빨고만 있을 순 없지 않은가.

결국 경쟁적으로 쿠폰을 뿌리다보니 소셜커머스 3사가 모두 적자가 된 거다.

“저흰 그래도 마진이 큰 의류 쪽으로 집중하니까요. 그나마 나아요.”

누가 홍보팀 직원 아니랄까봐 끝까지 유메프 실드다.

내가 봄 대리의 말을 들으며 웃자, 그도 멋쩍게 미소 지었다.

“안 그래도 오늘 소셜 3사 한 바퀴 다 돌 생각이었거든요. 티마 가서 상황 좀 봐야겠네요.”

“진짜요? 꼭 한 번 물어봐주세요~ 물론 문제없다고 하겠지만.”

봄 대리가 마치 티마 홍보팀을 약 올리듯 이야기했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소셜커머스 3사 홍보인원들은 친한 편이었다.

아, 예외도 있긴 하지만······ 뭐, 그 ‘사람’은 공공의 적이니 넘어가고.

어쨌든 서로 회사 욕은 해도 업무의 고됨을 알기에 사람은 공격안하는 훈훈한 관계였다.

“이제 슬슬 가봐야겠네요. 오늘 일정 빡세게 돌아야 돼서.”

“어머 벌써요? 아쉽네요. 기자님. 그럼 나중에 또 연락주세요!”

“주 기자님, 박 기자님이랑 한 번 저녁에 술 한 잔 하시죠!”

“네, 괜찮은 날 한 번 잡을게요. 들어가세요.”

유메프 빌딩 앞까지 두 사람의 배웅이 이어졌다.

“선배, 저 두 사람하고 많이 친하신 가 봅니다.”

티마 본사가 있는 강남운전면허시험장 쪽으로 걸으며, 영기가 말했다.

“아아, 친하지. 소셜 3사 중에서도 제일. 잘 알아둬 저분들이 영기씨한테 가장 잘해주는 사람들일 거야. 티마 쪽은 이런 환대 없으니까. 각오하고”

내가 유독 유메프와 친한 이유는, 단순히 티마나 쿠퐁이 측이 나와 잘 만나주지 않기 때문이다.

이 소셜커머스 업계서 두각을 나타내는 기사를 쓴 적도 없고, 특정 회사를 공격하는 기사도 쓰지 않았다.

매체마저 구질구질하니 내게 관심 가져주는 유메프가 도리어 이상한 거다.

‘뭐, 일을 너무 열심히 하는 거라고 할까.’

물론 나야 고마울 뿐이다.

우린 15분을 걸어 티마 본사에 도착했다.

난 익숙하게 본사 지하에 있는 카페테리아로 이동했다.

“여보세요? 김서정 팀장님? 네, 주진형입니다. 방금 지하1층 카페 도착했습니다.”

-아, 기자님 죄송해요. 제가 지금 일이 너무 바빠서 못나갈 것 같아요.

“예?”

그러니까, 이런 식이다.

약속을 며칠 전부터 잡아놨는데, 이제와 다른 일 때문에 못 만나겠다니.

김서정 팀장이 평소부터 날 떨떠름하게 여긴다는 건 알았지만, 이건 꽤나 실례다.

“그러면······ 어떻게 하죠?”

난 일단 화를 누그러뜨리고 김서정 팀장이 대책을 갖고 있는지 물었다.

-아, 윤한서 대리가 대신 내려 갈 거예요.

“윤 대리요. 알겠습니다.”

솔직히 팀장과 일정을 잡았는데, 대리와 만난다는 건 그리 유쾌한 경험은 아니다.

팀장에게 얻을 수 있는 정보와 대리에게서 얻을 수 있는 정보엔 차이가 있다.

게다가 내가 연락 하고나서야 약속 못 지킨단 소릴 하다니.

정말 기본예의가 안 돼 있는 거다.

“무슨 일이세요?”

내 굳은 표정을 보고 영기가 물어왔다.

“김서정 팀장이 약속을 깼어. 다른 대리를 내려 보내겠데.”

“네? 아아.”

난 영기에게 ‘이런 꼴 절대 참지 마!’라고 당부하고 싶었으나 참았다.

딱히 우리가 안 참는다고 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기자는 어차피 기사로 말하고 행동하는 거다.

“아, 기자님 죄송해요. 오늘 업무량이 많아서 팀장님이 못 내려오셨네요.”

잠시 후 우리에게 온 윤서한 대리가 대신 사과했다.

“많이 바쁘신가 봐요. 뭐 어쩔 수 없죠. 대신 대리님하고 얘기하면 되죠.”

난 싱긋 웃었다.

이렇게 얘기하고 있지만, 내 속은 그만큼 긍정적이지 않다.

“아, 그래야죠. 그러고 보니 주 기자님 여기 오시는 거 굉장히 오랜만이네요.”

“네. 제가 취재영역이 좀 넓어졌거든요. 그리고 이쪽, 제 2진 박영기 기자에요.”

“아 기자님 처음 뵙겠습니다. 티마 윤한서 대리입니다.”

윤 대리가 손에 쥔 명함을 영기에게 내밀었다.

이를 본 영기도 명함을 꺼냈다.

두 사람이 명함교환을 마쳤을 때, 내가 포문을 열었다.

“참, 요즘 티마 자금운용이 좀 안된단 얘기가 들리던데. 사실이에요?”

“에? 아뇨. 그럴 리가요. 저희 모체가 미국 올쿠폰이잖아요. 큰 문제없어요. 다만 미국이 본사다보니까 한국 쪽으로 자금을 보내주는 게 간단하지 않은 정도? 뭐 그렇죠.”

‘글쎄다. 딱 납득 가는 소린 아닌 것 같은데.’

난 윤 대리의 해명이 가슴에 와 닿지 않았다.

하지만 치고 들어갈 무기는 당장 없다.

내가 미국기업인 올쿠폰의 사정에 좀 어두운 탓이다.

‘어쩔 수 없지. 이거 나중에 다른 쪽에 확인해보는 수밖에.’

난 본 목적을 포기하고 최근 소셜커머스 추세와 주로 판매되는 품목 등에 대해 대화했다.

20분 후.

이야기를 마친 우린, 윤한서 대리와 작별인사를 하고 건물 정문으로 나왔다.

“자, 이제 쿠퐁 남았네. 가자.”

“넵.”

영기를 이끌고 다시 역 쪽으로 가려던 순간, 휴대전화가 울렸다.

손에 쥐고 있던 휴대전화 화면을 확인하자,

[티마에서 알려드립니다. 유메프의 티마 인수는 사실이 아닙니다 -티마]

“이건 또 뭐야?”

난 큰 소리로 놀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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