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기자님께 동의를 구해봐야 할 문제군요
“아 주 기자님, 박 기자님. 오셨군요! 이쪽으로 오세요.”
오후 6시 50분, 강남 ‘스시노아지’라는 일식집에 나와 영기가 발을 디뎠다.
카운터를 지나치자 마자, 식당 내 별실에서 나오던 정열성 매니저가 우릴 보고 응대했다.
“딜라스. 김예인 기자는? 도착 했어요?”
인사도 생략한 채, 난 낮은 목소리로 예인의 도착여부 부터 확인했다.
“네? 아, 네, 지금 안에 계세요.”
내가 조용하게 얘기하는 탓에 뒤 늦게 알아들은 정 매니저가 대답했다.
“이적우 대표도 함께?”
“네.”
“알겠어요. 들어가자, 영기씨.”
우린 신발을 벗고 별실로 들어섰다.
문을 열자, 이미 도착해 있던 이적우 내일코코아 대표와 마주보고 앉아있는 예인의 뒤통수가 보였다.
“주진형 기자님! 어서 오십시오.”
“안녕하십니까, 대표님.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안녕하십니까.”
“하하, 별 말씀을.”
이적우 대표의 환대에 나와 영기가 각각 인사했다.
잠시 눈치를 보던 우린, 이 대표 옆에 앉을 순 없었기에 자동적으로 예인의 옆 자리를 택했다.
“왔어요?”
예인이 여전히 무심한 말투로 반응했다.
난 당장이라도 이게 뭔 일이냐 따져 묻고 싶었지만, 차분히 기다려보기로 했다.
“자, 다 오셨으니 식사를 가져오라고 하겠습니다.”
미리 음식 주문을 해놓은 상태인 듯 했다.
이 대표가 식탁에 붙어있는 벨을 누르자, 여급이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주문한 음식 지금 가져다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여급이 가고 난 뒤, 이 대표가 말을 이어나갔다.
“음식은 정식으로 저희가 준비했습니다. 괜찮으시죠?”
“예에, 뭐든 좋죠. 제가 또 회를 좋아하거든요.”
난 실없는 사람처럼 가벼운 말투로 대답했다.
일단은 최대한 이적우 대표에게 맞춰보기로 했다.
“하하, 다행이네요. 딜라스가 여길 강력 추천해줘서 이곳으로 모셨습니다.”
이적우 대표도 정열성 매니저를 딜라스라 부르는 모양이다.
수평한 사내문화를 지향하는 전 코코아답다.
“그럼 믿을만 하겠네요. 하하하.”
내가 한참 이적우 대표의 말에 맞장구 치는 사이.
영기는 눈을 내리 깔고 자신에게 말이 넘어오지 않길 바라고 있었다.
‘아니지, 강하게 키워야 되는데.’
이렇게 한 번 기업 대표랑 맞부딪히고 나면, 홍보팀 과장, 차장, 부장 등을 상대할 때 심리적으로 쉬워지니까.
일부러 영기를 이곳에 데려온 이유도 사실 이 때문이다.
그리고 예인.
‘말이 없네.’
주눅 들어있는 것도 아닌데, 예인이 너무 조용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예인은 이적우 대표를 집중해서 보고 있었다.
남 일이지만 보기만해도 정말 부담스러운 아이컨택이다.
이 대표도 이를 느끼고 있는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예인의 시선을 피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지난 번 금감원 만난 일은 잘 되셨습니까?”
난 어색한 기류가 퍼지지 않게 바로 입을 열었다.
“아아, 그럼요. 아주 잘 됐습니다. 덕분에 내일코코아가 준비 중인 서비스도 많이 진척이 된 상태입니다.”
이 일은 사실 예인과 함께 논하기엔 부적절하다.
정확히 따져 보면 지난 번 이스트선 호텔에서 이 대표와 말을 나눈 건, 나와 영기뿐이었으니까.
하지만 이 대표가 스스럼없이 이야길 하는 걸 보니 그다지 중요하지 않거나, 아니면······
‘예인이 이걸 안다는 걸, 이 대표도 인지하고 있다는 뜻이려나.’
난 두 사람을 번갈아가며 분위기를 훑었다.
“주 기자님은 오늘 많이 바쁘셨나 봅니다.”
“예? 아 네. 일정이 좀 빡빡했네요. 어떻게 아셨습니까?”
날 감시한 것도 아니고, 오늘 일정이 바빴음을 어떻게 안단 말인가.
“하하. 오늘 주 기자님 기사가 잘 안 올라오더군요. 제가 주 기자님 기사는 웬만하면 빠트리지 않고 보려고 하거든요.”
내일코코아의 공동대표란 사람이, 내 기사를 꼬박꼬박 챙겨본다니.
한편으론 기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엄청난 압박감이 느껴졌다.
기사 하나를 쓰더라도 허투로 쓰면 개망신이라는 거다.
“아, 정말입니까? 영광입니다. 대표님.”
난 속마음을 숨기고 이 대표에게 답했다.
“그래서, 오늘은 어느 쪽 취재 하셨는지 궁금하네요. 좀 여쭤 봐도 될까요?”
“아, 네. 오늘은 오랜만에 소셜커머스 쪽을 좀 다녔습니다. 한동안 신경을 못 써서 오늘 날 잡고 소셜 3사를 다 만났거든요.”
유메프부터 쿠퐁까지.
난 이 약속장소에 오기 바로 전, 쿠퐁의 전신애 홍보팀장을 만났다.
뭐 전 팀장과의 만남에선, 딱히 새로운 소식은 없었다.
유메프나 티마에서 들은 정보가 겹치는 게 많았고, 그 외엔 그다지 중요치 않은 것들 뿐.
게다가 내 신경은 다른데에 쏠려있었다.
“주 기자님이 소셜커머스 쪽으로 관심 두시는 걸 보면, 곧 그쪽에서 뭔 일이 터지는 건가 봅니다.”
반 농담 식으로 이야기한 거겠지만, 난 이적우 대표의 말에 가슴이 철렁했다.
[티마에서 알려드립니다. 유메프의 티마 인수는 사실이 아닙니다]
티마 윤한서 대리와 일정을 마치고 받은 이메일.
이 일은 일주일 후 벌어질 사건의 일부분이다.
무슨 일이 어떻게 벌어지고, 흘러갈지는 아직 나도 몰랐다.
“하하, 그럴 리가요. 그냥 최근 소셜커머스 쪽에 너무 소홀해서 간 건데요 뭘.”
“후후. 주 기자님이 취재하시면 거의 다 특종이 터지니까요. 최근엔 고글하고 KMR측 기사도 단독으로 보도 하셨더군요.”
“아아, 예. 그건 저도 참 운이 좋았습니다.”
운이 좋았단 얘기는 내 단골 멘트가 돼 버렸다.
헌데 딱히 다르게 변명할 방법도 없다.
“원래 그냥 미튜브BJ들을 취재할까 해서 고글에 찾아갔던 겁니다. 하하.”
난 최대한 부자연스럽지 않게 변명을 덧 붙였다.
“아무튼 기사를 여러 꼭지 쓰셨던데, 정말 정보력에 감탄했습니다. 업계에선 주 기자님을 미친 탈곡기라고 부른다더군요. 허허. 성능이 미친 탈곡기란 뜻이겠죠?”
“핫 하 하.”
이적우 대표의 입에서 까지 저 소릴 들을 줄이야.
난 한껏 어색한 웃음소릴 내며 말을 줄였다.
“미친 탈곡기.”
그 때, 예인이 입을 열었다.
“축하해요.”
뭘 축하한다는 거냐.
미친 탈곡기 별명 얻은 걸?
내가 말뜻을 못 알아듣겠다는 듯, 황당한 표정으로 예인을 봤다.
“단독 기사 또 낸 거요.”
심정을 이해했는지, 예인이 제대로 설명한다.
“아아, 고마워요. 김 기자도 특종 내야죠? 꽤 오래 취재했을 텐데.”
난 예인을 보며 싱긋 웃었다.
최근 이 여자를 한껏 조롱할 때가 가장 즐겁다.
내가 배달갑을 취재할 때부터, 내일코코아만 저격해왔던 예인이다.
거의 2주가 지나갔는데도 아직 조용한 걸 보니 특종은 물 건너갔을지도 모른다.
“곧, 그렇게 될 거예요.”
담담한 표정으로 맞받아치는 예인의 말.
난 또 말귀를 못알아 듣고 ‘에?’ 되묻고 말았다.
“허허, 두 분이 꽤 친하시군요.”
우리가 대화 나누던 걸 보더니, 이적우 대표가 말했다.
“그럴 리가요.”
“네.”
나와 예인의 입에서 서로 다른 말이 나왔다.
“하하하. 재밌네요.”
이 대표가 황급히 웃음을 터트렸다.
혹여 예인이 민망해 할까봐 걱정한 모양이다.
하지만 내가 아는 한, 예인은 이런 걸로 민망함을 느낄 사람이 아니다.
“참, 근데 오늘 이렇게 김예인 기자와 식사자리를 갖게 된 게 좀 신기하네요.”
내가 은근히 돌려서 이적우 대표에게 물었다.
이 대표가 내일코코아 합병 식에서 식사 약속을 한 건 기억한다.
그러나 예인과 동행한다는 소린 들어 본 적이 없다.
이후로도 예인이 나처럼 기사를 냈던 것도 아니고?
‘아니, 잠깐만. 그렇다면 혹시······’
내 머리에 탁, 전기가 일었다.
이 여자가 왜 내 옆에 있는지 촉이 살짝 온 거다.
“하하, 그 설명은 잠시 식사가 나오면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시죠.”
굳이 파고 들어갈 필욘 없었기에, 난 수긍했다.
그 직후, 여급이 돌아와 모둠회와 초밥을 식탁에 차렸다.
나가있던 정열성 매니저도 이 때 돌아와 자리에 앉았다.
“드시죠.”
이적우 대표의 말이 떨어지자 우린 빠르게 젓가락을 놀렸다.
참으로 간만의 회였다.
“우적우적, 맛이 참 좋네요. 대표님. 역시 딜라스 안목이 좋아요.”
“아핫핫, 칭찬 감사합니다. 주 기자님!”
정열성 매니저가 웃었다.
가벼운 이야기와 식사가 어우러져, 느긋한 시간이 이어졌다.
‘슬슬, 얘길 꺼낼 시간인데.’
기사에 대한 보답을 위해서 라고 했지만, 고작 그것만으로 대표가 직접 기자에게 식사하자고 할 리는 없다.
이렇게 덤까지 껴안고 말이지.
난 옆에서 초밥을 하나 집어먹고 있는 예인을 보며 생각했다.
그는 우물우물 초밥을 씹더니, 꿀꺽 삼키곤 입을 닦고 이적우 대표를 바라봤다.
“그럼, 다시 얘기하죠.”
앞 뒤 맥락 없이 예인이 치고 들어왔다.
말 할 시기를 재고 있던 난,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인지 파악이 안됐다.
“네, 그러시죠. 그러면.”
이적우 대표와 예인의 주도로 대화가 시작됐다.
“김 기자님이 준비하고 계신 기사, 저희 쪽으로써는 당연히 안 나가길 바랍니다.”
“낼 거예요.”
“하하. 물론 김예인 기자님이 내시고자 한다면 저희가 뭐 막을 권리는 없죠. 그래도 이제 막 시작하는 서비스고 기자님도 그걸 인지하셔서 저희한테 설명해주신 거 아니겠습니까. 따로 좋은 방향이 있다면 그렇게 해 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정열성 매니저가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대충 내용을 들어보면, 예인이 특종을 준비하는 데엔 성공한 듯하다.
문제는 그게 내일코코아에게 위협적이란 거고.
근데, 왜 그 사안에 내가 껴 있는거지.
“김 기자, 무슨 기사를 썼는데 그래요? 어, 물어봐도 되죠?”
난 내일코코아 측에 양해를 구하고 예인에게 물었다.
“코코아페이. 내일코코아와 LC CNS의 합작 서비스.”
단편적으로 정보를 내뱉던 예인의 끝말을 더한다.
“사실은 LC CNS가 내일코코아 부사장과 개인적 인맥 덕분에 합작하게 된 거. 코코아페이 협력사 선정 과정에 문제가 있었단 얘기에요.”
‘······내일코코아로써는 정말 피하고 싶은 소재네.’
아직 출시 되지도 않은 서비스가 인맥으로 만들어졌다는 기사가 뜨면, 세간의 시선은 어떨까.
출시 전 부터 욕을 오지게 얻어먹을 터.
출시 된 후에도 부정적 이미지 때문에 서비스 보급에 어려움을 겪을 거다.
그렇게 합작한 서비스의 품질이 좋다면 다행이겠지만, 만약 그마저 나쁘다면 업계의 비판은 쏟아지고 주가도 하락 할 테지.
내가 상황을 이해하자, 더욱 더 지금 이 자리가 이해되지 않았다.
‘꽤 중요한 자리인데, 왜 나까지 불렀지. 아니지. 날 부른 건 김예인이잖아.’
-아아, 김 기자님 요청이었어요.
7시간 전, 왜 김 기자를 불렀냐는 물음에 정열성 매니저가 내게 전화로 했던 말이다.
그러니까, 이 대표가 나와 예인을 동시에 부르려던 게 아니다.
김예인.
이 여자가 우릴 한 방에 모이도록 한 거다.
“그런데 김 기자는 왜 날 여기에 부른 거예요?”
내가 직설적으로 물었다.
예인은 날 무시한 채 다시 이적우 대표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 기사, 내보낼 거예요. 하지만-”
“하지만요?”
“다른 기사를 쓸 수 있게 정보를 주신다면 편집부와 얘기해서 그냥 넘어갈 수도 있죠.”
예인이 밀당을 하는 모습은 처음 보는 거다.
“어떤 정보를 원하십니까.”
“대표님.”
정열성 매니저가 이적우 대표에게 뭔가 말하려는 듯 운을 뗐다.
하지만 이 대표는 손을 들어 그를 제지했다.
예인에게 계속 말해보라는 의미다.
예인은 잠시 침묵하더니,
“지난 번 합병 식 때 말씀하셨던, 합병에 도움을 준 인물에 대해서요. 정체, 어떤 도움을 줬는지 까지.”
쭉 시원하게 말했다.
이를 들은 이적우 대표는 잠시 생각하더니, 날 바라봤다.
‘응? 어? ······어!?’
“기사를 쓰셔야 한다면, 그건 여기 계신 주진형 기자님께 동의를 구해봐야 할 문제군요.”
이 대표의 말에 예인이 입 꼬릴 올리며 날 본다.
“그렇다는데요?”
돌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