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래에서 온 특종-38화 (38/107)

38. 합병의 일등공신이십니다

“······으음.”

당황한 내가 말을 잇지 못하고 음 끝을 삼켰다.

이적우 대표가 저렇게 나온다는 건, 내가 심증으로 추측했던 게 맞았다는 얘기다.

‘내일코코아 합병이 무산 될 뻔한 걸, 내가 막았다는 거지?’

그리고 이 부분에 대해서 예인은 기사를 쓰고 싶어 하는 거고.

곰곰이 생각해보자.

명확히 따지고 보면, 내가 손해 볼일은 사실상 없다.

내 이름이 예인의 기사에 실릴지도 모른다는 사실만 제하면.

“말 해봐요. 주 기자와 내일코코아에 대해서, 기사로 써도 되겠어요?”

예인이 다시금 날 압박해왔다.

난 이적우 대표와 정열성 매니저의 얼굴을 한 번 훑어봤다.

내가 허락하길 바라는 눈치가 가득하다.

“흐응, 글쎄요.”

일단 한 번, 시간을 끌어보기로 했다.

이적우 대표를 앞에 두고 그를 곤란하게 할 생각은 없다.

그와의 관계를 이어나가기 위해서도, 내일코코아 쪽에 도움이 되는 선택에 손을 들어줘야겠지.

하지만 예인에게 너무 쉽게 동의서를 발급해주긴 싫다.

내가 이득 볼 부분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이건 저로썬 딱히 얻을 게 없는 일이잖아요. 대신 조건을 걸고 승낙할 수는 있어요.”

내 설명을 들은 예인이 망설임 없이 묻는다.

“뭘요?”

난 예인에게 싱긋 웃으며 말했다.

“나중에 내가 필요할 때 소원 들어주기 어때요.”

지난 번 내기 때 걸었던 상품과 동일하다.

뭐로 예인을 골려먹을지 당장 정할 수 없으니, 이게 제일 현명한 제안 같다.

혹시 예인이 필요한 정보를 갖고 있다면 뺏을 수도 있고.

“······알겠어요.”

잠시 고민하던 예인이 결국 답했다.

그럼 이제 내 체면도 세웠으니, 동의해줄 차례다.

“좋아요. 그럼, 동의하겠습니다. 김 기자가 제 관련 이야길 기사로 쓰는 거에.”

내 말에 이적우 대표의 표정이 환해졌다.

아무래도 예인이 어떤 대답을 할지 몰라 긴장했던 듯하다.

‘혁신적 기업을 표방하는 내일코코아에서 여타 기업처럼 불공정한 사업과정이 있다는 건 이미지에 꽤나 큰 타격이니까.’

하지만, 기사를 내지 않는다고 해서 그 과오를 다 덮을 순 없을 거다.

업계 사람들은 알음알음 이 얘기를 수군댈 것이고.

이적우 대표는 당장의 홍수를 막은 뒤, 제대로 된 방죽을 쌓아야 할 거다.

‘뭐 알아서 하겠지. 내가 말해봐야 제3자의 건방진 소리일 뿐이니까.’

난 그렇게 생각하며 이 대표를 바라봤다.

“주 기자님께서 허락하셨으니, 얘기를 해드리죠.”

이 대표가 입을 열었다.

“내일과 코코아가 인수합병이란 명제를 놓고 협상테이블에 앉기 시작한 건, 지금으로부터 네 달 전입니다.”

‘꽤 오래전부터 준비하고 있었네.’

하긴, 합병이란 게 그렇게 삽시간에 뚝딱 이뤄지는 일은 아니다.

그러니까 이디넷 쪽에서도 냄새 맡을 시간이 있었던 거고.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당시 코코아는 불안감에 싸여있었습니다. 코코아의 핵심 서비스인 코코아톡의 성장은 정체됐고, 추진했던 코코아 서비스들이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한 탓이죠.”

확실히, 코코아의 국내 점유율은 이미 한계에 달해있다.

독점서비스나 다름없을 정도로 높으니까.

대신 코코아톡의 해외 점유율은 처참하다.

초기엔 일본에서 꽤 보급이 됐으나, 메이버의 동일 서비스‘마인’이 출시되면서 아예 자릴 잃었다.

게다가 국내에선 후속으로 내놨던 코코아페이지나 스타일 같은 서비스가 실패에 가까운 성적을 냈다.

“저희가 모바일을 중심으로 성장해온 회사였지만, 더 커지기 위해선 모바일 외의 성장 동력을 가져야만 했습니다. 변화가 필요했던 거죠. 저나 김범주 의장은 그걸 내일과의 합병으로 타개할 생각이었죠.”

우린 별다른 말없이 이적우 대표의 말에 경청했다.

허나 난 그가 하는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진 않았다.

단순히 성장 동력을 찾기 위해 합병?

‘아니, 업계는 오히려 우회상장을 위한 발판으로 코코아가 내일을 이용했다고 보지. 그게 더 타당한 이유기도 하고.’

당연히 입 밖으로 꺼내진 않는다.

여기선 굳이 딴죽을 걸 필요가 없으니까.

난 이 대표의 말을 계속 듣기로 했다.

“내일 측에선 최재훈 대표와 창업자인 이웅재 전 대표가 나와 이야길 나눴습니다. 내일도 합병에 대해 긍정적이었습니다. 내일의 명맥을 잇는다는 의미로 새로운 사명 앞에 내일을 두기로 한 것까지, 순탄했죠. 그 때 저희는 한 번만 더 미팅하면 바로 합병식을 진행할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좋은 분위기 속에서 합병식 장소까지 미리 예약 했으니까요. 하지만 뒤늦게 합병비율을 두고 의견이 갈리게 됐습니다.”

합병 비율, 합병하는 두 회사의 새 주식 배분비율을 뜻한다.

내일코코아의 합병 비율은 내일이 1, 코코아가 1.5였다.

즉 내일커뮤니케이션 주식을 1,000주 갖고 있던 사람은 그대로 내일코코아의 신주 1,000주를 받게 된다.

코코아 장외주식 1,000주를 가진 사람의 경우, 내일코코아 신주 1,500주를 교환받는다.

‘이러니 내일 측이 코코아 제안을 달갑게 받아들였을 리 만무하지.’

기존 내일의 최대주주인 이웅재 창업자의 내일코코아 지분율은 하락할 터.

반대로 김범주 코코아 의장은 내일코코아의 최대주주로 손쉽게 등극한다.

아무리 내일이 지는 해, 코코아가 뜨는 해더라도 자존심이라는 게 있는 거다.

“다른 부분만은 모두 합의를 이뤘지만, 합병비율만큼은 쉽게 결론이 나질 않았습니다. 예민한 부분이었기에 뒤로 미룬 게 독이 됐죠. 약속했던 합병 식을 앞둔 상태서 바로 무산될 상황에 처했습니다. 당시 내일 측은 굳이 합병할 필요가 없다며 강경하게 나왔죠. 아, 이 부분은 기사에 넣지 말아주십시오. 아무튼 그렇게 서로 불쾌감만 안고 미팅을 끝냈던 날에 주 기자님 기사가 났습니다.”

꿀꺽.

누가 그 순간에 침을 삼켰다.

소리의 진원지를 찾아보니 잔뜩 집중하고 있던 영기였다.

난 순간 웃음이 새어나오려 했지만, 입술을 꾹 눌러 참았다.

이적우 대표도 살짝 미소를 지었다.

“후후. 굉장히 보안을 철저하게 진행한 일이었기에 기사가 뜬 것에 저도 놀랐습니다만. 기사를 읽어보고 굉장히 기뻤습니다. 합병에 대한 호의적인 전망을 자세하게 서술하셨더군요.”

“하하, 뭐 그랬죠. 메이버와 경쟁하기 위해선 양사가 힘을 합치는 게 낫다고 봤으니까요.”

내가 겸연쩍은 표정으로 말했다.

“하나의 기사가 다른 기사로 재생산되면서 갖는 파급효과가 컸습니다. 언론, 여론 할 것 없이 모두 합병에 긍정적인 시각을 나타냈으니까요. 기사를 읽은 내일 측에서도 메이버를 공동목표로 힘을 모아야 한다는 시각에 동의했습니다. 저희는 바로 다시 만나자는 연락을 받게 됐습니다. 결국, 코코아가 비율을 약간 양보하는 정도로 양 사 간 인수협의를 마치게 된 겁니다.”

‘내 기사가 서로의 자존심을 굽힐 계기를 만들어줬단 얘기군.’

그렇게 굽혀서 1:1.5라는 합병비율이 나온 거다.

이전엔 정말 내일이 거부할 만큼 차이가 났던 모양이다.

“네, 이게 김예인 기자님이 알고 싶었던 사건의 전말입니다.”

이적우 대표가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예인 덕분에, 나도 이적우 대표의 입에서 이 이야길 들을 수 있었다.

대충 눈치는 채고 있었지만, 직접 확인하고 보니 느낌이 또 다르다.

“그런 면에서 주진형 기자님은 내일코코아 합병의 일등공신이십니다.”

정열성 매니저가 끼어들어 아부했다.

이런 말을 들어 안 기쁠 린 없지만, 솔직히 낯간지럽다.

난 알고 있다.

굳이 내가 내일과 코코아 사이에 끼어들지 않았더라도, 이 합병은 성사됐을 터다.

일주일 후의 합병식 초청 이메일.

그걸 내가 받았다는 건, 합병비율 때문에 냉각기를 가졌다지만 미래는 이미 결정돼 있는 거다.

“제가 기사를 쓰지 않았더라도, 분명 내일코코아는 탄생했을 겁니다.”

내가 속마음을 담아 말을 꺼냈다.

그저 겸손한 척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랬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가정은 의미 없다고 생각합니다. 후후.”

이적우 대표가 내 대답을 듣곤 웃었다.

“어쨌든, 이렇게 다 설명 드리니까 저도 마음이 후련하군요. 김 기자님 좋은 기사 써주시길 기대하겠습니다.”

“네. 잘 쓸게요.”

전혀 잘 쓸 것 같지 않은 표정과 말투로 예인의 대답했다.

“주 기자, 이름 그대로 나가도 상관없죠?”

예인이 내게 물었다.

“어차피 내 이름 안 나가도 소용없는 거 아녜요? 합병기사 처음 쓴 게 난데. 검색하면 다 알게 될 거 아니에요.”

“네.”

‘근데 뭘 물어봐······.’

난 잠시 한 숨을 쉬고, 못마땅함을 담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세요. 이름 내보내시고, 소속도 내보내고. 이참에 우리 매체 홍보 좀 하죠 뭐.”

“알았어요.”

자, 이제 서로간의 목적은 이뤄졌다.

이적우 내일코코아 대표는 예인의 특종을 막았고, 예인은 다른 특종을 얻었다.

난? 이 대표와 함께 식사하며 친분을 쌓았고, 예인에게선 소원 이용권을 하나 얻어냈다.

모두 윈윈이 된 좋은 저녁시간이었다.

“그럼 나중에 또 뵙겠습니다. 조심히 들어가십시오.”

훈훈하게 식사를 마친 우린, 식당 내에서 바로 헤어지기로 했다.

난 이적우 대표의 인사를 받았다.

“네, 대표님 나중에 뵙겠습니다.”

난 꾸벅 인사하곤 영기를 챙겨 청담동 골목으로 빠져나왔다.

함께 내려온 예인은 기사를 준비한다며 근처 카페로 들어가 버렸다.

“영기씨, 오늘은 들어가서 푹 쉬어.”

지하철 역사로 향하던 중, 난 영기에게 말했다.

“네, 넵?”

“그동안 설렁설렁했지? 이제 내일부턴 다시 열심히 뛸 차례야.”

다시 취재에 나선다는 예고였다.

“아아, 알겠습니다.”

영기에게 말한 대로, 내 머릿속엔 다시 취재할 생각으로 가득했다.

이미 흘러간 내일코코아의 합병과정 스토리는 중요치 않다.

지금 내게 중요한 건 유메프의 티마 인수가 사실인가, 어떤 일들이 벌어지느냐 뿐이다.

고시텔 방으로 돌아온 난, 노트북을 펼치고 인터넷에 접속했다.

우선 외신 사이트를 돌며 ‘올쿠폰’에 대해 보도한 그간 기사를 읽어나갔다.

올쿠폰은 소셜커머스의 효시 같은 존재다.

딜 판매란 걸 처음 도입했고, 세계서 가장 큰 규모의 소셜커머스이기도 하다.

헌데 최근 기사보도가 영 심상치 않았다.

‘완전······ 망조인데?’

매년 매출이 급감해 온데다가 임원들이 자진 퇴사하는 등.

회사에 불길한 징조만 가득했다.

게다가 올해 올쿠폰의 일사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40%나 줄어, 주가도 17% 폭락해있었다.

대주주인 올쿠폰이 이런 상황이니 티마에 자금운용이 안될 만하다.

티마 윤한서 대리가 말했던 ‘미국이 본사다 보니 한국으로 자금 보내는 게 간단하지 않다’라는 변명은, 정말 헛소리였던 거다.

‘이 상황에선, 올쿠폰이 티마를 매각한다 해도 이상할 리가 없겠군.’

티마 측이 너무 당당하게 자금난을 부인하고 있기에 잠잠한 것일 뿐.

일주일 후 사건이 터질 정도면, 이미 올쿠폰 측은 움직였을 터다.

만일 그렇다면 분명 티마 임원들도 이를 알고 있겠지.

‘어쨌든 지금 확실한 건 없어. 티마와 유메프가 인수 건으로 다툰단 사실은 알지만, 어떤 경위인지’

난 다시 이메일 계정에 접속해 티마의 이메일을 다시 읽어 보기로 했다.

[티마에서 알려드립니다. 유메프의 티마 인수는 사실이 아닙니다]

[안녕하십니까. 티마 홍보팀입니다. 유메프 측이 주장하는 티마 인수 참여는 사실이 아닙니다. 저희가 확인한 바로는 유메프 측은 인수의향서를 제출하지도 않았습니다. ······올쿠폰 측도 유메프에 티마를 매각할 의사가 없다고 밝힌 바······ 또한 올쿠폰은 티마의 지분을 모두 매각하지 않고 대주주로 남을 계획인 만큼······ 유메프 측 주장은 잘못된 것이며 이에 대해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내용을 정리해봤다.

그러니까 올쿠폰의 티마 매각은 진행이 확정된 일이다.

다만 유메프의 티마 인수참여, 즉 인수의향서를 제출했는지 여부는 확실하지 않다.

‘그렇다면 유메프는 미루고. 우선 쉬운 부분부터 공략해 볼까.’

올쿠폰이 티마 매각을 진행하기 시작했다면, 매각주관사를 선정했을 터.

매각주관사는 국내외 증권사나 회계법인, 법무법인 등이 도맡는다.

이후에 티마를 인수하려는 기업들이 인수의향서를 매각주관사에 내게 된다.

난 책상 위에 올려둔 휴대전화를 집었다.

휴대전화 연락처에서 미래금융투자 장도현 과장을 찾았다.

그리고 그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장 과장님, 주진형 기자입니다. 내일 여의도에서 잠시 뵙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