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래에서 온 특종-39화 (39/107)

39. 한 순간에 유명인이 되셨더군요

다음날, 기사가 터졌다.

[내일코코아 합병무산 막은 건 ‘주진형 기자’-김예인 기자]

‘이렇게 제목부터 대놓고 이름을 넣을 줄이야······’

기자인 내가 쓴 기사가 아닌데, 내 기사라니.

뭔가 어감이 이상하지만 어쨌든 내 이름이 직접적으로 언급이 된 기사였다.

난 출근길 지하철서, 휴대전화로 예인의 기사를 차분히 읽었다.

[무산 될 뻔한 내일코코아의 합병이 성사된 건, 김범주 의장이 아니라 한 명의 기자 덕분인 것으로 밝혀졌다]

어제 저녁 이적우 내일코코아 공동대표로부터 들은 얘기가 기사형태로 잘 다듬어져있었다.

‘아침 일찍 낼 생각이었군.’

어쩐지 식사를 마치고 곧장 카페로 들어간다 했다.

그렇게 내가 기사를 확인한지 5분도 안돼서 휴대전화가 연신 울기 시작했다.

[주진형 기자, 아시아이코노믹 이혁진 기자입니다. 통화 가능할까요?]

[매일이코 윤성호 기자입니다. 취재 차 연락드렸습니다]

[안녕하세요. 주진형 기자님 코리아투데이 박정모 기자입니다. 인터뷰를 하고 싶······]

[주진형 기자님 SBC 정재욱 기자입니다. 내일코코아 관련해 취재를 하······]

내 멘트 하나라도 딸려는 타 기자들의 문자메시지가 쏟아지고 있었다.

거의 3초마다 하나씩 메시지는 계속 추가됐다.

심지어는 전화통화까지 걸려왔다.

‘아니 아직 오전 7시라고······’

물론 기자들의 출근시간이 보통 회사원들보다 이르긴 하다.

그래도 이 시간부터 전화를 걸다니.

난 통화거부 버튼을 누르며 거부메시지로 [나중에 연락드리겠습니다]를 전송했다.

‘도대체 내 번호는 어떻게 안거야?’

난 기업 홍보팀 직원들이나 정부부처 관계자처럼 연락처가 공개돼 있는 사람은 아니다.

기자의 연락처를 종합 관리하는 곳은 보통 두 곳.

기자가 소속된 언론매체, 그리고 언론홍보 관계사.

헌데 디지털투모로우나 타 기업들도 지금 회사문도 안 열었을 터.

뭐 열려 있다 해도, 직원들이 내 번호를 알려줄리 만무하고.

당장 어떻게 알아냈는지 감이 안 잡힌다.

다행히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휴대전화는 잠잠해졌다.

그제야 코코아톡 알림배지가 내 눈에 들어왔다.

‘261개. 263개, 267개······이거 계속 오르잖아?’

배지에 표시된 도착 메시지 수가 늘어나고 있었다.

난 잠시 고민하다가, 코코아톡 앱을 실행했다.

새로 대화 메시지가 도착한 채팅방이 여러 개.

문자메시지와 동일하게 취재를 요청하는 대화내용들이 대부분이었다.

“······이거 한 동안 골치 좀 아프겠는데.”

괜히 잘못 대응했다가는 기자들 사이서 안 좋게 찍힐 수도 있다.

최대한 완곡하게 취재거절을 해야 한다.

난 대화목록을 쭉 내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일 터지면 전화기만 붙들고 있을 홍보팀이 이런 심정이군.’

목록을 하나씩 확인하던 내 눈에, 익숙한 채팅방이 눈에 들어왔다.

방 제목은 [디지털투모로우 탈출], 디지털투모로우 선배들의 그룹채팅 방이다.

난 그룹채팅방에 들어가 쌓여있는 채팅내용을 하나씩 읽어나갔다.

[김기문 : 이거, 이거 주 후배가 또 난리로구만. 역시 미친 탈곡기일세!]

[이주연 : 아, 선배도 보셨어요? 진형이 이름이 아예 기사 제목에 붙어있던데.]

[김기문 : 진짜 이적우 대표가 한 말인가 보네. 이디넷 김예인? 이런 기자도 있었는가?]

[이주연 : 그러게요. 이디넷에선 첨 듣는 기잔데. 연차 있는 것 같진 않아요.]

[김기문 : 어떻게 취재해 기사를 썼는진 몰라도 주 후배가 곤혹스럽겠군.]

[이주연 : 취재요청 같은 것도 막 오겠죠?]

[상성훈 : 주진혀어어어어엉!]

[김기문 : 상 성배는 또 왜 저러는가.]

[이주연 : 왜요, 뭔데요.]

[상성훈 : 아, 주진형 김예인 연락처 모른다고 하더니! 기사까지 나가고!]

[이주연 : ······]

[김기문 : 혹시 성 선배가 김예인 기자 연락처를 따려 했다든가?]

[상성훈 : 따려했다든가, 가 아니라 따려고 주진형한테 물어보기까지 했어. 근데 모른다고 해놓고 뒤로 이렇게 호박씨를 까다니! 주진형 얼른 대답해라!]

[김기문 : 역시 상 선배. 분위기 파악이 전혀 안되고 있구만.]

[이주연 : 선배 기사를 읽어요 좀. 기사에 진형이 멘트 1도 없어요. 그냥 이적우 대표만 취재한 것 같던데.]

[상성훈 : 엉? 그래?]

[김기문 : 상 선배 누누이 말하지만 제발 기사를 먼저 보시구랴.]

[이주연 : 그리고 이 상황에 여자 번호 따는 얘기가 왜 나와요. 참.]

상성훈 선배가 기문선배와 주연선배로부터 공격받고 있었다.

뭐, 상 선배가 연락처 물어봤을 때는 연락처는커녕 예인에 대해서 제대로 몰랐던 때다.

나중에 알고서 말해주지 않은 건 좀 미안하지만, 나한테 잘못은 없다.

난 다시 이어지는 대화를 읽었다.

[상성훈 : 아. 어떡하지?]

[이주연 : 뭘요?]

[김기문 : 뭔가 불길한 소릴 하는 구려 상 선배.]

[상성훈 : 나 괜히 화나서 진형이 연락처 단톡방에 다 뿌렸는데.]

단톡방, 단체 코코아톡 방.

즉 상 선배는 또 다른 그룹채팅방에다가 내 전화번호를 공개했단 소리다.

어쩐지, 이 시간에 내 연락처를 알고 전화 한다는 게 말이 안됐지.

상 선배의 고백에 의문이 풀렸다.

[이주연 : 설마, 기자들 있는데다 뿌렸어요?]

[상성훈 : 내가 기잔데, 그럼 누구한테 뿌리겠냐. 아이고.]

[김기문 : ······상 선배 심하네.]

[이주연 : 선배 최악이네. 추해요.]

[김기문 : 지금 주 후배 전화 폭탄 맞고 있겠구려.]

여기까지가 몇 분전까지 올라온 대화였다.

뭐 다른 기자들로부터 연락 오는 건, 견딜 만하다.

슬슬 잠잠해지기도 했고.

아마 내 번호를 받은 매체선 대부분 연락을 끝낸 모양이다.

그래도 상 선배가 미쳐 날뛰지 못하도록 마음의 짐을 씌워줄 필요는 있다.

난 휴대전화를 두드려 채팅에 참여했다.

[주진형 : 괜찮습니다. 전화가 계속 오고 있긴 한데 거절하고 있습니다.]

난 이 말을 적고선 코코아톡 앱을 종료했다.

뒷말을 잇지 않더라도 내가 바빠서 그런 거라 생각 할 테지.

“휴우.”

어쩐지 하루의 시작부터 급 피곤해졌다.

난 예인에게 연예인으로 만들어줘서 고맙다는 비꼼이라도 보내둘까 하다가, 그만두기로 했다.

소원 이용권을 받았으니, 이 정도는 감수하는 게 맞는 것 같다.

사무실에 출근하고 나서도 휴대전화엔 계속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어차피 나도 기자다.

아침에 출근해 업무하는 걸 다들 알 테니, 굳이 받을 필욘 없겠지.

“진형아. 괜찮아? 오늘 나간 기사 때문이지? 전화 오는 거.”

결국 김정효 팀장이 물어왔다.

“네. 괜찮습니다. 오늘만 버티면 될 것 같습니다.”

“이거 기사 났다고 축하해주기도 뭐하네. 아무튼 네가 고생한다.”

“하하, 아닙니다.”

예인이 쓴 기사의 파장은 검색포털의 실시간 검색어에까지 미쳤다.

내 이름이 실시간 순위 10위 안에 들어간 거다.

다행이랄까, 난 포털 등록 기자가 아니라서 내 관련 정보는 뜨지 않는다.

대신 내가 그동안 썼던 기사들이 검색될 터다.

“오오 주진형 기자! 이거, 예전 기사들 조회 수가 팍팍 오르고 있어요!”

그 덕에 이윤철 대표가 제일 신났다.

뭐, 이름 팔린 것 때문에 정신없긴 하지만 크게 손해는 아닌 걸로 해둘까.

꾸역꾸역 오전 업무를 마친 난, 영기에게 말하고 홀로 장도현 과장을 만나러 움직였다.

“주 기자님!”

증권사 건물들이 밀집해있는 여의도 증권가.

장도현 과장이 멀리서부터 날 발견하곤 한 손을 들어 인사했다.

오늘따라 좀 더 친근하게 구는 듯 했다.

“기사 봤습니다. 이거, 한 순간에 유명인이 되셨더군요.”

도현은 평소에도 업계 동향이 밝은 사람이다.

이 사람이 모르고 넘어갈 리가 없지.

난 머쓱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덕분에 오늘 아침부터 많이 곤란했네요.”

“하하. 일단 식사하러 들어가시죠.”

우리는 근처에 있는 여의도IFB몰로 들어갔다.

도현이 예약해둔 일식 레스토랑에서, 우린 본 대화를 시작했다.

“우선 여기, 새로 드릴 정보입니다.”

난 가방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도현에게 건넸다.

“네? 하루 만에 또 정보를 가져오셨습니까?”

도현이 놀라면서 종이를 받아들었다.

“네, 많진 않지만 일단 되는대로 가져와봤습니다.”

다행히 어제-오늘 도착한 미래의 정보들이 몇 개 있었다.

“······흐음. 3개군요. 다 주십시오.”

종이에 적힌 목록을 훑고는 도현이 말했다.

난 다시 가방에서 3장의 종이를 꺼냈다.

각 정보 별로 한 장씩 낱개로 뽑아온 거다.

“감사합니다. 금액은 바로 입금해드리죠.”

“아뇨. 됐습니다.”

“네?”

내 말에 도현이 의아하다는 듯 되물었다.

“오늘은 정보료 대신,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아아. 그래서 갑자기 보자고 하셨군요.”

눈치도 빠르지.

“말씀해보십시오. 제가 할 수 있는 부분은 도와드리겠습니다.”

도현은 한 손으로 안경을 치켜 올리며 날 나지막이 바라봤다.

“예 그럼. 바로 얘기하죠. 최근 제가 소셜커머스를 취재 중입니다.”

“소셜커머스요?”

“예. 쿠퐁, 유메프, 티마. 이런 곳들이죠.”

“아아, 네.”

“그런데 그중에 티마의 재정 상태가 요즘 안 좋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소셜커머스나 오픈마켓 쪽 업계종사자라면 이미 다 알고 있을 얘기다.

하지만 도현은 처음 듣는 내용인지, 꽤나 관심 있게 눈을 반짝였다.

“그래서 알아보니까 티마의 대주주인 올쿠폰이 휘청거리고 있더군요.”

“올쿠폰이라면, 미국 기업 아닙니까?”

“네, 들어보신 적 있을 겁니다. 국내에서도 잠시 영업을 했었죠. 그래서 말입니다. 올쿠폰에 대한 정보가 좀 필요합니다.”

내가 도현에게 부탁하고 싶었던 건, 올쿠폰의 행태를 파악하는 것.

원래는 영기를 증권가로 보내 정보수집을 시키고 싶었지만, 뜬금없다.

영기 입장에서는 갑자기 왜? 라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니, 내가 직접 하는 게 낫다.

“어떤 정보를 드리면 될까요? 웬만한 건 주 기자님이 더 빠르실 것 같은데.”

“네. 제가 구하기 힘든 정보죠. 전 올쿠폰 측이 티마 지분을 더 이상 놀리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본사 매출도 적자, 티마도 수익을 내지 못하는 상황. 이 상황을 타개하려면?”

내가 넌지시 운을 띄우자, 도현이 답했다.

“매각 절차······입니까?”

역시 눈치가 빠르다.

“네. 그렇게 생각합니다. 만약 정말 그렇다면 매각주관사부터 접촉 하겠죠. 매각 공고도 뜰 테고.”

도현이 조용히 손뼉을 탁, 쳤다.

“알겠습니다. 제가 알아보도록 하죠. 근데 이거 제가 주 기자님께 정보료를 더 드려야할 것 같은데요?”

“주시겠다면 뭐 거절하진 않겠습니다. 하핫.”

진심이지만 진짜 요구하면 도현이 정색할 것 같다.

그저 난 장난스럽게 웃었다.

우린 30분 정도 점심식사를 함께 한 후 헤어졌다.

도현에게 부탁을 해뒀지만, 확실한 정보는 올쿠폰의 매각 공고가 뜨고 나서 전해질 터.

그때까지 놀고 있을 수는 없었다.

‘티마 쪽은 간단하게 마크를 붙였으니, 이제 남은 건 유메프인가.’

난 휴대전활 꺼내 유메프 김봄 대리에게 연락했다.

“아 봄 대리님. 주진형이에요.”

-주 기자님~! 와 저 기사 봤어요. 진짜 업계 대스타 다 되셨던데요?

자신의 일 인양 신나하는 김봄 대리의 말투에 내가 웃었다.

“하하하. 안 그래도 기사 나가고 전화에 불나더라구요. 홍보팀 심정을 좀 알게 됐습니다.”

-아하, 참 고생많으셨겠어요. 지금은 괜찮으세요?

“네. 잠잠해졌네요. 아무튼, 이렇게 연락드린 건 여쭤볼 게 좀 있어서요.”

-아 네! 어떤 거 때문에 그러세요?

호의적인 태도로 대답해주는 봄 대리에게, 난 본론을 털어놨다.

“혹시 최근 실장님이나 대표님, 외부업무가 많으신가요?”

처음부터 진실을 들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래도 일단 말은 꺼내봐야겠지.

-음, 아뇨. 주로 회사로 출근하셔서 퇴근까지 계속 계세요.

“아, 그래요?”

모호하다.

거짓말 같지는 않은데 왠지 믿고 싶지 않은 대답이랄까.

-네. 최근에 의류부문으로 마케팅도 많이 신경 쓰시고 TV광고도 하느라 계속 내부 미팅이 있기도 하구요.

이렇게 구체적으로 말하면 믿는 수밖에 없다.

‘아직 은상재 대표가 매각 사실을 모르거나, 움직이지 않거나. 둘 중 하나겠군.’

유메프 은상재 대표.

은 대표는 4년 전 설탕딜이라는 작은 소셜커머스 기업을 창업했던 사람이다.

그 설탕딜이 유메프에 인수되면서 유메프 영업본부장을 역임, 1년 뒤엔 대표로 취임했다.

만일, 유메프가 티마 인수전에 뛰어든다면 은상재 대표가 움직일 터다.

난 마지막 동아줄을 잡는 마음으로 봄 대리에게 질문했다.

“혹시, 어제 말씀하신 신년회에 대표님도 오시나요?”

거창한 임원도 아니고, 그냥 홍보팀장 환영회다.

안 올 확률이 더 크지만 혹시나 하는 심정이었다.

-아 은상재 대표님이요? 이거 사실 다른 분들껜 말씀 안 드렸는데, 은 대표님은 1차에만 잠시 얼굴 비치실 예정이에요.

“에? 진짜요?”

-네.

유메프 측에서 일종의 깜짝 파티를 기획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봄 대리의 대답을 들은 난 환한 미소로 되물었다.

“그렇군요. 그래서 신년회가 언제라구요?”

기회는 갖춰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