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그럴 일은 절대 없을 겁니다
-이번 주 금요일이에요.
김봄 대리가 환영회 날짜를 알려줬다.
이틀 후인 금요일이면 티마의 보도자료가 공개되기 사흘 전 날이다.
‘충분히 기대해볼만 한 시간이야.’
유메프가 그 사이 티마의 매각 사실을 알아차리고, 인수전에 대해 어떤 반응이든 내놓겠지.
난 그걸 파악하기만 하면 마무리는 화려하게 맺을 수 있다.
봄 대리와 통화를 끝낸 뒤.
난 여의도역에서 영기와 합류했다.
“영기씨, 지금부터 또 찢어져야 할 것 같아. 괜찮지?”
“네? 무슨 일인데요?”
난 어안이 벙벙한 영기에게 하나씩 설명했다.
“증권가 쪽에 아는 사람이랑 얘길 했는데, 티마 쪽 움직임이 이상해. 어제 영기씨도 얘기 들은 거 기억나지? 티마 자금운용에 문제가 있다고. 티마 쪽은 부인했지만, 본사인 올쿠폰은 역시 힘든 모양이야.”
영기에 미래의 보도자료를 미리 받아 알아냈다곤 설명 할 수 없으니.
이렇게 도현의 존재를 이용해 대충 둘러대는 거다.
“그런가요?”
“그래. 아무래도 티마를 매각할 것 같아.”
“······예? 진짜요?”
영기가 놀란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어. 그러니까 우린 지금부터 소셜커머스 쪽에 집중할거야. 난 티마 쪽, 영기씬 유메프 쪽.”
“네? 근데 유메프는 왜요?”
올쿠폰과 티마가 매각하는데, 뜬금없이 웬 유메프냐는 생각이겠지.
“소문에 의하면 유메프가 티마 인수후보자 중 하나인 것 같아.”
“와아······”
내가 말하자 영기가 놀람을 넘어서 감탄했다.
뭐 때문 인진 모르겠지만, 신나 보이기도 했다.
“역시 선배! 알겠습니다. 제가 그럼 유메프 가서 뭘 하면 되나요?”
일일이 할 일들을 정해줘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이렇게 의욕적이라면 꽤 믿음직하다.
난 영기에게 매각 절차와 매각주관사, 인수자문사에 대해 말했다.
“······유메프 쪽이 인수전에 참가한다면, 인수자문사를 둘 거야. 티마에 대한 확실한 투자가치 분석과 자금유통, 협상 등을 지원해주는 곳이지. 영기씨는 유메프 은상재 대표를 중심으로 실장급 이상 임원들을 체크해줘. 은 대표는 지금 회사에 있을 거야.”
“으, 은상재 대표요?”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대표 이름이 튀어나오니 영기가 더듬거렸다.
“유메프 측에 은 대표 사진 요청해. 나중에 기사에 쓸 거라고 말하고.”
“네, 넵.”
“자문사 쪽에서 유메프를 찾아올 확률이 크니까, 유메프 빌딩에서 감시하면 돼. 이상한 부분 있으면 나한테 바로 전달해주고.”
“알겠습니다!”
난 영기가 해야 할 일들을 다시 짚어주고 뒤 함께 지하철을 탔다.
목적지는 강남구 삼성동.
역에 도착한 나와 영기는 약속대로 흩어졌다.
영기가 유메프 빌딩으로 들어감을 확인 한 뒤, 난 티마 본사를 향해 걸었다.
‘일단 나도 무작정 발품을 팔아볼까.’
나 또한 영기와 동일하게, 티마 신성현 대표 주변을 노릴 생각이었다.
‘미국 명문대 출신으로, 20대 중반에 수백억 매출을 내는 티마 창업자라······’
잘 모르는 사람에게는 단순히 천재적 인사로 비춰지겠지.
하지만 실은 망할 수가 없는, 어마어마한 금수저 집안의 외동아들이다.
그의 조부는 유신정권 시절 법무부장관과 중앙정보부장을 역임한 자.
큰고모는 국내 3대 신문사로 꼽히는 중심일보의 홍적현 회장과 결혼했다.
중심일보 홍적현 회장은 사성그룹의 안주인 홍마희의 동생.
티마 초기에 사성그룹 계열사 최고기획이 광고를 도맡았던 건, 우연이 아닐 거다.
‘그런 조력들 속에서도 난관에 봉착했다는 거지.’
난 우선 티마 본사 1층에 있는 기자실에 들어갔다.
뭐 최대 세 명이 쓸 수 있는 아주 작은 기자실이지만, 그래도 있는 게 어딘가.
빈 책상에 짐을 내려놓은 뒤, 난 다시 1층 로비로 나왔다.
‘지금쯤이면, 티마 측도 올쿠폰이 자신의 지분을 매각할거란 걸 알고 있을 텐데.’
1년 전, 올쿠폰이 가진 인수한 티마의 지분은 100%.
신성현 티마 대표는 경영권까지 올쿠폰에게 모두 넘긴 거다.
이 지분을 매각한다면 신 대표 측도 가만히 앉아있을 순 없을 노릇일 거다.
‘대표인 자신의 처지가 어떻게 될지 예상할 수 없게 됐으니까.’
난 일단 윤한서 대리에게 전활 걸었다.
“윤 대리님? 안녕하세요. 디지털투모로우 주진형입니다.”
-어 주 기자님! 우와 주 기자님! 기사 봤습니다. 어떻게 된 건가요? 저희 뵙고 바로 다음날 이렇게 유명해지실 줄은 몰랐는데.
흥분했는지, 윤 대리가 따발총처럼 말을 늘어놓았다.
-와 전화통화 가능하신 거예요? 다른 분들이 막 전화 많이 하셨을 것 같은데.
드디어 내게 말할 틈을 주는 군.
“네. 오전에 좀 심했는데, 이젠 괜찮아요. 다들 지치신 모양 같고. 그것보다 대리님. 여쭤볼게 있는데요.”
-네네, 말씀하세요!
“지금 신성현 대표님 오늘 회사에 출근하셨어요?”
-네?
의외의 물음이었는지 윤 대리가 반문했다.
“신 대표님이 회사 안에 계신지 궁금해서요.”
-어······ 확인해볼게요. 근데 무슨 일 때문에 그러세요?
거절은 하지 않았지만, 탐탁찮은 말투였다.
아무래도 대표의 행방을 물어오니, 안 좋은 낌새가 나는가 보다.
“그냥 궁금해서요. 회사 자금운용 관련해서 어떻게 하고 계신가, 궁금하기도 하고.”
난 대충 이전에 윤 대리와 나눴던 대화 내용을 떠올려 대답했다.
“혹시 투자자들을 만나거나 하시진 않나 해서요. 하하.”
-에이~ 올쿠폰에서 지분매각 할 일도 없고. 추가 주식 발행도 안할 거예요.
할 일이 없기는.
사운이 달린 문제기 때문에 극비리에 진행 중이겠지만, 티마 매각은 이미 시작됐다.
물론 윤한서 대리 입장에선 내가 얼토당토않은 소리 내뱉는 것처럼 보이겠지.
날 멍청하게 봐준 덕분인지, 윤 대리의 목소리에 한결 적대감이 줄어들었다.
“그렇겠죠?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요. 부탁드릴게요.”
나도 부드럽게 윤 대리에게 부탁했다.
-아, 하하. 대표님 회사에 계신지만 확인해드리면 되죠? 알겠습니다!
잠시 후.
-······어. 지금 대표님이 회사에 안계시네요.
“예?”
의외의 소식에 더 당황한 건 나였다.
여기에 없으면, 굳이 죽치고 있을 필요가 없잖아.
“어, 어디 가셨는지 알 수 있을까요?”
-아, 그게. 저도 잘 모르겠어요. 제가 알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 서요.
‘홍보팀에게 비밀로 하고 이동했다고?’
느낌이 온다.
“외부업체 미팅인가요? 아니면······진짜 투자자 미팅이라도 하러 가신건가요?”
-글쎄요. 그건 아닐 거라 생각하지만, 딱히 뭐라 말씀드릴 수가 없네요. 죄송합니다.
만약 정말 인수 및 투자 관련 일정이라 해도, 윤 대리는 내게 정보를 주진 않을 거다.
뭐가 됐든, 더 시간을 끌어봐야 얻어낼 거리가 없다.
난 윤 대리와 통화를 종료하기로 했다.
“죄송하실 건 없죠. 알겠습니다. 말씀해주셔서 고마워요.”
인수와 관련해 더 얻어낼 정보는 그에게 없다.
‘과연 신 대표는 어디로 간 걸까.’
기업들은 중요한 외부업체와 미팅을 잡을 때 점심시간이 아니면 저녁식사 시간으로 한다.
식사라는 매개체를 둬야 이야기가 좀 더 부드럽고 길게 이어지기 때문이다.
뭐, 술 접대라는 한국식 문화도 있긴 하지만.
그게 매각 논의를 할 때에 쓰일 것 같진 않다.
‘지금 회사에 없다는 건, 점심식사 시간에 일정을 잡았을 가능성이 큰데.’
난 짐을 챙기지 않고 티마 건물 밖으로 나왔다.
본사 정문을 나오면 바로 정면에 주차장이 하나 있다.
‘무식하지만 지금으로썬 이 방법밖엔 없나.’
어디로 갔는지 모르니 쫓아갈 수 없다.
그렇다면 그가 돌아올 곳에서 기다리면 되는 거다.
난 영기와 마찬가지로, 이곳에서 뻗치기를 하며 신 대표를 마중하기로 결정했다.
새로 뜬 뉴스기사를 읽고, 영기와 대화하며 한 시간 여.
출입이 적은 주차장에 검은색 세단 한 대가 들어섰다.
‘설마.’
난 메이버 메인페이지가 떠있던 휴대전화 화면을 끄고 바지에 넣었다.
그리고 차의 행방을 눈으로 좇았다.
세단은 주차장 빈 공간에 주차하더니 곧 시동이 꺼졌다.
이윽고 뒷좌석과 보조석, 운전석까지 총 세 명의 사람이 내렸다.
다른 사람들은 누군지 알 수 없지만, 뒷좌석에서 내린 30대 초반의 젊은 남자만큼은 한눈에 알아봤다.
“신성현 대표님!”
회사 건물을 향해 걸어가던 세 명이 멈춰 섰다.
신성현 대표는 처음 보는 인물이 자신을 불렀다는 것을, 그리 달가워하지 않아보였다.
“누구시죠?”
신 대표가 아닌, 40대 초반의 남성이 내 앞을 막고 물어왔다.
“디지털투모로우 주진형 기자라고 합니다.”
누군진 모르겠지만, 티마 임원이겠지.
난 명함을 꺼내 그에게 건넸다.
명함을 받아 보던 남자가 갑자기 고개 숙여 인사했다.
“아, 기자님이시군요. 전 티마 경영지원 실장 강문찬입니다.”
대표와 경영지원 실장이 동시에 움직였다는 거군.
내 예상이 점점 더 설득력을 얻고 있었다.
“네 반갑습니다. 강 실장님.”
“그래서, 무슨 일이시죠?”
강문찬 실장이 싸늘한 눈매로 내게 다시 물어왔다.
“대표님께 여쭤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난 강 실장 대신, 신성현 대표를 직접 바라보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신 대표는 역시 입을 열 생각이 없어보였다.
“죄송하지만, 저희 홍보팀 쪽으로 문의주시겠습니까? 신 대표님은 업무가 있으셔서······”
전형적인 거절이다.
난 물러서지 않았다.
상대가 딱히 내게 시간 쓸 마음이 없다면, 그 마음을 만들어주면 될 것 아닌가.
“잠시면 됩니다. 티마 매각에 관해 짧게 물어보고 싶어서요.”
“······!”
강 실장이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그저 놀란 눈초리로 신 대표를 돌아봤을 뿐이다.
“디지털투모로우, 라고 하셨죠?”
드디어 신성현 대표가 입을 열었다.
“네, 주진형 기자입니다. 대표님.”
“무슨 얘길 들으셨는지 모르지만, 티마 매각은 없습니다.”
너무도 당당하게 이야기하는 모습이, 모든 추측을 일축시키려는 듯하다.
“그럼 답변이 되셨을 거라 생각하고, 가보겠습니다. 나중에 또 뵙죠.”
‘당연히 거짓이겠지만······ 이거 다시 파고들 지점이 없는데.’
신 대표의 기세에 짓눌린 난, 멍하니 건물로 향해가는 세 사람을 볼 수밖에 없었다.
그 때.
휴대전화에 문자메시지 알림이 떴다.
[티마 매각주관사 선정됐다는 것 확인했습니다. 구텐탁방크입니다. 자세한 건 전화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장도현]
내용을 확인하자마자 난 뛰었다.
“대표님!”
지겹다는 표정으로 신 대표가 돌아섰다.
“왜 그러시죠?”
“구텐탁방크.”
“······네?”
단어를 꺼내자마자 신성현 대표의 미간이 좁아졌다.
“올쿠폰이 티마 매각주관사로 구텐탁방크를 선정했죠? 오늘 점심도 그쪽과 일정 보내셨고.”
난 마치 다 알고 있다는 듯,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신 대표는 한 동안 말이 없다가, 결국 한숨을 내쉬었다.
“······매각 아닙니다.”
“그럼 뭐죠. 모사인 올쿠폰 쪽에서 지분매각을 시작하면 그게 매각 아니겠습니까?”
“아뇨. 지분 일부만 처분하고 올쿠폰은 대주주로써 자리를 지킬 겁니다. 저희의 경영권도 마찬가지구요. 추가 투자유치라고 해두죠.”
그러고보니 미래의 티마 보도자료에도 비슷한 내용이 있었던 것 같다.
티마 전면 매각이 아니라 올쿠폰이 대주주 자리를 지키는, 투자유치라고.
하지만 내 귀엔 그건 어디까지나 말장난으로 들린다.
그리고 올쿠폰이 과연 일부 지분만 매각하려 할까?
티마가 올해, 아니 적어도 내년 안에 수익을 낼거란 전망은 어느 애널리스트도 하지 않는 거다.
“뭐 그건 모를 일 아닐까요. 올쿠폰도 경영난, 티마도 수익을 못 내고 있는 상황인데.”
내 말에 신성현 대표의 이마에 주름이 잡혔다.
기분 나쁠 만하지, 티마에 대한 악평을 한 거니.
그렇지만 사실이지 않나.
신 대표도 딱히 반박하진 못했다.
“······어쨌든 저희가 올쿠폰 쪽과 협의한 건, 저희 경영권을 지키는 방향입니다. 이제 그만 가보겠습니다.”
급히 뒤돌아서는 신 대표에게 난 훅을 날렸다.
“만약 유메프 쪽이 투자를 한다면, 받으실 겁니까?”
돌아선 신 대표에게서 한숨이 새어나왔다.
“그럴 일은 절대 없을 겁니다.”
짜증난 어조로 대답한 뒤, 신 대표는 성큼성큼 내게서 멀어져 갔다.
남아있던 강문찬 실장은 반대로 내게 다가왔다.
“대표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저희 경영권엔 문제없을 겁니다. 혹시 기사를 쓰신다면 좀 더 확인해 보시고 쓰시는 게 좋을 것 같군요.”
조언이 아니라 협박 같다.
“네, 잘 알겠습니다.”
난 비웃는 태도로 그에게 대답했다.
딱히 반발해 말싸움을 할 필요는 없었다.
이렇게 수긍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들이 회사로 들어가고 난 후.
난 도현에게 바로 연락했다.
“과장님. 문자 확인했어요. 자세하게 말씀 해주세요.”
-네, 미국 올쿠폰이 뉴욕 구텐탁방크를 매각주관사로 선정했답니다. 독일계 글로벌 은행이죠. 계열사로 구텐탁 증권이 있는데, 아무래도 그쪽에서 도맡을 것 같습니다. 자세한 건, 저도 아직 입수전이구요.
“국내 업체를 선정할 줄 알았는데, 아니었군요.”
티마가 국내기업이기 때문에, 난 올쿠폰이 국내 업체를 매각주관사로 선정할 거라 점쳤었다.
허나 독일계 기업에게 맡기다니.
예상을 빗나간 일이었다.
-구텐탁방크가 금융업계에선 꽤 거물입니다. 국내 지점도 있구요.
“그렇군요. 그럼 예비입찰은 시작된 건가요?”
-아직 입니다. 매각주관사 선정은 완료됐지만, 당장은 구텐탁도 티마의 기업가치 측정하고 매각전략을 준비해야겠죠. 그 후 입찰공고를 낼 거라 생각합니다.
“그럼, 아직 기사는 그리 급하게 쓰지 않아도 괜찮겠군요.”
-뭐 올쿠폰이나 쿠텐탁 쪽에서 국내외 예상투자자 들에게 먼저 정보를 뿌렸을 순 있지만, 비밀유지협약 때문에 투자자들 입에서 새어나오진 않겠죠. 사견으로는 예비입찰 공고가 떴을 때. 그 때 언론에서 터져 나올 거라 봅니다.
그렇다면, 아직 시간은 있다.
“알겠습니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도현과 통화를 마친 뒤, 난 곧장 영기에게 전활 걸었다.
헌데 왠지 꽤 소음이 컸다.
“영기씨, 나야. 그쪽 별 일 없어?”
-선배, 저 지금 유메프 대표 쫓고 있어요. 아! 차 탄다!
“어? 어?”
통화가 끊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