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래에서 온 특종-44화 (44/107)

44. 라면 먹고 가요

“잠시만요. 전화가 와가지고.”

보채는 다른 기자들을 무시하고, 난 통화를 수락했다.

곧 티마 김서정 팀장의 목소리가 수화부에서 들려왔다.

-주 기자님, 안녕하세요! 저 티마 김서정입니다!

“네, 알고 있습니다.”

빠른 속도로 인사하는 김서정 팀장과 반대로 난 차분하게 대답했다.

김 팀장에게 살갑게 굴고 싶은 마음은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일이 터지니까 전화를 직접 주시는군.’

내가 김 팀장에게 전화를 건 적은 많았지만, 이렇게 준적은 처음이다.

바로 얼마 전에도 겪지 않았는가.

일정약속을 지키지 못하면서 끝까지 먼저 전화하지 않았던 거.

자질구레한 티마 얘기들도 대부분 윤한서 대리를 통해 전달받아 오기도 했고.

‘그럼, 과연 무슨 말을 할지, 들어나 볼까.’

난 김 팀장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기자님! 방금 내신 기사 잘 봤어요. 불금인데도 열일하시네요. ······근데 이거 사실인가요? 유메프가 저희 인수의향 갖고 있다는 게?

티마 매각 건은 묻지 않는 걸로 봐서 미리 알고 있었거나, 이미 확인한 모양이다.

내가 신성현 티마 대표를 만났을 때.

그 때 매각에 대해 통보받았을 수도 있다.

“네 사실입니다.”

내가 대답했다.

-어떤 분을 통해서 들으신 건가요?

“핫.”

기가 막혀서 웃음이 새어나왔다.

‘아마추어처럼 왜 이러시나 김서정 팀장.’

애초에 내가 말해줄 리 없는 걸 묻고 있다.

“그건 답변 해드릴 수 없군요. 아시잖아요?”

-······제가 알기론 아직 저희가 매각공고도 안 띄웠는데 유메프 쪽이 어떻게 알고 있나 싶어서요.

그건 아무래도 티마와 올쿠폰의 소통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겠지.

아니면 올쿠폰 측이 고의적으로 티마에게 정보제공을 하지 않았거나.

잘 생각해보면 유메프는 사실 아무 문제없이 인수협상을 하고 있을 뿐이다.

티마의 모든 지분은 올쿠폰이 갖고 있고, 그런 소유주와 메일로 대화중이니까.

“뭐, 공고가 뜨지 않았더라도 다 알 수 있잖아요? 저도 그랬구요.”

난 김 팀장을 골려주듯 밝은 어조로 말했다.

어차피 신성현 대표와 내가 만났다는 것도 김서정 팀장 귀에 들어와 있을 거다.

이 정도로만 얘기해도 충분히 알아듣겠지.

-네······ 그럴 수 있긴 한데. 좀 납득이 안가네요. 무엇보다 저희가 예전에 매각될 때도 유메프 측 인수제안이 왔었는데 칼같이 거절 했었거든요.

‘그런 일이 있었나.’

티마가 올쿠폰에 지분 100% 매각 된 건 2년 전.

내가 아직 기자가 되기 전의 일이다.

그 탓에 나도 자세한 속사정은 알지 못한다.

하지만 김서정 팀장의 말로 추측해보면, 유메프는 이전부터 티마를 노린 모양이다.

티마는 그런 유메프를 밀어냈던 거고.

-근데 무슨 생각으로 이제와 또 인수 하겠다고 말하고 다니는 건지 모르겠네요.

“그쪽에서 말하고 다니는 게 아닙니다. 제가 잘 알아낸 거지.”

말을 참 이상하게 하는 김서정 팀장에게, 내가 일갈했다.

실제로도 은상재 유메프 대표는 정체가 드러나지 않게 해달라고 부탁했지, 자랑스럽게 떠벌리진 않았으니까.

-아아, 네, 죄송합니다.

말실수 했다는 걸 알았는지, 김 팀장이 말을 멈췄다.

“어쨌든 여쭤보고 싶은 건 그게 다 인거죠? 혹여 기사내용 중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말씀해주시구요.”

내가 당당하게 떠봤다.

-아 그런 건 아닌데······

“그럼 됐구요. 나중에 뵙죠.”

내가 통화를 끝내자는 뉘앙스로 말했다.

난 유메프에 대한 불평을 들어주려고 김 팀장과 통화하고 있는 게 아니다.

쓸데없는 이야기만 늘어놓을 거라면 더 들을 필요 없다.

-아, 아뇨. 잠깐만요.

내 반응을 알아차렸는지, 다급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뭐가 또 남았습니까?”

-······기자님 저희 매각 관련해선 어디까지 알고 계세요?

이게 김 팀장이 진짜 묻고 싶었던 내용이 아닐까.

난 김 팀장의 의중을 파악하기 위해 반문했다.

“어떤 부분 때문에 그러시죠?”

-아, 아뇨. 그냥 어디까지 취재 하셨는지 궁금해서요.

한 번 더 기사가 나올까봐 걱정하는 뉘앙스다.

혹시 내 기사에 실린 내용보다, 매각 절차가 더 많이 진척이 돼있는 건가.

솔직하게 털어놓자면, 난 티마가 예비입찰을 시작했을 때 유메프를 극구 거부한다는 것만 알고 있다.

다른 누가 입찰에 참여하고, 인수의향서를 내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이 사람에게 친절하게 대해줄 필요는 없겠지.’

그래 그게 내 본심이다.

“그건 딱히 말씀 드릴 이유가 없는 것 같군요. 나중에 자연스레 알게 되실 겁니다.”

-아······ 아, 알겠습니다.

김서정 팀장은 그렇게 힘 빠진 목소리로 말하곤 통화를 끊었다.

‘그리 독한 사람은 아니네.’

늘 강한 인상을 보이던 사람이었기에, 좀 더 물고 늘어질 줄 알았지만 아니었다.

나로썬 더 이상 귀찮아지지 않아 다행이었다.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넣고, 난 다시 주변을 휙 둘러봤다.

날 둘러싸고 있었던 유메프 홍보팀은 각자 휴대전활 들고 통화하고 있었다.

슬쩍 대화를 들어보니 기자들에게 해명하는 거였다.

환영회에 참석해있던 기자들도, 어느새 각자 자리에 앉아 노트북을 두드리는 중이었다.

“하~ 주진형 이 녀석. 진짜 골 때리네.”

최경태 선배가 화면에 집중 한 채 내 욕을 하고 있다.

“죄송합니다. 선배.”

내가 웃으며 다가서자, 경태 선배가 손사래를 쳤다.

“가 인마. 혼자 술이라도 먹고 있어. 좀 있다가 죽여주마. 여- 실장님, 그래서 뭐라고 쓰면 된다구요?”

“네. ······한국 이커머스의 큰 성장을 목표로 티마 인수를 긍정적으로 고려중, 이렇게 쓰시면 될 것 같습니다.”

“오우케이. 알았어요.”

박지윤 실장은 은상재 대표에게서 모든 상황을 전달 다 받은 듯 했다.

그의 지휘로 남은 기자들의 기사가 완성돼갔다.

“에이! 출고했다!”

“어 선배, 저도요.”

기자들이 하나둘씩 기사작성을 마쳤다.

난 휴대전화로 인터넷에 접속해 기사를 검색했다.

[티마 매각돌입······유메프 ‘인수전 참여’- 주진형, 박영기 기자]

└[유메프 “티마 인수의향 있다” -최경태 기자]

└[티마 매각설에······ 유메프 출사표 –정광현 기자]

└[유메프, 티마 먹고 업계 1위 노리나 -유병국 기자]

└[올쿠폰 티마 매각, 유메프 “인수고려” -이수경 기자]

다행히, 내 기사가 가장 위에 올라와 있었다.

하긴 내가 따낸 특종인데 묻힌다면 참 억울할 터다.

‘조회수 걱정은 없겠네. 포털 최상위에 노출되니까.’

안심한 나는 다시 식탁 앞에 앉았다.

오늘 상황이 묘하게 되긴 했어도, 즐기자고 모인 자리가 아닌가.

“네, 네. 사실입니다. 네······ 아 그건 저희도 아직 파악이 안돼서요. 네 죄송합니다.”

비록 주인공인 이일형 홍보팀장은 저렇게 전화로 개고생하고 있지만.

그만큼 난 더 사죄하는 마음으로 환영회를 즐겨야겠다.

내가 빈 잔에 술을 따르자, 옆자리에서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던 예인이 노트북을 덮었다.

“다 썼어요?”

“네.”

“수고했어요. 술이나 합시다.”

“좋아요.”

예인은 다른 기자들과 달리 단 한마디도 날 원망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술 마시는 것에만 집중할 뿐.

“햐, 진짜 난놈은 난놈이야. 네가 괜히 미친 탈곡기로 불리는 게 아니구나, 주진형.”

“이제 이게 선배까지 터네?”

식탁에 둘러앉은 선배들 사이에, 난 애써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헤헤. 술 한 잔씩 받으시죠. 선배.”

난 우선 경태 선배에게 술병을 내밀어 분위기를 바꿔보려 했다.

허나 통하지 않았다.

“어허! 너부터 마셔야지. 무슨 소리야. 오늘 제정신으로 집 못 갈 거니까, 미리 연락해둬.”

“혼자 삽니다.”

“내가 정효한테 말해 둘게. 너 내일 연락 안 될 거라고. 당직인건 아니지? 맞아도 어쩔 수 없어.”

내용은 장난스러운데 말투는 기겁 할 만큼 진지하다.

“영기씨? 빨리 이쪽으로 와봐.”

난 최대한 침착한 척 영기를 불렀다.

“네넷, 선배.”

순진한 양, 영기가 내 옆으로 달려왔다.

“선배들께 인사드려. 이쪽은 방금 기사 같이 취재한 저희 인터넷2진 박영기 기자입니다.”

“안녕하십니까! 디지털투모로우 박영기입니다.”

사태 파악 못한 영기가 내 소개인사에 싱글벙글 웃으며 고갤 숙였다.

‘미안하지만······ 그래도 내가 사는 게 낫지 않겠니?’

난 선배들의 관심을 영기에게 돌려놓을 심산이었다.

“어허, 동작 그만. 밑장빼기냐?”

“네?”

그러나 경태 선배의 빠른 눈 놀림에 성사되지 못했다.

“넌 지금 이 상황을 모면하려고 얘를 불렀을 테지만, 소용없어. 둘 다 죽일 거니까!”

“히이익.”

난 꼼짝없이 선배들이 주는 술을 따라 마실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향기롭고 달콤할지라도, 술은 술이다.

연거푸 잔을 비우다보니, 점차 이성의 끈이 스르륵 손아귀에서 빠져나갔다.

“······나머지는 제가 마시죠······”

내 마지막 기억은, 예인이 선배들에게 뭔가 말하던 장면이었다.

그대로 스르르 눈이 감긴 뒤.

난 필름이 끊겼다.

내가 다시 정신을 차린 건, 해가 쨍쨍한 낮이 됐을 때였다.

“아으으, 여긴······?”

생전 처음 보는 집안.

난 푹신한 이불 위에 누워있었다.

상체를 일으키자 머리가 깨질 것 같은 두통이 밀려왔다.

“아오······ 얼마나 마신 거지.”

대충 꺾은 잔 수만 스무 번 가까이.

그 후로는 셀 기력도 없어서 그냥 마시기만 했던 것 같다.

난 지끈 거리는 머리 한 쪽을 손바닥으로 누르며 주변을 살폈다.

‘아무리 봐도 처음 보는 집인데.’

정말 한 번도 본적 없는 낯선 구조의 집이다.

상황파악이 안 되니, 일단은 휴대전화부터 찾았다.

“휴, 바지에 그대로 있네.”

다행히 휴대전화는 내 바지주머니에 고이 모셔져있었다.

요즘 취객 스마트폰 훔쳐가는 게 워낙 흔해, 이렇게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현재 시각은 토요일 오후 12시 28분.

지도 앱을 켜서 위치를 확인하니, 서울시 광진구······ 더더욱 영문을 모르겠다.

환영회가 열렸던 강남과는 꽤 거리가 있는 곳이다.

“누구 집이지?”

난 이불을 걷고 자리서 일어섰다.

내가 누워있던 곳은 거실.

세련된 주방과 보이고, 안방과 작은 방까지 있는 꽤 널찍한 가정집이었다.

적어도 40평 이상.

베란다 너머로는 한강풍경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여기 집값이······예상이 되는군.’

이런 시세 높은 아파트에 살만한 사람이 내 주변에 있던가?

난 천천히 거실을 돌아다니다가 진열장에 놓인 액자사진을 발견했다.

초등학생쯤으로 돼 보이는 여자아이가 밝게 웃고 있고, 아이의 양 손을 부모가 잡고 있는 훈훈한 사진이었다.

‘아버지 얼굴이······어디서 뵌 분 같기도 한데······’

그때, 도어락이 풀리는 소리와 함께 현관문이 열렸다.

“기, 김 기자!?”

“일어났네요.”

현관엔 편한 운동복 차림의 예인이 서있었다.

“여기 김 기자네 집이에요? 내가 왜 여기에······”

“또 만취해서 필름 끊겼기에, 제가 데려왔어요. 택시타고.”

“택시비 얼마나왔어요? 제가 줄게요.”

난 바로 지갑을 꺼냈다.

“아뇨. 최경태 선배가 돈으로 주셨어요. 나중에 감사인사나 하세요.”

“아······”

머쓱해진 난 다시 지갑을 넣었다.

예인은 장을 보고 온건지, 뭔가 잔뜩 든 비닐봉투를 들고 주방으로 걸어갔다.

“근데, 왜 굳이 김 기자 집에 날 데려왔어요.”

내가 뒤따라가며 물었다.

“주 기자 집도 모르고. 거리에 버려둘 순 없으니까요.”

꽤나 따듯한 이유였지만, 하필이면 혼자 사는 여자 집에 데려왔다는 게 문제다.

날 죽일 듯 술을 들이붓던 선배들은 그냥 자기 갈길 간 건가.

아이고 참 매정한 사람들이다.

“다른 분들은 여우같은 부인과 토끼 같은 자식들이 있다고 하시더군요.”

그 말의 어조는 아마 ‘악마 같은 부인’으로 풀이되지 않을까 싶다.

선배들의 처지를 이해하며 고개를 끄덕이다가, 문득 현실을 자각하고 머릴 흔들었다.

“아무리 그래도 여자 혼자 사는 집에······아, 부모님 계신가요?”

“저 혼자 살아요.”

역시나 예상외의 대답.

도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혼자 사는 집에 날 끌어들이나.

“그렇, 군요. 일단 하루 재워줘서 고마워요. 너무 오래 실례할 순 없으니까, 이제 나가볼게요.”

난 그렇게 얘기하고 거실 한구석에 놓인 내 짐들을 챙겼다.

그러자 예인이 의아하다는 듯 내게 물어왔다.

“어딜 가요?”

“에? 집에 가야죠. 지금까지 실례했으니······”

예인이 갑자기 비닐봉투서 대파를 꺼내더니 나한테 내밀었다.

“라면 먹고 가요.”

“에? 에에에에?”

“요리는 주 기자가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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