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래에서 온 특종-49화 (49/107)

49. 기자가 기사를 못 쓰면 알아서 쪽팔려해야죠

“아무튼, 아까도 설명 들으셨겠지만 여러분께 몇 가지 간단한 인터뷰를 할겁니다. 인터뷰는 여기 박영기 기자가 할 거구요. 편안하게 대답해주시면 됩니다.”

네 사람이 내 명함을 들고 고갤 끄덕였다.

“네에.”

난 옆에 앉은 영기의 등을 두드렸다.

“그럼 시작해.”

“네, 넵.”

영기는 드디어 머릿속 교통정리를 끝냈는지, 시원하게 대답했다.

내가 인터뷰 항목으로 제시했던 건, 유메프에 입사하려는 이유, 상품기획자란 직업에 대한 개인의 비전, 큐레이션 커머스에 대한 견해.

이 세 가지였다.

뭐 좀 더 생각해보면 몇 가지 질문을 더 추가할 수 있겠지만, 솔직히 의미 없다.

이 기사가 그렇게 중요한 것도 아니고.

본 목적을 위장하기 위한 영기의 연습 기사일 뿐이니까.

‘귀찮다는 거지, 뭐 그냥.’

난 영기가 어떻게 인터뷰 할지, 그저 조용히 지켜보기로 했다.

그래도 녀석이 나와 붙어 다닌 시간이 한 달 정도 된다.

내가 업계 관계자들을 인터뷰하는 장면을 몇 번이고 봤으니, 어느 정도 감은 있겠지.

게다가 상대는 딱히 부담가질 필요 없는 일반인이고.

“어······일단은요.”

휴대전화의 녹음 앱을 켜고, 영기가 첫 운을 뗐다.

다행히 음성에 떨림은 없다.

“저희가 소셜커머스 MD에 대해 취재 중인데. 음, 어, 여러분들도 MD에 대해 평소 생각했던 부분이 있어 입사지원을 하신 거잖아요? 그, 렇죠?”

‘잘하고 있어.’

난 묵묵히 괜찮다는 눈빛을 영기에 발사했다.

약간 말이 막히기도 했지만, 그 정도는 괜찮다.

“네.”

“네, 우선 MD에 대한 여러분들의 생각을 들려주셨으면 하는데요.”

영기가 살짝 휴대전화 화면을 확인했다.

아마도 내가 말했던 내용을 휴대전화 앱에 적어둔 모양이다.

“MD의 비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하네요.”

좋다.

순서가 좀 바뀌긴 했지만, 별로 중요하진 않다.

차분히 질문을 세 개 다 하기만 하면 된다.

“어- 비전이요?”

네 사람 중, 김성철이 되물었다.

“네, 뭐 미래상이라든지 발전가능성이라든지······”

“아, 그거라면 뭐. 솔직히 MD란게 괜찮은 상품 발굴해서 판매자가 저희 회사와 판매 계약을 맺도록 하는 일이잖아요? 최근엔 같은 상품이라도 제조사나 종류가 다양해서 사람들이 좋은 제품을 고르는 데에 많이 고민하고 그러는데. 아무래도 MD들은 최대한 사람들이 좋아할 좋은 상품을 고르고 찾다보니까, 더 믿을만하다? 그런 인식도 있고. 앞으로 사람들에게 더 필요해질 것 같아요.”

대충 원하는 대답이 나왔다.

성철 옆에 있던 20대 중반의 단발머리 여성도 입을 열었다.

유메프 출입증을 보니 유혜진이라 이름이 적혀있다.

“음, 저 같은 경우엔 평소에 화장품 같은 거에 관심이 진짜 많거든요. 그래서 진짜 많이 알아보기도 하고 직접 매장 가서 여러 개 발라보기도 하고 그래요. 이런 경험을 살려서 화장품 MD로 일할 생각인데, 꽤 메리트 있는 것 같아요. 경력이 쌓일수록 화장품 관련 업계에서 일하기도 좋을 것 같구요.”

약간 중구난방이지만 다듬으면 괜찮을 멘트다.

성철과 혜진이 차례대로 말한 후, 남은 두 사람도 각자의 생각을 말했다.

이후로도 인터뷰는 무리 없이 진행됐다.

중간에 유메프 입사하려는 이유를 물어봤을 때,

“유메프요? 돈이 많잖아요. 망할 것 같지 않아서요.”

등 너무 솔직한 대답들이 나와 약간 문제이긴 했지만.

뭐, 인터뷰 의도를 짚어준 후엔 기사에 쓸 수 있는 말들이 나왔다.

‘대충 정리 됐군.’

모든 질문을 마치고, 영기가 내 눈치를 보고 있었다.

“다 됐지? 수고하셨습니다.”

난 영기에게 확인 후, 면접자들에게 인사했다.

네 사람도 우리에게 수고했다며 인사했다.

“참, 혹시 가능하면 연락처를 좀 받을 수 있을까요? 영기씨도 받아두고.”

카페를 함께 나서며, 난 네 사람을 향해 말했다.

“네 연락처요?”

“예, 뭐 기사 쓰다가 더 여쭤볼 부분이 있을 수도 있고. 또 유메프 입사하시면 그땐 종사자로 또 취재할 수도 있으니까요 하하.”

이들이 거부감을 갖지 않도록 이유를 설명했다.

뭐 실제로도 일반인 인터뷰를 할 땐 연락처를 받아두는 게 기본이다.

드물게 기사 내용이 잘못되거나 인터뷰이의 신원을 증명해야 하는 순간이 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야 서로 명함교환을 하는데다가, 몇 번 연락 돌리면 대체로 알아낼 수 있다.

하지만 일반인들은 한 번 만나고 헤어지면 다시 연락하기가 쉽지 않다.

“네, 그러죠. 휴대전화로 찍으면 될까요?”

김성철이 내게 물었다.

“아, 제가 성철씨 휴대전화로 번호를 찍을게요.”

난 성철로부터 그의 전화길 받았다.

그리곤 통화앱에 들어가 내 번호를 입력했다.

번호 확인 후 통화 버튼을 누르자, 곧 내 휴대전화에 성철의 전화번호가 떴다.

“아 됐네요. 저장해두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내가 성철에게 말했다.

‘드디어 손에 넣었다.’

본래 계획보다 훨씬 수월하게 일이 풀린 거다.

처음엔 재직 중인 MD에게 먼저 접근한 후, 이들의 정보를 얻으려 했었다.

식사 시기가 절묘하게 겹친 덕분에 과정이 꽤나 단축됐다.

“아 감사합니다.”

영기도 옆에서 혜진 등 다른 면접자들의 연락처를 땄다.

그 후 우린 카페 출입문을 열고 골목길로 나왔다.

“뭐 제보하실 일이 있으시면 꼭 연락주시구요.”

길을 걸어가며 난 자연스럽게 강조했다.

이렇게 두세 번 얘기를 했음에도 난 안심이 되질 않았다.

물론 ‘터질 사건’ 직후 내가 연락을 해도 되긴 하지만, 이들이 다른 언론사에 먼저 접촉하면 소용없다.

“하하, 네. 그럴게요.”

내 말이 그냥 헤어지기 전 인사라 생각했는지, 성철이 웃으며 답했다.

그들과 헤어진 후, 나와 영기는 지하철을 탔다.

KGT 기자실로 가기 위함이다.

“이거 이대로 기사 쓰면 될까요?”

휴대전화를 든 채, 영기가 물어왔다.

“음, 단순히 MD 구직희망자들로만 기사를 쓰면 안 되지. 재직자들 인터뷰도 필요한데, 그건 내가 쿠퐁 쪽에 말해둘게. 나중에 그쪽까지만 취재하면 될 거야.”

기사가 탄탄하게 보이려면 다양한 관계자들의 인터뷰를 넣는 게 좋다.

그런 의미로 한 조언일 뿐, 첫 기사부터 영기가 마스터피스를 쓰길 기대하진 않는다.

게다가 언급이 안 된 티마 측은 현재 접근하기 어색하다.

물론 티마쪽에서 먼저 송강욱 실장을 통해 화해의 동작을 취하긴 했다.

하지만 그와 직접 만나기 전까진 완전히 관계가 풀렸다고 볼 순 없는 거니까.

‘내 자존심이 한 몫 하는 거지만.’

난 씁쓸하게 웃었다.

김서정 팀장에게 한 행동이 있으니, 당장 부탁하기가 애매한 거다.

“일단은 지금까지 들은 내용으로 뼈대만 잡아놓자. 아까 녹음했지? 기억 안 나면 그거 받아 적고.”

“넵, 알겠습니다.”

약 30분 후, 기자실에 도착한 난 영기에게 할 일을 지시했다.

“기사 대충 정리되면 보도 자료 온 거 확인하고 쓰고 있어줘.”

“넷.”

난 기자실 빈자리에 가방을 내려놓고 다시 밖으로 향했다.

어차피 당장 처리해야할 일은 없었다.

매일 작성해야 하는 발제기사들도, 미래의 보도 자료가 날아온 후부터 걱정하지 않고 있다.

적당히 쉬운 자료를 골라 사실 확인만 하고 써내면 됐으니까.

‘올라스퀘어나 가볼까.’

KGT본사 1층에 개설된 올라스퀘어에는 여러 종류의 휴대전화 단말기가 전시돼 있다.

아마 국내 유통업체나 대리점들 수준에선 가장 큰 규모일 거다.

그곳엔 광화문 주변 회사에 재직 중인 사람들이 구경하러 오곤 한다.

가끔씩 IT관련업계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대화도 들을 수 있는데, 꽤 유용한 정보가 나오기도 했다.

‘잠깐 들렸다오지 뭐.’

나만 살짝 쉬러가는 느낌이라 영기에겐 미안했지만, 어쩔 수 없다.

자신만의 기사를 쓰기로 자의로 결정한 거니까.

난 승강기를 탈 수 있는 복도중앙으로 걸어갔다.

그곳엔 왠지 낯익은 무리들이 잡담을 떠들고 있었다.

‘누구였더라.’

기억이 잘 나지 않아 난 그냥 승강기 단추를 누른 채 서있었다.

그러자,

“야, 주진형.”

그 무리 중 한 30대 초반의 남자가 날 불렀다.

“네?”

잘 모르는 사람인데, 내 이름을 알고 있다.

게다가 매우 친근한 척, 반말을 한다.

“넌 선배를 보고도 인사를 안 하냐? 어?”

난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아, 친근한 게 아니라 적대적 인거였나.’

이런 경우는 처음 겪어보는 일이다.

숱한 선배들을 만나봤지만, 통성명도 안한 사이인데 인사를 요구하는 사람은 없었으니까.

그렇지 않은가.

적어도 서로가 누군지는 알아야 인사를 하든가 말든가 하지.

기자인지 아닌지도 모르는 상대에게 다짜고짜 선배라고 부를까.

애초에 개인플레이가 강한 기자에게 뭔가 강요한다는 것부터 잘못된 거다.

‘참. 황당하지만 얘기나 해볼까.’

난 감정을 추스르고, 일단 대화를 시도했다.

“저기, 처음 뵙는 것 같은데- 선배 기자셨습니까?”

헌데 이 말이 더 그의 신경에 거슬린 모양이다.

“뭐? 처음 봐? 네가 날 모른다고?”

자존심이 상당히 상한 듯, 그가 씩씩대며 물었다.

“예······”

난 대답하고서 상대의 목에 걸린 기자실 출입증을 확인했다.

[조선일간 표동수 기자님]

조선일간 표동수, 그러고 보니 어디선가 들어본 기억이 날 것 같기도 하다.

조선일간이라면 국내 최고로 꼽히는 언론사니까.

‘근데······딱히 기억나는 기사는 없는데?’

매일매일 뉴스기사를 읽는 나는, IT기사 중 훌륭한 것들을 갈무리하고 기자 이름까지 체크해둔다.

이디넷의 백봉사 선배도 그렇게 알게 돼, 나중에 내가 먼저 접근했던 거다.

하지만 표동수라는 이름은 내 기억에 없다.

“저기, 제가 기억나는 기사가 없어서 잘 모르겠는데 통신 담당기자십니까?”

“뭐 이런 건방진 새끼가 다 있어?”

표동수가 마치 나를 한 대 칠 것처럼 몸을 들이댔다.

그러자 무리에 속해있던 자들이 그를 붙잡아 말렸다.

-조심하게, 조선일간 표동수가 주 후밸 그리 곱게 보는 것 같지가 않네.

이때, 내 머릿속에 기문 선배의 목소리가 울렸다.

아니 오래전에 해줬던 말이 떠오른 거다.

‘아! SGT 스터디 후에 밥 먹고 나와서!’

-무리의 중심이 표동수 기자네. 조선일간, 중심일보, 동오일보. 메이저들끼리 모였지.

이 말도 기억났다.

난 빠르게 다른 사람들의 출입증도 스캔했다.

‘맞네, 맞어.’

정말로 중심일보와 동오일보 등 주요 언론사 소속 기자들이다.

“실례했습니다, 선배! 이제 기억났습니다!”

내가 황급히 외쳤다.

“이게 좀 잘나간다고 선배를 개 무시하네?”

그러나 내 말에 별 반응 없이, 표동수는 여전히 분노상태다.

“야, 네가 단독 좀 몇 번 써냈다고 우리가 우습냐? 깔보는 거야? 뭐? 기억나는 기사가 없어?”

내게 표동수는 딱히 우스운 존재가 아니다.

왜냐면 지금까지 내 안에 존재감이 전혀 없었거든.

우스울 일 자체가 아예 없는 거지.

“죄송합니다. 그런 뜻으로 말씀 드린 건 아니었습니다.”

어쨌든 오해할만한 행동을 한 건 나니까.

우선 진심으로 사과했다.

“이 새끼가, 언제쯤 인사하나 기다려봤더니 끝까지 뻣뻣하게 굴더라니.”

“너보다 후배가 어디 있다고 재고 다녀. 1년 차짜리가 건방지게.”

‘나도 후배 있는데.’

무리에 속해있는 다른 선배들의 폭언이 이어졌다.

딱히 내 마음을 긁는 아픈 공격은 아니다.

그렇다고 너무 태연하게 굴면, 더 밉상으로 찍힐게 뻔하겠지.

난 일부러 기가 죽은 듯 고갤 푹 숙이고 최대한 표정을 가렸다.

이럴 땐 수그러든 티를 내야 저쪽도 만족하고 멈추는 법.

“기자가 기사를 못 쓰면 알아서 쪽팔려해야죠.”

새로운 목소리가 등장했다.

얼굴을 보지 않아도 누군지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저건 또······뭐야?”

곁에 서있던 동오일보 기자가 어이없다는 말투로 묻는다.

“이디넷 김예인이에요. 전 능력 없는 기자는 기자로 안치니까, 선배대접은 못해요.”

이거 완전 대 환장파티가 이어지겠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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