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 물론이죠. 지금 어디세요
‘오 제발!’
난 목을 돌려 예인을 봤다.
이제 기자실로 가려는 듯 가방을 메고 있었다.
‘조용히 지나가지 왜 일을 크게 만들려고.’
내가 하지 말라는 눈빛을 보냈지만, 소용없었다.
예인은 우리가 모여 있는 쪽으로 점차 다가왔다.
“매체 이름만 믿고 제대로 된 취재도 안하니 좋은 기사가 나올 수 없죠.”
“이게······ 얼굴만 믿고 많이 까분다? 김예인.”
구면인걸까.
예인은 표동수 기자에 대해 아는 듯 보였다.
표동수는 그런 예인에게 언짢은 듯 대답했다.
하지만 그의 어조는 내게 말하던 것처럼 공격적이진 않았다.
‘말은 저 여자가 더 심하게 하는데 왜 나한테만 그러냐.’
억울한 감이 없잖아 있지만 하소연할 상황은 아니다.
“사실만 말했어요. 내 얼굴하곤 별개의 얘기죠.”
“후우.”
표동수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난 혹시나 예인이 한 대 맞지는 않을까, 살짝 걱정이 됐다.
이정도 분위기라면 누가 주먹을 휘둘러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나저나······시선이 완전 저쪽으로 쏠렸는데.’
중간에 고개만 숙이고 있는 나로썬, 상당히 난감했다.
난 슬금슬금 고갤 들고 옆쪽으로 몸을 뺐다.
자연스레 예인과 표동수 사이를 비워둔 꼴이 됐다.
“어차피 종합일간지에서 우리처럼 심도 있게 기사를 쓸 거란 생각은 안 해요.”
예인이 말을 계속했다.
듣는 내 입장에선 꽤나 아슬아슬한 얘기들이다.
확실히, 전문지와 달리 대형 언론사들은 다양한 분야를 취재한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정치와 사회면의 비중이 크다.
회사에서 밀어주고, 사회에서도 알아주는 만큼 유능한 인력들은 그 쪽으로 몰린다.
반대로 IT같은 경우 경제면에 뭉뚱그려 들어가는 경우가 대다수다.
‘그렇다보니 그다지 전문성이 느껴지지 않긴 하지. 기자들도 능력이나 성과를 그다지 인정받지 못하는 편이고. 어디까지나 메인 디쉬는 정치니까.’
그렇다고 예인 저렇게 대놓고 얘기하는 건, 싸우잔 소리밖에 안 된다.
“그래도 적어도 자기 색깔 있는 발제기사는 내야겠죠. 여기 주진형 기자처럼.”
예인의 지명에 다시 무리의 시선이 내게로 쏠렸다.
심각하게 자존심이 상한 얼굴들이다.
다행히 노려만 볼 뿐 별다른 말은 없었다.
“흥!”
표동수가 내 어깰 밀치곤 기자실 쪽으로 걸어갔다.
그의 뒤를 쫓아 다른 기자들도 움직였다.
무리가 다 사라진 후에야 날 옭아매던 구속구가 풀린 기분이 들었다.
“뭘 그렇게 바보같이 서있어?”
내가 안도하고 있을 때, 예인이 물어왔다.
낯선 그의 반말에 순간 잘못 들은 줄 알았다.
“네? 아니, 어?”
당황한 나머지 말을 더듬었다.
그러고 보니 예인과 반말하기로 했던가.
참 익숙해지기 어려울 것 같은 일이다.
“뭐, 일단 도와줘서 고마워.”
난 예인에게 솔직하게 말했다.
뭐 별로 큰 위기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상황을 빠르게 종결시켜줬으니.
그것에 대한 감사였다.
“별로.”
예인 특유의 무심함이 담긴 한 단어였다.
역시 날 도와주려고 껴든 건 아닌 모양이다.
“저 표동수라는 사람, 잘 알아?”
내가 조심스레 물어봤다.
뒤늦게 기억이 나긴했지만, 표동수 또한 통신 분야 취재기자였다.
그 말은 앞으로도 그와 계속 마주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거다.
‘미리 알아둬야겠는데. 최대한 상대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지만.’
적어도 누군지는 알아야 대응 방법을 고민할 것 아닌가.
“조선일간 표동수 기자. 보도 자료 아니면, 짜깁기 기사가 주. 그 외엔 나도 잘은 몰라.”
잘 모르는 사람치곤 꽤 아픈 공격을 내뱉던데.
난 갸웃거리며 다시 물었다.
“그래도 어느 정도 아는 사이 아니었어? 서로 이름도 알고. 저쪽은 너랑 친해 보이던데.”
어디까지나 표동수가 예인을 대하는 태도만으로 판단한 거지만.
내 말을 들은 예인은 아리송한 표정이 됐다.
“글쎄. 내 기억엔 쓸데없이 술 마시자는 말만 계속해서 꺼지라고 한 기억밖에 없는데.”
“······”
무슨 일이 있었는지 충분히 알겠다.
굳이 상상하려 하지 않아도 “꺼져요”를 말하는 예인이 보인 거다.
표동수로써는 예인과 잘해 보고픈 마음에 말을 걸었겠지만, 성격이 저럴 줄은 몰랐겠지.
‘그래도 아직 마음이 좀 남아있는 모양이던데.’
표동수의 행동을 보아하니 예인을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느낌이었다.
뭐, 예인이 그런 걸 다 알고서 그렇게 무례하게 군건 아닐 테지만.
아마 생판 모르는 사람이라도 폭언을 일삼을 여자다.
‘좋아하는 거야 사람 마음이지만, 친분이 있다면 뜯어말리고 싶군.’
난 표동수의 연심에 안타까움을 표했다.
“어쨌든, 너도 너무 매섭게 말하고 다니지 마. 그거 다 너한테 돌아온다.”
“매섭게 말 안했는데.”
그거야 네 기준이고.
난 예인에게 사람의 마음과 상처에 대해 말하려다가 그만 뒀다.
서로 말을 놓고 조금은 친근한 관계가 되었다곤 하나, 내가 그런 강의까지 할 필요는 없겠지.
“그래. 아무튼 이제 기자실 들어가? 요샌 어디 취재하는데?”
최근 자주 만나긴 했지만, 정작 기사 얘긴 나눈 적 없었다.
이렇게 만남 김에 물어보기로 했다.
“코코아.”
“아주 찰거머리처럼 붙었구나.”
이런, 속마음이 튀어나왔네.
말을 내뱉고 난 아차 싶었다.
다행히 예인은 내 말에 대해 신경 쓰지 않는다.
“아직 코코아페이 기사, 못 내보냈어.”
내일코코아가 준비 중인 첫 핀테크 서비스다.
예인이 몇 주간 취재해 먼저 파악한 내용이고.
“아 그거······ LC CNS선정 부분은 빼고?”
예인은 이미 이적우 내일코코아 대표와 거래를 한 상태다.
내일코코아에 민감한 부분, 협력사 부정선정을 빼는 대신.
이 대표로부터 합병이 무산 될 뻔했던 일화를 들었다.
“일단은.”
의미심장한 대답이다.
언젠가 그 내용도 보도하겠다는 거니까.
나야 상관없지만 내일코코아로써는 잔뜩 경계할 일이다.
“······그래, 하긴 우리가 기업 사정을 다 봐줄 필요는 없는 거니까.”
뭐, 서로간의 약속과 신의는 알아서 잘 해결하겠지.
“넌?”
이젠 예인으로부터 질문이 들어왔다.
“난 뭐하냐고?”
의미를 알면서도 일부러 반문했다.
잠시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던 까닭이다.
당장 유메프를 취재하고 있다, 솔직하게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딱히 취재하는 게 없다고 하기에는 설득력이 없다.
“음, 최근엔 박영기 기자 교육을 좀 하고 있어서. 제대로 취재하는 곳은 없으려나.”
크게 거짓말은 하는 건 아니지.
유메프 인턴 갑질 건도 취재가 아니라 연락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니까.
“혼자 독특한 기사는 계속 쓰던데?”
예인이 말하는 독특한 기사라는 건, 남들이 잘 안 쓰는 기사들이었다.
예를 들자면 [국내외 핀테크 붐, 중금리 시장 노린다] 같은 제목과 내용들이다.
“아, 어. 코코아페이라는 거 듣고 나서 나도 핀테크 쪽 공부하고 있거든.”
사실 공부 뿐 만 아니라, 이제 막 서비스를 시작하려는 핀테크 업체들의 일주일 후 보도 자료가 큰 도움이 됐다.
여러모로 시기적절하다고나 할까.
코코아페이가 정식 출시되고 나면, 언론은 핀테크에 대해 집중 조명할게 뻔하다.
그만큼 내일코코아가 국내 IT업계에 갖는 위상이나 영향력은 크다.
미리미리 공부해둬야 나중에 편하겠지.
“좋은 판단이라 생각해.”
예인은 전혀 칭찬 같지 않은 말투로 말했다.
어쩌면 의외의 경쟁자로써 경계하고 있을지도 모르지.
예인으로부터 핀테크에 대한 얘길 듣기 전엔 관심도 없었던 나니까.
“진심이야?”
내가 은근슬쩍 속을 떠봤다.
“그럼? 아닐 이유라도 있어?”
뭐, 언행일치라 이건가.
거기까지만 하기로 했다.
“아니, 그다지 감정이 안 느껴져서 물어봤어.”
“그래서? 넌 기자실 안 들어가?”
“아니, 방금 나온 거야. 잠깐 올라스퀘어 내려가 보려고.”
드디어 내가 기자실을 나온 이유가 대화의 화제로 올랐군.
뭔가 쓸데없는 과정이 길었지만, 지금이라도 목적지를 향해 가면 됐다.
“올라스퀘어는 왜?”
승강기로 걸어가는데 예인이 캐물었다.
난 그를 지나쳐 승강기 단추를 누르며 답했다.
“그냥 구경도 좀 할 겸.”
“구경? 여유롭네.”
어딘가 날 질책하는 어조였다.
“한 가지 알려줄게. 곧 우리 아빠가 한국으로 돌아와.”
“······어?”
뭔 소리지, 이건 뜬금없이.
난 미간을 찌푸리며 이 말의 숨은 뜻을 찾아내려 애썼다.
헌데 도통 감이 잡히질 않는다.
“긴장하고 있어. 꽤나 바빠질 테니까.”
“내가?”
오른손 검지로 나 자신을 가리키며 물었다.
“응.”
예인이 간결하게 대답했다.
아니, 우리 아버지도 아니고 타인의 아버지가 나와 무슨 상관이라고.
내가 왜 바빠진단 말인가.
‘······? 어?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드는데. 설마 착각이겠지.’
주마등처럼 예인과 호텔에서의 하룻밤, 집에서의 하룻밤이 흘러간다.
그리고 내게 호통 치는 의문의 아버님과 우는 예인의 모습이-
‘아니, 아니, 아니. 전혀 아니겠지.’
고개를 천천히 흔들어 부정해본다.
난 불안함을 가득 안고 문이 열린 승강기에 탑승했다.
그렇게 며칠 간.
난 꽤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핀테크에 대한 공부도 멈추지 않고 해나갔고, 그간 일하느라 엄두내지 못했던 휴식도 취했다.
그럼에도 매일 자료를 정리해 장도현 과장에게 전달하는 일은 빼먹지 않았다.
도현으로부터 긍정적인 소식도 들려왔다.
-주 기자님! 지난 번 주셨던 SDS 기업공개 정보 덕분에 대박투자가 터졌습니다!
사성그룹 계열사인 사성SDS가 기업공개를 준비 한다는 정보.
내가 일주일 전 도현에게 넘겼던 내용이다.
실제 사성SDS가 상장 계획을 발표하면서, SDS 주가는 물론 같은 사성그룹 계열사의 주가도 상향세를 탔다.
“잘됐네요. 축하드립니다.”
-저도 축하드립니다, 기자님. 덕분에 저희 쪽 투자자 측에서 추가 투자까지 고려하고 있습니다. 인센티브는 기대하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아주 반가운 소리였다.
물론 도현이 투자규모나 인센티브에 대해 자세히 말해주지 않아, 수치를 짐작하긴 어렵다.
하지만 저렇게 당당하게 기대해도 좋다 얘기할 정도라면, 작년 인센티브는 충분히 뛰어넘지 않을까 싶다.
‘뭐, 기다려보면 자연히 알게 되겠지.’
급하게 굴지 않기로 했다.
영기도 느릿하지만 착실하게 기사를 썼다.
난 쿠퐁 측에 부탁해 쿠퐁MD를 영기에게 연결시켜줬다.
영기가 직접 MD와 접촉하기까지 시일이 좀 소요됐지만, 인터뷰는 무리없이 딸 수 있었다.
유메프 인턴갑질 해명 자료가 발송되기 바로 전 날.
나와 영기는 함께 SGT 기자실에서 기사를 쓰고 있었다.
“어때, 영기씨. 거의 다 써가?”
대충 할 일을 정리한 내가 영기에게 다가가 말했다.
영기는 노트북 자판에서 손을 뗀 채로 입을 열지 못했다.
뭐라 말하고 싶은데 잘 표현할 수 없는 상태인 듯하다.
“뭐가 잘 안 돼?”
“아, 거의 다 쓰긴 했는데. 솔직히 잘 못 쓴 것 같아요. 좀 이상하고······”
“괜찮아. 처음부터 잘 쓰면 그게 수습이겠어? 다 이해하니까 완성시켜서 보내줘. 빨리 올려야지. 기사 하나 쓰는데 며칠 잡아먹으면 안 돼.”
기사의 완성도에 대한 고민.
이런 영기의 맘을 충분히 이해하기에, 기특하단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기사는 문학작품이 아니라 정형화된 글일 뿐이고, 신속함이 생명이다.
영기가 취재한 내용이 논리적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니, 대충 가다듬는 정도는 내가 해도 괜찮다.
“네 알겠어요, 선배.”
영기가 대답하곤, 다시 노트북에 손과 눈을 집중시켰다.
난 다시 내 자리로 돌아가다가 바지서 휴대전활 꺼냈다.
[유메프 인턴 김성철]
드디어, 기다려왔던 전화가 걸려왔다.
난 숨길 수 없는 기쁨의 얼굴로 통화를 수락했다.
-여보세요? 디지털투모로우 주진형 기자님이시죠?
난 상대가 누군지 알면서도 태연하게 모르는 척 연기했다.
“네, 맞는데요.”
-기자님! 저 김성철인데요. 저번에 유메프 인터뷰했던 인턴이요.
알고 있다.
당신이 내게 전화걸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그렇지만 내색할 필요는 없다.
“네. 안녕하세요!”
-저기 혹시 지금 만날 수 있을까요? 저희가······ 기자님 도움이 필요해요.
내용은 정중했지만, 성철의 말투는 급박하게 느껴졌다.
아무래도 예정됐던 사태가 터진 거겠지.
“물론이죠. 지금 어디세요?”
그의 초조함을 난 경쾌하게 받아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