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래에서 온 특종-51화 (51/107)

51. 내뱉은 말의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고

1시간 뒤.

난 인터뷰를 했던 삼성동 카페에서 김성철을 만날 수 있었다.

그곳엔 성철 외에도, 함께 인터뷰를 했던 유혜진이 함께였다.

“안녕하세요. 오랜만이군요.”

난 환하게 웃으며 인사했다.

그리곤 손을 내밀어 두 사람과 악수했다.

“근데 무슨 일이시기에 그리 급하게 불렀나요?”

뭐 때문에 불렀는지 알고 있지만, 괜히 아는 척할 필요는 없다.

-그 때, 그 유메프 근처 카페에요. 기자님! 저희 좀 꼭 도와주세요. 부탁드리겠습니다.

1시간 전, 간절하게 얘기하던 성철의 수화기 너머 목소리가 마지막.

상황에 대한 더 자세한 얘기는 아직 듣지 못했으니.

이들이 직접 말해줘야 비로소 내게 기사 쓸 명분이 생긴다.

‘차분히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겠지.’

난 성철과 혜진이 털어놓길 기다렸다.

“네, 일단 앉으세요.”

성철의 말대로 난 카페 자리에 앉았다.

공교롭게도 5일 전, 우리가 인터뷰했던 그 자리였다.

“명함 받을 땐 몰랐는데······ 일이 이렇게 되니까 기자님이 바로 생각 나더라구요. 검색해보니까 기자님이 나름 유명한 기사도 많이 쓰시고······ 몰라 뵈서 죄송합니다.”

성철은 한숨을 내쉬며 내게 말했다.

시선을 내리까는 모습은 굉장히 자조적으로 보였다.

“하하. 아니에요. 유메프 관련한 일이라고 하셨죠? 천천히 말씀해보세요.”

“네······”

혜진이 대신 대답했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눈동자였다.

“저희······ 이번 채용면접으로 들어온 인턴들, 모두 해고당했습니다.”

“네?”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난 최대한 놀란 척을 해보였다.

그래야 이 두 사람이 내게 마음을 열어 줄 테니.

“한명도, 합격하지 못했습니다.”

성철이 덧붙였다.

그 목소리엔 약간의 분노도 묻어있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죠? 아무리 그래도 한 두 명은 붙을 거라 생각했는데.”

채용을 한다는 건 말 그대로 회사에 인력증강이 필요하단 뜻이다.

물론 지원자들 모두가 회사가 정한 기준에 크게 미달한다면, 합격자가 없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헌데 그러기가 쉬울까, 이 오버스펙 시대에?

“······저희도 의문이에요. 저흰 적어도 대여섯 명은 정사원이 될 거라 생각했어요.”

혜진이 이렇게 숫자를 얘기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다.

난 확인해보기로 했다.

“더 자세하게 얘기해주시겠어요? 왜 그렇게 생각하셨는지.”

“며칠 전에 어느 정도 계약 성과를 낸 인턴들만  모아서 회식을 한 적이 있어요. 그때 저흴 담당하신 팀장님이 잘하고 있다, 지금만큼만 하면 여러분들은 다 정직원 될 거다. 그렇게 얘길 했거든요.”

지난 번 경양식 집에서 봤던 그 사람인가.

난 흐릿해진 그 사람의 얼굴을 떠올려봤다.

딱히 나쁜 인상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그리고요?”

내가 추가 증언을 요구했다.

이것만으로 합격을 단정 짓기는 약하다.

확실하게 유메프를 걸고 넘어트릴 수 있는 기술이 있어야 한다.

“MD기획실장님도 저희에게 오리엔테이션 할 때 최대한 많이 뽑을 거라 설명했었어요. 적어도 다서, 여섯 명이 될 수 있다고요.”

이번엔 혜진 대신 성철이 입을 열었다.

“흠, 유메프 쪽에선 뭐라고 하나요? 합격자가 없다는 것에 대해서.”

애초에 유메프 쪽에 합당한 이유와 설명이 있었을리 없다.

그랬다면 이들이 이렇게 납득하지 못한 채 날 찾아오지 않았겠지.

‘기준 미달이라고 했던가.’

나도 미래의 자료를 봤기에 대충은 알고 있다.

과연, 어떤 기준이었을까.

내가 생각하는 사이, 성철이 답했다.

“수습 직원들 각자 한 명씩 10건 이상의 신규계약을 따왔어야 합격이라고 하던데요. 저희는 진짜 2주 동안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얘기였어요. 황당해서 따졌어요. 그게 가능한 숫자냐고. 2주 동안 계약 10건이요? 그건 선배님들도 쉽지 않을걸요. 하물며 경험 없는 저희들이 어떻게 그 할당량을 채워요.”

난 성철의 이야기를 조용히 들었다.

나야 MD업무에 대해 자세하게는 모르지만, 굉장히 강도가 세다는 건 주워들은 적 있다.

2주 동안 10건 이상의 신규계약.

거의 매일 한 건 이상의 계약을 따야만 가능한 숫자다.

‘불가능한 건 아니지······하지만 확실히 기준이 높다.’

기자로 비교하자면 매일 취재하자마자 기사를 내는 거다.

기사는 내용에 따라 취재가 빨리 끝나는 경우도 있고, 길어야 2-3시간 정도면 발제기사 하나가 완성된다.

나 또한 매일 기사를 쓰고 있으니 불가능한 건 아니다.

‘하지만 수습기자인 영기라면? 가능할까?’

아니.

영기는 소셜커머스 MD인터뷰 기사를 하나 쓰는 데에도 3일 정도 걸렸다.

내가 한다면 자료받고 1-2시간 안에 끝날 업무지만, 경험과 요령이 없는 사람들에겐 높은 벽인 거다.

“그것뿐만 아니에요.”

내가 입을 다물고 있자 혜진도 옆에서 거들었다.

“며칠 동안 선배들이 가르쳐주시면서 함께 움직였는데, ‘이정도면 충분히 혼자서 해도 되겠다’고 하면서 그 후론 저희들 다 혼자 계약하러 다녔어요. 그땐 저희가 잘해서 그런 줄 알았어요. 저희 진짜 하루에 50군데 씩 열심히 돌았거든요. 정직원 분들처럼 밤 10시 돼서 퇴근하는 것도 일상이었고······근데 이제 와서 탈락이라니 진짜 너무 억울해요.”

말하다가 감정이 북받쳤는지, 혜진이 울먹였다.

그를 보며 나도 안타까운 마음이 솟구쳤다.

하지만 더 내용을 들어야만 한다.

난 우는 혜진을 성철에게 또 물었다.

“주로, 어느 지역에서 계약을 받았나요?”

“저희는 강남, 강북, 강동을 주로 나갔는데 인원을 나눠서 지역별로 움직였어요. 계약처는 맛집 위주로 진행 됐구요. 유메프에서도 음식점 위주로 계약을 따오라고 구체적으로 얘기했어요.”

“계약은 몇 개나 체결했나요?”

“제일 많이 따낸 사람이 일곱 군데였어요. 걔는 실장님한테 칭찬도 받았거든요. 전 다섯 곳이었구요. 그래도 선배들은 분명히 계약 수가 중요한 게 아니다, 열심히만 하라고 조언했습니다. 2주 동안 10개 이상의 계약을 따야 된다는 말은 누구도 하질 않았어요. 솔직히 그 애라도 합격됐다면 이렇게 억울하진 않을 겁니다. 이건 완전 2주간 부려먹을 임시직들이 필요했던 게 아닌가, 우리가 이용당한 건가 생각이 들어요.”

이야길 들어보니 성철이 억울할만하다.

하라는대로 했고, 잘한다는 소리까지 들었다.

그런데 결과는 단 한명의 채용자도 없다니.

무력감과 허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겠지.

“그리고 제가 따낸 계약이요, 지금 유메프 홈페이지서 구매도 할 수 있어요. 계약 따낸 사람은 잘라놓고 버젓이 판매하고 있는데 진짜 어이가 없더라구요.”

“어? 좀 보여주시겠어요?”

성철이 내게 자신의 휴대전화 화면을 내밀었다.

거기엔 유메프 사이트 내에 게시된, 강동구 소재의 일본음식점 티켓 판매페이지가 떠 있었다.

“이건가요?”

“네. 제거 말고도 다른 인턴들 계약도 올라와 있어요.”

난 성철이 보여주는 웹페이지들을 확인했다.

확실히 모두 강남, 강북, 강동구 주변 음식점 지역딜이었다.

“그래서, 일하면서 돈은 주던가요?”

“네, 하루에 5만원씩 받았어요. 저희 다들 연장근로 수당까지 합해서 55만원 받았습니다. 당연히 인센티브는 없었구요.”

본래 영업직은 계약한 업체의 수수료 일부를 인센티브로 받게 된다.

하지만 수습이었고 해고, 아니 탈락된 탓에 받을 수 없었던 거겠지.

“출근시간이 몇 시죠?”

시급을 계산하기 위해 일한 시간을 알아야 했다.

“오전 10시요.”

오전 10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총 12시간이다.

식사시간 1시간을 제하고 11시간 동안 일을 했으니, 5만 5,000원을 11로 나누면.

시급 5,000원이 된다.

최저시급에 못 미치는 금액이다.

‘발목 잡을 요소들은 충분하네.’

이정도면 됐다.

물론 성철과 혜진은 더 하고픈 말이 있겠지만, 난 우선 빨리 기사를 내기로 했다.

“오케이. 알았어요. 이쯤하면 될 것 같네요.”

“됐나요? 기사, 쓰실 수 있어요?”

혜진의 물음에 난 고갤 끄덕여줬다.

“유메프 쪽하고도 얘기해서 사실관계 확인 후, 기사 나갈 겁니다.”

내 말에 두 사람의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혹시, 유메프 쪽에서 손을 써서 기사가 안 나갈 거라 생각하는 걸까.

쉽게 말을 꺼내지 못하는 둘에게 내가 먼저 안심시키기로 했다.

“걱정 마세요. 양측의 입장을 공평하게 싣기 위함이지, 기사를 가지고 협상을 한다거나 보도를 안 한다거나 하는 일은 절대 없으니까.”

난 장담했다.

무엇보다 이건 나 혼자 막아보겠다 해서 막을 수 있는 기사가 아니다.

내가 아니더라도 다른 기자들에게 넘기면 금방 퍼져나갈 테니까.

“그러니까, 믿고 기다려요.”

다른 기자랑 접촉하지 말고.

뒷말은 삼킨 채 난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 기자님. 어디 가시게요?”

내가 짐을 챙기는 걸 보고 성철이 물었다.

“유메프 본사로 갈 겁니다. 기사는 적어도 2시간 안에 출고되도록 노력해볼게요.”

“네! 감사합니다.”

“기자님, 기사 기다릴게요.”

난 배웅하는 성철과 혜진을 카페에 두고 유메프 본사로 이동했다.

1층 카페 테이블 위에 노트북을 꺼내놓은 뒤.

방금 전에 들은 내용들을 모두 노트북에 받아 적기 시작했다.

먼저 성철과 혜진, 두 사람은 실명 대신 면접자 김모씨, 유모씨로 명명했다.

그리곤 그들의 증언을 대화 형태로 기사에 녹였다.

내가 별도로 추가할 내용이 많지 않았기에, 기사는 생각보다 빨리 그 틀을 갖추게 됐다.

1차 탈고 된 기사를 저장해둔 후.

난 휴대전화를 집어 유메프 박지윤 실장에게 전화했다.

-네! 주 기자님. 안녕하세요.

박 실장이 날 반갑게 맞았다.

티마 인수 건으로 나에 대한 호감이 크게 상승한 모양이다.

아마도 오늘 그 호감을 다 깨부수게 되겠지.

“안녕하세요, 실장님. 디지털투모로우 주진형입니다.”

-아 그럼요. 알죠. 어쩐 일이세요? 티마 인수 관해 궁금하신 게 있으신가요?

“아뇨. 다른 일 때문에요.”

-다른, 일이요?

내 말에서 불길함을 느낀 건지, 박 실장의 어조에 긴장감이 흘러나왔다.

“네. 들어보니까 이달 유메프 MD채용자가 한 명도 없다면서요?”

박지윤 실장은 홍보실장이긴 해도 한 때 상품기획실에 머물렀던 사람이다.

또 채용자가 있었다면 그 채용자들을 가지고 홍보자료를 만들었을지 모를 인간이고.

분명 MD채용과정에 대해 알 터다.

-아······ 네에. 그렇다고 하더라구요.

예견대로다.

알아보겠다는 말없이 박 실장의 대답이 나왔다.

“2주 동안 수습사원으로 일했는데, 그 중에 한명도 없다구요?”

-네, 뭐. ······수습사원은 아니구요. 면접자들인데 채용과정 중 필드테스트인 3차까지 받으신 분들이죠.

박 실장은 그들의 신분을 딱 잘라 말했다.

불필요한 논란을 받지 않겠다는 의도다.

“제 기억으론 사내 출입증까지 받은 어엿한 수습사원이던데요. 그분들이 받았던 업무도 마찬가지구요.”

정직원들과 다를 바 없었던 업무강도를, 단순 면접자들에게 요구한다?

수긍하기 어려운 얘기다.

-뭐······ 그래도 수습사원은 아니었습니다. 2주 후에 심사로 정직원을 뽑겠다고 충분히 고지했구요.

내 말을 부정하는 박지윤 실장의 목소리에 점차 힘이 실렸다.

수습이냐 아니냐를 놓고 논쟁하는 건 아무래도 시간낭비 같다.

난 다른 부분을 묻기로 했다.

“합격 기준이 뭐였습니까?”

-음. 글쎄요.

모르는 척 얘기하지만, 어투만 보면 날 놀리는 것 같다.

그럴 땐 그냥 까놓고 싸우는 게 낫다.

“제가 알기론 계약 10건이라고 하던데. 맞습니까?”

-······그런 것 같기도 하구요.

“헌데 탈락하신 분들 얘길 들어보니까, 이 기준에 대한 안내가 처음부터 없었다고 하던데요?”

모호한 기준의 존재에 대해 지적하는 거다.

탈락시키기 위해 급조한 것 아니냐는 물음이나 진배없다.

즉, 유메프는 수습사원들의 노동력을 ‘면접과정’이란 허울로 단기이용한 뒤.

‘탈락’이라는 명목으로 뒤탈 없이 내쫓았다.

그것도 최저시급도 안 되는 비용으로······

난 그렇게 추측했다.

-음, 기준을 먼저 제시하지 않은 건 말이죠. 기준을 충족한다고 무조건 합격하는 입학시험이 아니기 때문이에요. 그 계약 10건 말고도 지원자 분들의 친화력이나 인성 등도 총체적으로 고려해서 뽑는 거였거든요. 안타깝게도 저희 기준에 충족되는 분이 없었던 거죠.

웃긴다.

난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났다.

불합격한 이유는 기준을 충족하지 못해서, 그런데 기준을 충족한다 해도 무조건 합격하는 것도 아니다?

이게 지금 논리적인 변명이라고 생각하고 내뱉는 건가, 박 실장은.

게다가 지원자의 친화력과 인성도 총체적으로 고려했다니.

그들의 성격이 좋지 않아 탈락시켰다는 말과 진배없다.

‘그래서 3차 면접을 본 인재들이 단 한 명도 합격하지 못했다는 거야? 불합격 통보 받은 수습사원들을 두 번 죽이려고 작정했네.’

홍보실장이나 돼서, 도대체 자기가 내뱉은 말의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고 이러시나.

이건 완전히, 순간의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기 무덤을 파는 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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