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 판단은, 세상 사람들이 할 겁니다
“헛허. 그 말씀, 번복안할 자신 있으십니까?”
내 헛웃음의 의미를 알아차렸는지, 수화기 너머 상대는 침묵했다.
박지윤 실장도 이제, 내가 어떤 감정을 품고 있는지 충분히 느꼈을 거다.
난 지금 유메프에 위험이 되는 기사를 준비하고 있다.
‘그리고 유메프를 비호하려는 감정은 1도 없지.’
특히나 인성이 안좋아 탈락시켰단 소릴, 저렇게 촌스럽게 돌려 말하는 상대라면.
정말 가차 없이 공격할 자신이 있다.
난 다시 입을 열었다.
“면접자들 모두 2주 동안 야간까지 10시간 넘게 일하고 총 55만원을 받았다고 하던데요. 이거 최저임금제를 어긴 거 아닙니까?”
박지윤 실장 말대로 강도 높은 업무가 쏟아지는 MD직군에, 최저임금도 부족할 텐데 그 밑이라니.
말이 되지 않는 일이다.
-어······아뇨. 수습기간엔 임금의 90%만 줘도 문제없는 걸로 압니다.
아니, 틀린 지식이다.
‘알바 할 때 알아뒀던 건데 지금 쓰일 줄이야.’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배운 법규.
수습기간 내 수습급여를 적용하려면, 적어도 회사-직원 간 계약 기간이 1년 이상이어야 한다.
1년 미만일 때는 수습기간을 둘 순 있어도, 수습급여 적용은 불가능하다.
게다가,
“수습직원이 아니라 면접 지원자 아닙니까? 실장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을 텐데요.”
-······말이 그렇다는 거죠. 수습들처럼 정사원이 아니니까 급여도 그렇게 적응했단 겁니다.
어떤 변명을 해도 어차피 전제 자체가 틀렸다.
난 길게 끌지 않고 다음 내용으로 넘어가기로 했다.
“면접자 분들 얘길 들어보면, 자신들을 담당했던 팀장이 회식자리에서 칭찬과 함께 이대로 하면 다 정직원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던데. 이건 어떻게 된 겁니까?”
-그건 팀장 개인의 판단일 뿐, 사측 견해와는 무관한 겁니다.
와우!
난 진심으로 감탄했다.
저렇게 단정적으로 내뱉는 박 실장의 패기가 이젠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오리엔테이션 때 상품기획실장이 직접 적어도 다섯 명에서 여섯 명을 채용할거라 밝혔다는데요? 이것도 사측 견해와 무관한 겁니까?”
-그건······ 역시 지원자 분들이 기준에 부합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럼 이 기준을 만족한 전례는 있습니까? 너무 과한 기준인 것 같은데요.”
-있겠죠! 그리고 기자님. 지역영업은, 소셜커머스 내에서 가장 힘든 업무에요. 기준이 엄격해야 정직원이 돼서도 살아남는 겁니다. 이걸 아셔야 돼요.
마치, ‘우리에 대해 알지도 못하는 네가 무슨 판단을 내리려 하느냐’ 따지는 어조다.
그리고 ‘있겠죠’라니.
제대로 된 답변을 할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다는 게 느껴진다.
“실장님. 이런 식으로 말씀해주시면 기사 내용만 곤란해질 뿐이에요.”
비협조적인 태도로 나온다면, 나도 이렇게 말할 수밖에.
-······기자님? 기자님도 아시잖아요. 이건 기사 나갈 수준의 거리가 아니에요.
이건 또 무슨 소린가.
난 박지윤 실장의 말에 할 말을 잃었다.
이게 기삿거리가 되는지 아닌지는 박 실장의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
왜 내 업무를 본인 입맛에 따라 주무르려고 하는 거지.
-저희는 채용면접을 필드테스트로 본거고, 이에 대해 지원자 분들께 다 안내도 했습니다. 강제로 퇴사시킨 것도 아니고 기준미달로 불합격 한 겁니다. 법적으로 잘못된 부분이 없어요. 저희 회사도 시간과 비용을 들인 과정이 있는데 일부러 탈락시킬 이유가 없잖아요? 문젯거리가 전-혀! 아니란 이 말씀이에요.
“하아.”
더는 들어줄 수가 없었다.
난 한숨으로 박지윤 실장의 말을 끊고, 그를 불렀다.
“실장님.”
-네.
“기사가 될지 안 될지, 판단은 실장님이 하시는 게 아닙니다.”
-에?
“법적인 책임이 없다고 해서 도의적 책임까지 없다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죠? 판단은, 세상 사람들이 할 겁니다.”
이 말을 들은 박 실장의 거친 숨소리만 들려왔다.
화를 참고 있는 건가.
나도 이쯤에서 끝내기로 했다.
“정말 이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 실장님도 상관없겠군요. 알겠습니다. 그럼 이만 끊겠습니다.”
난 망설임 없이 통화를 종료했다.
한동안 전화기를 들고 멍하니 생각을 했다.
박지윤 실장의 태도나 말 때문에 나도 약간 화가 치민 거다.
그건 박 실장이 내게 불쾌하게 굴어서 때문이 아니었다.
대화를 하며 느낀 그의 생각들, 태도 등이 정말 고용주의 갑질을 떠올리게 한 거다.
‘알려주지도 않은 기준으로 면접자들을 농락해놓고, 이제는 그 사람들 인성까지 칼질을 하다니. 겨우 2주지만 고생하며 일한 사람들에 대한 존중심이 정말 하나도 없어.’
난 고갤 저었다.
‘이렇게 앉아서 박지윤 실장을, 유메프를 경멸해봐야 의미 없는 일이야.’
기자는 기사로써 말하고 행동하는 거다.
난 노트북 화면에 적어둔 박 실장의 멘트들을 다시 확인했다.
이제 그가 내뱉은 말들을, 그를 찌르는 무기로 만들 차례다.
[이에 대해 유메프 박지윤 홍보실장은 “사내출입증을 주긴 했지만 수습사원은 아니었다”며 논란이 된 인턴 사원들을 면접지원자로 일축했다.]
[박 실장은 “기준을 먼저 제시하지 않은 건······ “계약 10건 달성 말고도 지원자들의 친화력이나 인성 등도 총체적으로 고려해서 뽑는 거였다”고 밝혔다]
[결국 11명의 면접자들이 계약 10건을 따냈더라도, 친화력과 인성 평가로 탈락시킬 수 있었단 얘기가 된다]
[이 탓에 채용에 탈락한 인턴 사원들은 무의미한 기준이 아니냐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박지윤 실장은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 일”이라며 “기사화 될 만한 사건이 전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다만 그는 문제가 된 채용기준으로 합격한 MD가 있냐는 질문은 확답을 피했다]
난 먼저 정리해뒀던 성철과 혜진의 내용을 기사 앞부분에 배치했다.
그리고 박지윤 실장과 관련된 내용들은 뒷부분에 놓았다.
그게 시기적으로나 내용흐름상으로나 자연스러웠다.
기사의 첫 단문에 쓰일 야마(발문)는, 약자인 면접자들의 상황에 중점을 뒀다.
[소셜커머스 유메프의 MD채용과정으로 인턴생활을 했던 청년들이, 사내에서 능력을 인정받았음에도 전원 불합격 통보를 받았다.]
[회사 측은 참가자들이 자체 평가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했다고 주장했지만, 이 기준이 모호한데다가 최저시급도 안 되는 일급을 참가자들에게 지급한 것으로 알려져 ‘채용갑질’ 논란이 일고 있다]
채용갑질 논란.
미래의 유메프 자료에서 본 단어, ‘갑질’을 활용한 거다.
‘이처럼 이 사건을 간결하게 표현해주는 단어는 또 없겠지.’
난 완성된 기사를 저장하고 온라인 기사 작성기에 접속했다.
기사를 작성기에 옮겨 붙인 뒤, 마지막으로 제목을 지었다.
[“우리는 2주간 부려먹을 임시직이었다”유메프 채용갑질]
스스로 생각해도 강렬한 인상의 제목이다.
흡족한 마음으로 기사를 송고하고, 휴대전화를 들어 김정효 팀장에게 연락했다.
-어어, 진형아. 왜?
“팀장, 진형입니다. 먼저 보고 못 드려서 죄송합니다. 갑자기 인터뷰 요청이 와서 유메프 인턴채용 관련해 기사 작성했습니다.”
본래 삼성동으로 이동하기 전에 김 팀장에게 보고했어야 했다.
흥분한 나머지 나도 깜빡 잊었던 거다.
-어, 그러냐? 알았어. 다음부턴 얘기해주고. 기사는 올렸다고?
다행히 김 팀장은 크게 혼내지 않고 넘어가줬다.
“네 지금 송고해둔 상태입니다.”
-알았어. 수고했다. 확인할게.
“네, 감사합니다.”
난 통화를 마치자마자 짐을 챙겼다.
호랑이 사냥을 위해 호랑이 굴에서 무기를 만든 꼴인가.
이젠 이곳을 벗어날 시간이 됐다.
내가 짐을 다 정리했을 때, 김정효 팀장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허어, 진형아! 너 또 한 건 해냈구나.
이젠 놀랍지도 않다는 듯, 김 팀장이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보셨습니까?”
-그래 다 읽어봤어. 유메프 측하고 얘기도 다 된 거고?
“네. 박지윤 실장하고 통화했습니다.”
당연하게도 유쾌한 대화는 아니었지만 말이다.
박 실장의 짜증내는 말투가 떠오른다.
-알았다. 대표한테 바로 말할게. 출고되면 문자주마.
“네, 알겠습니다.”
팀장과의 통화종료 후.
난 가방을 메고 유메프 본사를 나서기 위해 정문으로 향했다.
그 때, 문을 열고 들어오던 김 봄 대리와 마주쳤다.
“어머! 기자님! 여기 언제 오셨어요!”
‘참 얄궂은 타이밍이네.’
난 절묘한 시기에 당황했지만, 최대한 웃으며 대답했다.
“대리님, 어디 나갔다 오시나보죠?”
“네에. 아시아이코노미 기자님하고 미팅이 있었어요. 어머, 기자님 오늘 오시면 연락주시지, 저 말고 유동 대리 사무실에 있을 텐데.”
봄 대리가 친근하게 말해왔다.
그는 아직 내가 한 행동을 모르는 모양이다.
아무래도 그렇겠지.
방금까지 미팅한 탓에, 박지윤 실장으로부터 상황전달을 받지 못한 거다.
“아- 아뇨. 여긴 잠깐 들린 거고. 사실 다른 곳에서 저도 미팅이 있어서요.”
바로 근처 카페서, 유메프 MD채용 탈락자들과의 인터뷰였지.
“그러셨구나. 지금은 다시 가시는 거예요?”
“네. 방금 일 하나 끝냈거든요.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유메프 기사 썼습니다.”
“에? 그러셨어요? 제가 연락을 못 받았는데······ 무슨 기사에요?”
그간의 정이 있으니, 난 시원히 대답 해주기로 했다.
“유메프 MD채용 갑질 논란. 채용 불합격한 인턴들 기사입니다.”
“네에!?”
김봄 대리의 눈이 크게 떠졌다.
그는 어떤 말을 해야 할지 감이 안 서는지, 복잡한 눈초리를 좌우로 굴려댔다.
“박지윤 실장님하고 통화했으니, 사무실 들어가 보시면 알 겁니다. 이렇게 기사 쓰게 돼서 유감이네요. 그럼 대리님. 다음에 봬요.”
이 말을 끝으로, 난 다시 발걸음을 재촉했다.
봄 대리는 날 붙잡지 못한 채 그 자리에서 멍하니 서있을 뿐이었다.
유메프 본사를 나오고, 난 지하철 전동차에 몸을 실었다.
빈 좌석이 없어 자동문에 등을 기대고 섰다.
덜컹이는 차 안에서 휴대전화도 같이 진동했다.
[김정효 : 진형아. 기사 나갔다. 확인해라]
김정효 팀장의 코코아톡 메시지였다.
[주진형 : 네, 알겠습니다]
팀장에게 답장을 보내놓고, 난 휴대전화로 메이버 포털 메인에 접속했다.
검색창에 ‘유메프’를 입력해 검색버튼을 눌렀다.
곧 휴대전화 화면에 내 기사가 나타났다.
[[단독]“우린 2주간 부려진 임시직”유메프 채용갑질 –주진형 기자]
제목이 좀 더 짧게 다듬어진 상태다.
아마 김정효 팀장이 [단독] 문구를 붙이면서 수정한 듯 했다.
‘제목이 길어지면 아무래도 가독성이 떨어지니까.’
수긍한 난 제목을 클릭했다.
그리고 새 창에 뜬 기사 전문을 다시 읽었다.
다행히 오탈자는 없었고, 기사의 논리는 큰 문제가 없어보였다.
‘괜찮네.’
내가 안심하던 순간이었다.
“야야, 이거 봐. 유메프 이 잡놈들.”
정숙하던 차내에 갑자기 한 남성의 목소리가 울렸다.
나를 포함해 승객 대부분이 음성의 진원지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엔 2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남성 둘이 좌석에 앉아있었다.
“왜, 뭔데?”
친구인 듯, 두 사람은 몸을 밀착한 채 휴대전화 화면을 함께 보고 있었다.
“와······ 유메프 이거 쓰레기네.”
‘아니 잠깐, 유메프?’
저 사람, 설마 내 기사를 읽고 있는 건가.
난 그들이 앉은 좌석 앞으로 다가갔다.
“저기, 무슨 일인지 여쭤 봐도 될까요?”
내가 차분히 묻자, 전화기를 들고 있던 청년이 내게 화면을 내밀었다.
“네, 이건데요.”
그 화면 안엔 역시 내 기사가 담겨있었다.
“아아, 감사합니다.”
난 대충 본 뒤 그에게 전화기를 돌려줬다.
‘이렇게 빨리 사람들이 읽는 건가.’
포털 메인에 뜨지 못하는 기사인데도 이 정도다.
놀랍기도 하고 신기함도 컸다.
청년의 작은 소란 덕분에, 다른 승객들도 휴대전화로 사태파악에 나선 듯했다.
제자리로 돌아온 난, 바로 옆에 선 여성이 유메프 기사를 읽는 걸 볼 수 있었다.
“너무했다······”
여성의 안타까움의 서린 말투가 자그맣게 들려왔다.
-기준미달로 불합격 한 겁니다. 법적으로 잘못된 부분이 없어요.
-문젯거리가 전-혀! 아니란 이 말씀이에요.
난 박지윤 실장의 자신만만했던 대답들을 떠올렸다.
‘문젯거리가 아니라고······ 당신이 틀렸어, 박 실장.’
적어도 지금,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있다.
물론 이 작은 전동차 칸 안 사람들이, 국내 전체의 여론을 대표할 순 없지.
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새어나오는 저 말들이, 그저 소수만의 감정이라 치부할 수 있을까.
‘좀 더 지켜보면 확실하게 알게 되겠지. 누가 틀렸는지.’
난 씩 웃었다.
30여 분 후.
난 다시 SGT기자실로 돌아왔다.
“선배!”
기자실 문을 열자마자 영기가 날 맞이했다.
“어 영기씨. 소셜 기사 완성한 건 나한테 보냈어?”
“어- 네 그건 보냈는데, 선배! 지금 선배가 쓴 기사가······”
영기도 내 기사를 봤나 보다.
난 가볍게 웃으며 답했다.
“어, 방금 갔다 와서 쓴 거야.”
“아뇨, 선배. 선배 기사가 메이버 실시간 검색어 1위에요!”
“뭐!?”
놀란 나머지, 난 큰 소릴 지르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