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래에서 온 특종-53화 (53/107)

53. 취재원들이 원하는 건 이슈의 흥행

큰소릴 낸 탓에 기자실 안에 있던 기자들이 모두 우릴 쳐다봤다.

난 민망함을 무릅쓰고 재빨리 빈자리를 찾아 앉았다.

가방에서 노트북을 꺼내 책상에 놓았다.

영기의 말이 사실인지 확인하기 위해 노트북을 켠 뒤, 인터넷 브라우저를 열었다.

[유메프 채용갑질]

정말로 메이버 검색어 순위에, 내가 쓴 단어가 적혀있었다.

그것도 가장 위인 1순위에.

“어떻게 이렇게 빨리 알려졌지······?”

내가 중얼거리자 옆에 서있던 영기가 말했다.

“아무래도 얼마 전에 한국항공 땅콩회항 사건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닐까요? 사람들이 그 일 있고나서 갑질이란 거에 되게 민감해졌잖아요.”

그러고 보니, 한 달 전쯤 이런 사건이 있었다.

국내 유명 항공사 오너의 딸이 해당 항공사 비행기에 타서 행패 부린 일.

이 딸은 스튜어디스에게 폭언폭행을 했는데, 그 이유가 고작 ‘땅콩봉지를 안 까줘서’였다.

이를 본 사무장이 규정집을 들고 와 스튜어디스의 대응에 문제가 없음을 설명했다.

하지만 오너 일가에게 그런 규정 따윈 중요치 않았지.

더 화가 난 오너 딸이 사무장을 공항에 버려두고 비행길 출항시킨 거다.

‘참, 그때도 오너갑질이란 표현이 유행했었지······’

난 피식 웃었다.

땅콩 회항 사건 이후, 여론은 강자가 약자를 핍박하는 갑질에 민감해져 있다.

이 상황 속에서 유메프의 채용갑질도 사람들의 시선을 강하게 끈 모양이다.

“선배 지금 기사 검색해보세요. 선배 거 베껴 쓴 기사 엄청 많아요.”

영기 말대로, 난 실시간 검색어에 떠있는 유메프 채용갑질을 눌렀다.

곧 검색 결과가 떠올랐다.

거기엔 내 기사가 가장 먼저 표시돼있고, 그 바로 아래에 비슷한 제목의 기사들이 줄줄이 달려있었다.

[[단독]“우린 2주간 부려진 임시직”유메프 채용갑질 –주진형 기자]

└[유메프 채용갑질 논란...인턴 전원 불합격]

└[‘채용갑질’ 유메프, 인턴으로 돈아꼈나]

└[인턴 갈아 만든 유메프? 채용갑질 논란]

아무래도 채용갑질 키워드가 인기다보니, 기사 제목에 다들 포함돼 있었다.

이건 기사 클릭 수, 즉 광고 조회 수 때문이다.

“오케이. 일단 취재원들한테 물어봐야겠네.”

“취재원들이요?”

내 말에 영기가 의아함을 표했다.

“응. 나 말고 다른 쪽에 정보 줬는지 말이야.”

다른 매체 기자들이 유메프 인턴들 연락처를 쉽게 찾았을 린 없다.

그쪽에서 연락을 먼저 주지 않거나, 원래부터 아는 사이가 아니고서야.

이 둘도 아니라면 그냥 내 기사를 무단으로 베낀 거니, 기사를 내려달라 요청할 수 있다.

“여보세요. 아 성철씨. 저 주진형 기자입니다.”

난 김성철에게 다시 연락했다.

-기자님! 기사 봤습니다. 감사해요! 기사 내주셔서!

내 목소릴 듣자마자 성철이 환대했다.

기사의 파급력이 꽤 크게 작용한 덕분일 거다.

“아, 아니에요. 제가 해야 할 일을 한 건데요. 혹시 유메프 쪽에서 연락 왔나요?”

-아뇨, 연락 없었어요.

혹시나 해서 물어봤지만, 역시나 유메프는 아직 움직임이 없는 듯 했다.

난 본론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그래요? 음, 그보다 지금 기사 많이 뜬 거 보셨죠.”

-네, 저희도 기사가 이렇게 많이 날 줄 몰랐어요.

“그거 혹시 다른 기자 분들께 정보 주신건가요?”

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다른 기자에게 정보를 주는 건 어디까지나 성철의 자유다.

그러니까 내가 왈가왈부할 문제가 아닌데, 괜히 그의 자존심을 건드려선 안 되는 거다.

-네? 아뇨. 그런 건 아닌데요. 왜요? 무슨 문제 있나요?

성철이 질문을 부인하며 반문했다.

불쾌하다기 보다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말투였다.

“아, 아닙니다. 원래 기자들은 자기 기사 저작권에 민감하거든요. 그냥 베낀 건 사실상 불법이라서요.”

-아아······ 제가 한 번 확인해볼게요. 단톡방에 다들 있거든요.

성철이 이해했다는 듯 대답했다.

단체 코코아톡 채팅방이라, 지금 같은 상황에선 서로 끈끈하게 이어져있겠지.

“그래주시겠어요?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바로 답 드릴게요!

그렇게 통화를 끊고 30초 후.

성철에게 바로 문자 메시지가 왔다.

[물어봤는데 아무도 다른 기자분과 얘기한 적 없다네요]

그렇다면 게임 끝이다.

난 김정효 팀장에게 연락했다.

“팀장, 주진형입니다.”

-어, 진형아! 기사 상황 보고 있냐? 너 실시간 1위 먹었다. 축하한다!

김정효 팀장이, 드물게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아, 넷 감사합니다. 저도 지금 막 봤습니다.”

-그래, 이 건 유메프 쪽에서도 파장이 큰 만큼 공격 많이 들어올 거다. 마음 단단히 준비하고 있어. 취재원들은? 아직 연락 되지?

“네, 문제없습니다.”

-그래. 참, 왜 전화했니?

드디어 내가 입을 열 차례다.

“네, 다름 아니라 지금 나오는 우라까이 기사들. 내용 빼거나 내려달라고 요청해야 할 것 같습니다.”

-어? 왜, 그냥 네 기사 다 갖다 쓴 거냐?

“네. 취재원한테 물어보니까 저 외에 따로 접촉한 기자들은 없다고 합니다.”

-알았다. 바로 조치해줄게. 수고해라!

“네! 팀장.”

김정효 팀장과의 통화를 끝내자마자, 난 영기에게 양해를 구했다.

“영기씨, 미안한데 오늘 쓴 기사는 바로 못 내보낼 것 같아.”

“네? 왜요?”

“지금 내 기사가 소셜커머스인 유메프를 까는 내용이라, 당장 내보내기가 좀 그래. 시류가 안 맞는 거지. 생각해봐. 유메프를 강력하게 깐 매체에서 갑자기 소셜커머스 MD의 밝은 면을 보여주는 기사 내보내면, 앞뒤가 안 맞겠지?”

애초에 영기의 기사는 인턴해고 논란을 취재하기 위해 연막으로 사용한 거다.

뭐, 내보내기야 하겠지만 당연히 지금은 안 되는 거고.

“아······”

영기가 납득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니까, 미안하지만 좀 나중에 내자. 기사는 다 썼어?”

“네넵! 선배 메일로 보내놨습니다.”

“응. 그럼 내가 오늘 돌아가서 한 번 읽어볼게. 부족한 점은 내일 말해주고.”

“네! 알겠습니다.”

“그래. 영기씬 지금부터 보도자료 처리하고 정보보고 작성해줘.”

내 지시에 따라 영기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보도 자료는 아까부터 썼을 테니, 당장은 정보보고 외엔 할 일이 없겠지.

나도 미안하니 굳이 일을 많이 맡길 생각은 없다.

‘그럼 여론을 좀 확인해볼까.’

난 메이버에 올라오는 실시간 검색 창을 들여다봤다.

이는 여러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에서 특정 검색어가 담긴 글들을 모아주는 거다.

‘유메프 채용갑질’이란 검색어로, 실시간 SNS가 계속 올라오고 있었다.

[Choi*** : 와! 유메프 탈퇴합니다. #유메프_채용갑질_논란 #유메프_탈퇴운동]

[감자친구*** : 그렇게 안 봤는데 유메프 개쓰레기 업체네요. #유메프_채용갑질_논란]

[여우비*** : 유메프 탈퇴 URL go.gl/vr1bM2 #유메프_탈퇴운동]

[YouGodT*** : 유메프 탈퇴 인증합니다. PIC_유메프 탈퇴 #유메프_탈퇴운동]

페이스홈, 트위팅 등 유명 SNS엔 유메프 채용갑질로 온통 도배돼 있었다.

게다가 유메프 탈퇴 운동까지 벌어져, 회원탈퇴를 인증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유메프 쪽엔 완전 악재. 과연 어떻게 나올거냐, 박지윤.’

난 박지윤 실장의 얼굴을 상상했다.

늘 타인을 무시하지 않고선 대화를 할 줄 모르는 그 사람이, 지금 어떤 심정일지 궁금했다.

‘설마, 내가 받았던 자료 그대로 내놓으려나?’

내가 일주일 전에 메일로 받았던 유메프 자료.

그게 바로 본래 내일 등장할 보도 자료다.

하지만 다시 찾아봐도 내 기사가 제기한 논란을 잠재우긴 어려울 거다.

한참 이 부분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데, 휴대전화가 진동했다.

난 시선을 휴대전화 화면으로 옮겼다.

[상성훈 : 야 진형아! 나 네 유메프 기사 좀 우라까이 해도 되냐?]

‘디지털투모로우 탈출’ 코코아톡 방, 상성훈 선배의 메시지였다.

상 선배는 나와 같은 인터넷 분야 담당 기자다.

이렇게 대놓고 우라까이를 요구하다니, 위에서 많이 쪼아댄 모양이다.

잠시 그 질문을 보고 고민하던 난, 마음을 정하고 휴대전활 두드렸다.

[주진형 : 네 선배. 취재원 멘트 제외하고 디지털투모로우 출처 남겨주시면 됩니다]

직역하자면 내 기사보다 더 자세한 정보는 담지 말라는 뜻이다.

그나마 한 때 직속선배였던 성훈 선배기에 이정도로 허락해준 거다.

[상성훈 : 오 굿. 알았어, 땡큐 땡큐.]

다행히 성훈 선배는 별다른 불만 없이 내 제안을 수용했다.

[김기문 : 엉? 주 후배가 또 뭔가 쓴 모양인데?]

기문 선배가 등장했다.

[주진형 : 네, 유메프 채용갑질 기사 썼습니다]

[김기문 : 호오. 난 통신 쪽이라 뭔진 모르겠지만 상 선배가 우라까이한다고 할 정도면, 다른 매체 편집부들도 난리가 난거구만!]

기문 선배가 이렇게 얘기할 수 있는 건, 아마도 상 선배 성격 때문일 거다.

취재도 귀찮아하는 상 선배가 우라까이 기사를 쓰는 일은 극히 드물다.

윗선에서 강한 지시가 내려온 게 아니라면 이렇게 내게 물어볼 리 없지.

[이주연 : 네, 지금 난리 났어요. 나보고 디지털투모로우 출신이니까 진형이 알지 않냐고, 이거 어떻게 좀 소스 못 알아 내냐고 부장이 닦달해요]

[김기문 : 엥? 그래? 왜 우린 조용 한 건가. 나한텐 아무 말도 없던데.]

이건 곤란하다.

난 지금 내 기사의 소스, 즉 취재원을 다른 기자들과 공유할 생각이 없다.

지금은 유메프와 나의 자존심 싸움이고 내가 누릴 영광이다.

이 사이에 다른 기자들이 끼어드는 건, 원치 않는다.

‘그래도 선배가 부탁한다면 거절하기도 힘든데······’

난 상황을 지켜봤다.

[이주연 : 그래도 내가 도움은 못 줄망정 어떻게 너한테 그런 부탁을 하겠니, 진형아. 그냥 연락 안 된다고 말해놨어]

다행이었다.

하긴.

주연 선배가 내게 부탁할 생각이었다면, 벌써 전에 얘기했겠지.

난 선배에게 감사 인사를 쓰려다가, 문득 떠오른 생각에 손을 멈췄다.

‘음. 당장은 기사 조회 수 때문에 안 되지만······이것도 오늘이 한계일 거야.’

채용갑질 이슈화에 성공해 여론의 관심이 가장 높은 지금.

나로썬 최대한 기사의 뽕, 조회 수를 뽑는 게 우선이다.

그렇기에 우라까이 기사를 차단했던 거고.

하지만 언제까지고 막아낼 순 없는 일이다.

‘게다가 취재원들이 원하는 건 이슈의 흥행이지. 정보의 독점이 아니라.’

만일 채용갑질 이슈가 더 타오르지 못한다면, 취재원들은 분명 다른 매체와의 접촉도 고려할 거다.

‘어차피 유메프와의 승부처는 오늘이야.’

회사 이미지 악화는 물론 회원탈퇴 퍼레이드 까지 일어나고 있는 상황.

분명 유메프도 손 놓고 구경만 하고 있진 않겠지.

미래의 보도 자료처럼, 오늘내로 입장표명을 할 터다.

‘그럼 유메프 대응에 맞춰, 당장 반박기사를 쓸 수 있는 건 아직 나뿐이니까.’

판단이 섰다.

[주진형 : 감사합니다. 선배. 지금 당장은 어렵지만 내일쯤 다른 기자들에게 연락처 알려줘도 될지 취재원 의사 묻고, 답 드리겠습니다]

오늘은 넘기고 시기 좋게 내일 연락처를 공개한다.

이정도로 타협하는 거다.

그렇게 되면 난 실리를 모두 챙기고, 다른 기자들의 부정적 감정도 잠재울 수 있다.

결과적으로 기자 사회에서의 내 평판이나 인간관계에 도움이 될 거다.

[이주연 : 어? 진짜? 그래주면 고맙지! 응. 나도 부장한테 그렇게 말해둘게]

[김기문 : 오 주 후배! 나도 좀 알려주게나, 혹시나 국장지시 오면 얘기하게.]

[상성훈 : 굿굿! 진형아~싸랑해~ 나도 잊지 말고~]

예상치 못한 내 말에, 선배들이 기뻐했다.

[주진형 : 네. 알겠습니다.]

선배들과의 코코아톡을 끝내고.

난 유메프 측 보도 자료를 기다리기로 했다.

일주일 전 미리 봤던 대로 자료가 온다면, 낙승이겠지만.

내가 그 내용을 참고해 기사를 보강한 까닭에, 유메프의 반박도 달라질 수밖에 없을 거다.

그렇게 노트북 화면에 표시된 이메일 함을 계속 새로고침 하며, 신경을 곤두세우던 사이.

“야 그거 봤냐. 주진형 기사.”

30대 중반의 기자 두 명이 대화를 나누며 기자실 안으로 들어왔다.

내 이름을 언급한 탓에, 내 의식이 그들의 말소리를 쫓게 됐다.

“아, 걔 또 터트렸더라. 지금 유메프 완전 엉망진창이던데?”

“왜?”

“박지윤 실장한테 전화 거니까 회의 중이라 안 받고. 대리들한테 하니까 입장 준비 중이라면서 답변안하고 있어. 유메프 임원진들 긴급 회의하는 모양이던데.”

“미친 탈곡기가 또 한 번 일냈네.”

그 미친 탈곡기가 바로 옆에 두 눈 부릅뜨고 있는 줄도 모른 채.

두 사람을 서로 얘기하며 날 지나쳤다.

‘그럼 유메프는 아직 회의 중이란 얘긴가?’

내가 그렇게 정보를 주워듣던 찰나,

“어? 야! 박지윤 실장 메일 왔다!”

큰 소리가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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