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래에서 온 특종-54화 (54/107)

54. 언론과 여론에게 패배했음을 선언

그 말뜻을 이해하기도 전에, 난 손가락으로 키보드의 F5키를 연타했다.

노트북 화면에 떠있던 내 메일함이 새로 고침 된다.

다시 표시된 메일 목록엔, 어떤 기자의 외침대로 유메프 홍보팀 자료가 와있었다.

난 눈에 들어오는 메일 제목을 읽었다.

[MD채용과정에 생긴 ‘채용 갑질 논란’에 대해 설명 드립니다 –유메프 홍보팀]

일주일 전 자료와 비교하면,‘인턴 갑질 논란’에서 ‘채용 갑질 논란’으로 소소하게 변경돼 있었다.

제일 중요한 본문을 보기 위해, 난 제목을 클릭했다.

[안녕하십니까. 유메프 홍보실장 박지윤입니다. 금일 언론을 통해 보도된 ‘MD 채용갑질’은 사실이 아닙니다······ 저희는 지원자 분들이 최대한 유메프 MD로써 체험할 수 있게 출입증을 나눠줬을 뿐, 수습사원으로 취급했던 것이······]

내용 역시 내가 일주일 전에 받은 메일과 다르다.

역시 내 기사로 인해 반박내용도 약간 달라진 듯하다.

[또한 지원자 분들이 야근을 한 시간 만큼 야근수당을 확실하게 지급했······ 언론에서 보도한 것처럼 최저시급에 미치지 못한다는 이야기는, 수습임금을 인지하지 못한 오해······]

내가 기사에 써놨던 최저시급 미만 임금 지적도 반박돼 있었다.

‘걸려들었군.’

사실 내 기사엔 박 실장이 설명했던 90%의 수습임금 내용이 언급 돼 있지 않다.

이를 본 박 실 장은, 분명 자신의 해명을 내가 고의로 뺐다고 생각했겠지.

맞아, 일부러 뺐다.

헌데 박 실장의 해명이 완벽해서 뺀 게 아니다.

‘내가 판 함정에 빠져서 더 비참해져 보라고 뺀 거지.’

난 그저 박지윤 실장의 성급함에 웃음만 날 뿐이었다.

[······지원자 분들이 따낸 계약도 이미 저희 유메프에서 한 번 계약했던 전례가 있던 곳으로 전혀 새로운 업체를 발굴해 낸 것이 아니었습니다. ······]

[채용평가 기준에 미달해 불합격 시킨 것일 뿐, 지원자 분들을 임시직으로 쓸 의도는······]

황당한 내용도 추가돼 있었다.

정상적인 홍보실이라면.

그리고 그 홍보실을 책임지고 있는 홍보실장이라면.

이런 식으로 합격기준에 대한 변명을 늘어놓는 게 실수라는 걸, 인지했어야 한다.

아무런 기준도 공개하지 않은 상태로 필드 테스트를 시작해놓고, 잘하고 있다 칭찬한 뒤 다 탈락시킨 사건이다.

애초에 재계약 업체가 문제가 됐다면, 참가자들에게 통보를 했어야 정상이다.

10건 이상의 ‘새’계약이 기준이었다면 더더욱.

‘······정말 어디까지 나락으로 떨어질 거냐. 박지윤 실장.’

보도 자료를 품평하는 것도 여기까지.

난 곧장 유메프 MD채용 면접자, 김성철에게 전화했다.

“성철씨. 디지털투모로우 주진형입니다.”

평소 그대로인, 차분하게 말하는 내 목소리가 기자실을 울렸다.

“주진형!?”

“선배, 여기 주진형이 있나 본데요!”

“뭣?”

“주진형이라고?”

다른 기자들이 자리에서 엉덩일 떼고, 내 위치를 찾았다.

난 태연하게 전화길 붙잡고 성철과의 통화에 집중했다.

-아, 기자님. 무슨 일이세요?

“지금, 유메프에서 반박 자료 나왔는데요. 확인할 게 있어서 전화 드렸습니다.”

-그래요? 네 말씀해주세요.

“유메프 쪽에선 성철씨를 비롯해 면접 참가자 분들이 계약한 업체들이, 대부분 기존에 유메프와 계약 했던 곳이라고 하던데요. 이런 부분에 대한 안내나 기준을 들은 적이 있습니까? 뭐, 기존 계약 업체는 빼라든지, 지양하라는 말이요.”

-음, 아뇨. 일단 최대한 많이 계약을 따오란 얘기만 들었구요. 저희가 어디와 계약을 하던 대부분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어요.

난 성철의 대답을 그대로 워드프로세서 프로그램에 옮겨 쳤다.

‘예상은 했지만, 정말 싱겁기 그지없네.’

박지윤 실장이 던진 대다수의 해명은 무리수에 불과했다.

나로썬 어이가 없을 뿐이다.

‘아니지. 유메프는 처음부터 채용평가 기준을 공개하지 않았어. 그러니 어떻게든 기준을 가지고 입맛대로 짜 맞추길 할 수 있겠지.’

그렇다면 다른 걸 또 물어봐야 한다.

“그럼 성공한 계약들 모두, 성철씨나 참가자 분들 자력으로 땄던 겁니까? 제 말은 유메프 측에서 이 업체로 가라거나, 이 업체는 한 번 계약했던 곳이라는 고지가 있었냐는 뜻입니다.”

난 차분히 질문의 의도를 성철에게 설명했다.

-아뇨. 그냥 지역배정만 있었어요. 어떤 매장 힌트나 안내 같은 건 없었어요. 저희도 사실 어떤 매장이 기존에 계약했던 곳인지는 유메프 사이트에서 검색해야 알 수 있었구요.

“혹시 참가자 분들이 계약해 홈페이지에 올린 상품들, 신규계약이었는지 기존 업체였는지 아십니까?”

-음, 제 것만 아는데요. 확실하게 신규 업체였어요.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유메프는 그저 기준 미달로 인한 불합격이었다고 주장하고 있어요.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계세요?”

수화기 너머로 성철의 맥 빠진 한숨이 들렸다.

-아무도 모르는 기준이었고, 납득하지도 못할 기준이었어요. ······유메프가 말했던 신입MD 채용이, 경력 있는 신입MD를 뜻하는 거라면 납득은 하겠네요. 그리고 말이에요. 설령 그렇다 해도 인턴 과정, 아니지. 그쪽 말이면 필드 테스트죠? 그 짧은 기간 동안 우리들 인성을 봤다는 건, 도대체 언제 어떻게 뭘 봤다는 건지 정말 알 수가 없네요.

여기까지면 충분하다.

“네네, 말씀 감사합니다. 바로 기사 대응할게요. 혹시나 다른 곳에서 유메프 입장 담긴 기사 나가더라도 당황하지 마세요.”

뭐, 당황해서 다른 기자들에게 접촉할까 싶어 당부한 거지만.

성철과 얘길 나눠보니 그다지 그럴 일 없을 것 같기도 하다.

-네. 다른 애들한테도 말해둘게요.

난 통화를 끊고 휴대전활 책상에 놓았다.

양 손을 노트북 자판에 올리고 방금 적은 멘트로 기사를 쓰려하는데,

“······무슨 일이시죠?”

내 주위로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몰려있었다.

“주진형 기자?”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한 남자 기자가, 대표 격으로 내게 물었다.

“네. 디지털투모로우 소속 주진형 기자입니다.”

“어, 난 머니데이 문강홍 기잔데. 방금 통화한 거, 유메프 면접자들 맞지?”

난 잠시 눈을 깜빡인 뒤, 문 기자에게 답했다.

이렇게 주목을 받는 건, 역시 유메프 기사를 단독으로 쓴 덕분이겠지.

다만 이 상황은 전혀 내가 원하는 분위기가 아니다.

척 봐도 이뤄줄 수 없는 부탁을 하러 모인 거다.

‘그렇다고 개 무시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일단 대답부터 했다.

“네 맞습니다.”

“어······혹시 그 사람들 번호 공유 좀 가능할까? 아니면 방금 보도 자료 대응 멘트라도 좀 알려주면 좋겠는데.”

머리를 긁적이며 문 기자가 내게 부탁해왔다.

내 시선을 슬쩍 피하는 걸로 봐선, 자신도 이게 얼마나 창피한 행동인지 인지는 하고 있는 모양이다.

“아, 그래요. 좀 알려주면 안 될까요?”

“같이 기사 씁시다. 어차피 단독 기사로 재미도 많이 봤을 텐데.”

몇몇 기자들이 무리에 숨어서 염치없는 소릴 지껄이고 있었다.

내가 연차가 낮고, 나이가 적어 만만해 보이는 걸까.

“후우.”

난 딱 봐도 불쾌하다 주장하는 숨을 내쉬었다.

이런 어이없는 경우는 처음이다.

돌아이 같은 예인조차도 이렇게 까지 이기적이진 않았다.

그 여잔 적어도 내가 쓰는 기사를 빼앗진 않았으니까.

기사로 준비 중인 내용에 대해선 한 번도 물어본 적이 없다.

이렇게 후배 기자의 취재원을 훔쳐가는 거?

‘이건 내가 존경할 가치가 없는 선배들이로군.’

난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선배들. 이거 잘못된 요구인 거 알고 계시죠?”

딱딱한 말투로 사실을 짚어준다.

“······”

다들 대답이 없다.

잘못된 걸 알고 있지만, 어떻게든 내게 정보를 얻겠다는 의지가 느껴진다.

“전 지금 기사 쓸 겁니다. 기사 나오면 보시고 양심껏 우라까이 하십시오. 하지만 취재원을 알려드리는 건 어려울 것 같습니다. 돌아가 주세요.”

난 확고하게 말하곤 다시 노트북으로 고갤 돌렸다.

그리고 들으란 듯 힘차게 자판을 치며 기사를 써나갔다.

애초에 상대할 가치가 없는 요구였다.

이렇게 쪽팔린 짓을 했으니 다른 데 가서 내 욕을 하지도 못하겠지.

이 얘길 꺼내는 것 자체가 자기 얼굴에 침 뱉기다.

‘가만히 내일까지 기다렸으면, 알아서 연락처를 공개했을 텐데.’

내일, 디지털투모로우 출신 선배들에게 연락처를 제공하기로 했다.

그럼 자연스럽게 퍼져나갈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좀 제한을 걸 필요가 있겠네.

저런 양아치들 귀에 안 들어가도록.

“······에잇.”

곧 다른 기자들이 내 주위서 흩어졌다.

내가 새 기사를 쓰면, 재빨리 그걸 주워 먹을 심산인 거겠지.

‘빨리 기사나 쓰자.’

무리가 떠난 뒤, 난 잡념을 버리고 다시 기사에 집중했다.

유메프 측 의견을 담은 기사들이 슬슬 나오고 있을 터다.

나도 그 속도를 쫓아 빨리 기사를 써야했다.

15분 후.

[유메프 “기준미달일 뿐”면접자“무논리 기준이 갑질”공방]

난 딱 떠오른 제목을 기사에 붙였다.

다시금 본문 내용을 확인하며 잘못된 부분이 있는지 보기로 했다.

[이날 유메프 박지윤 홍보실장은 보도 자료를 통해 채용 갑질 논란에 대해 해명했다]

[박 실장은 “참가자들이 따낸 계약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며 채용기준에 미흡했음을 밝혔다]

[이에 대해 면접자 김모씨는 “(회사는)최대한 많이 계약을 따오란 얘기만 했을 뿐, 기존 계약 업체를 지양하란 소린 듣지 못했다”며 “우리가 어디와 계약을 맺든 대부분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전했다]

[······면접자 김모씨는 유메프가 해명한 기준 중, 인성을 평가했다는 부분에 대해 불쾌감도 드러냈다······]

[······한편, 유메프가 제시했던 수습임금 제도는 현 제도법상 1년 이상 계약근무를 한 직원에게만 적용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지윤 실장의 주장을 기사의 앞에, 성철의 반론을 뒤에 실었다.

이래야 박 실장의 논리가 깨부숴지고 더 이상의 반박이 없는 듯 보인다.

그리고 마지막엔 수습임금 제도까지 무너트린다.

이제 유메프의 자료가 무용지물이 되는 거다.

난 퇴고까지 마친 기사를 온라인 기사작성기에 송고했다.

[주진형 : 팀장, 유메프 측 보도자료 피해자 입장 덧붙여서 올렸습니다]

코코아톡으로 김정효 팀장에게 보고했다.

[김정효 : ㅇㅋ]

삽시간에 팀장의 짧은 답장이 이어졌다.

그도 내 연락을 기다리고 있던 듯 했다.

아무래도 현 최대 이슈가 유메프 채용 갑질이니, 보도 자료라도 빠른 반응을 원했겠지.

[주진형 : 그리고 다른 기자들이 취재원 정보 공유를 해 달라는데 어떻게 할까요]

난 다른 기자들에 대한 행동 보고도 잊지 않았다.

[김정효 : 뭐? 누가?]

[주진형 : 머니데이 문강홍 선배를 필두로 여럿이었습니다]

[김정효 : 문강홍? 무시해. 나이 먹고 업계에서도 빌빌대는 녀석이니까 신경 쓰지 마]

김 팀장은 철저하게 능력본위의 기자다.

본인과 비슷한 또래일 문강홍에 대해 잘 아는지, 독한 평가를 내렸다.

[주진형 : 네, 알겠습니다]

팀장에게 보고를 마친 난, 뭉친 어깨를 스트레칭 했다.

‘여기까지 했으면, 한시름 더는 건가.’

여기서 과연 유메프가 어떤 대응을 할까.

궁금하기도 했다.

‘너무 주먹구구식으로 변론하는 것 같은데. 안타까울 정도로 말이야.’

유메프 박지윤 실장의 글은, 다시 봐도 역시 홍보인 답지 않다.

회사의 치부를 가리지 못할 만큼 직설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생각만 담겨있다.

‘그러니 적을 계속 만들어내는 거겠지, 그 사람.’

흥.

그러나 그와의 악연도 여기서 끝이다.

이 사건이 마무리 되면, 아마 박 실장도 자리를 지키기 어렵겠지.

[김정효 : 기사 나갔다. 오늘 수고했다. 정리하고 퇴근해라.]

잠시 생각하던 사이, 휴대전화에 팀장의 메시지가 와있었다.

정시퇴근을 한다해도 아직 30분 정도 시간이 남았다.

난 답장을 보내놓은 후 곧장 노트북으로 손을 옮겼다.

그리고 웹브라우저로 메이버에 접속했다.

[유메프 채용 갑질]

검색창에 단어를 입력하고 엔터키를 누르자, 곧 결과가 떴다.

[“임시직으로 쓸 생각 없었다”유메프 갑질 항변]

└[유메프 “채용갑질 아냐...대우 맞게 했다”]

└[채용갑질 논란에 유메프 “억울하다”]

└[유메프 “채용갑질 아니다...기준 통과 못했을 뿐”]

다른 기자들이 먼저 써낸 기사들이, 검색결과의 가장 위에 배치돼 있었다.

그리고 두 번째 기사 묶음에 내 기사가 있었다.

[유메프 “기준미달일 뿐”면접자“무논리 기준이 갑질”공방]

그것도 덩그러니 단독으로.

“야, 주진형 기사 떴다!”

기자들의 외침에 다시 기자실이 소란스러워졌다.

‘난 분명 양심껏 우라까이 하라고 말했지. 우라까이해도 상관없다고 한 게 아니라.’

이런 내 속내를 아는지 모르는지, 그들은 내 기사를 베끼는 데에 열중했다.

그리고 10분도 지나지 않았을 무렵.

내 기사는 더 이상 홀로 떠있지 않게 됐다.

다음날 오전 9시 정각.

여느 때처럼 사무실에서 오전업무를 하던 중.

내 이메일 보관함에 새 메일이 도착했다.

발신자는 유메프.

[유메프 지역MD 채용 3차 현장 테스트 참가자 11명, 전원 최종합격으로 정정 했습니다 –유메프]

유메프가 언론과 여론에게 패배했음을 선언하는 자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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