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 사건을 공론화 하는 데에 큰 도움을 준
[“유메프 사과문, 영혼 없다······입사 안할 것” -마이뉴스24 상성훈 기자]
가장 먼저 올라온 상성훈 선배의 기사는 제목부터 강력했다.
아마 면접참가자의 멘트를 아예 제목으로 갖다 붙이 모양이다.
‘누군지 몰라도, 속 시원하게 대답했군. 입사거부까지 얘기하다니.’
솔직히 내가 당사자라도, 입사시켜주겠다는 회사의 제안을 거절하고 끝까지 항의할 자신은 없다.
취직하고 싶은 마음은 다들 간절하고, 그게 내가 바라던 회사라면 더더욱.
비록 그 회사가 내게 분한 기억을 남겼다 해도, 오해라는데, 달라지겠다는데······
‘그러면서 받아들이는 거지. 사과가 진심이 아닐지라도 말이야.’
난 내용을 보기 위해 성 선배 기사를 클릭했다.
이름이 명시돼 있진 않겠지만, 저 제목의 발언자가 누군지 알고 싶었다.
[김모씨는 “유메프 사과문을 읽었지만 진짜 사과한다는 생각보다는, 자신들의 행위를 옹호하려는 인상을 많이 받았다”고 했다]
[이어 그는 “2주 동안 청년들을 농락해놓고 이런 영혼 없는 사과를 하는 기업이라면 들어가서도 내 대우나 처지가 그다지 좋지 않을 거라 생각 한다”며 합격통보에 대한 거절의사를 비췄다]
‘시원한 말이군.’
기사를 읽으며 난 공감했다.
상 선배가 취재를 잘 안 해서 그렇지, 기사 쓰는 솜씨는 나쁘지 않았다.
당사자의 증언을 통해 비교적 유메프가 주장중인 내용의 오류를 잘 짚어내고 있었다.
[김씨가 이와 같이 대답한 이유는······유메프는 면접자들의 ‘기준미달’을 주장하며 갑질논란을 끝까지 부인하고 있다······]
[······유메프 상품기획실장과 팀장 등은 면접자들의 계약실적에 대해 칭찬했고 채용가능성이 충분하다 언급했다. 유메프 측 주장대로 단순 채용기준 미달이었다면, 이들의 행동이 논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게다가 유메프 측은 면접자들의 공로를 무시했으면서, 그들이 계약한 업체의 상품은 여전히 판매를 하는 이중적 태도를 보인다]
기사를 읽으면서, 난 몇 번이나 육성으로 웃음소릴 낼 뻔했다.
이윤철 대표가 두 눈을 부릅뜨고 있는 사무실이었기에 가까스로 참았다.
내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간, 저 인간이 그 이유를 추궁할 테니까.
가슴이 뻥 뚫리는 통쾌함과 기쁨을 잠시 미뤄둔 채.
난 기사의 마지막 문단까지 모두 읽어나갔다.
[한편 김모씨는 “앞으로 유메프와 같은 채용갑질이 더는 일어나지 않길 바란다”며 “이 사건을 공론화 하는 데에 큰 도움을 준 디지털투모로우 주진형 기자님께 감사드린다”고 전했다]
‘어어? 이건 뭐야······’
마무리용 인용문에서 황당할 정도로 뜬금없이 내 이름이 튀어나왔다.
‘거기서 왜 저 멘트가 나와?’
아무리 봐도 묘하게 어색한 흐름이다.
김모씨가 정말 내게 고마워 저런 식으로 얘기할 수도 있긴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를 기사에 그대로 담는 기자는 거의 없다.
기사의 흐름이나 맥을 뚝 끊는 건 물론, 타 매체 기자의 이름을 기사에 싣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까닭이다.
‘상 선배······설마?’
난 급히 휴대전화를 들고 상 선배에게 전활 걸었다.
신호음이 두셋, 지나간 뒤 선배에게 연결됐다.
-오! 주느님! 충성충성충성! 어쩐 일이십니까!
기분이 상당히 올라가있는 상 선배의 목소리가 날 맞이했다.
“서, 선배. 왜 그러십니까.”
-이제부터 주느님이라 부를게! 주느님 내 기사 봤어?
“아 예. 방금 확인했습니다. 근데······”
-우하하하하! 나 쩔지 않냐? 완전 멋있어~ 아~
“······”
지나친 자기애가 발현하고 있다.
-유메프 애들 지금 부들부들 떨고 있겠지?
“분명 그럴 겁니다. 잘 반박해서 쓰셨더군요.”
하는 수 없이 내가 상 선배에게 동조해줬다.
듣고 싶은 말 좀 들려줘야지 뭐.
-오오 주느님! 역시 안목이 대단하십니다!
아니 그놈의 주느님 좀 그만하라고.
“근데 저 선배, 뒷부분에 면접자 멘트가 좀 이상해서······”
-아, 그거? 진짜 김성철이란 애가 그렇게 말했어. 근데 또 주느님을 존경하는 마음으로 내가 고대~로 실었단 말씀입니다. 충성충성충성!
‘역시나.’
한 치의 예상을 빗나가질 않는 사람이군.
그나저나 김모씨는 김성철이란 말인가.
‘유메프, 합격 거부를 한다고? 성철씨가?’
11명 면접자들 중 가장 열심히 사건을 해결하려 했던 자다.
분명 유메프 측의 합격 정정을 알려줬을 때만 해도 무척 기뻐했는데.
정말 이대로 입사를 포기하려는 걸까.
“아, 그러셨군요. 기사 읽다가 당황했습니다. 갑자기 제가 튀어나와서.”
-뭘. 아예 제목에 주느님 이름을 써놨던 김예인도 있는데. 이런 걸 가지고!
“하하······그런 가요?”
뭐, 그것도 나름대로 당황스럽긴 했지만.
이처럼 기사 말미에 뜬금없이 튀어나온 게 더 이상하잖아.
-참, 지금 나한테 연락처 어떻게 땄냐고 아주 사방에서 난리다. 주느님 부탁대로 절대 안 알려주고 있으니까, 걱정 말라구!
가장 믿음이 가지 않던 상 선배였지만, 이렇게 얘기해주니 안심이 됐다.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내가 더 감사감사감사! 앞으로도 잘 부탁해!
“저야말로, 선배.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훈훈한 통화를 마친 뒤, 난 다시 노트북을 조작했다.
남은 두 개의 기사도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근본적 사과 없이 변하겠다는 유메프...“위선적”-데일리뉴스]
[‘채용갑질’ 반성 없는 사과문, 뿔난 면접자들 –이뉴스]
검색결과 페이지를 새로 고침 하자마자, 떠오른 두 개의 기사.
주연 선배와 기문 선배가 소속된, 데일리뉴스와 이뉴스의 것이었다.
두 선배는 인터넷 담당기자가 아니기 때문에, 다른 담당기자들이 기사를 써 놨다.
난 두 기사 역시 모두 내용을 읽어 봤다.
전반적으로 상 선배가 쓴 기사처럼, 유메프의 모순된 논리를 집중 지적하고 있었다.
서로 다른 인물을 인터뷰한 탓에, 기사 내 멘트들은 모두 조금씩 차이가 났다.
헌데······
[“우릴 위해 힘써주신 디지털투모로우 주진형 기자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다”]
[“디지털투모로우 주진형 기자님이 없었다면, 이 사과문을 받는 건 쉽지 않았을 것”]
왜 하나같이 이 오글거리는 마지막 인용문은 똑같단 말인가.
난 오른 손으로 관자 놀을 짚었다.
이렇게 되면 이윤철 대표도 내가 몰래한 행동을 알아차릴 지경이다.
직접 기사를 내보내지 못하니, 아예 취재원들을 다른 기자들에게 넘겨버리는 것.
드문 일은 아니지만, 이 대표 입장으로썬 유쾌할리 없겠지.
“성철씨. 기사 봤어요. 마이뉴스 인터뷰 한 게 성철씨죠?”
난 사무실을 빠져나와 김성철에게 전화했다.
-아 기자님! 네. 맞아요.
“마지막에 말씀하신 내용, 성철씨가 그렇게 얘기 한 거예요?”
-하하. 네. 제가 그대로 기사에 넣어달라고 말씀드렸어요.
“아······”
-아마 따로 인터뷰한 애들도 그렇게 얘기했을 겁니다.
“왜, 왜죠?”
-아, 제가 기자님 사정을 설명했더니 그동안 도와주셨던 분이니 이렇게 감사를 표하자고 얘기가 나왔거든요. 여러모로 감사했어요, 기자님.
사실 난 그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했을 뿐이다.
특종을 위해서, 내 일신의 명예를 위해서.
‘아니, 그렇다 해도 굳이 부정할 필욘 없겠지.’
난 홀가분하게 웃었다.
“후후. 그동안 고생하셨습니다. 근데 성철씨는······유메프 입사 안 하신다구요.”
-네. 기사로 말씀드린 것처럼, 유메프는 안가려구요. 뭐 티마나 쿠퐁도 있고, 그게 아니라면 또 다른 길도 있을 테고. 적어도 사람답게 대접하는 곳에서 일하고 싶어요.
사람을 사람답게 대접하는 곳.
너무 당연한 전제임에도 그게 잘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특히나 우리나라에선, 보수 이상의 노력은 너무나 당연시 되니까.
“좋은 곳으로 가시길 바랄게요.”
난 진심을 담아 성철의 앞날을 축복했다.
일주일 뒤 오전 10시.
나와 영기는 다시 유메프 본사에 도착했다.
“와 취재진 엄청 많네요, 선배.”
영기가 본사 1층에 카메라를 들고 걸어가는 기자들을 요리조리 살폈다.
“그럴 만하지. 세간을 뜨겁게 달군 채용갑질에 대해 직접 얘기하는 날이니까.”
오늘 이곳에서, 유메프 MD채용과정 논란에 대한 기자간담회가 열린다.
참석자는 유메프 은상재 대표.
박지윤 실장은 참석하지 않을 거라고, 홍보팀을 통해 미리 언질 받았다.
‘초기대응 실패? 아니면 언론대응 총책임을 지는 걸까?’
이런 중요한 자리에 홍보실장이 빠진다는 건, 의미심장한 일이다.
뭐 그 부분에 대해선 잠시 후, 확실하게 알게 될 테지.
[유메프 MD채용 관련 기자간담회 유메프 본사 5층]
난 기자간담회 안내 입간판을 확인하곤, 영기와 함께 승강기에 탑승했다.
유메프 본사를 여러 번 오갔지만, 1층 외 장소에 들어와 본적은 처음이다.
5층엔 대학 강의실 크기의 세미나실이 있었다.
“앗, 주 기자님!”
숱한 기자들을 안쪽으로 안내하던 김 봄 대리가 우릴 알아봤다.
“대리님. 잘 계셨냐고 물어봐도 되겠죠?”
내가 장난스럽게 인사했다.
“하하. 뭐 생각보단 잘 있었어요.”
“유동 대리님은?”
“안쪽에서 준비 중이에요. 기자님, 오늘 기사 잘 부탁드릴게요!”
봄 대리가 내게 보도 자료 문서를 건넸다.
“하하······좋은 기사 쓸 수 있길 바라야죠.”
난 문서를 받으며 대답했다.
미안하지만 거짓말이라도 좋게 써준다는 얘기는 못한다.
그래도 봄 대리는 그다지 놀랍지 않은 얼굴로 쿡쿡 웃었다.
“오늘은 괜찮을 거예요. 대표님도 기사 나간거 보고서 생각을 많이 바꾸셨거든요.”
진짜인지 아닌지는, 겪어보면 다 알게 될 일이다.
난 세미나실로 들어가며 말했다.
“기대하겠습니다.”
“네! 박 기자님도 잘 부탁드릴게요!”
“네, 넵!”
북적이는 세미나실 안은, 이미 자릴 잡은 방송국 카메라들로 난잡한 상태였다.
“어이! 비켜! 가리잖아!”
“야 너 몇 살이야, 말 똑바로 못해?”
“이런 씨, 야 나오라고!”
촬영기자들의 거친 음성들이 오간다.
매번 기자간담회가 열리면 이들의 전투를 볼 수 있다.
더 좋은 위치에서 구도를 잡기 위해 영상기자들끼리의 은근한 경쟁이 먼저.
사진을 찍기 위해 움직이는 사진기자와 영상기자의 시야 경쟁이 다음.
기사를 쓰고 있는 취재기자에게 머리 숙이라며 성질내는 것이 마지막이다.
난 그러거나 말거나 ENG카메라가 서있는 앞쪽 자리에 가서 앉았다.
‘취재기자들은 아직 많이 안 왔나 본데.’
방송국 기자들이야 영상기자들과 함께 왔겠지만, 일반 종이신문이나 인터넷 언론 기자들은 아직 이었다.
잘된 일이다.
그 덕분에, 자리에 앉은 채 은상재 대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거릴 확보했다.
“영기씨, 기자간담회는 경험 있으니까 큰 문제없겠지? 일단 보도 자료는 내가 정리할게. 은상재 대표 사진은 영기씨가 찍어줘.”
난 노트북을 가방서 꺼내며 영기에게 지시사항을 하달했다.
보통 기자간담회는 시작 전에 보도자료가 종이문서나 이메일로 제공된다.
기자들은 대충 행사 시작 전에 자료를 기사형태로 정리해놓는다.
그리고 실제 발표 시 사진을 찍어 곧장 기사를 출고한다.
간담회 발표가 대체로 준비된 자료와 동일하게 진행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넵!”
“그리고 질문시간엔 영기씨가 받아 적어 기사 내. 그 정돈 가능하지?”
“가능하죠!”
“오, 자신감 넘치네. 오케이.”
영기는 요즘 들어 부쩍 기사에 대한 자신감이 늘어난 상태다.
아무래도 혼자서 취재와 기사작성까지 해보니까, 두려움이 상대적으로 줄어든 것 같다.
난 보도자료를 훑으며 노트북으로 기사 작성에 나섰다.
[채용과정 문제 인식······책임 통감, 건강한 기업문화 만들 것]
‘드디어, 문제를 인정하는 군.’
봄 대리가 말한 대로, 은상재 대표의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는 게 느껴진다.
자료엔 이전처럼 거슬리는 문장들이 대거 사라졌고, 일어났던 논란에 대해 신중히 생각하지 못했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그리고 은상재 대표가 직접 면접 참가자 11명을 만나 이야길 들었다고도 쓰여 있었다.
‘뭐, 며칠 전에 나간 얘기네.’
나흘 전, 성철로부터 전화가 왔었다.
면접 지원자 전원, 은 대표와 면담하기 위해 유메프로 간단 소식을 전해주기 위함이었다.
난 그 이야길 기사로 내보냈고, 그 기사는 또 굉장한 조회 수를 기록한 바 있다.
[주진형 : 팀장, 유메프 보도자료 일단 올려놨습니다. 사진 나오는 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수정한 기사를 기사작성기에 저장해두고, 난 김정효 팀장에게 코코아톡을 보냈다.
[김정효 : 어. 진형아. 이 기사 내가 수정해서 내보낼게]
헌데 이상한 답변이 돌아왔다.
[주진형 : 네? 왜 그러십니까?]
[김정효 : 아무래도 유메프에 우호적으로 써야할 것 같은데. 티가 많이 날 거야. 네 이름으로 나가는 것보다 그냥 내 이름으로 나가는 게 너한테도 좋을 거다]
무슨 말인지 단박에 알아차렸다.
돈 받은 만큼 유메프 쪽의 면죄부를 확실하게 씌워주겠단 뜻이다.
아무래도 이윤철 대표가 김 팀장을 달달 볶은 모양이다.
[주진형 : 알겠습니다. 사진 바로 보내드리겠습니다]
[김정효 : 알았다. 수고해]
뭐, 유메프 측 보도 자료야 내게 중요한 게 아니니 상관없다.
남은 질의응답 시간과 그에 대한 기사.
그것만 날카롭게 처리할 수 있다면.
“아아, 안녕하십니까. 유메프 홍보팀장 이일형입니다.”
세미나실이 기자들로 꽉 찼을 무렵.
앞으로 걸어 나온 이일형 홍보팀장이 단상의 마이크에 대고 입을 열었다.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