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 역시 무서운 분이군요. 네, 둘 다입니다
티켓마스터라는 한 회사의 대표이자, 창업자인 신성현.
친인척은 모두 국내에서 유명한 재벌 상속자들이고 본인도 못지않은 금수저다.
그런 사람이 갑자기 태도를 바꿔 내게 사과 말을 건네고 있다.
‘하찮은 벌레 보듯 인상을 쓰던 그 사람이 이렇게 갑자기?’
뭐, 불쾌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나 또한 그리 예의를 차리고 접근하지 않았다.
일방적인 사과를 받을 만큼 내가 하얗진 않단 얘기다.
“그 때 일이라 하심은, 주차장에서 제가 들이댔던 때를 말씀하시는 거겠죠?”
내가 모르는 사건이 하나 더 있을 린 없지만, 혹시나 싶어 재확인 했다.
옆에 앉은 영기는 입을 다물고 둥글게 눈만 굴리고 있다.
내가 취재과정을 자세히 말해주지 않은 탓에, 영문을 모르는 거다.
“네, 그 날은 제가 너무 예민하게 굴었던 것 같습니다.”
“그건 피차 마찬가진데요 뭘. 사과까지 하실 필욘 없습니다.”
신성현 대표에게 난 웃으면서 얘기했다.
하지만 사실 이 사람에게 그다지 사과 받고 싶은 기분이 들지 않았다.
이렇게 미리 알리지 않고 내 앞에 나타난 것부터 수상하다.
게다가 전혀 어울리지도 않게 사과라니.
분명 그럴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일 터.
“그나저나 오늘 유메프 기자회견 이었죠? 어떠셨습니까, 기자님.”
송강욱 실장이 치고 들어왔다.
내 떨떠름한 표정을 보곤, 자연스레 유메프를 대화주제로 넘겨버린 거다.
‘흐응, 우선은 다른 얘길 좀 하자는 건가.’
난 굳이 딴죽 걸지 않고 송 실장의 의도대로 받아주기로 했다.
“네에. 기사 한참 나오고 있을 겁니다.”
“허허, 어떻든가요?”
송 실장이 흥미진진하다는 듯 물었다.
‘이미 기사 다 봤을 것 같은데······ 뭐, 상관없나.’
한 번 맞춰주기로 한 거, 끝까지 따라줘야겠지.
“뭐, 지난 번 내놓은 자료에 욕먹은 부분은 다 사과하더군요. 은상재 대표가 죄송하다고 꾸벅 몸을 숙이는데, 허리가 거의 바닥에 닿는 줄 알았습니다.”
“헛헛헛!”
송강욱 실장이 유쾌하게 웃었다.
반면 신성현 대표는 입 꼬리만 살짝 올려 분위기를 탔다.
경박한 태는 안내려는 모양이다.
뭐, 그 장면을 직접 목격한 영기도 픽 웃음이 터졌는지 입을 틀어막았다.
“아 그 박지윤 실장은요? 그 사람은 어땠습니까?”
이 이름을 듣자마자 내 얼굴에 실소가 피어났다.
“허허, 뭐 재밌는 일이 있었나 보군요?”
내 반응을 보고 송 실장이 지레짐작했다.
난 잠깐 고갤 숙이고 표정관리에 들어갔다.
안 그래도 방금 내가 부관참시를 하고 왔습니다, 라고 말할 순 없는 노릇이다.
“뭐, 박지윤 실장은 오늘 간담회에 참석하지도 않았습니다. 은상재 대표 말로는 잠시 홍보실장 직책에서 물러난다고 하던데요. 뭐 정말 그럴지는 모르겠지만요.”
“핫핫핫핫!”
거참 통쾌하게 웃는다.
송강욱 실장의 목소리는 아까보다도 더 커져있었다.
경쟁사 홍보실장의 고꾸라짐이 그렇게 기쁜 건가.
아니면 나처럼 ‘개인적으로’ 박 실장을 싫어했을 수도 있다.
워낙 적이 많은 인물이라.
“되게 좋아하시네요.”
난 감정을 실지 않은 어조를 유지하며 씩, 말해줬다.
“헛헛, 쌤통이죠. 티마 인수 놓고 얼마나 거지같은 언플을 해대든지 개새······아이고 기자님 앞에서 실례했네요. 쓰레기 같은 놈이죠.”
힘줄이 빠직, 하나 돋아난다.
이건 박지윤 실장을 까면서 세트로 묶어 나까지 욕한 셈이다.
그 ‘언플’에 동참한 게 바로 나였으니까.
하물며 자신 보다 상사인 신성현 대표 앞에서 욕질이라.
그래놓고 별로 당황하지 않는 걸 보면 다분히 고의적이었다.
‘이걸 확 엎어?’
잠시 할 말을 고민 하던 난, 그냥 아무 말도 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약간 짜증난 표정을 지어주면 적당하겠지.
“아······아, 죄송합니다. 기자님을 욕하려던 건 아닙니다!”
분위기를 파악한 뒤늦게 송 실장이 해명했다.
말하는 투로는 정말 고의는 아닌 듯한데.
설령 그렇다 해도 내 기분이 나아질 것 같진 않다.
“괜찮습니다. 그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는 거죠. 티마 입장에서는.”
부글부글 끓는 속을 참으며, 난 대인배 처럼 대답했다.
“허허······기분 상하셨다면 죄송합니다.”
그래서.
거지같은 언플이라 평할 정도면, 당시 유메프 측 입장이 틀렸다는 게 아닌가.
‘유메프 쪽 인수의향서가 결국 제출이 안됐다고?’
글쎄, 지금이라도 유메프 측에 전활 걸어 다시 확인해볼 수 있다.
티마가 여기까지 와서 거짓말을 할 리도 없고.
“근데 실장님 말씀을 들어보면, 그 때 유메프가 그럼 인수의향서를 안낸 거군요?”
“아, 안 그래도 그 부분도 다 말씀드리려 했습니다! 일단 식사부터 시키실까요?”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송강욱 실장이 내게 차림표를 건넸다.
주문을 하라곤 했지만, 선택지가 많진 않았다.
우린 특 한정식 4인을 주문했다.
시킨 음식들이 나올 때까지 송 실장은 신변잡기만 할 뿐.
이야기의 진도는 거의 나가질 못했다.
“자, 음식도 나왔고. 그럼 못 다한 얘길 좀 해볼까요.”
잠시 후.
한상 가득 차려진 상을 사이에 두고, 송 실장이 입을 열었다.
‘이제야 본론인가.’
“편안히 드시면서 들으세요. 저희가 실시한 예비인수입찰엔 유메프 측이 참가 하지 않은 게 맞습니다.”
“그런가요?”
난 관심 없는 척, 앞에 놓인 호박전을 젓가락으로 집으며 대답했다.
어디 무슨 소릴 떠드나 들어보자고.
“예. 그래서 저희도 참가하지 않는 다고 판단하고 자료를 냈던 거구요.”
“그 예비인수입찰, 공개였습니까? 비공개였습니까?”
내 질문에 송 실장의 젓가락질이 멈춘다.
“흠, 그건 말이죠.”
송강욱 실장이 말하다 말고 신성현 대표에게 고갤 돌린다.
아무래도 대답 결정권은 신 대표에게 있나 보다.
“비공개였습니다.”
흐응.
내 오른쪽 입 꼬리가 자동적으로 올라갔다.
“그럼 당연히 못 내게 되는군요?”
“네. 저희가 미리 연락드렸던 곳에서만 받게 돼있었으니까요.”
정확히는 쿠텐탁방크와 티마가 협력 선정한 곳, 이겠지.
“그, 그럼 유메프는 왜 냈다고······”
웬일로 영기가 용기를 내 대화에 참여했다.
그것도 중요한 질문을 던져가며.
본래 나와 취재원간 대화가 시작되면 거의 말이 없는 친구인데.
처음으로 기자다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게요. 유메프 쪽도 굉장히 확실하게 대답하던데.”
난 촌스럽게 영기를 칭찬하는 대신, 그의 질문에 힘을 받쳐줬다.
“음 사실 그래서 저희가 즉답을 못 드렸던 겁니다.”
다시 송강욱 실장의 변명 차례였다.
“······김서정 팀장이 전화를 주지 않았던 거 말입니까?”
“네네네. 그렇죠. 그거에요. 저희가 알아보는 데에 시간이 꽤 걸린데다가, 아무리 헤집어 봐도 저희가 유메프 측으로부터 자료를 받지 않았거든요. 받을 리도 없었고 말이죠.”
“흥.”
송 실장의 설명이 끝나기도 전에, 신성현 대표가 콧방귀를 뀐다.
신 대표가 뭐 때문에 그러는 진 모르겠다만.
유메프 관련된 얘기가 나오면 불쾌해 하는 건 확실해 보인다.
송 실장은 그런 신 대표의 눈치를 살짝 살피곤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그런데 올쿠폰 측과 하루 걸려 얘기해보니, 직접 받았다 이겁니다. 물론 이렇게 되면 유메프 측 말이 틀린 건 아니죠. 그런데! 저희 말이 틀린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하하핫!”
얼핏 듣기론 아주 그럴싸한 얘기다.
정확히 티마, 아니 티마와 구텐탁방크가 주관한 예비인수입찰에 유메프는 서류를 내지 못했다.
다만, 유메프는 티마의 모회사인 올쿠폰과 직접 이야길 하며 인수의향서를 냈다.
그러니까 받지 못했다는 티마 측 말도 틀린 건 아니고, 냈다는 유메프도 맞다는 거지.
‘그래. 겉으로 보면 단순 의사소통의 부재로 보이지, 만.’
일주일을 한참 넘기고 나서야 말해줄만한 사안은 아니다.
‘결국 진실이 뭐였든 그 땐 나나 다른 기자들한테 말해 줄 수 없었다는 거잖아.’
당시엔 입을 꾹 다물었다가 이제 와서야 고백하는 이유.
시기상 바로 발표할 경우, 유메프 측 주장이 맞고 자신들이 틀렸음을 증명하는 꼴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유메프가 인수의향서를 제출한 건 사실이다.
티마는 그저 파악을 못했던 것 뿐.
‘자신들의 범위가 아니었다는 이유로 합리화를 해보자는 건가’
티마로써는 유메프가 인수에 참여한다는 사실이 이슈화되지 않길 바랐을 거다.
왜일까.
‘인수참여를 원하지 않았으니까······?’
내가 무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 날.”
시선은 송강욱 실장이 아닌, 신성현 대표를 향한 채로.
“대표님이 저에게 그렇게 말씀하셨죠. 유메프의 투자를 받을 일은 절대 없을 거라고.”
너무 단정적으로 대답했던 신 대표가 의아했었지.
“네······ 그랬습니다.”
신 대표가 미심쩍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리고 경영권을 지키는 방향으로 올쿠폰 쪽과 협의했다고 하셨고.”
“네 맞습니다.”
“그런데 굳이 유메프의 투자를 거부할 이유가 있을까요? 어차피 경영권을 지킨다면 말이죠.”
경영에 영향을 끼칠 수 없는 수준의 투자라면 말이지.
유메프 인수가 티마의 이미지에 악영향을 끼치지도 않는다.
오히려 소비자들 입장에선 동종업계의 협력으로 비쳐질 테고, 시너지를 낼 수도 있다.
일례로 세계적인 오픈마켓 운영사, 아이베이가 인수한 액션과 구마켓이 있다.
아이베이는 국내에 액션이라는 경매 사이트를 인수하며 국내에 진출했다.
이후 후발주자인 구마켓까지 인수하면서 승승장구.
국내 오픈마켓 지분율의 절반이상을 가져간 상태다.
“후우······”
대답하기 곤란하다는 듯, 신성현 대표가 거칠게 한숨을 쉬었다.
거기에 대해 난 의문을 표했다.
“단순히 유메프에 대한 반감 때문이라 해도 말이죠. 납득이 안가는 부분이라고 할까요.”
내 말에 반응한 건, 신 대표가 아니라 송강욱 실장이었다.
“핫핫. 그렇게까지 생각하시다니. 역시 주 기자님이시군요.”
뭐가?
난 칭찬인지 비꼼인지 모를 송 실장의 말에 미간을 찌푸렸다.
“송 실장님께서 답변 해주시겠습니까? 유메프는 왜 안 되는지.”
“뭐, 저로썬 저희가 유메프와 경쟁하며 쌓은 감정의 골, 그것 때문이라고 말씀드릴 수밖에 없네요.”
송 실장, 자신의 권한으로는 이 정도의 대답이 한계.
난 그렇게 받아들였다.
“그럼, 신 대표님. 솔직히 궁금합니다. 왜 유메프는 절대 안 되는 건지. 굳이 인수의향서를 제출했음을 숨겨가면서 까지 말이죠.”
“아, 기자님 그건 숨긴 게 아니라······”
자신들은 몰랐다 이거지.
난 송강욱 실장의 뻔한 변명은 신경 쓰지도 않았다.
그저 신 대표의 얼굴만 응시한 채 선전포고 하듯 생각을 읊조렸다.
“저로썬 이 상황에 대해 두 가지 정도, 추측할 수 있을 것 같군요. 하나, 이 인수전에서 신 대표님의 경영권을 유지한다는 말은······올쿠폰의 티마 지분율이 51% 유지된다는 뜻이 아니거나. 둘, 티마 측에서 내정한 투자사가 있다거나.”
티마의 경영권은, 지분을 100% 인수한 올쿠폰이 쥐고 있다.
그리고 그 올쿠폰이 신성현 대표를 ‘대표이사’로써 계속 놔두고 있는 것뿐이다.
하지만 유메프 박지윤 실장이 전화로 말했던 내용대로.
만약 올쿠폰이 티마 지분을 51%이상 매각한다면 어떻게 될까.
새로 이 지분을 구매하게 될 주주들이, 경영권을 잡게 될 거다.
티마의 신 대표 체제 존립이 위협받을 가능성이 생긴단 소리다.
‘그런 상황에 유메프가 뜬금없이 뛰어들었다고 보면 상황이 맞아 들어가.’
예측하지 못한 유메프의 난입에 극도로 거부감을 보인 이유.
현 티마 경영진과 대립각을 세운 업체였기 때문이 아닐까.
‘그리고 반대로 신성현 체제 유지에 유리한 업체들을 예비입찰자로 내정했다고 치면, 유메프는 이 인수전의 게임 체인저가 되는 거지.’
인수협상을 진행하면서 통제할 수 없는 요인을 만들어내는 존재.
난 차분히 신 대표의 표정을 읽어나갔다.
최대한 무표정을 유지하려 하지만, 떨리는 입가.
추측이 적중했다는 표시처럼 느껴진다.
“물론 둘 다 아닐 수도 있겠죠. 혹은 하나만 맞거나. 아니면······”
“하하하하!”
신성현 대표가 갑자기 실성한 사람처럼 고갤 젖히고 웃음을 터트렸다.
송강욱 실장도 미소 짓고 있는 걸로 봐선, 일단 미쳐서 저러는 건 아닌 것 같다.
이윽고 신 대표의 눈이 날 향한다.
“역시 무서운 분이군요. 네, 둘 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