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 전 별로 신 대표님과 친해지고 싶지 않군요
신성현 대표가 너무도 아무렇지 않게 사실을 말한다.
분명 그 사실이, 자신들의 졸렬함을 증명하는 것임에도 말이다.
난 기업가들의 경영에 대해선 잘 모른다.
어떤 식으로 이뤄지고, 어떻게 해야 되는 건지.
배우지도, 경험해보지도 못했다.
‘그래도 이건, 짜고 치는 고스톱을 깽판 쳤단 이유로······’
유메프를 공격했던 거다.
방귀 뀐 놈이 성내는 수준 아닌가.
사실상 관찰자 입장에 가까운 나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 말씀은 역시 이 인수전에서 51%이상의 지분 매각이 이뤄진단 얘기군요. 이미 내정된 업체도 있었고. 그것도 신 대표님과 가까운 쪽에.”
내가 되짚듯 중얼거렸다.
신성현 대표는 검지 손가락을 자신의 입가에 대고, 내게 답한다.
“기사로 내지 않으신다면.”
오프더레코드, 들려줄 수 있지만 양지로 나와선 안 되는 정보.
내게 비밀을 지켜줄 수 있느냔 물음을, 그 한 손가락으로 대신한다.
‘들어도 그만, 안 들어도 그만이라면 일단 들어 보는 게 낫겠지.’
어차피 근거 없인 기사를 쓸 수 없다.
기사로 써먹을 수 없는 근거 일지라도, 손에 쥐고만 있다면.
언젠가 내게 도움은 될 터.
“좋습니다.”
난 신 대표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뭐 저희가 몇몇 투자사를 집어, 그분들에게만 예비입찰을 보낸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분들 중, 누가 정말 저희를 투자하게 될지는 아직 모르죠. 저희와 구텐탁방크가 인수협상을 하면서 추려낼 예정입니다.”
기왕 이야길 해줄 때, 여러 가질 물어봐야겠지.
“예비입찰은 끝났습니까?”
“거의, 끝났습니다.”
“그럼 유메프는? 어떻게 됐습니까?”
“하하핫. 물어보실 필요도 없죠. 애초부터 받을 필요가 없었던 인수의향섭니다.”
탈락시켰다는 말이군.
“유메프도 말이죠. 웃기는 놈들입니다. 몇 년 전에도 인수 거절을 받아놓고, 지금 다시 하면 저희가 받아들일 거라 생각했답니까? 허허.”
송강욱 실장이 덧붙였다.
‘그거야 모를 일이지. 티마와 이야기한 게 아니라, 올쿠폰과 직접 얘기했던 거니까.’
헌데 티마가 이런 식으로 인수전을 휘젓는 걸, 올쿠폰은 알고 있는 건가.
“올쿠폰은 뭐라 합니까? 유메프 거절에 대해선?”
“뭐라 할 게 있습니까? 더 좋은 조건의 인수적격자를 찾아가는 건데. 하하하.”
그렇지.
번드르르하게 설명하자면, 그렇겠지.
뭐, 내 회사도 아니고 괜히 감정이입해서 분노할 필요는 없나.
난 질문을 바꿨다.
“지금 인수 참여를 공시한 국내업체가 두 군데 더 있죠?”
“네, LC 오플러스, CZ 와쇼핑입니다.”
송강욱 실장이 내게 대답했다.
국내 3대 통신사인 LC O플러스, 강력한 CZ그룹의 쇼핑채널 와쇼핑.
그리고 KKP라는 사모펀드를 비롯해 해외 투자사들도 세 곳 정도 참여한 상태다.
모두 꽤 쟁쟁한 곳들이다.
“그럼 그들 중에······신 대표님의 경영권을 유지시켜줄 곳을 고르시겠군요.”
“한 번 더 추측해보시죠?”
날 도발하듯, 신성현 대표가 말한다.
“과연 제 경영권이 유지되려면 어딜 어떻게 선정해야 할까요?”
신 대표의 어조는 질문임에도 당당한 구석이 있었다.
아니, 좀 건방진.
‘갖고 노는 것처럼 얘기하는군. 사람 자존심을 긁는 데에 뛰어난 재주가 있는 사람이야.’
그렇다고 그저 비웃고 무시하기엔, 상대가 너무 거물이다.
“경영권이 최우선이라면 LC 오플러스와 CZ 와쇼핑은 탈락이겠군요.”
“헛헛, 왜죠?”
신 대표는 내 추측이 맘에 드는 듯 웃었다.
하지만 쉽게 확답을 주진 않는다.
어디 한 번 맞춰보라는 뜻이다.
난 맞춰지는 논리대로 설명하기로 했다.
“LC 오플러스가 티마를 노리는 이유는 아마 수익 때문이라기 보단. 통신사로써 혹은 LC그룹 차원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겠죠.”
통신사인 LC 오플러스에게 사실 전자상거래 업체인 티마는 큰 이점을 갖지 못한다.
분야 자체 다른 두 업체다.
결합한다 해도 어느 한쪽의 경쟁력이 급상승한다곤 볼 수 없다.
다만, 1위 통신사업자인 SGT와 동 계열사에서 운영 중인 오픈마켓 22번가를 보면 짐작이 좀 된다.
SGT는 22번가를 이용해 자사 가입자들에게 멤버십 서비스나 프로모션 이벤트 등, 다양한 마케팅에 활용 중이다.
“서로 다른 영역을 가지고 있는 만큼, 그전엔 할 수 없었던 긴밀한 협력이 가능해지죠.”
난 여기까지 설명하고 신성현 대표를 봤다.
“맞아요. 하하. 그렇기에 적절한 인수투자사 중 하나죠. 근데 왜?”
기다렸다는 듯 신 대표가 내게 물어왔다.
이에 대해 곧장 대답해준다.
“다만, LC 오플러스는 대기업입니다. 이것저것 철두철미하게 계산해두고 관리하기 위해선 독립적 권한을 가진 사람을 CEO로 둘 순 없을 겁니다.”
유메프와 마찬가지, 통제가 되지 않는 사람을 그 자리에 놓을 순 없는 거다.
“상품기획부터 결제 과정, 결제방법까지도 LC의 색을 입힐 가능성이 높습니다. 만일 경영권을 쥔다면 말이죠.”
난 살이 가득 든 조기 한 마리를 젓가락으로 잡으면 말했다.
물론 티마가 인수 후 어떻게 될지는, 그저 내 상상일 뿐이다.
다만 큰 몸집의 LC가 들고 있는 것들을 생각하면, 티마에겐 과한 독이 될 뿐이다.
‘자사 직원들에게 LC전자 휴대전화만 쓸 수 있게 하는 곳이다. 유통이라고 다를까?’
아니.
소셜커머스에 올라오는 상품 대다수가 LC그룹 계열사 상품으로 바뀔지도 모른다.
“······좋아요. 그럼 CZ 와쇼핑은?”
“그 쪽은 반대로 유통에 너무 강하죠. 굳이 대표님이 필요할까요? 게다가 CZ그룹은 사성과의 관계도 안 좋고.”
거침없는 내 말에 신성현 대표의 눈썹이 움찔했다.
CZ그룹과 사성그룹.
한 줄기에서 나온 형제 같은 재벌그룹이지만, 서로의 사이가 너무 안 좋다.
고작 가정사 때문이지만, 재벌의 가정사라는 게 한국 경제를 흔들기도 한다.
자, 그럼 친 사성 쪽인 신성현 대표가 CZ그룹 계열사로 들어간다면 목을 보존할 가능성은?
0%는 아니겠지만, 반할을 넘진 않을 거다.
“이정도면 됐습니까. 전 대표님이 남은 업체들 중 인수 적격사를 선정할거라 봅니다.”
“하하하하!”
“헛헛헛.”
또 시작이었다.
뭐 때문인진 이해할 수 없지만, 신 대표와 송 실장이 큰소리로 웃었다.
난 영기에게 고갤 돌리고 눈짓으로 속마음을 전했다.
-뭐냐 이 재수탱이들은.
-그러게 말이에요. 이상합니다, 얘네.
그걸 용케 알아들은 영기가 표정으로 내 의견에 동조했다.
“헛헛, 실례했습니다. 이거, 너무 흥미로운 얘길 들어서 그만.”
송강욱 실장이 먼저 사과했다.
“주 기자님. 매체가 어디시라고 했죠?”
신성현 대표는 이제 와서 뜬금없이 다시 매체를 묻고 있다.
하는 수 없지.
우리 매체가 한 번 듣는다고 확 귀에 들어오는, 그런 유명한 곳도 아니고.
난 체념하고 대답했다.
“디지털투모로우입니다.”
“디지털투모로우라······ 거기가 어떤 곳 인진 잘 모르겠지만, 주 기자님 같은 분이 그곳에 있긴 굉장히 아깝단 생각이 드네요.”
어떤 곳인지 모르는데, 어떻게 아깝단 생각을 단정적으로 하는 걸까.
어쨌든 날 칭찬하는 소리인 건 확실하다.
비록 그 말본새가 그리 재수있진 않지만, 의도만큼은 좋게 받아들여야지.
“뭐, 저희 매체가 작은 곳이긴 합니다만. 제가 그런 소릴 들을 정도인진 모르겠군요.”
내 말에 송 실장이 손사래를 쳤다.
“헛헛, 겸손도. 주 기자님이 그간 쓰신 특종기사 수가 몇 갠데요. 난다 긴다 하는 메이저 언론사 기자님들 중에서도 주 기자님만큼 활약 중이신 분이 없죠.”
밖으로 새나가면 송강욱 실장도 꽤 욕을 먹을만한 소리다.
“거기다가, 깊은 통찰력까지 겸비하셨군요. 웬만큼 이쪽 사정에 밝은 분들 아니고서야 할 수 없는 분석도 하시고.”
신 대표가 배턴을 이어받듯, 내게 말했다.
그의 말이 단순한 비꼼인지 진심인 참 헷갈린다.
‘그래서 제대로 분석했다는 거야?’
난 의심하면서 신 대표를 똑바로 봤다.
“그럼 제 생각과, 대표님 생각이 비슷하다는 겁니까?”
“아뇨.”
뭐야 이 자식은?
단박에 돌아오는 신 대표의 부정에 난 어이가 없었다.
결국은 틀린 소릴 지껄인 날 상대로, 농간을 치는 거란 말인가.
“하지만 같아질 겁니다.”
“예?”
도통 따라갈 수 없는 신 대표의 한마디.
난 크게 의아함을 표할 수 밖에 없었다.
“주 기자님의 분석대로 움직여 보겠다는 뜻입니다.”
“······!”
이건 전혀 예상치 못한 전개다.
그러니까 지금, 내가 늘어놓은 추측을 그대로 현실로 옮겨 행동하겠다는 말이 아닌가.
이 사람들, 제 정신이야?
“듣고 보니 타당성 있더군요. 맞습니다. 전 CZ쪽에 연이 없죠. 친척 분 중에 사성과 닿아계신 분은 있어도.”
“진심이십니까?”
“뭐, 이러려고 뵙자고 한 건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뵙길 참 잘한 것 같군요. 주 기자님.”
“그럼 본래 이 자리에 나온 이유는 뭡니까?”
난 송강욱 실장과 신성현 대표를 번갈아 보며 물었다.
마치 인사만을 위해 자릴 마련하는 척 했던 송 실장.
대표씩이나 돼서 미리 고지도 없이 점심일정에 참석한 신 대표.
두 사람 다 아직 나를 속인 이유를 설명하지 않았다.
“핫핫핫. 김서정 팀장이 아닌, 제가 이렇게 기자님께 연락드린 이유가 뭐겠습니까. 잘 부탁드린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송 실장이 먼저 입을 열었다.
이젠 익숙해진 저 호쾌한 웃음소리가, 참 가식적으로 들린다.
“잘 부탁한다구요?”
“네에. 그렇죠.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희가 기자님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어서 제대로 관리를 못해드렸던 것 같습니다. 제가 김서정 팀장을 호되게 혼냈습니다. 어찌 주 기자님 같은 유능한 인재를 못 알아보고, 이 고생을 하게 하느냐고 말이죠.”
그러니까 티마 인수 기사를 보고 나서야, 내가 자신들에게 위협적인 걸 알았단 말이군.
아마 김서정 팀장이 관리하는 기자들은 어느 정도 중간급 수준.
거기에 끼지도 못했던 난, 윤한서 대리가 담당했던 거고.
이제 티마 측에서 내 신분을 ‘상급’으로 상승시켜주겠단 소리다.
‘그렇다 해도 신 대표가 직접 나선 건 납득이 안 간다.’
난 눈으로 신 대표에게 대답을 요구했다.
그러자 신대표가 살짝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주 기자님. 전 기자님과 티마가 좋은 인연으로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뛰어난 시장분석력, 빠른 정보력. 끈기 있는 취재력까지. 이런 기자 분을 가까이 두지 않으면 큰 손해죠.”
“그 말씀은?”
“제 말은 이겁니다.”
신 대표가 뭔가를 꺼내더니 식탁 위에 올렸다.
고급스런 포장지에 싸인 네모난 상자.
“저희 사이트에서 판매중인 메이플 사의 태블릿PC 상품입니다. 맘에 드실지 모르겠군요.”
“······”
난 말없이 상자를 바라봤다.
메이플이면 사성전자와 자웅을 겨루는 IT업계의 거물.
그곳의 인기상품 중 하나인 메이패드가 들어있다는 의미다.
“왜, 맘에 안 드십니까?”
내 표정을 훑던 신 대표가, 그럴 리 없다는 듯 물었다.
그렇겠지.
적어도 50만원은 넘는 고가의 상품이다.
게다가 IT기자로써 저런 스마트 아이템이 탐이 안 난다면 거짓말이다.
“그리 과한 상품은 아니니 부담 갖지 마시고 받으시죠. 박 기자님 것도 준비해놨습니다.”
송 실장이 동일한 크기의 상자 하나를 또 꺼냈다.
이를 본 영기의 눈이 커진다.
자신의 것도 있단 소리에 욕심이 동한 거겠지.
“저희가 이걸 받으면, 해드려야 할 일이 있습니까?”
“후후. 역시 계산이 빠르시군요. 뭐 꼭 해 주신다기 보다도······ 아시다시피 저희는 언론의 힘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회삽니다.”
이제 서른 초반.
하지만 신 대표의 언변은 그보다 20년은 더 묵은 구렁이 같았다.
“주 기자님이 저희 인수전과 관련해 부정적인 기사를 내지 않기를 바랍니다. 오늘 말씀드렸던 유메프 인수의향서까지 다 포함해서.”
‘오, 역시나. 아주 더럽게 바라는 바가 있었군.’
유메프의 인수의향서가 티마 측에 전달됐으며, 거절당했다는 건 곧 공개될 터다.
티마가 하지 않더라도 유메프 쪽에서 움직일 테니까.
즉, 티마는 거짓 반박 논란에 휩싸일 거다.
물론 내게 했던 것처럼 ‘시차’를 이용해 사실을 인지하는 데에 늦었다고 변명할 수야 있겠지.
그게 얼마나 많은 기자들에게 통할 진 모르겠지만.
뭐가 됐든 신 대표는 나보고 이 일에 상관하지 말라는 거다.
“그리고 만일 가능하시다면, 개인적으로 주 기자님과 친해지고 싶군요. 기자님의 혜안을 비싼 값을 치러서라도 계속 듣고 싶거든요.”
내가 피식 웃었다.
이를 긍정적인 신호로 받아들인 앞의 두 사람도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전 별로 신 대표님과 친해지고 싶지 않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