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래에서 온 특종-61화 (61/107)

61. 내가 50만 원 짜리 기자로 보여?

“옛?”

내 말을 못 알아들은 건지.

아니면 받아들이기 힘든 대답이라 당황한 건지.

신성현 티마 대표의 얼굴에 처음으로 여유가 사라졌다.

“대표님과 굳이 친해지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드는 군요.”

내가 다시 한 번 친절하게 설명해줬다.

“아니 기자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선물이, 좀 맘에 안 드세요?”

옆에서 황급히 끼어든 송강욱 실장이, 내 화를 더 돋우고 있다.

“아뇨. 선물은 좋은데, 주는 사람이 영 맘에 안 드네요.”

내가 휴지함에서 휴지 한 장을 뽑아 입을 닦았다.

그리곤 영기에게 고갤 돌리고 짧게 한 마디.

“영기씨, 짐 챙겨. 나가자.”

“네? 아, 넵!”

영기가 허둥지둥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주 기자님.”

신 대표는 이 상황이 납득이 안 가는 듯, 날 불렀다.

“왜 이러시죠? 부족한 건 말씀만 해주시면 채워드릴 수 있습니다.”

난 자리에서 일어난 뒤.

미소와 함께 고갤 좌우로 저어댔다.

내가 신 대표에게 바라는 건, 그 자신의 기본개념을 채우는 거다.

하지만 굳이 이 자리서 이를 말할 필요는 없지.

서로 감정의 골만 깊어 질 텐데 뭐 하러?

“오늘 식사, 잘 먹었습니다. 얘기도 잘 들었고. 하지만 저희도 기자로써 가진 신념이 있고, 최소한의 선이 있습니다. 오프더레코드로 말씀해주신 부분은 지키겠습니다만. 길게 숨길 순 없다는 것. 잘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이 말을 끝으로 난 방 미닫이문을 열었다.

나와 영기는 방 밖으로 나와 벗어뒀던 신발을 찾아 신었다.

우리가 계산대까지 걸어 나왔을 때.

송강욱 실장이 헐레벌떡 뒤쫓아 왔다.

“주 기자님, 주 기자님!”

딱히 대답하지 않고 그저 몸만 돌려 송 실장을 봤다.

이제야 보이는 거지만, 송 실장의 몸집은 꽤 컸다.

“주 기자님, 이렇게 가시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좋은 관계 만들고자 만든 자리인데.”

“송 실장님.”

“네, 주 기자님.”

“전 오늘 송 실장님만 뵙는 줄 알고 있었는데요. 왜 갑자기 신 대표님이 나타나셨는지도 잘 모르겠군요.”

내가 속에 담아두고 있던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아, 그건, 그저 기자님 놀라게 해드리려고······”

날 놀라게 해서 뭐하게.

말도 안 되는 소릴 늘어놓고 있다.

“네. 덕분에 꽤 놀랐습니다만. 불쾌함도 같이 느끼는 군요. 신성현 대표님 쯤 되면 약속에 예고 없이 나타나셔도 제가 감사히 받아들여야 하는 겁니까?”

“아니, 아니 그럴 리가요. 오, 오해입니다.”

“송 실장님.”

내가 다시 송강욱 실장을 불렀다.

“네, 네.”

“오늘 처음 뵙는데, 실망이 좀 크네요. 다음엔 좀 더 예의가 있는 자리에서 뵀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 빌어먹을 선물도 다신 안 봤으면 하네요.”

그 말을 끝으로 난 영기를 이끌고 식당 밖으로 나섰다.

송 실장은 말끝을 흐리곤 더 이상 날 붙잡지 못했다.

내가 이렇게 신성현 대표의 손을 철썩 치워버린 건, 단순히 그의 태도가 불쾌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세상을 내려다보는 그 거만함과 타인의 감정을 배려할 줄 모르는 것?

그 정도는 참아줄 수 있다.

하지만 기껏 50만 원 짜리 전자제품으로 기자를, 기사를 멋대로 할 수 있을 줄 아는 인식엔 화가 났다.

‘광고만 주면 기사를 쓰고, 막을 수 있으니 기자도 그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건가.’

신 대표의 진짜 의도야 알 수 없지만, 결과적으로 불쾌한 행동인 건 달라지지 않는다.

‘뭐? 나와 친해지고 싶다고?’

난 콧방귀를 뀌었다.

사람의 마음은, 아니 적어도 내 마음은 그런 식으로 얻을 수 없을 거다.

뭐, 우리 디지털투모로우 이윤철 대표라면 다를지도 모르지만.

그런 싸구려 포장지로 포장한 속내 따위, 난 받고 싶지 않다.

“영기씨.”

오가는 인파가 많은 삼성동 거리.

난 그 곳 한가운데에 서서 영기에게 말을 걸었다.

“네 선배.”

“아까 그 메이패드, 갖고 싶었어?”

“······”

영기는 쉬이 대답하지 못했다.

아무래도 갖고 싶었던 마음은 있지만, 내 행동을 봐선 솔직히 말하기 어려운 거겠지.

“그래. 이해해. 나도 갖고 싶었어.”

“네? 선배?”

“근데 말이야. 저건 간담회에서 나눠주는 참석선물 따위랑 같지가 않아. 단순 인사치레가 아니야.”

잘 모르겠는지, 영기는 딱히 말이 없다.

“뭐, 간담회에서 저런 고가의 물건을 다 나눠줄 리도 없지만. 신성현 대표처럼 사람을 특정지어서 건네주는 거엔 다 이유가 있는 거야. 그 50만 원 짜리로 우릴 컨트롤 하려 한 거지. 영기씨, 내가 50만 원 짜리 기자로 보여?”

내 질문에, 영기가 황급히 도리질을 했다.

“아, 아니요! 선배는······”

비록 말을 끝까지 잇진 못했지만, 영기가 하고픈 말의 의미는 충분히 전달됐다.

“그래. 영기씨. 난 존경하는 선배 기자가 있어. 그 분처럼 되고 싶거든. 되도록 기자 명함에 쪽팔린 짓은 하고 싶지 않아.”

내 목표는 광피리, 김광필 선배.

국장급 연차와 능력을 가지고도 끝까지 기자로써 활동하다 은퇴한 대 기자.

흠잡을 데 없는 기자로써의 자취.

후배들의 존경과 기업인들의 인정을 받은 그 사람처럼, 난 될 거다.

“물론 영기씨는 다른 가치관을 갖고 기자 일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지. 그래도 나와 함께 일하는 동안엔, 내 기준을 좀 따라줬으면 해.”

“아, 아뇨. 선배. 저도 선배와 같은 생각이에요.”

“알아줘서 고마워.”

난 영기가 나와 같은 생각을 한다는 걸 모두 믿진 않는다.

왜 언론사가 편집국과 영업국으로 나눠져 있는지.

어떻게 기자가 기업광고에 휘둘리지 않고 기사를 쓰는지.

이해하고 판단하는 건 각자의 몫이다.

그러니까 선택 역시 강요하고픈 생각은 없었다.

다만 영기가 지금 내게 영향을 끼치는 일은 용납할 수 없다.

‘눈치가 있는 친구라면, 경고란 걸 알아두겠지.’

내게 흠이 되는 일을 한다면 더 함께할 순 없겠지.

물론 그렇지 않더라도 우리 사이가 언제까지고 이어지리란 보장도 없긴 하다.

“자, 그럼 이 치욕을 복수해야지.”

내가 지하철 역사를 향해 움직이며 말했다.

“복수요?”

영기가 따라오며 물었다.

“그래, 이참에 티마 쪽에 확실하게 알려줘야지. 우리 전투력이 50만은 훨씬 넘는다는 걸.”

난 자신 있게 대답했다.

[티마, 유메프 인수의향서 거부 –주진형 기자, 박영기 기자]

[유메프의 인수의향서를 받지 못했다던 티마의 주장은 거짓으로 드러났다]

[CZ와쇼핑, 티마 인수참여 철회...“인수가 맞출 수 없다”-주진형 기자, 박영기 기자]

[CZ 와쇼핑이 티켓마스터의 인수전에서 빠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오플러스, 티마 예비입찰 탈락 “협상 온도차 탓”-주진형 기자, 박영기 기자]

[LC 오플러스가 티마 예비입찰 전에서 탈락했다. 이로써 티마 인수전의 흥행은······]

신성현 대표와 식사를 했던 날 이후 일주일 간.

난 영기와 함께 줄기차게 티마 인수전을 취재했다.

유메프는 이일형 팀장의 협력으로 수월하게 기사를 썼고.

CZ 와쇼핑은 내 미래의 보도 자료가 내 메일함에 떨어져준 덕분에, 사실 확인만 하고 바로 내보낼 수 있었다.

마지막 LC O플러스는 장도현 과장의 정보력을 통해 미리 입수해냈다.

결국 기사를 내는 족족이 단독보도였다.

다른 매체 기자들은 내 기사를 베껴 쓰기 바쁠 뿐.

하지만 이번엔 우라까이한 매체에 일일이 연락하지 않았다.

기사 내용의 파급력을 키우려면 받아쓰기 정도는 눈감아줘야 하니까.

‘역시 가장 맘에 드는 건, 유메프 인수의향서가 재조명 된 거지.’

오전의 사무실.

난 메이버 검색결과에 뜬 기사들을 보며 만족했다.

내 의도대로 티마 인수전은 정말 시끄럽게 흘러가게 됐다.

수많은 기사 덕분에 티마 측 거짓말은 충분히 까발려졌다.

-아아, 주 기자님! 좀 봐주십시오. 정말 미치겠습니다!

송강욱 실장이 참다못했는지 내게 불쑥 전활 걸어올 정도였다.

‘조용히 넘어가고 싶었겠지. 그렇다면 내게 그러진 말았어야 했어.’

기자로서의 내 자존심과 오기.

신성현 대표는 그걸 상정하지 못했던 거겠지.

‘뭐, 상정했다고 해도 그런 태도라면 아무짝에 소용없었겠지만.’

난 일주일 전 만났던 신 대표의 무례한 태도를 떠올렸다.

만약, 그 때 내가 참고 그 손을 잡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흥, 신성현 대표와의 관계를 다져봐야 기사를 쓸 수 없다면 아무 짝에 쓸모없지.’

신 대표에게 빨대를 꽂는 게 아니라 꽂히게 되는 꼴일 뿐이다.

티마에 불리한 기사는 쓰지 못할 테고, 시장정보는 그에게 계속 공급하겠지.

‘물론 호구 짓만 당하는 건 아니겠지.’

분명 티마 쪽에서도 그에 맞는 보상을 해줬을 거다.

금전적으로든 정보적으로든.

‘근데 그게 뭐?’

지금의 난 이미 고작 티마 따위론 비할 수 없는 정보력을 쥐고 있다.

그러니 쓸데없는 미련은 그냥 빨리 바람에 흘려보내는 게 낫다.

“팀장, 점심 일정 있어서 나가보겠습니다.”

오전 업무를 마친 뒤, 난 김정효 팀장에게 다가가 일정을 보고했다.

“어, 점심 고글이네? 지난 번 일 이후 처음 아냐?”

의자에 앉은 채 김 팀장이 물었다.

고글과 KMR 취재기사를 낸 후.

난 고글 측에 거의 접촉하지 않았다.

큰 사건 없이 평화로운 나날이 이어진 점도 있지만, 무엇보다 선주경 부장에 대한 불쾌감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다시 고글로 가기로한 이유는 한 제보 때문이었다.

“네. 오늘은 선주경 부장 말고 정이영숙 상무와 약속 잡았습니다.”

고글 코리아의 홍보를 총괄하고 있는 핵심 임원, 정이영숙 상무.

오늘 취재원은 그다.

“음. 개발자 계정 정책에 대해서 취재한다고?”

“네. 제보가 들어왔습니다.”

이틀 전.

내 이메일 함으로 기업의 보도 자료가 아닌, 일반 메일이 도착했다.

거기엔 한 개인 앱개발자가 부당함을 호소하는 사연이 담겨있었다.

이 개발자는 고글이 만든 모바일 운영체제, ‘휴머노이드’에서 쓸 수 있는 앱을 개발 중이다.

난 그에게 바로 연락해 사정을 자세하게 듣고, 고글 취재를 결정한 거다.

“그래, 잘 갔다 와라. 참. 티마에 송강욱 실장이란 사람이 너랑 같이 저녁 식사 한 번 하자는데. 어때, 언제 시간 되겠어?”

“아-”

난 어처구니없다는 듯 웃어버렸다.

내가 제대로 응대해주지 않으니, 아예 김정효 팀장에게 들이대고 있었군.

곧 김정효 팀장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왜? 무슨 일인데.”

“아닙니다. 아마 지난번에 신성현 대표와 자리했던 걸 좀 만회하려는 모양입니다.”

보고를 올린 사안이기 때문에 김정효 팀장도 대충 사정을 알고 있다.

“웬만하면 만나자. 티마랑 언제까지고 떨떠름한 관계로 이어갈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알겠습니다.”

“그래.”

이 대화를 끝으로 난 영기와 함께 사무실을 나왔다.

목적지는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역삼역 테헤란금융센터.

점심 일정인데도 회사 사무실로 부른 것이 못내 미더웠지만, 우선 가기로 했다.

‘뭐, 정이영숙 상무랑은 이렇게 직접적으로 미팅하는 건 처음이군.’

난 종합운동장행 9호선 전동차에 탑승하며 생각했다.

진지하게 짚어보니 문득 긴장이 몸에 퍼지는 듯 했다.

반면 영기는 또 고글코리아 사무실에 간단 것에 들떠 있었다.

‘그래. 가서 부딪혀 보면 알겠지.’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그렇게 마음을 정리한 순간.

바지 주머니의 휴대전화가 짧게 울었다.

전화길 꺼내보니 새로운 이메일이 도착한 거였다.

[배달의겨레, 골드앤실버로부터 400억 투자 유치 –배달의겨레 홍보팀]

‘······!’

난 급히 이메일이 발신된 날짜를 확인했다.

예상대로 일주일 후의 이메일 자료다.

침착하게 메일을 클릭해 본문 내용을 읽어본다.

[배달의 겨레가 세계적 투자은행 골드앤실버가 참여한 컨소시엄으로부터 3,600만 달러, 한화 400억 원에 달하는 투자를 받았다]

[이 컨소시엄엔 실리콘밸리의 대형 벤처캐피탈 유니콘벤처스도 속해 있다]

[유니콘벤처스의 대표 장 킴은 골드앤실버를 비롯한 여러 투자사들을 배달의겨레 투자로 이끌었다]

‘장 킴?’

분명 굉장한 거물일 텐데도, 처음 듣는 이름이다.

한국계 미국인인가?

한국식이라면 김 장, 뭔가 묘한 외자 이름이 된다.

궁금함에 웹브라우저 앱을 켜고 검색을 해봤다.

[유니콘벤처스 대표 장 킴]

검색결과가 뜨자마자, 최상단에 나타난 이미지에 그 사람의 사진이 걸려있다.

‘어······ 이 사람. 분명 어디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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