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래에서 온 특종-62화 (62/107)

62. 그렇게 말씀하시면 상당히 곤란한데요

그래, 분명 어디선가 본 기억이 있다.

확실하진 않지만 내 뇌리 어딘가에 비슷한 얼굴이 남아있는 것 같다.

‘아······이거 잘 떠오르진 않는데.’

난 한동안 사진을 붙잡고 끙끙댔다.

그러다 결국 휴대전화 화면을 꺼버렸다.

지금으로썬 아무리 사진을 확대하고 눈을 들이대 봐도, 기억이 나질 않았다.

‘뭐, 나중에 떠오르려나.’

장 킴이란 사람을 언제 어디서 봤는 진 모르겠다.

하지만 그보다.

지금 중요한 건 배달의 겨레의 400억 투자 유치다.

골드앤실버라면 뉴욕 월가에서 가장 유명한 다국적 투자은행이 아닌가.

‘그런 거물이 국내 서비스에 불과한 배달의 겨레에 투자를 하다니.’

인터넷 취재기자인 이상, 놓칠 수 없는 대형 사건이다.

다만 당장 내가 접촉할 수 있는 관계자는 딱 한 명뿐이었다.

배달의 겨레 성경호 홍보팀장.

‘성 팀장이 투자유치를 알고 있을 가능성은 높아.’

일주일 후 정식 보도 자료가 나온다는 게 그 반증이다.

성 팀장은 적어도 보도 자료가 나가기 수일 전.

투자유치에 대한 얘기를 상부로부터 미리들을 터.

헌데 그의 입을 어떻게 열게 할까.

출처가 확실한 정보를 쥐고 있어야 수긍의 대답을 들을 수 있을 터.

‘일단, 장도현 과장에게 물어보자.’

난 증권사 과장인 도현에게 또 한 번 부탁하기로 결정했다.

금융계 소식은 나보다 그가 더 빠르다.

다시 휴대전화를 들고, 도현에게 보낼 문자 메시지를 작성한다.

[과장님. 괜찮으시면 내일이나 모레 안으로 한 번 뵙고 싶습니다]

메시지를 전송해놓은 뒤.

난 성경호 팀장에게도 비슷한 내용의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다만 도현보다 일찍 만나면 의미가 없어지므로, 사흘 뒤로 일정을 잡고 싶다 표시했다.

“선배, 신논현 다 왔어요.”

딴 데 정신이 팔려 있던 내게, 영기의 말이 들려왔다.

“어? 어, 그래. 내리자.”

어느새 우리가 하차하기로 한 신논현 역이었다.

도착을 알리는 안내방송과 함께 우린 전동차에서 내렸다.

사실 목적지인 역삼동 테헤란금융센터까지 가려면, 역삼역에서 내리는 게 낫다.

하지만 지하철 환승이 워낙 복잡하고 혼잡한 탓에, 속 편히 걸어가는 걸 택했다.

빠르게 걸으면 15분 안에 갈 수 있다.

“날이 엄청 더워졌네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상으로 올라오며 영기가 말했다.

“그러게. 이제 곧 여름이니까.”

영기를 처음 봤을 때만해도 아직 날이 쌀쌀했었는데, 금세 더위가 올라오고 있었다.

강남대로 일대를 걸으며 계절의 변화를 느꼈다.

‘수습기자 딱지 떼기까지 한 네 달 남은 건가?’

난 옆에서 걸어가는 영기를 보며 생각했다.

수습기간 6개월 동안 얼마나 잘 적응해내느냐, 1인분 기자 몫을 할 수 있느냐에 따라 정식 기자가 될 수 있다.

그 전까지는 물론 일을 못한다고 자르거나 내쫓진 않지만.

너무 마음 놓고 있어선 당연히 안 될 일이다.

‘음. 영기 덕분에 잡무가 줄어서 좋긴 한데······’

그렇다고 단순히 내 편의만 보고 영기를 정식 기자로 받아 달라 말할 순 없다.

내가 회사에서 무슨 국장급 위치의 기자도 아니고.

‘요즘 좀 나아지고 있긴 하지만, 아직 부족하긴 하지.’

이전 보다 조금은 적극성을 띠고 있지만, 더 공격적이어야 한다.

특히 우리 같은 소규모 매체에선 더더욱.

“선배, 근데 고글에서 우리 싫어하지 않을까요?”

이런 내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영기는 쓸데없는 걱정에 시달리고 있었다.

참, 지난 번 고글에 처음 찾아갈 때도 이랬었지.

“······왜?”

“좀 까는 글도 많이 썼고, 오늘 취재 내용도 별로 안 좋은 내용이잖아요.”

“그런 것까지 우리가 일일이 신경쓸 필요 없어. 영기씨. 우리가 신경 써야 할 건 그들의 감정, 기분이 아니야. 정보의 진실여부 뿐이지. 물론 인간관계라는 게 여러 가질 신경 써야 하는 건 맞지만, 영기씨가 하고 있는 걱정은 과해.”

“그, 그런가요.”

영기가 잘 모르겠다는 듯, 물러섰다.

‘저렇게 소심한 게 제일 문젠데.’

소심한 사람이 나쁘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다만 기자 일을 할 때만큼은, 대범해질 필요가 있다는 거다.

상대가 두려워할, 꺼려할 질문을 던질 줄 알아야 하고.

진심을 파악하기 위해서 그들의 속을 거리낌 없이 긁을 줄도 알아야 한다.

“그쪽에서도 취재에 응할 필요가 있으니까 우릴 만나주는 거야. 더 깊게 생각할 필요 없어. 알았지?”

회사에 안 좋은 기사를 대응하는 것도 홍보팀의 업무다.

최대한 그 영향을 줄이기 위해 좋은 변명거릴 준비해둬야겠지만.

“네, 넵.”

난 영기를 잘 달래가며 테헤란금융센터로 향했다.

잠시 후.

테헤란금융센터 건물 안에 들어온 난, 로비 가운데에 서서 휴대전활 꺼냈다.

고글코리아 홍보대행사인 신스컴에서, 도착 시 연락하라고 했기 때문이다.

[신스컴 라해영 대리]

발신 신호가 간지 2초도 되지 않아 상대가 통화를 수락했다.

-네, 주진형 기자님.

최근 자주 듣던 여성의 목소리다.

“지금 건물 안에 들어왔습니다.”

-네. 로비에 계신가요?

“네 안내데스크 앞입니다.”

-아, 거기 계시는 군요. 지금 확인했습니다.

내가 고갤 돌려 주변을 확인하자, 내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다가오는 여성이 보였다.

약간 갈색 빛이 감도는 긴 곱슬머리에 큰 키가 특징인 미인이었다.

“디지털투모로운 주진형 기자님이시죠?”

“네, 반갑습니다. 라해영 대리님. 직접 뵙는 건 처음이네요.”

내가 악수를 청했다.

곧 라 대리도 내 손을 잡고 흔들었다.

“위치도 다 아는 터라. 굳이 여기서 기다리실 필요는 없었는데요.”

내가 말하자, 라 대리가 고갤 저었다.

“아뇨. 상무님이 기자님 잘 모시고 오란 말씀하셨어요. 엘리베이터로 가시죠.”

‘정이영숙 상무가?’

나와 영기는 라해영 대리를 따라 승강기로 이동했다.

우리 둘을 먼저 승강기 안으로 탑승시킨 뒤.

라 대리도 승강기에 올라탔다.

“근데 식사를 하자고 하시던데, 사무실로 들어가는 이유가 뭔가요?”

내가 조용히 서있는 라 대리에게 먼저 말을 꺼냈다.

라 대리가 내 쪽으로 몸을 돌리더니, 차분히 설명한다.

“아마도 직원식당을 이용하실 생각이신 것 같아요. 고글코리아 점심이 꽤 괜찮거든요.”

“그래요? 이용해본 적 있으신가요?”

“네, 저도 딱 한 번요. 레스토랑 수준의 요리가 나와요.”

‘뭐 얼마나 자신 있기에 사내식당으로 초대했는지······ 한 번 볼까.’

평소에도 음식을 가려먹는 성격은 아니기에, 어떤 식당을 가든 개의치 않았다.

하지만 첫 만남을 사내식당으로 초대한다면, 난 상대가 날 깔보는 건가 생각할 수밖에 없다.

내가 그만큼 그들에게 격식 차릴 필요가 없는 존재라는 거니까 말이다.

물론 소규모 소속 매체 기자의 피해의식일 수도 있다.

“와, 어떨지 궁금하다.”

기대감을 품은 영기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승강기는 곧 지난 번 들렸던 22층에 도달했다.

승강기 문이 열리자마자, 눈앞에 낯익은 두 사람이 서있었다.

“주 기자님! 오셨어요?”

40대 중반의 긴 생머리 여성.

고글코리아 정이영숙 상무다.

“기자님, 안녕하세요.”

그 옆은 나와 전화로 지지고 볶았던, 선주경 부장.

선 부장을 보자마자 내 인상은 확 꾸겨졌다.

‘불편한데, 이렇게 마중나왔어야 했나.’

마음속에 솟구치는 그 말 한마디를 끌어안았다.

유쾌하진 않지만 어쩌겠는가.

난 앞의 두 사람이 듣도록 한숨을 내쉬곤 승강기서 하차했다.

“이쪽으로 들어오세요. 출입증은 저희가 준비해뒀습니다.”

정이영숙 상무가 사무실 안쪽을 향해 손짓했다.

웬일로 복잡한 과정을 생략하고 미리 출입증까지 만들어 놓은 모양이다.

나와 영기, 라해영 대리까지 가슴팍에 출입증을 달았다.

“오늘 여기까지 오시느라 힘드셨죠? 사무실이 여의도라고 하셨나요?”

정 상무가 친근하게 물어왔다.

몇 달 전쯤 귀찮은 듯 명함 교환했던 그와는 딴판인 모습이다.

“네, 여의도에서 왔습니다. 뭐 지하철 타고 오느라 힘들 건 없었구요.”

“하하, 다행이네요. 오늘 식사를 어디서 대접할까 하다가 저희 사내식당을 구경시켜드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 이쪽으로 모셨어요. 여기가 역삼동 맛집이거든요. 후후.”

고글의 사내 복지는 꽤 유명하다.

출퇴근이 자 유롭다든지, 헬스나 마사지 등의 여러 서비스들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든지.

그중 직장인들이 가장 환호하는 건 무료 식사 및 간식 제공이다.

무려 아침식사부터 저녁식사까지, 모두 무료.

“그러게요. 말로만 들어서 궁금하긴 했는데. 오늘 보겠군요.”

난 살짝 웃으면서 정 상무에게 답했다.

하지만 여전히 선주경 부장에겐 눈길하나 주지 않았다.

의기소침했는지, 선 부장은 조금 떨어져서 우리 뒤를 따라왔다.

두 번의 통로를 통과해, 이윽고 우린 카페테리아에 도착했다.

“와아-”

눈 앞 풍경에 영기가 바보처럼 입을 벌렸다.

분명 지난 번 왔던 동일한 카페테리아인데, 펼쳐져 있는 것들이 너무나 달랐다.

샐러드부터 면요리, 고기까지.

갖가지 화려한 음식들이 담긴 그릇이 테이블 위에 일렬로 놓여있다.

척 보기에도 요리수가 열가지는 넘어 보인다.

안쪽 조리실에선 요리사들이 바로바로 음식을 만들고 있었다.

“저희도 얼른 줄 서죠.”

정이영숙 상무가 이미 와있던 직원들처럼 배식대로 줄을 섰다.

내가 그 뒤를 따랐고 영기와 선주경 부장, 라해영 대리 순으로 식판을 들었다.

“확실히 자랑하실 만하네요.”

식판에 음식을 담으며, 난 정 상무에게 감탄했다는 듯 말했다.

앞 쪽에선 요리사가 요청에 맞춰 스테이크를 굽는 등, 고급 뷔페에 온 기분이었다.

“그렇죠? 맛도 좋아요. 이래서 저희 직원들은 절대 밖에 가서 밥 안 사먹죠.”

“그렇군요.”

풍족하게 음식을 담은 뒤, 남은 식탁에 우리 5명이 모두 둘러앉았다.

아직 정 상무와 명함교환하지 않은 영기가 명함을 꺼냈다.

두 사람의 인사가 끝난 뒤, 내가 입을 열었다.

“그럼 잘 먹겠습니다.”

“네, 맛있게 드세요.”

음식의 질도 훌륭했다.

‘이정도면 사내 카페테리아로 초대할 만하지.’

난 정이영숙 상무가 왜 이곳으로 우릴 불렀는지, 제대로 납득했다.

하지만 오늘은 음식탐방을 하러 온 게 아니다.

내가 할 말들을 다시 떠올려본다.

‘그럼 슬슬, 포문을 열어볼까.’

적당히 분위기를 살피던 난 수저를 놓았다.

정이영숙 상무와 나눠야 할 대화가 날 기다리고 있다.

“저, 상무님. 미리 말씀드려서 잘 아시겠지만, 오늘 이렇게 온 이유는 개발자 계정정지와 관련해서입니다.”

“네. 알고 있어요. 그 전에 잠깐.”

정 상무가 잠시 기다리라는 의미로 손바닥을 내밀었다.

그리곤 그가 선주경 부장에게 눈짓한다.

“······기자님 지난 번 일은 정말 죄송했습니다. 다시 제대로 사과드릴게요.”

선 부장이 내게 고갤 숙이며 정중히 사과했다.

‘하아.’

크게 내뱉을 순 없지만, 한숨이 날 지경이다.

선 부장은 앞으로 상대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인물이다.

애초에 고글 본사가 아닌 코리아를 통해 미튜브를 취재하는 것엔 한계가 있다.

만일 필요한 자료가 있다면, 홍보대행사를 통해 요청하는 정도로도 충분하다.

난 그렇게 판단했다.

이제 선 부장에게 아쉬울 게 없는 거다.

“선 부장님이 한 행동은 정말 신뢰받지 못할 일이었단 거. 아십니까?”

난 선주경 부장이 아닌, 정이영숙 상무를 향해 물었다.

“아, 그럼요. 당연하죠. 기자님 화가 나신 거 십분 이해합니다. 선 부장도 많이 반성했고, 앞으로 그럴 일은 절대 없을 겁니다. 용서해주세요.”

정 상무는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선 부장을 옹호했다.

‘절대라는 건, 없지.’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선 부장은 실수를 한 게 아니라 고의였다.

말로는 절대 하지 않겠다고 장담하지만, 실제론 두 번 세 번 또 할 수 있는게 사람이다.

“아뇨. 지금 전 선 부장님의 사과를 받아들이거나 용서할 수 없습니다.”

난 단호히 대답했다.

“그렇게 간단히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점, 인지하시리라 믿습니다. 천천히 시간을 두고 생각해보겠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정이영숙 상무님과 일정 잡은 거니, 다시 본래 주제에 대해서 얘기하도록 하죠.”

매몰차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내 입장에선 틀린 소리가 아니다.

내 의지를 확인한 정 상무도, 하는 수 없다는 듯 포기했다.

“음······네 그러죠. 저도 주 기자님 보내주신 내용,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저희로써도 앱 개발이나 등록정책에 대해서 잘 알진 못해요. 고글 본사와 연락을 주고받는 것도 시간이 좀 걸리구요. 지금은 딱히 드릴 말씀이 없네요.”

정 상무가 친근함을 벗고는 사무적인 태도로 답변했다.

내가 피식 웃었다.

정 상무는 좋은 식사자리를 만들어서, 나와 선 부장 간 관계개선을 하는 게 주목적 이었던 거다.

오늘의 핵심주제를 이렇게 무성의하게 내팽겨 칠 줄이야.

“상무님. 그렇게 말씀하시면 상당히 곤란한데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