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만만하게 보지 말라는 일종의 경고
며칠 전 내가 받았던 이메일은 간절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안녕하세요. 주진형 기자님. 저는 휴머노이드 앱을 만들고 있는 1인 개발자 김현석입니다]
보도 자료가 아닌 제보 메일을 받아보는 건 나로써도 처음이었다.
디지털투모로우라는 삼류 언론사 간판만 보면, 누가 제보할 마음이 들겠는가.
[기자님이 고글과 KMR에 대한 취재기사 내셨던 걸 보고, 제보를 드리게 됐습니다]
확실히 언론사 밸류네임 때문에 제보한 게 아니었다.
겸연쩍은 얘기지만, 그간 내가 써낸 취재 기사들의 결과였던 거다.
어쨌든 그 뒷내용은 대충 이러했다.
어느 날 김현석씨의 고글 개발자 계정 이메일함에 고글 측 이메일이 와있었다.
김씨가 휴머노이드 앱 콘텐츠 정책 및 개발자 배포 계약을 여러 번 위반했다고 고지하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헌데 김씨는 이 설명에 대해 쉽게 수용할 수가 없었다.
[······저는 이전에 올렸던 앱과 동일하게 콘텐츠를 업로드 해왔습니다. 갑자기 스팸조항을 위반했다는 설명은 잘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이 이후에 있다.
김현석 씨가 위반됐다는 스팸 키워드 항목을 제거하고 앱을 다시 등록했지만, 앱이 또 삭제된 거다.
아예 모든 앱 설명항목을 제거하고 앱을 올렸으나 결과는 동일했다.
오히려 고글은 김씨의 개발자 계정을 아예 정지시켜 버렸다.
[······저는 고글 측이 통보한 메일 내용에 따라 위반되는 내용을 수정해 올렸을 뿐입니다. 그런데 두 번째와 세 번째 조치에 문제가 없었는데도 앱을 삭제하고 계정까지 정지 시킨 겁니다······]
이메일은 여기서 더 이어진다.
하지만 난 생각을 멈추고 현실로 돌아왔다.
고글코리아 카페테리아 안
내 앞에 앉아 있는 정이영숙 상무도 이 내용을 읽었을 터다.
그런데 본사와의 소통 운운하며 해줄 수 있는 말이 없다니.
마치 티마 김서정 팀장이 내게 했던 장난질이 떠오른다.
“제가 메일로 첨부해드리진 않았지만, 비슷한 사례를 겪은 개발자 분들이 한 두 분이 아닙니다.”
실제로 개발자 커뮤니티를 돌며 조사해본 바, 동일한 고통을 겪고 있는 개발자들을 여럿 볼 수 있었다.
“고글코리아 측에선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몰라도, 국내 개발자들은 심각하게 여기는 부분입니다. 지금 고글 플레이 고객센터의 개발자 응대에 대한 불만도 많구요. 상무님. 이런 상황에 너무 간단하게 말씀하시는 거 아닙니까?”
난 감정을 삭이고 최대한 점잔하게 설명했다.
굳이 공격적인 어조를 쓰지 않더라도, 이 정도 말을 하면 알아들을 거란 생각이다.
내 말을 듣고는 정이영숙 상무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고객센터는 담당 인력을 늘리고 있어요. 아마 조금만 기다리시면 문제가 해결 될 거예요. 그리고 앱 개발 규정 같은 경우 본사에서 관리하고 있어서, 저희 쪽에서 어떻게 해드릴 방법이 없는 게 사실이에요. 일단 본사에 연락해서 무슨 일인지 확인은 해볼게요.”
아까보다는 나은 대답이었지만, 여전히 내가 바라던 수준엔 못 미친다.
하지만 여기서 더 이 이야길 물고 늘어지진 않기로 했다.
정이영숙 상무의 반복된 대답을 보아하니, 준비가 전혀 돼있지 않다.
처음부터 이 사안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았던 모양이다.
‘어차피 더 알고 있는 것도 없는 듯한데, 질질 끌어봐야 피차간에 얼굴만 붉히겠지.’
난 체념하고 마지막 요구만 걸어놓기로 했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내일 안으로 답을 주셨으면 좋겠군요. 기사를 빨리 써야 돼서요.”
이쯤하면 됐다.
대답이 날아오든, 아니든 난 티마 때처럼 그대로 기사를 낼 생각이다.
이 내용을 기사로 쓴다는 걸 밝힌 이상, 나중에 쓸데없는 딴죽은 안 들어오겠지.
“그나저나 요즘 KMR은 어떤지 알고 계세요?”
화제를 바꾸며 내가 말했다.
선주경 부장이 당황해 내 얼굴을 봤지만, 난 눈길 주지 않았다.
“KMR이요? 네, 사실 잘 모르겠는데. 혹시 요즘 연락하셨나요?”
정이영숙 상무가 선 부장 대신 내게 물었다.
“네. 박진종 대표님과 얼마 전 통화 한 번 했는데. 이달 메이버 광고수익만 3억이라더군요.”
3억이면 KMR이 미튜브로부터 얻던 콘텐츠 수익의 거의 2~3배 수준이다.
게다가 KMR은 현재 메이버에만 콘텐츠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내일에도 공급중이다.
즉, 수익이 들어오는 창구가 두 곳이란 얘기다.
고글 입장에선 굉장히 배가 아픈 현상이지.
“······그렇군요.”
쓴웃음을 지으며 정 상무가 대답했다.
내색은 못하지만 역시 기쁜 마음으로 들을 만한 이야긴 아니다.
난 그걸 알고 있음에도, 일부러 이렇게 얘기하는 거다.
‘내가 이런 정보를 알고 있다는 것. 그걸 고글도 알아둬야 하니까.’
일종의 위협이다.
KMR의 광고 수익에 대해 기사를 쓴 매체는 아직 없다.
하지만 나나 다른 기자가 [KMR, 미튜브 나오자마자 수익 두 배]등의 기사를 써낸다면.
고글로써는 자존심을 구기는데다가, 국내 플랫폼 영업에 차질을 빚을 수도 있다.
그러니까, 날 만만하게 보지 말라는 일종의 경고였다.
“후후, KMR이 잘되고 있으니 저희도 분발해야죠. 뭐 미튜브 BJ 분들이 분발하고 있어서 저희 수익도 많이 올랐어요.”
참 단단한 정신이다.
정 상무는 흔들리지 않고 미튜브BJ로 방어대응에 나섰다.
“참. 주 기자님. 선 부장 통해서 미튜브 BJ분들 취재하고 싶다고 하시지 않으셨어요?”
그랬었지.
선주경 부장한테 접근하기 위한 빌미로, 내세웠던 취재거리였다.
“네 맞아요. 근데 그때 그 일 이후로 연락도 없으셨고, 저도 그냥 잊고 있었네요.”
내가 선 부장을 힐끔 보며 답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정이영숙 상무가 말을 쏟아냈다.
“원하신다면 바로 연결해드릴게요. 이미 선 부장이 섭외는 다 끝냈을 거예요. 소득 공개를 해도 된다는 분들이 몇 분 계시더라구요. 원래 취재내용대로 가셔도 될 것 같아요.”
“네. 연락처 보내주시면 바로 취재 들어갈게요.”
“후후, 알겠습니다. 그럼 좋은 기사 써 주시는 거죠?”
흐응.
미튜브의 가치를 올려줄만한 기사를 써달란 얘기다.
남에게 부탁받을 때는 세상 차가운 태도로 답하더니.
자신 좋은 일을 부탁할 때는 이렇게 곰살갑나.
이런 이중성을 좋아하는 성격은 못되지만, 대놓고 싫어하는 티를 낼 순 없다.
물론 애써 좋은 척 할 필요도 없지.
“아무래도 좋은 쪽으로- 기사가 나가겠죠.”
난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
우린 고글이 개발한 스마트폰이나 노트북 등을 놓고 시답잖은 대화를 나눴다.
취재엔 크게 도움 안 되는 정보들이지만, 서로 간에 마음만큼은 편한 소재들이다.
“그럼 다시 연락드릴게요. 조심히 들어가세요.”
“주 기자님. 제가 따로 연락드려서 사과하겠습니다. 잘 들어가세요.”
“나중에 또 뵙겠습니다.”
점심일정을 마치고 다시 사무실 밖.
승강기를 타고 내려가기 전, 정이영숙 상무와 선주경 부장의 인사가 이어졌다.
신스컴의 라해영 대리도 두 사람과 할 말이 남았는지, 승강기에 타지 않았다.
난 말없이 그들에게 고갤 숙였다.
곧 승강기 문이 닫히고 몸이 붕뜨는 기분과 함께 하강하기 시작했다.
“영기씨.”
“네?”
내 부름에 영기가 재빨리 답한다.
“선주경 부장이 미튜브BJ 연락처 보내면 직접 연락해서 취재해.”
“제, 제가요!?”
내가 도맡아 할 거라 생각했던 일이, 자신에게 떨어지자 적잖이 놀란 것 같다.
허나 어쩔 수 없다.
난 ‘배달의겨레’400억 투자유치 건에 집중해야 한다.
게다가 조금씩 영기의 기량을 키워나갈 필요도 있으니 일거양득.
“어려운 취재 아니니까 충분히 가능해. 지난 번 소셜MD들 취재도 잘 했잖아. 이 건은 미튜브BJ들 월 수익과 관련해 인터넷방송 시장성에 대해서 쓰기로 했으니까. 더 쉬울 거야. 인터뷰 위주로 기사를 만들면 돼. 알겠지?”
“네······”
내키지 않는 다는 듯 기운없는 대답이다.
“영기씨, 자신 없어? 대답 확실하게 해줘.”
내가 강한 어조로 몰아붙였다.
“아, 아니요!”
“좋아. 영기씨 편한대로 전화 취재를 하든, 이메일 취재를 하든 마음대로 해. 과정은 간섭 안 할게. 저번처럼 기사만 내가 한 번 검토할 거고. 하지만 영기씨, 4개월 뒤 수습 딱지 떼고 진짜 기자 될 생각이라면. 겁먹지 말고 최대한 열심히 해줘. 알았지?”
“네, 넷!”
정확히는 4개월도 남지 않은 시점이다.
내가 산업 기자로써 적응하는데 걸린 기간은 약 한 달여.
그 뒤부터는 다른 선배 기자들처럼 홀로 취재를 다녔다.
지금 영기와 같이 입사한 동기 기자들은, 뭐 믿음이 가는 건 아니나 어쨌든 단독행동을 하고 있다.
그러니까, 2개월이 모두 지나기 전에 이미 이윤철 대표나 김정효 팀장은 신입들의 탈락과 합격을 결정해 놓았을 거다.
‘우린 인력이 부족하니까 아직 기회는 있어, 영기씨. 부디 계속 내 옆에 있길 바랄게.’
앞으로도 부려먹고 싶다고 말할 순 없으니, 난 속으로만 영기를 응원했다.
테헤란금융센터 빌딩을 나온 우린, 다시 신논현 역으로 돌아가 지하철을 탔다.
급행열차가 바로 온 덕분에, 여의도까지 15분여 만에 도착했다.
“영기씨, HD기자실로 들어가서 취재하고 있어. 난 증권가 쪽에 만날 사람이 있어서 잠깐 갔다 올게.”
“네, 선배.”
영기를 HD빌딩으로 들여보낸 뒤.
난 바로 여의도금융가로 향했다.
‘자, 그럼. 난 배달의겨레를 노려야 하는데······’
만나자고 연락해뒀던 장도현 과장과 이 근처에서 차를 마시기로 했다.
“주 기자님!”
도현은 투자증권사 건물 앞에 서있었다.
멀리서부터 날 알아봤는지 연신 팔을 흔들어댔다.
“과장님, 제가 바쁘실 때 불러낸 건 아닌가 모르겠네요.”
“아뇨. 지금 딱 시간이 빕니다. 저쪽 카페로 들어가실까요.”
“네. 그러죠.”
증권사 건물에 입점한 유명 프랜차이즈 카페 안.
난 이전처럼 몇 가지 정보목록이 담긴 종이를 도현에게 넘겼다.
“음, 오늘도 다 주십시오. 돈은 바로 보내겠습니다.”
목록을 훑은 도현이 밝은 얼굴로 내게 말했다.
“두개 분은 빼셔도 됩니다. 부탁드릴게 있거든요.”
“오. 또 뭔가 있습니까?”
도현이 얼굴을 가까이 하며 흥미를 보였다.
지난 번 내가 그에게 티마 매각에 대한 추측을 들려준 이후.
아무래도 도현은 내 추측이 단순한 의심이 아님을 알아차린 듯하다.
‘어느 정도 정황들을 모아놨을 거라 생각하는 걸까.’
뭐, 틀린 건 아니지만 내가 증명할 방법은 오로지 가설 뿐.
“배달의겨레라고 아시죠?”
“네, 배달음식 시켜먹는 앱이요.”
도현이 밝은 표정으로 끄덕였다.
“네. 거기 경쟁사가 두 곳 더 있는 것도 아시나요?”
“알고 있습니다. 주 기자님이 배달갑과 조기요 합병 기사를 쓰셨죠.”
“네 맞아요. 기억하고 계시는 군요.”
난 차근차근 배달앱 업계에 대해 설명해나갔다.
“투자자를 찾던 배달갑이 조기요와 한솥밥을 먹게 되면서, 배달의겨레는 이 두 회사를 동시에 상대하게 됐죠. 아무래도 벅찰 겁니다. 업계 1위라고는 하나 적자경영이 지속되고 있으니까요.”
“그렇겠죠?”
현재 배달앱 3사는 소셜커머스와 마찬가지로 모두 출혈경쟁 중이다.
수익구조가 없는 건 아니나, 사업규모를 키우고 투자를 하는 비용이 더 큰 탓이다.
특히 할인쿠폰이나 TV광고로 소모되는 마케팅 비용이 크다.
“제가 알아보니까 작년 배달의겨레가 투자받은 비용이 120억 원. 올해까지 광고로 집행한 비용만 100억 원에 가깝습니다. 이제 1분기도 끝났으니 분명 추가 투자가 필요한 시점이죠.”
난 여의도로 오며 검색해봤던 기사 내용을 간추려 말했다.
“으음.”
도현이 잠시 고민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가 설득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안됐다 하더라도 부탁은 해야 한다.
난 지체 없이 말을 이어갔다.
“여기서 제가 과장님께 부탁드리고 싶은 건, 이겁니다. 기존 투자사들. 혹은 거물 투자사들의 움직임을 체크해주십시오. 특히 유니콘벤처스라는 곳을 중심으로요.”
기존 투자사는 유니콘벤처스.
거물 투자사는 골드앤실버.
두 곳을 모두 염두 해두고 말한 거다.
하지만 골드앤실버가 배달의겨레에 투자한다는 건, 내 두 눈으로 보고도 너무 뜬금없는 내용이다.
세계금융의 중심, 월가의 패자가 한국의 적자경영 스타트업에 투자한다?
내가 애널리스트라도 쉽게 예상하기 어려운 얘기다.
이 탓에 난, 도현이 골드앤실버의 움직임을 주시할 거란 기대는 별로 하지 않는다.
운이 좋다면.
혹은 도현의 감이 뛰어나다면 가능할지도 모르겠지.
“만약 배달의겨레 쪽에서 투자유치를 목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면, 어느 정도 손이 큰 쪽들이겠죠. 말씀하신 대로 기존 투자사와 거물급 투자은행들까지 지켜보겠습니다. 확인 되는대로 알려드리죠.”
도현은 내게 자신만만한 태도로 대답했다.
물론 내가 의도한 방향대로 그가 가주진 않겠지만.
유니콘벤처스에 대한 떡밥이라도 흘렸으니, 기다려보는 수밖에 없다.
“그럼, 과장님만 믿도록 하죠.”
“하하, 별말씀을요. 참. 곧 제 인센티브가 나올 겁니다. 제 사내 아이디 아시죠? 다음 주 쯤, 들어가 보세요.”
듣던 중 반가운 소리다.
인센티브 지급시기가 벌써 다가온 거다.
“오우, 그거 기다려지네요. 많이 기대해도 되는 거겠죠, 과장님?”
흐흐, 내가 웃으면서 도현을 떠봤다.
“뭐, 제 기준으로썬. 네, 기대하시길 바랍니다.”
“하하하.”
도현과의 만남은 즐거운 분위기로 마무리 됐다.
그와 헤어지고, 나도 영기가 있을 HD 기자실에 가기로 했다.
HD빌딩으로 들어온 난, 홀로 승강기에 몸을 실었다.
몸이 하늘 가까이 다가갈수록, 이상한 기시감이 내 눈앞에 아른거렸다.
그리고 문득, 기억이 났다.
유니콘벤처스 대표 장 킴.
이 사람을 내가 어디서 봤었는지.
‘김예인네 집······액자 속 아버지······’
되뇌는 순간 머릴 맞은 기분이 들었다.
-한 가지 알려줄게. 곧 우리 아빠가 한국으로 돌아와.
-긴장하고 있어. 꽤나 바빠질 테니까.
그 목소리가 승강기 안에서 울리는 듯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