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래에서 온 특종-64화 (64/107)

64. 상관있지. 소원권, 하나 남았잖아

‘설마······’

기억 저편에 잠들어 있던 사진 속 얼굴과, 인터넷에서 본 얼굴이 겹쳐진다.

정말일까.

정말 장 킴이 예인의 아버지일까.

당장으로썬 확실할 수 없는 얘기였다.

단순히 비슷하게 생긴 사람일 수도 있고.

‘어쨌든 성이 같은 김 씨라는 점 말고는······ 근거가 없나.’

동일인물인지 아닌지, 판명할 방법이 하나 있긴 하다.

바로 예인에게 직접, 그의 아버지에 대해 물어보는 거다.

승강기가 멈춰서더니 이내 문이 열렸다.

난 익숙한 발걸음으로 HD기자실로 향했다.

“어, 선배.”

기자실 문을 열자, 이미 자리 잡고 있던 영기가 날 맞았다.

“미튜브 쪽은, 자료 왔어?”

“네 받았어요. 지금 뭐 물어볼지 정하고 있었어요.”

“오케이.”

가방을 기자실 한 자리에 내려놓고, 다시 영기를 본다.

“초기에 내가 잡아놨던 건, 지난 번 소셜커머스MD랑 같아. 시장의 성장가능성. 현 종사자들의 수익현황. 이 두 개를 중심으로 잡고 소소하게 몇 가지 곁들이면 기사는 될 거야. 다만, 알지? 전화보다는 직접 만나서 얘기하는 게 훨씬 정보도 많이 나온다는 거.”

영기에게 면대면 취재를 강요하듯, 덧붙였다.

분명 영기도 내 말의 의도를 잘 파악했을 거다.

웬만하면 전화취재 대신, 직접 만나라.

그래야 좋은 기사를 쓸 수 있다.

“네······저도 아는데······”

쉽지 않다는 말을 끝에 꺼내지 못한 채.

영기가 말을 흐렸다.

“뭐, 난 여기까지만. 관여는 안할게. 영기씨 하고 싶은 대로 해. 어차피 나도 따로 취재해야할 일이 생겨서.”

영기에게 조언하는 건, 여기까지.

나 역시 예인과 장 킴에 대한 생각으로 복잡한 상황이다.

녀석이 내 말을 들어먹든 말든, 나도 내 갈 길을 가야 한다.

“네? 무슨 일 있나요?”

“아아, 지금은 아직 확실하지 않아. 확인해보고 명확해지면 얘기해줄게.”

“네, 넵.”

궁금한 듯 했지만, 영기는 더 캐묻지 않았다.

난 영기를 두고 또 기자실 밖으로 나왔다.

그리곤 휴게실 쪽으로 걸어가며 휴대전화로 통화버튼을 눌렀다.

[이디넷 김예인 기자]

내가 먼저 예인에게 전화를 거는 날이 올 줄이야.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참, 묘한 일이다.

휴대전화 수화 부를 귓가에 갖다 댄다.

신호음이 경쾌하게 울리고 있었다.

‘······왜 이렇게 안 받아.’

거의 6번 넘게 신호음이 반복되는 동안.

예인은 전화 받을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

그리고 8번째 신호음이 끝나가던 찰나.

-무슨 일.

드디어 예인의 목소리가 휴대전화에서 들려왔다.

난 그의 짧은 말에 잠시 한 숨을 내쉬곤, 차근히 입을 열었다.

“어, 나야. 지금 통화 괜찮아?”

-기사 쓰는 중이야. 짧게.

기사 쓰느라 전화를 안 받았던 건가.

그럴 수 있지.

“너 며칠 전에 아버지가 한국으로 오신다고 한 적 있지?”

-응.

잊지 않고 있었는지, 예인은 즉각 대답했다.

난 HD휴게실 한가운데에 놓인 전자동 커피머신에 다가가며 말을 이었다.

“너 아버님 성함이 혹시 김 자, 장 자 되셔?”

나 또한 지체할 것 없이 곧장 핵심을 던졌다.

장 킴.

한국식으로 읽으면 김 장, 일거다.

예인의 대답을 기다리며, 난 커피머신에 달린 ‘블랙커피’ 단추를 눌렀다.

위이잉 하는 요란한 기계음과 함께 원두가 갈리기 시작했다.

-아니. 아닌데.

“어······아니야?”

으음.

난 커피머신에서 커피가 든 종이 잔을 꺼내며 신음했다.

8할 정도, 동일인이 맞을 거라 기대했지만 틀린 거다.

어쩐지 일이 너무 절묘하게 풀리는 것 아닌가 싶더라니.

“그래······ 아니라고.”

아쉬움에 한 번 더 중얼거려본다.

이렇게 된다면 무작정 도현의 정보를 기다리거나, 배달의 겨레를 무식하게 쫓는 것.

그 두 가지 외엔 방법이 없다.

-응 아냐. 우리 아빠 이름은 김장석.

예인이 쐐기를 박았다.

김 장과 김 장석.

두 글자가 묘하게 들어맞지만, 확실히 다르다.

‘후우. 뭔가 실마릴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난 뒷머리를 긁었다.

“그래? ······내가 오해했나 보네. 알았어. 끊을-”

-업계에선 장 킴이라고 불려.

“······”

난 통화를 끊으려다 들려온 한 마디에 멈췄다.

“뭐? 장 킴?”

-응.

“후아. 너, 일부러 그러는 거지. 내가 왜 물어보는지 다 알고 있으면서.”

처음부터 내가 전화 건 이유를 알았던 건 아닐까.

예인 성격에 내게 장난을 칠 것 같진 않지만, 이렇게 말을 복잡하게 만들다니.

순간적으로 짜증이 밀려왔다.

-아닌 걸 아니라고 한 것뿐이야.

“아이고. 그래, 어련하실까.”

난 고갤 절레절레 흔들었다.

봐도, 봐도 참 적응 안 되는 행태다.

하지만 지금은 취재를 위해 잠시 참아야 한다.

“어쨌든- 아버님이 유니콘벤처스의 장 킴 대표. 맞다 이거지?”

-거기까지 알아냈어? 너답네. 맞아.

예인은 내가 자신의 아버지에 대해 캐묻는 것에 큰 반감은 없어 보인다.

이상하게 여길 만도 한데, 오히려 기다렸다는 듯 말하고 있다.

“잠깐 만날 수 있어?”

-왜.

“할 말 있어. 잠시 좀 만나자.”

내가 예인에게 이런 말까지 하게 될 줄이야.

솔직히 내키지는 않지만, 굳이 직진을 놔두고 돌아갈 필욘 없다.

-KGT기자실로 와.

허락이 떨어졌다.

“알았어. 곧 간다.”

바로 대답하고 통화를 종료했다.

종이 잔에 든 커피를 단숨에 들이 킨 뒤.

난 다시 기자실로 들어갔다.

그리곤 내려놨던 가방을 어깨에 멨다.

“어? 선배 나가시게요?”

내 행동을 본 영기가 의아한 듯 물었다.

기자실에 들어 온지 5분도 안 돼 나가려는 듯하니, 이상할 수밖에.

“응. 나, 갑자기 취재할 곳이 생겨서 KGT기자실로 이동할게. 영기씬 그냥 여기서 BJ들하고 접촉하고 있어. 필요한 일 있으면 따로 연락할게.”

“넷, 알겠어요.”

“오케이. 그럼 갈게 수고!”

영기에게 간단히 설명을 마친 뒤 난 기자실을 나섰다.

HD빌딩을 나와 지하철을 탄다.

KGT본사가 있는 광화문까진 15분 정도.

난 흔들리는 전동차 벽에 몸을 기댔다.

그리곤 휴대전화를 들고 새로 올라오는 기사들을 파악했다.

기자들의 일상이란 이렇다.

이동 간에도 끊임없이 속보를 확인하고, 정보를 수집한다.

‘아주 자연스레 몸에 뱄네.’

기문 선배를 쫓아다니며 한창 배울 때.

이는 선배가 내게 보여준 모습이었다.

‘별 건 없나.’

메이버 뉴스홈에 뜬 IT기사 제목들을 대충 넘겨나갔다.

오전에 봤던 기사들과 크게 달라진 내용은 없었다.

대부분의 보도 자료 기사들 뿐.

난 혹시나 싶어 뉴스 속보 란을 눌렀다.

‘······기사 쓴다던 게 이거였냐.’

곧 맨 상단에 뜬 기사가 내 동공을 확장시켰다.

[내일코코아 첫 행보, ‘코코아페이’준비 –이디넷 김예인 기자]

기사가 출고된 시간을 보니 2분 전.

정말 따끈따끈한 단독 특종이었다.

“하필 이럴 때 터트리다니.”

뭐 터트리는 거야 예인의 마음이지만.

당장 대응하기 어려운 환경에 있는 게 아쉬웠다.

지하철 내에 빈 좌석이라도 있으면 앉아서 노트북을 꺼냈겠지.

하지만 지금은 빈자리도 없다.

[김정효 팀장]

게다가 김 팀장도 기사를 본 모양이다.

내 휴대전화 화면에 김 팀장의 통화가 떠올라 있었다.

난 지체없이 수신버튼을 눌렀다.

“네, 팀장.”

-어 진형아. 너 지금 어디냐? 어-? 밖이야?

쿵쾅거리는 지하철 소리가 김 팀장에게도 들린 듯하다.

“네, 지금 KGT기자실로 이동 중입니다.”

-어 그래? 혹시 지금 이디넷 기사 봤냐? 내일코코아, 코코아페이.

예상이 맞았다.

“네. 봤습니다. 안 그래도 지금 대응하려고 했습니다.”

난 주윌 두리번거리며 자릴 옮길 수 있는지 봤다.

역시 앉을만한 곳은 보이지 않는다.

-지금 당장 쓰기 뭐하면 내가 할까?

내 처지를 이해한 김정효 팀장이 배려 가득한 제안을 했다.

하지만 내 일을 팀장께 떠넘길 수야 없지.

게다가 나만 알고 있는 정보도 있으니, 직접 쓰는게 맞다.

“아닙니다. 조금 있으면 하차하니, 빨리 처리하겠습니다.”

-그래? 알았다. 작성하면 문자 줘.

“알겠습니다.”

김 팀장과의 전화를 마치고, 난 지하철 알림판을 쳐다봤다.

[이번 역 충정로 내리실문 왼쪽]

아직 도착지인 광화문까진 두정거장이 남아있다.

하는 수 없다.

‘일단 확인부터 하자.’

어차피 이적우 내일코코아 대표나, 예인으로부터 들어서 다 아는 내용이다.

그럼에도 예인의 기사에 적힌 내용들을 내일코코아 측에 일일이 검증할 필요는 있다.

“아 딜라스. 디지털투모로우 주진형 기잡니다.”

난 내일코코아 정열성 매니저에게 바로 연락했다.

아직 다른 기자들이 전화공세를 시작하지 않았는지, 수월하게 연결이 됐다.

-네 기자님! 무슨 일이세요?

예인의 기사를 파악하지 못한 상태인가.

정열성 매니저는 너무나도 평온한 어조로 날 맞이했다.

하긴 기사가 나온지 아직 5분도 되지 않았으니.

못 봤다 하더라도 이상하진 않다.

“혹시 김예인 기자 기사 못 보셨어요? 그거 때문에 연락드린 건데.”

-네? 김 기자님이 기사 내셨어요? 저희 걸로?

“네. 코코아페이 건으로 냈어요. 확인해보세요.”

-헉! 정말 인가요! 네, 빨리 찾아볼게요!

“아아, 그 전에 딜라스! 제 질문에 답좀 하고.”

금세라도 전화를 끊어버릴 듯한 정 매니저의 태도에, 내가 급히 그를 불렀다.

-네, 네! 뭐, 뭔가요?

급박한 상황과 조우한 정열성 매니저는 당황했는지 말을 더듬거렸다.

“코코아페이. LC CNS와 함께 하는 것 맞죠? 금감원 보안성심사 가군 통과한 거고.”

난 예인의 기사에 적혀있던 내용을 떠올리며 정 매니저에게 물었다.

이렇게 팩트체크를 한 후에 기사를 쓸 수 있다.

-아, 네! 맞아요.

“카드 등록해서 간편 결제로 쓸 수 있는 것도? 온라인만 되는 건가요?”

-아, 네 일단은요. 오프라인도 지원할 예정인데 아직은 미정이구요.

“알겠습니다. 그럼 딜라스 수고해요! 저도 기사 곧 내보낼게요.”

-아 기자님.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끊을게요!

정열성 매니저는 급한 목소리로 통화를 끝냈다.

당장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직접 보기 위함이겠지.

후, 난 웃었다.

“이번 역은 광화문, 세종문화회관역입니다. 내리실문은 왼쪽입니다.”

때 마침 안내방송이 나왔다.

잠시 후, 열차는 광화문역에 정거했다.

차문이 열리자마자 난 뛰쳐나가 빈 벤치에 앉았다.

자세를 잡고 노트북을 꺼낸다.

익숙한 바탕화면이 뜨자마자 기사작성에 돌입한다.

[내일코코아, 핀테크 ‘코코아페이’로 간편결제 도전]

주위를 오가는 숱한 사람들의 시선을 잊은 채.

난 한동안 노트북 자판만 두들겼다.

그리고 5분 후.

[주진형 : 팀장, 기사 올렸습니다]

코코아페이 기사를 기사작성기에 송고할 수 있었다.

[김정효 : 어, 확인했다. 수고했어]

“후우.”

김정효 팀장에게 보고를 마친 후에야, 난 현실을 자각할 수 있었다.

허겁지겁 다시 노트북을 가방에 넣고 자리서 일어난다.

“하아. 김예인 덕분에 별 경험을 다하네.”

기사 쓰는 것에 때와 장소가 없다고 배웠지만.

막상 몸소 체험하게 되니 그리 달갑지만은 않다.

“그럼 당사자를 만나러 가볼까.”

난 역사 출구를 향해 발을 디뎠다.

“기사, 잘 봤어.”

KGT 올라스퀘어 내 카페.

같은 테이블 석에 마주 앉은 예인에게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기자실에 있다가 내려온 예인의 표정엔, 기쁨이나 짜증 등 감정이 나타나있지 않다.

‘그정도 되는 기사를 터트렸으면 좋아할 만도 할 텐데. 덤덤하네.’

예인의 얼굴을 읽으며 생각한다.

“너도 바로 기사 냈더라.”

“어, 네 덕분에 지하철역에서 쭈그리고 기사를 썼지.”

“멋지네.”

그게 뭐가 멋지냐.

분명 예인으로썬 진심일 텐데, 내겐 놀리듯 들렸다.

“그래서. 그것 때문에 불러낸 건 아닐거고. 왜 불렀어?”

오후 5시가 다 돼가는 시점이지만, 올라스퀘어는 꽤 붐볐다.

난 오가는 사람들을 가만히 관찰하면서, 예인에게 툭 본심을 내뱉었다.

“나, 너희 아버님을 좀 뵙고 싶은데. 장 킴 대표 말이야.”

“왜?”

알면서 묻기는.

이미 전화로 얘기했던 부분 아닌가.

그래도 어쩔 수 없지.

예인이 원한다면 다시 설명해야 된다.

“실리콘밸리에 본적을 둔 벤처투자사 유니콘벤처스. 그곳 대표가 한국에 오신 건 분명 투자하기 위함이시겠지? 휴가철도 아닌 이 시기에, 단순히 따님 얼굴 보러 온 건 아닐테고.”

“좋은 판단이야. 하지만 내가 왜?”

자신이 왜 남 좋은 일을 해줘야 하냐는 물음이다.

순순히 인정하면서도 협조적인 태도는 취하지 않는 거다.

그렇게 나오시겠다 이거지.

“왜냐고? 내가 원하니까.”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

날 떠보는 걸까.

아니면 잠시 튕겨보는 걸까.

이것저것 단서를 흘려준 사람답지 않게 말이 길다.

난 씩 웃으며 대답했다.

“상관있지. 소원권, 하나 남았잖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