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래에서 온 특종-65화 (65/107)

65. 제대로 조사한다는 그 멘트는 실어드리죠

소원권 얘기를 듣자마자, 예인의 표정에 변화가 생겼다.

옅은 웃음.

그 미소의 의미가 뭔지, 난 잘 모른다.

하지만 예인이 내 부탁을 거절할 순 없다는 건 안다.

“그 소원권. 지금 쓸게. 아버님 뵐 수 있게 도와줘.”

이적우 내일코코아 대표와 함께 한 자리에서 거래한 결과였다.

예인은 날 기삿거리로 쓰고, 난 그에게서 소원권을 하나 받는다.

그 소원권을 어떻게 쓸지는 전적으로 내 마음이다.

“거부하진 않겠지? 내가 불가능한 일을 시킨 건 아니니까.”

난 재차 예인을 압박했다.

예인의 겁 없는 눈이 날 또렷하게 쳐다본다.

“그걸로, 되겠어?”

“뭐?”

이상한 질문에 내가 반문했다.

“소원권. 이정도 일에 써도 되겠냐고.”

이정도 일이라니.

‘앞으로 일어날 일의 규모를 알고서 얘기하는 건가?’

예인이 자신의 아버지인 장 킴 대표로부터 투자정보를 미리 들었을 수도 있다.

헌데 배달의겨레 투자자로 미국의 골드앤실버가 등장한다는 건, 그 자체로도 굉장한 특종이다.

게다가 투자 규모도 400억 원대.

‘이정도 일’로 치부할만한 사건은 절대 아니다.

“뭐 어떻게 생각하든 좋아. 난 지금 장 킴 대표를 취재하고 싶어. 그러기 위한 방법 중에, 이게 가장 빠르고 정확하다고 생각하고.”

“알았어.”

예인의 입에서 간결한 승낙이 떨어졌다.

“그래서. 최대한 빨리 뵙고 싶은데. 언제쯤 가능할까?”

마음이 바뀌기 전에 빨리 일정을 잡아놔야 한다.

나도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는 상황은 아니다.

앞으로 어떻게 사건이 흘러갈지 모르니, 빠르게 움직일 필요가 있다.

“글쎄. 물어봐야 알 것 같은데.”

“내일이나 내일모레, 가능할까?”

먼저 장 킴 대표를 만나야 투자에 대한 윤곽이라도 잡게 될 터.

그 무기를 얻은 다음에야 배달의겨레 성경호 팀장을 상대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난 무리인 줄 알면서도 빠른 시일을 요구했다.

“아빠한테 연락해볼게.”

“알았어. 그럼 믿고 기다린다?”

“응.”

용건을 마친 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예인은 그대로 앉은 채, 차를 홀짝였다.

분위길 보아하니 더 나올 말은 없을 것 같았다.

난 기자실로 이동하기로 했다.

“나 먼저 기자실 들어간다?”

“어떻게든 만나게 해줄 순 있지만. 너무 기대하진 마.”

그런 내 발걸음을 붙잡듯, 뒤에서 예인의 흘러나왔다.

무슨 뜻인가 싶어 다시 그를 본다.

“뭐?”

“원하는 답을 얻을 수 있을 거란 기대. 난 못 도와주니까.”

장 킴 대표를 만나게 해줄 순 있다.

하지만 그 외의 일은 내 몫이란 뜻이다.

‘상관없어.’

예인이 날 지원해준다는 건, 애초에 기대도 하지 않았던 거니까.

“······그래, 연결만 시켜줘. 나머진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난 이 말을 끝으로, 카페를 벗어났다.

1시간도 채 남지 않은 퇴근 시간 전까지.

난 새로 올라오는 속보들을 확인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퇴근 후 저녁.

영등포 고시텔로 돌아온 난, 가방을 내려놓고 바로 노트북부터 펼쳤다.

고글 휴머노이드 앱 개발자 기사, 작성을 위해서다.

물론 아직 고글코리아 측으로부터 본사 입장을 전달받진 않았다.

적어도 내일쯤은 돼야 얘기가 오가겠지.

그럼에도 내가 이렇게 먼저 기사를 작성해 두는 이유는, 단순하다.

‘어떤 대답이 돌아오든, 기사 논조는 바뀌지 않을 테니까.’

제보 메일에 담긴 자료들만 참조해도, 고글 측 운영이 명백히 엉망임을 알 수 있다.

[고글이 한 휴머노이드 영세개발자의 문제없는 앱을 삭제조치하고 개발자계정까지 정지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우선 기사의 첫머리, 즉 발문.

이 부분만 읽더라도 고글의 행태를 성토하는, 기사 전반의 분위기가 보이겠지.

그 다음부터 고글의 영세개발자 대응에 관한 고발이다.

[김씨가 고글의 조치를 가만히 받아들이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고글 측에 자문을 구하는 이메일을 세 차례나 보냈······ 그 때마다 돌아온 구글 측 답변은 마치 로봇이 보낸 듯 동일한 답장뿐이었다. 심지어 한글도 아니었다······]

이는 1인 개발자 김현석씨가 보낸 이메일에 모두 포함돼 있던 내용이다.

[그는 “저와 같은 개인개발자는 고글에 연락을 취할 방법이 전혀 없다는 걸 알게 됐다”며 “기업이 아닌 개인은 상대도 해주지 않고 소송을 할 수 있는 여력이 있는 것도 아니기에 이런 현실에 좌절을 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기사문으로 바꿔놓고 읽어봐도 논지전개에 문제는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동영상 재생 앱을 제작했던 한 국내 개발자도 고글 개발자 계정을 정지당했던 경험을 털어놨다······ 알아본바 정책을 위반했기 때문이 아니라 단순히 시스템오류 탓······ 하지만 고글은 개발자의 계정정지를 풀어주지 않았다. 유료 앱 수익금도 정산이 안됐다.]

유사 사례를 겪은 개발자들의 하소연이 너무 많았다.

결국, 고글 측에서 변명을 한다고 해결된 상황이 아닌 거다.

이 불합리한 현실의 확실한 대안을, 해결책을 내놔야 한다.

[김씨는 “고글이 휴머노이드 플랫폼을 통해 모바일 시장에서 엄청난 성장을 한 것은 양질의 앱을 제공한 개발자의 역할도 컸다고 생각한다”며 “고글은 개발자와 상생할 수 있도록 고압적인 태도서 벗어나 개발자에게 현실적 도움을 줄 수 있는 개발자지원센터를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이렇게 사람들이 원하거나, 납득할 수 있는 해결책 말이다.

‘그러니까 정이영숙 상무도 고글코리아 차원에서 입을 못 열었던 거겠지.’

명백히 회사의 잘못이지만, 인정하는 순간 일이 너무 커진다.

본사가 아니라 한국지점이기 때문에 대응할 수 있는 범위엔 한계가 있을테고.

‘뭐가 됐든 간에······ 난 사실을 기사로 쓴다. 그 뿐이야.’

난 마지막 문단에 넣을 고글 측 의견까지 대충 삽입했다.

[이에 대해 고글코리아 측은 “개발 규정은 본사가 관리하고 있다”며 구체적 답변을 피했다]

만일, 내일 고글 측으로부터 별다른 멘트가 오지 않는다면.

기사는 이대로 나가게 된다.

당연한 말이지만, 고작 저 문구 하나만 나갈 경우 고글 측 이미지에 좋을 게 없다.

난 작성된 문서를 클라우드에 복사 저장했다.

그리고 휴대전화를 들어 저장된 번호로 통화를 시도했다.

[앱 개발자 김현석]

이 기사의 주인공에게로.

-네, 기자님!

“네, 개발자님. 주진형입니다. 기사는 아마 내일 오후쯤 나갈 것 같아요.”

난 오늘 고글코리아에 가서 정이영숙 상무와 나눴던 대화를 현석에게 전했다.

-아, 그렇게 되셨나요? 그럼 내일 그쪽에서 연락이 오나요?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유체이탈 화법처럼 들리지만, 당장은 이렇게 밖에 말할 수가 없다.

-네? 그런가요?

“개발자님도 직접 겪어보셨기에 아시겠지만, 이게 금방 해결될 수 있는 사안은 아니잖습니까. 아무래도 고글 측에서 잘못을 인정 한다 해도 갑자기 체계를 다 바꿀 순 없을 겁니다. 그 전에 잘못을 인정할지도 미지수구요.”

-아······

세계적인 IT기업, 고글로써는 가장 효율적인 방식으로 지금껏 일을 처리해왔을 거다.

휴머노이드 개발자들을 상대로 한 서비스도 마찬가지.

만약 고글이 잘못을 인정하게 된다면, 현재 만들어놓은 시스템을 부정해야 한다.

그러긴 쉽지 않을 테고.

“뭐 일단 기다려보시죠. 대답이 오든 안 오든 기사는 나갈 겁니다. 이 기사가 어느 정도 파급을 가져올진 모르겠지만, 고글코리아 쪽에서도 나름 신경 쓰는 눈치였으니 걱정 마세요.”

-네. 감사합니다.

난 현석을 달래며 통화를 매듭지었다.

전화기를 내려놓고, 다시 노트북에 손을 갖다 댄다.

‘이제 슬슬, 조사에 들어가 볼까.’

진짜 대어를 낚기 위해 밑밥부터 구할 차례다.

난 노트북에 설치된 인터넷 웹브라우저를 실행했다.

곧 검색 사이트 고글이 화면에 떠올랐다.

[유니콘벤처스 장 킴]

검색엔진에 검색어를 입력한다.

그리고 지금껏 세상에 나온 유니콘벤처스, 장 킴과 관련된 기사들을 모두 훑어나갔다.

미리 알아둬야 그를 상대할 때 조금이라도 더 유리한 지점을 차지할 수 있을 터.

고글뿐만 아니라 메이버, 내일까지 접속해 동일한 작업을 거쳤다.

그렇게 한창 정보 수집을 한 뒤.

난 새벽 2시쯤에야 잠들 수 있었다.

“대리님. 디지털투모로우 주진형 기자입니다.”

다음날 오전 사무실.

업무를 모두 마무리한 상태에서, 난 신스컴 쪽에 전활 걸었다.

고글코리아로부터 전달받은 내용이 있는지 묻기 위해서다.

-네 주 기자님. 안녕하세요.

라해영 대리의 차분한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왔다.

“오늘 전화 드린 이유, 아시죠? 고글코리아에서 소식 없었나요?”

별다른 안부 인사를 주고받을 마음은 없다.

난 거두절미하고 듣고픈 얘기부터 꺼냈다.

-아, 어제 말씀하셨던 개발자 관련 문의내용이시죠?

“네. 뭐 와있나요?”

-아뇨. 아직 없는데요. 고글 쪽으로 연락 넣어 드릴까요?

난 곰곰이 생각했다.

고글 본사가 있는 미국 캘리포니아 주와 한국의 시차는 16시간.

5월부터 서머타임이 적용되면서 시차가 17시간으로 늘어난다.

즉 지금 이곳은 오전 10시지만, 캘리포니아는 오후 6시.

‘출퇴근이 자유로운 곳이라지만, 어제 본사로 자료를 보냈다면 이미 답이 와있어야 해.’

아무리 근무시간이 자유롭다 해도,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9시간이다.

그 시간은 짧지 않다.

간단한 답이라도 왔어야 정상이라고 난 판단했다.

“괜찮습니다. 제가 직접 하죠.”

-네, 그럼 알겠습니다.

라해영 대리와 통화를 종료하고, 곧장 정이영숙 상무에게 문자했다.

[디지털투모로우 주진형입니다. 상무님 통화가능하신가요?]

문자를 보낸 지 얼마 안 돼, 정 상무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네, 상무님. 주진형입니다.”

-네, 기자님. 무슨 일이세요?

무슨 일은.

내가 당신에게 접근할 이유가 뭐가 있겠는가.

“지난 번 말씀드린 개발자 계정 문제로 연락드렸습니다. 어제 본사 쪽으로 문의 주셨나요? 회신 온 게 있나 궁금합니다.”

-아······. 잠시 만요.

정이영숙 상무가 휴대전화를 만지는 게 느껴졌다.

선주경 부장이 그랬던 것처럼, 통화중에 휴대전화로 이메일을 확인하는 모양이다.

-아직 안 왔네요.

잠시 후 들린 정 상무의 대답.

난 입술을 핥았다.

그에게 ‘본사 쪽에 문의를 안 보낸 것 아니냐’ 묻고 싶었다.

선주경 부장이 내게 했던 거짓말처럼.

하지만 이는 감정만 해칠 뿐 쓸모 있는 공격은 아니란 걸 알고 있다.

“그런가요? 그럼 어쩔 수 없죠. 그냥 기사 내겠습니다.”

내 결정은 이거다.

어차피 어떤 대답이 와도 달라질 것 없는 기사지 않나.

답이 없다면, 없는 대로.

난 문제만 제기하면 된다.

-앗, 기자님. 조금만 더 기다려주시면 안될까요? 아마 내일까지는 올 것 같은데요.

단순 시간 끌기 일 수도 있고, 진심일 수도 있다.

허나 뭐가 됐든 내 결정은 이미 내려졌다.

“안 될 것 같습니다. 취재원이 다른 쪽에 기사를 내기 전에 제가 써야죠. 일단 고글 측 입장은 어제 들은 말 중에 하나 넣겠습니다.”

-기자님! 잠시 만요, 잠시 기다려주세요.

정이영숙 상무가 정말 급박한 목소리로 날 불렀다.

“네. 상무님.”

-고글 플레이 담당하는 민영학 총괄에게 바로 말해볼게요.

“민영학 총괄이요?”

간담회에서 한 번 본 적이 있다.

민영학 고글코리아 총괄.

고글 플레이 서비스 내에 들어가는 앱과 게임 비즈니스를 총지휘하는 자.

명함을 교환하러 접근했지만, 완곡한 거절을 당했었지.

-네, 개발자 분이 계정정지 당하셨다고 했죠?

“네. 지금 정지 상태입니다.”

-민 총괄에게 얘기해서 최대한 정지를 풀 수 있도록 해볼게요.

“······아, 그게 가능할까요?”

분명 취재원인 김현석씨가 굉장히 기뻐할만한 소식이었다.

그러나 난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었다.

정이영숙 상무는 이렇게 바로 해결할 방법을 쥐고있었다.

그럼에도 여지껏 쓸데없이 시간을 끌고 있었던 거다.

왜?

-네, 사정을 들어보니까 저희 쪽 착오도 좀 있는 것 같고······ 제대로 조사해보고 가능하면 계정 정지를 푸는 쪽으로 진행해 볼게요.

“말씀 감사합니다. 그렇게 해주시면 저희 취재원도 좋아할 것 같네요.”

-음, 그러니 기사를 좀 늦춰주실 수 있을까요? 조사하는 데에만 적어도 하루 이상 걸려서요.

민영학 총괄 카드를 꺼내든 건 좋은 시도였다.

그렇지만 왜 좀 더 일찍 꺼내지 않았던 걸까.

‘언제까지고 시간을 끌 수 있을 거라 생각했을까. 아니면 겨우 개인개발자 문제일 뿐이니, 시간 지나서 해결됐다고 통보하면 아무일 없던 것처럼 될거라 믿었나.’

난 정이영숙 상무에게 아무런 악감정도 갖고 있지 않다.

허나, 발등에 불 떨어진 지금에 와서 뛰기시작하는 건.

이미 불타버린 사람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아뇨. 기사는 예정대로 오늘 나갑니다. 말씀 드렸었죠? 오늘 안으로 답을 달라고.”

그리고 그들은 날 믿고 있다.

“대신, 제대로 조사한다는 그 멘트는 실어드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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