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래에서 온 특종-66화 (66/107)

66. 제가, 직접 취재 해보려구요

내가 이 개발자 건으로 정이영숙 상무에게 이메일을 보냈을 때.

그 때 정 상무가 지금처럼 대응했다면 어땠을까.

일어난 일은 잘못이지만, 국내 인력이 부족해서 빚어졌다고.

앞으론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인력을 확충하겠다고.

정지된 개발자 계정은 다시 한 번 검토해 잘못을 바로 잡겠다······

그렇게만 얘기해줬다면,

‘그랬다면 난 속아 넘어가는 심정으로 기사의 논조를 다 바꿨겠지.’

[앱 개발자 계정이 어처구니없이 정지되는 사례가 발생했다]

[고글은 이에 대해 사과하고 재발방지를 위한 인력확충에 힘쓰겠다고 밝혔다]

이처럼 계정 정지 사례는 살짝.

고글의 해명과 반성이 길게 이어지는 기사가 나왔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메일을 보냈을 때와 직접 만났을 때, 마지막으로 전화한 지금 이 순간.

난 고글에게 3번의 기회를 줬다.

이를 무시한 건 고글, 그들이다.

“상무님.”

-네, 기자님. 부탁드릴게요. 조금 기다려주시면 잘 해결될 거예요.

분위기 파악을 못하는 건지, 미련을 못 버리는 건지.

정이영숙 상무가 끝까지 내게 부탁했다.

“아뇨, 상무님. 저 충분히 시간 드렸습니다.”

난 잠시 뜸들이다가 다시 정 상무에게 말했다.

“상무님. 이 기사에 담긴 내용은, 정말 사소한 해프닝이라고 생각해요. 전.”

-그, 그럼요. 해프닝이죠.

“하지만 말이에요. 그 해프닝을 조용히 묻어두려는 순간, 진짜 사건이 됩니다. 핍박받는 일개 시민과 침묵하는 기업이란 구도로요.”

-······

“제 말뜻, 충분히 이해하셨을 거라 생각하고. 이만 끊겠습니다.”

난 통화종료 표시가 떠있는 휴대전화를 내려놨다.

정말 별 것 아닌 일이었다.

마치 고글에게 앙심을 산 것처럼, 잘못도 없는데 정지된 계정.

이건 자동화 시스템이 일으킨 해프닝일 뿐이다.

하지만 시스템 구조를 지키기 위해 그걸 모른 척 한 사람들.

무슨 이유가 있었건 간에, 이 기사의 최대지분은 그들의 몫이다.

[“영문도 모르고 계정정지?” 고글식 개발자 다루기]

난 다시 노트북 화면을 바라본다.

비합리적인 고글의 개발자 정책을 고발하기 위해, 고심해 쓴 제목.

그 짧은 문장을 온라인 기사작성기에 입력했다.

“팀장, 발제 기사 송고했습니다.”

“어, 어- 알았다. 확인할게.”

팀장은 아까부터 나와 정이영숙 상무의 통화를 잠자코 듣고 있었다.

내가 무슨 기사를 썼고,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지, 대충 알 터다.

날을 세워야 할 때와 세우지 않아야 할 때.

그걸 내게 가르쳐 준 팀장이기에, 아무 말 않는 거겠지.

“진형아. 기사 출고 됐다.”

3분이 지나기 전.

김 팀장으로부터 통과 사인이 떨어졌다.

“네, 팀장. 보겠습니다.”

김정효 팀장의 말대로, 내 기사는 국내 포털 사이트 검색에 노출되고 있었다.

사실 오늘 이 기사는, 유메프 채용갑질처럼 큰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킬 내용은 아니다.

자신의 아들, 딸, 형제 같았던 인턴들의 고생담이 아니니까.

1인 개발자라는 특수 직업군의 이야기가 퍼져봐야 얼마나 퍼지겠는가.

[개발자님, 지금 기사 노출됐으니 확인 한 번 해보세요. 고글 계정정지로 검색하시면 될 겁니다]

기사가 제대로 출고된 사실만 확인 한 후

난 개발자 김현석씨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후우.”

한시름 덜어낸 내가 조용히 안도의 숨을 쉬었다.

내 생애 첫 제보 기사가 마무리 됐다.

기사의 성적과는 상관 없이 꽤나 뿌듯 했다.

누군가 나라는 사람만 보고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한다는 게.

그리고 그 믿음을 지켜주며 행동해 나갈 수 있다는 것도.

‘그런데······ 유메프 때도 그렇고 이 건도 그렇고. 반 기업적인 이미지가 너무 강해지네.’

잘 생각해보니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게 있는 법이다.

내가 미친 탈곡기, 아니 기업 탈곡기가 된 이유도 고글을 탈탈 털었기 때문이 아닌가.

‘이젠 좀 방향을 조절할 필요가 있겠어.’

사회부에서 전속해온 기자도 아니고, 주구장창 기업 까는 기사만 쓸 순 없다.

난 국내 IT업계가 긍정적으로 발전하길 바라는 거지, 다 망하길 바라는 사람은 아니니까.

그런 의미에서 지금 추적중인 배달의겨레 투자 건은 꽤 시기적절한 소재다.

“선배, 저 어제 말 나왔던 미튜브BJ 기사 말인데요.”

어느새 내 자리로 왔는지, 영기가 바로 옆에 서서 말하고 있었다.

난 생각을 멈추고 영기를 쳐다봤다.

“어? 어. 그게 왜?”

“취, 취재를 해볼까 합니다.”

영기가 말을 더듬는 건, 평소처럼 긴장한 모양새가 아니었다.

이건 쑥스러움이다.

아니 그보다, 영기가 내게 ‘취재’라는 단어를 꺼냈다.

“취재?”

“네. 어제 선배 말 듣고서 생각해봤는데요. 이 기사는 제가, 직접 취재 해보려구요.”

낯간지럽다는 듯이 목덜미를 긁적이며 대답한다.

대견함이 느껴진 탓일까, 난 절로 볼이 씰룩거렸다.

미소가 자동적으로 지어진다.

“이야- 웬일이야? 무슨 바람이 분거야?”

“하, 하······”

영기는 말을 잇지 못하고 머쓱한 웃음소리만 냈다.

“잠깐만, 그래서 혼자 취재하러 가겠단 얘기지? 내 도움 없이.”

내가 말을 정리했다.

난 이 취재에서 손을 떼고, 모두 영기에게 일임했다.

알아서 하라고.

지난 번 유메프 채용갑질 땐, 인턴들에게 접근하기 위해 껴들었지만.

이 일은 정말 관심 갖지 않고 있다.

“네. 그냥 전화로 할까 하다가······ 어제 선배가 직접 만나는 게 더 낫다고 하셨잖아요.”

“당연하지. 뭐, 뭐가 됐든 잘 생각했어. 한 번 제대로 취재해봐. 팀장!”

난 자리서 일어나 김정효 팀장에게 다가갔다.

옆에서 영기의 말을 들었으면서, 내색 하나 안하던 팀장이 내게 얼굴을 돌렸다.

“어, 진형아.”

“박영기씨가 혼자 취재를 나가겠답니다.”

“그래, 들었다.”

내가 보기에 김 팀장은 입 꼬리를 내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듯 했다.

좋으면 좋다고 그냥 말씀하시지.

“제가 동행하지 않아도 되겠습니까? 팀장?”

난 형식적으로 보고하면서, 팀장의 동의를 구했다.

어차피 이런 상황을 가장 바라고 있었던 건 김정효 팀장이었을 거다.

“네가 생각하기엔 혼자 다녀도 문제없을 것 같아?”

“네. 근 한 달 간 같이 다니면서 충분히 많이 익혔을 겁니다.”

기자의 취재는 누가 말로 가르쳐 줄 수 없는 거다.

직접 보고 바로 따라 하는 게 가장 빠른 배움의 길.

그런 의미에서 영기는 경험만큼은 충분히 한 상태다.

내 덕분에 여러 거물들도 만나 봤고.

“그래 좋아. 영기는 정보보고에 취재할 대상하고 일정 정리해서 올려.”

“네, 넷! 알겠습니다.”

팀장의 지시에 영기가 즉각 목소리 높여 답했다.

난 그런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봤다.

이후 나와 영기는 사무실을 나와 SGT 기자실로 이동했다.

“이게 미튜브BJ 리스트야?”

난 기자실 앞 복도에 서서 영기가 취재할 인원을 확인했다.

영기가 건넨 스마트폰 화면엔, 고글 측에서 보낸 인기BJ 명단이 떠있었다.

[큰도서관 / 장르 게임 / 연락처 010-****-****]

[냥띵 / 장르 종합 / 연락처 010-****-****]

[벤뜨 / 장르 먹방 / 연락처 010-****-****]

[윤태현 / 장르 종합 / 연락처 010-****-****]

[······]

미튜브 BJ에 대해 별 관심 없는 나도, 몇 이름은 눈에 익었다.

“여기서 큰도서관은 예전에 인터뷰에서 월수입 밝힌 적 있어. 스트리밍 수익만 4,000만 원이 넘을 거야. 이거 상기시켜주면서 요즘은 어떠냐고 은근히 물어보면 될 거야.”

“넵.”

“방송하는 것 자체를 취재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 생동감 있게 기사 쓰면 독자들도 재밌어할 거고.”

난 쭈르륵 길게 이어진 명단을 훑으며 최대한 영기에게 조언했다.

영기와 마찬가지로 이 분야에 대해 아는 바는 많지 않다.

그래도 이런 기술적인 부분만큼은 알려줄 수 있으니까.

“어- 이건······”

함께 명단을 보던 영기의 표정이 굳었다.

“왜, 뭐 때문에 그래?”

내가 물었다.

하지만 영기는 쉽사리 자신의 감정을 설명하지 못했다.

“······아, 아니에요. 잠시 잘못 봤나 싶어서요.”

난 뻔히 보이는 영기의 거짓말에 딴죽 걸지 않았다.

말하고 싶지 않은 것, 피하고 싶은 거 쯤 있으면 어때.

나도 딱히 녀석의 내면을 캐면서까지 알아내고픈 맘은 없다.

‘다만 연기가 더럽게 서투른 게 좀 걸리네.’

나도 모르게 고개가 절로 저어진다.

쫄지 말고 강단 있게 취재해야 할 텐데.

“어, 이쯤하면 됐지? 연락 돌리고 바로 일정잡고 있어. 나 전화 왔다.”

“네,”

내 바지주머니 안에선 휴대전화가 진동하고 있었다.

휴대전화를 꺼내 화면을 확인 한 난, 기자실과 거리를 두기 위해 복도를 걷기 시작했다.

[이디넷 김예인 기자]

예인이 내게 전화하는 일은 흔치 않다.

그렇기에 왜 전화했는지 바로 특정 지을 수 있다.

‘어제 부탁한 내 일정이, 잡혔나.’

승강기문 앞까지 온 뒤.

난 통화를 수락했다.

“응. 어때, 미팅일정은 잡혔어?”

예인이 늘 그러했듯, 나도 태연하게 본론부터 들어 가본다.

-응.

역시 간결한 응답이다.

어쨌든 긍정적인 소리가 돌아온 건 다행이다.

장 킴 유니콘벤처스 대표와의 약속을 잡아냈단 얘기니까.

“오케이. 언제 어딘지 말해줘.”

-송파구 노테 호텔. 오후 7시. 오늘이야.

또 호텔이냐.

난 승강기 호출단추를 누르며 생각했다.

‘광진구에 집이 떡하니 있는데. 호텔에 묵을 린 없을 거고. 호텔 레스토랑서 식사나 하잔 얘긴가?’

한강이 훤히 보이던 예인의 집을 떠올렸다.

지나치게 바쁜 게 아니라면, 그런 좋은 집을 놔두고 호텔에 묵을 이유는 없을 것 같다.

뭐, 상세한 사정이야 가서 파악하면 되겠지.

곧 도착한 승강기 문이 열렸다.

난 승강기에 타며 예인에게 대답했다.

“오케이. 고마워. 좋은 기사로 보답해줄게.”

문이 닫히고, 신호가 끊긴다.

그렇게 예인과의 대화는 끝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네가 왜 여기에 있어?”

오후 6시 50분, 송파구에 위치한 노테호텔월드 로비.

난 바로 앞에 서있는 예인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오늘 볼 일이 없을 줄 알았던 그가 이곳에 있는 까닭이다.

예인도 퇴근 후 바로 온 듯, 평소 복장 그대로다.

“아빠, 만나게 해주려고.”

“나도 대표님 얼굴은 알고 있어.”

난 내가 알아서 만날 수 있단 소릴 돌려 말했다.

뭐 특정 미팅에선 주선자가 가운데에 끼는 경우도 있긴 하다.

하지만 취재를 겸한 자리에 ‘기자’인 주선자가 동석할 필요는 없다.

부녀의 훈훈한 상봉을 보자고, 내가 여기까지 온게 아니니까.

“그런 문제가 아냐.”

난 의심의 눈초리로 예인에게 물었다.

“그럼? 일정 다 잡은 거 아니었어? 난 그렇게 받아들이고 온 건데.”

그래서 상쾌한 마음으로 여기에 올 수 있었던 거다.

정작 예인은 무표정한 얼굴로 납득안가는 말을 내뱉는다.

“다 잡았어.”

“근데 왜?”

난 앞머릴 쓸어 넘기며 답답함을 표했다.

“널 여기로 데려오려면 구실이 좀 필요했어.”

“그건 또 무슨 말이야?”

정확히 해석할 수 없는 모호한 말에 내가 되물었다.

구실이 필요하다니.

혹시나 내가 두 사람 일정에 끼어들게 된 건가 싶었다.

“아빠 와.”

그 시선에 끝엔 웬 헐렁한 옷차림의 중년남이 걸어오고 있었다.

‘차림새는 다르지만, 얼굴만큼은 확실해. 장 킴이다.’

난 옷매무새를 매만지고 중년남이 다가오길 기다렸다.

그리고 가까워질수록 확연해지는 그의 옷차림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기자 인터뷰를 하는데 완전 휴양지 놀러온 차림새잖아.’

화려한 반팔에 반바지.

거기다 신발은 조리 슬리퍼다.

“어어, 예정보다 일찍 왔네?”

장 킴은 밝은 얼굴로 예인에게 먼저 인사했다.

그리곤 곧 고갤 돌려 자연스럽게 날 바라본다.

“어어, 자네가 우리 예인이 남자친구인가? 잘 부탁하네.”

아니, 아니, 전혀 아닌데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