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 연기를 했어. 모르는 척 순진한 얼굴로
내 말을 들은 장 킴 대표가 얼빠진 표정이 됐다.
이게 대체 무슨 소리냐는 물음을 입 밖에 꺼내지 못한 채.
거슴츠레한 눈빛으로 날 본다.
관심이 동하지 않는 소리란 얘기다.
“후후후, 놀라셨습니까?”
난 마음에도 없는 소릴 내뱉는다.
이 말을 들은 장 킴 대표는 태연한 척했으나, 기가 차는지 한숨을 내쉬었다.
“어- 어떤 의미론 많이 놀랐지.”
“그럴 만합니다. 제가 이처럼 정확한 정보를 갖고 있단 걸, 대표님도 모르셨을 테니까요.”
“아니. 그것 때문은 절대 아닌데.”
뭔가 더 할 말이 있겠지만, 장 킴은 말을 아꼈다.
이정도 루어에 쉽게 낚이지 않는 건, 상정범위 내의 일이다.
“좋아. 전혀 아니지만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추측의 근거나 좀 들어보지.”
슬슬 입질이 온다.
이럴 때일수록 뻔뻔한 도발이 필요하다.
“거짓말이 서투시군요. 어쨌든 궁금하신 모양입니다?”
“······후우, 그래 그렇다 치자.”
기운 빠진 장 킴은 눈을 감았다.
나도 안다.
장 킴 안에서 내 평가가 어떻게 바뀌었을지.
난 그의 반응을 무시하고, 자신감 있게 입을 열었다.
“대표님이 쿠퐁에 재투자 하신 게 벌써 3년 전이죠. 그 때 투자하신 금액이 200억 원. 쿠퐁은 적자경영이긴 했지만 지속적인 성장세를 보였고 투자금 소모도 느렸습니다. 그런데 올초에 쿠퐁이 제트배송을 강화한다고 발표하지 않았습니까.”
3개월 전. 쿠퐁은 자체배송 서비스인 ‘제트배송’의 적용지역을 확대한다고 밝혔다.
동시에 제트배송을 담당하는 ‘쿠퐁맨’의 수도 늘릴 거라 했지.
“당시 쿠퐁 쪽에선 그리 많은 돈이 필요하지 않을 거라 했지만, 작년 파주 물류 센터를 만드는 데에만 이미 투자금을 모두 소모했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장기전으로 갈 경우 부담이 될 인건비는? 당연히 다시 투자를 받아야겠죠. 게다가 수도권만이 아닌, 전국지역으로 제트배송을 확대한다는 얘기는 참 어려워 보이더군요. 파주에 있는 물류창고로는 위치적으로나 양적으로 감당이 안 될 테니까요. 그렇다면 역시 물류창고의 신설을 해야 할 테고, 그 규모에 따라 수백에서 수천억의 자금이 필요하겠죠.”
묘하다.
반쯤 포기한 채 내 얘길 듣던 장 킴의 눈빛이, 다시 날카로워지고 있다.
알고 있는 대로 막 내뱉는 말에 어째서 관심을 보이는 걸까.
“그래서? 쿠퐁 측에서 물류창고로 쓸 부지를 알아보러 다닌다고 하던가?”
으음, 이렇게 나오는 건가.
내 입장에선 반응하기 상당히 애매한 질문이었다.
루어를 확 물거나 밀지도 않고, 계속 건들기만 한다.
장 킴 대표가 단순히 내 말을 시답잖은 소리로 부정했다면 일은 더 쉬웠겠지만-
“그건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그럼 지금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얘기할 상황은 아닌 것 같은데?”
장 킴의 말대로다.
허나 애초부터 낚시용 끼워 맞추기 추론이 아니었나.
내가 쫄만한 이유는 없지.
다만 이렇게 물어오는 이상.
어떻게든 내용에 살을 덧붙일 필요가 있다.
내 얘기는 어디까지나 내 추론일 뿐, 근거가 없으니까.
“글쎄요. 어쨌든 제트배송의 전국 서비스를 위해선 물류창고 신설은 필수 아니겠습니까? 지금 당장 특정 부지를 골라놓은 것 같지는 않지만, 어쨌든 선행돼야할 과제죠. 다른 지역의 물류창고가 완공돼야 쿠퐁맨 인력을 증원하든가 말든가 할 테니까요.”
“흐음.”
장 킴 대표가 팔짱을 끼고 날 본다.
“자네 정말, 그 미친 탈곡기라고 불리는 주진형 기자가 맞나?”
갑자기, 내 별명에 대해 묻고 있다.
“아닙니다.”
난 단호히 대답했다.
“뭐? 아냐? 아니었어?”
장 킴 대표가 다행이라는 듯,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아니, 잠시 장난 친 건데.
“기업 탈곡기입니다. 미친 탈곡기가 아니라.”
미친 탈곡기라 퍼트린 건 기문 선배고.
원래 내가 들었던 건 기업 탈곡기였으니까.
“허어. 기업 탈곡기나 미친 탈곡기나! 뭐건 간에 자네한텐 과분한 타이틀 인 것 같은데.”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천연덕스럽게 웃으며 묻는다.
장 킴 대표로써는 형편없는 추측이나 내놓고 있는 내가 답답한 모양이다.
“자네 분석력은 꽤 괜찮았다고 해줄게. 하지만 분석안의 실질적 근거는 없어. 게다가 미안하게도 결론이 완전 꽝이야. 난 현재로썬 쿠퐁에 재투자할 생각이 없네.”
“에? 진짭니까?”
내가 놀란 것처럼 두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뭐 하러 거짓말을 해. 이것도 그냥 무시하려다가 머리 굴리는 자네가 참 안쓰러워서 말해주는 거야.”
진심으로 보인다.
업계서 나름 잘나간다는 기자라 길래 기대하고 얘길 들어봤더니.
전혀 딴소리만 하고 있고, 그걸 진실인양 믿고 있으니.
사실을 다 알고 있는 당사자 입장에선 꽤나 답답하고 안타까워보였을 거다.
그래도 잼처 묻는다.
“하늘에 맹세코?”
“허어. 어른을 너무 못 믿는구만 자네.”
장 킴 대표가 음성을 높여 날 타박한다.
자, 여기까지 조였으면 됐다.
그가 가짜 미끼를 알면서도 상대하던 시간 동안, 그물은 좁혀졌다.
“그럼 답은 하나군요.”
“어?”
“쿠퐁에 투자하실 게 아니라면, 배달의겨레 밖에 없잖습니까?”
드디어 본심이 내 입에서 흘러나왔다.
장 킴 대표의 안색이 눈에 띄게 굳어간다.
“······그건 왜지? 내가 투자한 업체만 18곳이라니까? 게다가 신규투자도 가능한데. 왜 배달의겨레만 투자가능성이 있지?”
“골드앤실버PIA.”
투자은행 골드앤실버의 자기자본투자그룹.
그 이름을 듣는 순간 킴 대표가 움찔했다.
‘좋은 반응이야.’
지금껏 당당하고 여유 있게 날 갖고 놀던 장 킴 대표다.
그가 처음으로 당황한 모습을 보인다.
“지현제 한국 담당 상무와 한국 입국하시자마자 만나셨다고요?”
갈고 갈아왔던 이 한마디를 기어이 장 킴 대표에게 던졌다.
이는 오늘 점심, 장도현 과장이 내게 전해준 결정적인 정보였다.
“······”
장 킴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
내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한 번 더 추론해보죠. 초기 스타트업에 투자하기엔, 골드앤실버의 덩치가 너무 큽니다. 최소 투자금액만 해도 100억 원 이상이니까요. 과연 이 거대자본을 움직일 만한 스타트업이 국내에 몇 곳 될까요. 규모가 꽤 될 만큼 성장했고 기존 투자금보다 큰 금액임에도, 믿고 투자할 수 있는 업체. 답은 이미 말했습니다.”
유니콘벤처스가 투자한 스타트업은 18곳이다.
하지만 그 중에서 100억대 규모의 투자금을 받을 수 있고, 필요로 하는 업체는 단 두 곳.
소셜커머스 쿠퐁과 O2O 배달앱 배달의겨레다.
이 두 곳 모두 100억 이상의 연매출을 내고 있다.
“그리고 만일 신규투자였다면 실리콘밸리 투자자들을 모아 펀드기금을 조성하셨겠죠. 골드앤실버와 접촉해 컨소시엄을 만드는 게 아니라.”
“······”
장 킴 대표가 이에 대해 반박하지 못하는 이상.
내 추론에 동의하는 꼴이 된다.
한동안 말없이 날 바라보던 장 킴의 얼굴에, 슬그머니 미소가 번졌다.
“······하하하하!”
곧 웃음이 터졌다.
난 긴장의 끈을 놓지 않은 채.
장 킴이 어떤 말을 해올지 침착히 기다렸다.
“날 속였군?”
“네?”
“연기를 했어. 모르는 척 순진한 얼굴로.”
“그렇게 보셨습니까?”
난 명확하게 대답하지 않고, 오히려 장 킴에게 되물었다.
그래, 그의 말대로다.
난 어리숙한 연기를 하며 그를 속였다.
문제에 표기된 보기는 두 개.
그 중 하나를 소거하기 위한 방법으로, 난 틀린 답을 먼저 내밀었던 거다.
답은 알고 있으나, 그 도출과정을 이끌어내기 위해.
“확실히. 쉽게 볼 사람이 아니군, 자네.”
“아닙니다. 어렵게 보실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허허. 좋아. 겸손한 척하는 오만함은 그렇다치고. 정보력과 집요함만큼은 인정해주지.”
“그 말씀은?”
“하지만 난 더 해줄 말이 없네. 노코멘트, 라는 거지.”
장 킴 대표가 입에 자물쇠를 채우는 동작을 더했다.
더 이상은 내게 휘둘리지 않겠다는 거다.
그래도 난, 좀 더 확실한 정보를 털고 싶다.
“그 말씀은, 배달의겨레 투자를 부정하지 않겠다고 들립니다만?”
“노-코멘트.”
“투자규모는 지난 번 보다 클 거라 예상되는데. 틀립니까?”
“노코멘트, 라니까.”
불리할 수 있는 증언은 거부한다.
어차피 무슨 말을 하더라도 자신에게 득 될 게 없으니.
아예 말을 하지 않는 게 상책이긴 하다.
“알겠습니다. 대표님 괴롭히는 건 이정도로 하죠.”
뭐, 이정도로.
장 킴 대표에게 심증을 얻어낸 것만 해도 큰 성과다.
적어도 배달의겨레 측을 떠볼 카드는 잡은 거니까.
“그거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 내가 이건 사과하지. 미친 탈곡기 타이틀이 아깝다는 것 말이야.”
그제야 장 킴이 입을 열기 시작한다.
난 그의 말을 듣고 고갤 저었다.
“아뇨 사과 안하셔도 됩니다. 저도 그 별명은 딱히 좋아하지 않아서요.”
“하하하. 왜? 딱 어울리는구만. 겪어보니까 알겠어. 웬만한 홍보쟁이들이 못 버티고 술술 불게 예상이 가. 박호창 대표가 좋아할만 해.”
마이뉴스24 박호창 대표의 이름이 자주 거론된다.
본적도 없는 사람인데 이젠 친근감이 갈 정도다.
“그래봐야 대표님껜 그다지 못 들었는데요.”
“이정도면 충분하지. 내가 그래도 본의 아니게 힌트를 많이 뿌린 것 같은데?”
“네, 잘 주워가겠습니다.”
장 킴 대표의 말들은 추측성 기사의 신뢰도를 높여줄 순 있을 거다.
허나 그 뿐.
이를 사실 정보를 담은 기사로 탈바꿈 시켜주진 않는다.
그러니까 원료를 들고 다른 공장을 찾아가야 하는 거지.
“허어. 이거 어디 가서 당했다고 말할 수도 없고······”
“안 그래도 배달의 겨레 홍보팀장과 미팅을 잡아놨습니다.”
내가 배달의겨레 성호경 홍보팀장에 대한 얘길 꺼냈다.
어제 그와 문자 메시지로 취재일정을 잡았는데, 그게 내일 모레다.
“허어. 그래서 지금 거기 나가서 나한테 들었다고 말할 셈인가?”
“흐응. 글쎄요. 그렇게 얘기해볼 수도 있겠군요.”
내가 장난치듯 대답했다.
투자정보를 누구에게 들었는지, 말함으로써 더 쉽게 공략할 수 있겠지.
하지만 그렇게까지 하지 않더라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대표님께선, 언급되는 걸 별로 반기지 않으실 테죠.”
“그래, 맞아.”
장 킴 대표가 순순히 수긍한다.
아무래도 정보의 취득처가 자신과 연관 있다고 밝혀지는 게, 극히 싫은 거겠지.
“그럼 이건 어떻습니까.”
이제 다시 제안을 건네 볼 차례다.
어느 정도 먹힐만한 패를 쥐고 있으니.
아까 전처럼 간단히 거절하진 않을 터.
“대표님의 존재와 관련된 이야긴 일절 꺼내지 않겠습니다. 그 대신······”
내가 거래를 제안하려는 걸 눈치 챈 장 킴 대표.
그가 귀를 기울인다.
“투자금액, 규모만 오프더레코드로 말해주십시오.”
“허? 그건 수지타산 안 맞는 얘긴 것 같은데. 내 손실이 더 커. 투자금액이 새어나올 곳이 나 아니면 골드앤인데. 자네와 접촉한 내가 당연히 의심받지 않을까?”
합리적 의심이다.
정보유출의 경로가 노출되면 장 킴 대표가 말했다는 게 바로 드러난다.
그러나 우리 만남을 알고 있는 자가, 또 누가 있단 말인가.
“대표님하고 저, 그리고 예인까지. 이렇게 세 명만 오늘 이 자리를 기억할 겁니다. 그래도 불안하시다면, 뭐 강요하진 않겠습니다. 저야 배달의 겨레를 추궁하든 투자은행 쪽을 털든 하면 되니까요.”
강하게 나서본다.
내 말을 들은 장 킴은 눈을 감았다.
잠시 생각하는 듯, 말이 없던 그가 다시 눈을 뜬 건 10초 후.
“한 가지 묻지. 핀테크 스타트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내 기대와 달리 전혀 다른 주제의 질문이 튀어나왔다.
난 잠시 멈칫했다.
하지만 이내 머릿속을 정리하고 답변했다.
“핀테크는 앞으로 성장세가 클 겁니다. 특히 내일코코아의 코코아페이가 등장하면, 핀테크 산업의 입간판 노릇을 해낼 겁니다. 국가와 기업은 물론 일반인들의 관심도나 참여도도 커질 거고요. 만일 국내 스타트업들이, 해외처럼 혁신적 핀테크 서비스만 내놓을 수 있다면. 대표님 비전대로 대기업이 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겁니다.”
내 말을 끝까지 들은 한 킴이 고갤 끄덕인다.
“좋아. 아까 자네가 걸었던 스타트업 정보 제공을, 지금 거래조건에 얹어줘.”
“네?”
“그럼 오프더레코드로, 얘기해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