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 다음엔 제가 뭘할지 알고 계시겠죠?
기쁨보다도, 문득 든 생각에 난 피식 웃었다.
나와 장 킴 대표가 참 재밌는 일을 하고 있지 않은가.
콩나물국밥집에서 핀테크 스타트업과 투자금액에 대해 논하다니.
‘어쨌든, 결과적으로 절대 손해 보지 않겠다는 의지군.’
장 킴 대표가 갑자기 핀테크에 대해서 물은 것.
그건 아마도 내 식견을 시험하기 위해서 인 듯하다.
어느 정도의 분석력과 판단력을 가진 지에 대해선, 충분히 보여줬다.
그리고 그 덕분에 다시금 제안을 해오는 거겠지.
“스타트업 정보, 받아들이겠습니다.”
내가 장 킴에게 대답했다.
투자 가능성 있는 스타트업 정보를 그에게 제공하는 건, 사실 내게 무조건 이득이다.
난 어차피 취재를 해야 하고, 그러면서 스타트업들을 알게 된다.
그 중 정말 가능성 있는 곳을 투자사와 연결해주고, 그 업체가 성공한다면?
‘난 유망 스타트업과의 관계를 돈독히 할 수가 있지.’
코코아 또한 벤처기업으로 시작했다.
벤처와 스타트업은 사실 시작점이 다르긴 해도, 그 가능성이 크다는 건 동일하다.
내가 이어준 스타트업이 IT를 주무르는 대기업이 되지 못할 이유따윈 없다.
“좋아. 얘기해주지. 하지만 다시 한 번 말하는데, 이건 내가 얘기했다고 알려져선 곤란해.”
정말 중요하다는 듯, 장 킴이 두 번 반복해 신신당부한다.
“알고 있습니다.”
내 최대한 담백하게 대답했다.
굳이 말을 덧붙이거나 뺄 필요 없다.
약속은 지킬 거고, 불안한 사람을 건들고 싶지도 않다.
“자, 자네가 추측한 대로 배달의겨레에 추가투자를 할 거야.”
장 킴 대표는 숟가락으로 국밥 국물을 한 입 떠먹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지금 논의 된 금액은 400억 원.”
일주일 후의 자료와 일치하는 수치다.
결국은 처음 논의한 금액대로 투자가 진행된다는 소리다.
“아직 확정은 아니야. 정확한 건 더 얘길 해봐야 될 것 같고.”
“투자사는, 유니콘과 골드앤실버 둘 뿐입니까?”
내가 물었다.
미래의 자료엔, 투자사가 골드앤실버가 참여한 컨소시엄으로만 돼있다.
혹시나 다른 투자사가 있는 건 아닌지 궁금했다.
“음, 일단은 우리와 골드앤실버 뿐이야.”
깔끔한 답변이다.
내가 고려해야할 대상이 더 없다는 것에 대해 안도감이 들었다.
1분도 안 돼서, 듣고 싶은 얘길 모두 들은 덕분이다.
“그럼.”
장 킴 대표가 내 소주잔에 술을 따른다.
“얘기는 다 했고. 이제 마음 편히 술만 마시면 되나?”
“네, 그러시죠.”
사실 확인은 모두 끝났다.
이제 나도 편한 기분으로 자릴 즐기면 됐다.
그렇게 나와 킴 대표는 1시간여를 스타트업과 국내 IT생태계에 대해 얘기하며 술을 마셨다.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 자 그만 나가지.”
시계를 본 장 킴 대표가 나가자 제의했다.
난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서 일어났다.
밤 9시가 되기 전.
우린 국밥집 문을 나섰다.
“식사, 대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식사비를 결제한 장 킴에게, 내가 감사인사를 했다.
“뭘. 다음에 또 만나면 그땐 자네가 쏘는 걸로?”
다분히 장난 섞인 말투였다.
하지만 난 담담하게 대답해준다.
“알겠습니다.”
“헛헛! 진지하게 받아 들이지마. 내가 무슨 염치로 박봉 기자일 자네 등골을 빼먹겠나.”
“뭐, 비싼 곳은 힘들더라도- 이런 국밥집도 괜찮으시다면 가능합니다.”
“됐네, 됐어요.”
장 킴 대표가 내게 손사래를 쳤다.
“그래도 다시 만나자는 건 진심이네.”
“저돕니다.”
“핫핫핫!”
내 말을 들은 장 킴의 경쾌하게 웃었다.
“뭐 좋아. 어차피 내게 스타트업 정보를 주기로 했으니까. 참, 그러고 보니 자네 연락처도 안 물어봤네?”
그러고 보니 처음 만났을 때.
-자네가 우리 예인이 남자친구인가?
말도 안 되는 소릴 듣고 살짝 당황해, 명함 건네는 걸 깜빡했다.
어수룩하게 굴던 영기만 흉볼게 아니었군.
난 가슴팍에 넣고 있던 명함지갑을 꺼냈다.
“늦었지만, 제 명함입니다.”
“흐응, 디지털투모로우 주진형 기자-라.”
장 킴이 내 명함을 받아들곤 잠시 응시한다.
그리곤 다시 장난스러운 말투로 내게 묻는다.
“내가 하나 예언할까?”
“네?”
“자네 곧 명함 새로 파게 될 거야.”
듣기 나쁜 말은 아니었다.
허나 난 덜 찬 경력 때문에 아직 이직 생각을 못하고 있다.
이 상황에서 킴 대표의 말은 잘 와 닿지 않았다.
“마이뉴스24 말입니까?”
혹시나 싶어 묻는다.
마이뉴스24의 대표가 날 눈여겨보고 있다니까.
가능성 있는 얘기다.
“글쎄. 어딜지야 나도 모르지. 그건 자네 선택에 달린 문제니까.”
장 킴 대표가 날 보며 미소지었다.
알듯말듯한 그의 설명.
난 멍하니 서서 어떤 반응도 하지 못했다.
이틀 뒤 오전, 디지털투모로우 사무실.
막 발제기사를 마친 난, 앞에 있는 영기를 바라봤다.
녀석은 열심히 노트북 타자를 두드리고 있었다.
‘잘되가고 있나? 별 다른 말 없는 게 희소식인 거겠지.’
영기는 미튜브BJ들을 한명씩 만나며 취재 중이다.
내가 보기엔 그는 아직도 효율이 떨어지는 방식으로 일하고 있다.
그러나 굳이 말하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기자는 데드라인(마감시간) 앞에서 능률을 배우게 될 터.
‘기한을 지키란 건, 얘기해줘야 겠네.’
난 노트북에 설치된 사내 메신저를 켰다.
그리고 영기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미튜브BJ 기사는 내일까지 낼 수 있겠어? -주진형]
영기의 반응을 보고 있자, 그가 고갤 돌려 날 본다.
[넵! 오늘 안으로 취재 끝납니다. 내일 오전에 낼게요 -박영기]
역시, 좋은 소식이다.
[아니, 가능하면 오늘 안으로 작성해서 내 메일로 보내줘. 괜찮지? -주진형]
[네. 알겠습니다 -박영기]
오전에 발제기사를 낼 생각이라면.
적어도 그 전에 기사가 나갈 수 있는 상태인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
난 영기가 보낸 기사를 훑고 수정해둘 계획이다.
“팀장, 저 점심일정 있어서 먼저 나가보겠습니다.”
머릿속을 정리한 난, 김정효 팀장 자리로 걸어가 보고했다.
“어어, 점심 누구였지?”
정보보고에 일정 내용을 올렸지만, 까먹은 모양이다.
난 지체없이 대답했다.
“네. 배달의겨레 성경호 팀장입니다.”
“아아, 그렇지. 그래 투자건이지? 취재 잘하고.”
이제 기억난 듯 김 팀장이 말했다.
“네.”
김정효 팀장에게 인사한 후.
난 사무실을 나섰다.
약속 장소는 지난 번과 동일하게 강남역.
나와 배달의겨레 성경호 홍보팀장은 주로 강남역에서 만나곤 했다.
우리 둘의 중간지점이기도 하고, 서로 강남역까지 교통이 간편한 까닭이다.
난 여의도에서 지하철 9호선을 타고 신논현 역에서 하차했다.
[기자님, 지난 번에 갔던 라멘집 기억하세요? 서초동 멘가다야 여기로 오시면 됩니다]
성경호 팀장이 오전에 보낸 문자 메시지다.
난 이걸 다시 읽으며 강남역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어, 주 기자님! 여깁니다!”
그렇게 20분 정도 걸려 강남 먹자골목에 도착했다.
성 팀장은 일전에 한 번 온적있는 라멘가게 앞에 서있었다.
난 내게 손흔드는 그에게로 다가갔다.
“오랜만이에요, 팀장님. 신수가 훤하시네요? 잘 지내셨어요?”
“하하. 그래보이나요? 요즘 일에 치여사는데 얼굴이 참 안따라주네요. 그보다 주 기자님이야 말로 승승장구 중이시던데요 뭘.”
성 팀장이 검은 뿔테 안경을 고쳐쓰며 말했다.
난 그의 농담섞이 엄살을 들으며 웃는다.
“다 팀장님 덕분이죠. 지난 번에 배달갑 투자얘기 해주셔서 바로 취재들어갔잖아요.”
“아, 그러고보니! 그렇게 되는 거였네요.”
성경호 팀장이 내 말에 재밌다는 듯 박수를 쳤다.
확실히, 자신이 내뱉은 말이 나비효과처럼 커져 특종이 돼버렸다.
신기해할 만 하다.
“그나저나 여긴 또 만원이네요.”
난 라멘집 안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지난 번에 왔을 때도 이미 자리가 꽉차서 15분 정도를 기다렸었다.
“근처 직장인만 오는게 아니라 저희처럼 멀리서도 오거든요. 하하 맛집의 숙명이죠.”
예약도 안되는 곳이라 어쩔 수 없다.
10분 정도를 기다린 후에야 가게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전 미소라멘으로 하겠습니다.”
테이블 자리에 앉아, 차림표를 보고 바로 결정했다.
“네, 여기 주문이요!”
성경호 팀장이 직원에게 음식 주문을 하는 동안.
난 언제쯤 그에게 투자 이야길 꺼낼지 시기를 쟀다.
그리고 가게 직원이 돌아가자 마자, 난 입을 열었다.
“요즘 뭐 바쁘신 거 있나요? 일에 치여사신다고 하셨는데.”
홍보팀이 유독 바빠질 때가 언제겠는가.
홍보할 거리가 생겼을 경우.
유관부서에게 정보전달도 받아야 되고, 숙지 후에 자료도 작성해야 한다.
과연 성경호 팀장은 지금 어느 단계에 있는 걸까.
“그러게요. 사실 저희 쪽에서 준비 중인 게 있긴한데. 지금 딱 말씀드릴 상황은 아닌 것 같아서 좀 그렇네요.”
성경호 팀장이 씩 웃으며 말한다.
내가 성 팀장을 좋아하는 이유.
이처럼 늘 솔직하기 때문이다.
어떤 질문이건 절대 빼지 않고, 물론 거짓말도 없다.
“그래요? 뭔가 큰게 있긴 한가 본데?”
“후후후, 주 기자님. 나중에 아시면 깜짝 놀라실지도 모릅니다.”
성 팀장이 자랑하듯 조잘댄다.
이미 골드앤실버의 배달의겨레 투자건을 알고 있는 나로썬, 귀여울 따름이다.
그 감정이 새어나가듯, 내 입꼬리가 슬슬 올라간다.
“뭔지 점점 궁금해지는데, 말은 못하시는 거죠?”
“음, 네. 확정 돼야 뭐라 귀뜸이라도 해드릴 텐데. 지금은 안될 것 같습니다.”
성 팀장이 아무래도 안된단 입장을 확실히 한다.
홍보팀장이 비공개 사내정보를 동네방네 떠벌리는 게 이상한 거다.
스스로 성문을 열지 못하는 가엾은 자들을 탓하지말고, 내가 두들겨 부수면 될 일.
“배달의겨레, 이제 투자 받을 시간이 됐죠? 배달갑이랑 조기요가 합쳐진 상황도 문제고.”
난 눈을 감았다 떴다.
시끌벅쩍한 가게 안, 우리 테이블만 고요함을 유지하고 있다.
내 말의 의미를 알아차린 성경호 팀장이 다시 안경을 고쳐쓴다.
“계산하신 겁니까?”
“계산이요? 음, 네. 했다고 봐야죠. 투자금액과 공개 된 TV광고비, 지난 번 실적발표 때의 적자규모. 3년 전 120억 투자로는 이제 한계가 있죠.”
“주 기자님은 요즘 보면 정말 놀랍다는 말 밖에 할 수가 없네요. 하하. 네, 저희 지금 투자유치에 노력 중입니다.”
간단히 수긍하지만, 성 팀장도 이 이상은 답하지 않을 거다.
예전이었다면 이 소릴 들은 것만으로도 대박이라 생각했겠지.
정보보고에 [성경호 팀장 : 배달의겨레 투자유치 노력중]이라고 자랑스럽게 적어가면서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단순히 윤곽만 노리고 있지 않지.’
내 타깃은 실체다.
성 안에 뭐가 있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내야 한다.
“후후, 거의 끝나지 않았나요? 투자 유치.”
난 성경호 팀장의 눈을 똑바로 보고 물었다.
이건 사실을 ‘확인’하는게 아니다.
내가 진실을 알고 있으니, 문을 열어보란 신호일 뿐.
“네?”
의미파악을 잘 한 건지, 성 팀장이 당황한 기색을 보인다.
그가 황급히 눈을 굴린다.
어떻게 대응할지 고민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굳이 길게 시간 끌 필요 없지.’
어차피 얘기할 거라면, 뜸 들일 필요가 없다.
저 쪽에서 문 열기를 주저하는 동안.
내가 먼저 입을 열기로 했다.
“알고 있습니다. 골드앤실버.”
단 두마디였지만 파급력은 컸다.
성경호 팀장의 안경너머 두 눈이 커진다.
“······거기까지 알고 계셨습니까? 이거······ 여러번 놀라네요.”
갑자기 성 팀장이 평정심을 잃은 듯 어쩔 줄 몰라했다.
갈 곳 잃은 손과 눈이 방황한다.
결국 그는 곁의 물잔을 들고 벌컥 마신다.
“후우- 어떻게, 아니 어디서 들으셨습니까? 다른 기자분들은 짐작도 못하는 일인데.”
성호경 팀장이 질문을 던지던 때에.
마침 가게 직원이 라멘 두 그릇을 들고 다가왔다.
테이블 위에 가지런히 라멘 그릇과 교자 한 줄이 올려진다.
“맛있게 드세요.”
인사와 함께 직원이 사라지자, 난 말을 이었다.
“금융 쪽에 잘 꽂은 빨대가 하나 있습니다. 이게 중요한 건 아니죠, 팀장님? 자-”
그래 중요한 건 내가 어떻게 투자건을 알고 있느냐가 아니다.
“여기까지 말씀드렸으니, 다음엔 제가 뭘할지 알고 계시겠죠?”
어떻게 활용할 거냐를 생각해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