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래에서 온 특종-71화 (71/107)

71. 그 때 제게 얘기해주십시오

내가 성경호 팀장에게 제대로 된 선전포고를 하기 전.

성 팀장이 급히 제지하듯 손을 들었다.

“자, 잠깐만요. 주 기자님. 잠시만요.”

“네, 왜그러시죠?”

“잠깐 통화좀 하고 오겠습니다. 바, 박이한 이사님과 얘길 좀 해야겠습니다.”

박이한 이사라.

배달의겨레 취재한지는 꽤 됐지만, 처음듣는 이름이었다.

성경호 팀장에게 그에 대해 물어보고 싶었으나, 그럴 새가 없었다.

성 팀장이 급히 자리서 일어나더니 쫓겨나듯 식당 밖으로 나간거다.

‘그냥 검색을 좀 해볼까?’

대신 난 휴대전화를 꺼냈다.

모바일 웹브라우저 앱을 켜고, 고글 검섹엔진에 박이한 이사를 친다.

[배달의겨레 박이한 CFO]

검색결과를 보니, 왜 성경호 팀장이 연락하러 갔는지 알겠다.

CFO, 최고재무관리자.

회사의 재무 회계나 자원 배분 등의 업무를 총괄함과 동시에 자본조달, 투자유치를 신경써야 하는 직책이다.

‘투자유치는 박이한 CFO가 중심이 돼 하는 모양이군.’

난 박이한 이사의 정보를 읽어가며 젓가락을 잡었다.

라멘이 다 불기 전에 식사는 해야 할 것 아닌가.

휴대전화 화면을 응시하며 면을 집어 먹는다.

‘혼자 먹어서 미안한 일이지만, 별 수 없지.’

성경호 팀장은 밖에 서서 누군과와 통화중이었다.

난 그를 한 번 쳐다보곤 후루룩, 면을 흡입했다.

면을 흡입한다.

한 4분 후.

내 그릇안에 담긴 라멘의 양이 반 이상 줄었을 때, 성 팀장이 돌아왔다.

“죄송합니다. 주 기자님. 오래 기다리셨죠.”

“아뇨. 저야말로. 먼저 먹고있었네요.”

“괜찮습니다. 식사 하셔야죠.”

성경호 팀장은 그렇게 얘기하며 다시 의자에 앉았다.

한동안 그는 멍하니 테이블만 보고 있었다.

당장 식사할 마음이 없는건지, 아니면 내게 뭔가 말할 준비를 하는 건지.

난 재촉하지 않기로 했다.

“저, 주 기자님.”

드디어 성경호 팀장이 입을 연다.

“아까 말씀하신 내용에 관해서 말인데요······”

성 팀장 답지 않게 말을 길게 끈다.

위에서 뭔가 지시가 내려온 듯 했다.

과연 무슨 말을 꺼낼까.

“저희 쪽에선 어떤 확답도 드릴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진짜 아직 정해진 거 없거든요.”

라멘을 먹던 내가 젓가락을 식탁위에 놓았다.

길게 전화통화를 하고 왔지만, 큰 진전이 안보이는 대답이다.

“알겠습니다. 어차피 투자유치 중인 건 말씀하셨고, 제가 알고있는 선에서 기사를 쓰도록 하죠.”

난 무미건조하게 이야기했다.

이미 성 팀장은 골드앤실버와 유니콘벤처스로부터 투자받는단 사실을 인정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딱히 명쾌한 답을 들을 거란 기대도 하지 않았다.

‘400억 규모의 투자금은, 투자은행 쪽 입을 빌려 기사에 첨언하면 문제없을 거고.’

계산은 끝났다.

“아, 아니요. 기자님. 저희 박이한 이사님이 곧 이쪽으로 올겁니다. ······그 때까지 잠시 그 결정은 유보해주셨으면 합니다.”

“박 이사님이?”

내가 되물었다.

예상치 못한 이야기였다.

아까 그 전화는 단순한 지시사항을 전달받기 위함이 아니었나.

“굳이 오실 필요가 있을까요?”

“네. 제가 왈가왈부할 사안이 아니라서요.”

성경호 팀장의 말에 난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투자 소식은 회사의 입장에선 굉장히 긍정적이다.

무조건 막아야 할 이유가 없다는 거다.

헌데 홍보팀장 선에서 해결할 수 없다 판단했다니.

‘뭐 일단 들어볼까.’

하는 수 없다.

일단 기다려봤다가 박이한 이사에게서 직접 이야길 듣는 수 밖에.

나와 성경호 팀장은 남은 라멘을 먹으며 박 이사에 대해 대화했다.

“박이한 이사님은 김방준 대표님 20년지기 친구입니다.”

퉁퉁 분 면을 먹으며 성 팀장이 설명한다.

“원래 신용평가 회사에 근무하셨는데, 김방준 대표님의 제안으로 퇴사하고 들어오시게 됐죠. 아실지 모르겠지만, 배달의 겨레 초기 멤버 네 분 중 한 명입니다.”

오래전에 읽었던 김방준 배달의 겨레 대표의 인터뷰가 떠오른다.

김 대표는 본래 메이버 소속 디자이너였다.

모바일 시대에 걸맞는 배달전단지를 만들겠단 포부로, 퇴사 후 배달의 겨레를 만든거다.

처음엔 SI(전산시스템 구축) 엔지니어 일을 하는 친형, 김방수 이사를 영입.

그 다음 친구인 나머지 두 사람을 모아 일을 시작하게 된다.

“언뜻 기억이 납니다. 지금 배겨 이사분들이 모두 초기멤버시죠?”

“네, 맞습니다.”

대부분의 스타트업들이 그렇듯.

배달의 겨레도 초기멤버들이 그대로 임원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박이한 이사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난 성경호 팀장의 얼굴을 보며 물었다.

본 적이 없는 사람이기에 정보가 너무나 부족하다.

아까 휴대전화로 검색을 해봤지만, 박이한 이사에 대한 개인적인 기사나 정보는 없었다.

그만큼 언론 노출이 안돼 있단 얘긴데······

“음- 멋진 분입니다. 패션적으로나 업무적으로나.”

윤곽이 잘 잡히지 않는 표현이다.

난 더 깊숙이 들어가 보기로 했다.

“정확히 어떻게요?”

“나중에 옷차림새만 보셔도 알겁니다. 패션피플이시거든요. 업무적으로도 판단이 굉장히 빠르시구요. 배달의 겨레가 금전적 문제없이 성장해올 수 있었던 이유도 박 이사님 덕분이라고 할 수 있죠.”

꽤나 거창한 칭찬이었다.

그러나 난 과하단 기분은 들지 않았다.

성경호 팀장은 진심으로 저리 말하고 있는 거였으니까.

“되게 좋아하시나 봅니다. 이렇게 성 팀장님이 칭찬하시는 분 잘 못봤는데.”

“에헤이- 그거야 이런 얘길 제가 잘 안해드려서 그렇죠. 진짜 박 이사님이 좋은 분이기도 하구요. 그리고 제가 또 주 기자님 칭찬 다른데서 많이 하고 다닙니다!”

난 성 팀장 말에 픽 웃었다.

이제야 조금 여유를 찾은 듯.

그의 말투가 평소대로 돌아왔다.

“진짜겠죠? 감사합니다.”

“그럼요. 뭐 최근 기자분들이 뵈면 주 기자님 얘기가 꼭 나오게 됩니다. 제가 먼저 기자님 얘낄 꺼내지 않더라도 저한테 물어보곤 하세요. 주진형 기자, 아냐. 본적은 있냐. 연락처 혹시 알려줄 수 없냐고 말이죠.”

“하하. 알려주진 마세요.”

설마 성 팀장이 내 연락처를 뿌리고 다니진 않겠지만, 혹시나 싶어 덧붙인다.

“에이, 말씀 안드리죠. 개인정보 보호해드려야 하는데요.”

“안그래도 지난 번 김예인 기자 기억나시죠? 그 사람이 기사 제목에 제 이름을 넣는 바람에 다른 기자들한테 너무 시달렸어요.”

내가 예인이 써낸 내일코코아 합병무산 기사를 언급했다.

그러자 성경호 팀장이 입을 벌렸다.

“아-아! 그 기사! 저도 봤습니다. 깜짝 놀랐네요. 기자님 성함이 거기에 붙어있어서. 진짜 연락 많이 받으셨겠어요.”

“네, 다른 선배 기자가 제 연락처를 공개하는 바람에 정신없었죠.”

잠시 이전 일에 대해 이야기 하는 사이.

성경호 팀장과 난 식사를 모두 마쳤다.

“카페로 자리 옮기시죠. 이사님도 거의 다 오셨답니다.”

라멘 가게를 나온 우린 근처 카페로 몸을 이동했다.

점심 시간인지라, 카페 안엔 직장인들이 굉장히 많았다.

단순히 쉬러 온 사람들 뿐 아니라, 우리처럼 미팅업무를 보는 무리도 적지 않다.

“아, 저기 오시네요.”

카페에 자릴 잡고 앉아 있기를 5분여.

성경호 팀장이 카페 문을 열고 들어오는 한 남성을 가리켰다.

남색 정장 자켓에 청바지, 제법 오래 손질했을 머리칼까지.

확실히 멋부릴 줄 아는 남자였다.

“아 성 팀장! 이분이 주진형 기자님이신가?”

다가온 박이한 이사가 성경호 팀장에게 물었다.

자리서 바로 일어난 성 팀장이 날 그에게 소개했다.

“이사님, 어서오십시오. 네, 주진형 기자님입니다.”

“안녕하십니까? 배달의겨레 박이한 이사입니다.”

나도 의자에서 엉덩일 떼고 박 이사에게 명함을 건넸다.

“디지털투모로우 주진형 기자입니다.”

“네, 여러곳에서 얘기 많이 들었습니다. 성 팀장은 물론이고 다른 업체 분들도 주진형 기자님을 다 알고계시더군요. 이렇게 뵙게 돼 영광입니다.”

박이한 이사도 자신의 명함을 권했다.

내가 명함을 받아들자, 박 이사가 악수를 청했다.

난 그의 손을 맞잡고 흔들며 생각했다.

‘사람을 많이 만나본 티가 나는군.’

말하는 방식이나 사람을 대하는 태도 모두, 능숙하다.

단순히 신용평가 회사원의 정숙한 이미지를 떠올렸던 나로썬, 오판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일단 앉으시죠.”

내가 먼저 자리를 권했다.

인사야 이정도면 충분하고, 괜히 쓸데없이 시간을 길게 끌고 싶지 않다.

난 바로 본론부터 들어가고 싶었다.

내 의도를 이해한 듯, 두 사람은 조용히 내 맞은편 의자에 착석했다.

“그래서. 이사님이 갑자기 잠실에서 여기까지 오신 이유를 좀 듣고 싶습니다만.”

내가 먼저 운을 뗐다.

그러자 박이한 이사가 장난스럽게 말을 받았다.

“하하, 잠실이 아니라 종로에서 왔습니다.”

이 말은, 그저 박 이사가 더 먼 곳에서 왔단 소리가 아니다.

난 이를 알아차리고 입꼬릴 올렸다.

“골드앤실버, 만나고 오셨군요.”

“네. 아직도 투자협의 중입니다. 오늘은 유니콘벤처스의 김장석 대표님과 함께 갔었죠.”

장 킴 대표의 본명, 김장석이 언급됐다.

하지만 난 아는 체 하지 않았다.

지금 여기서 나와 장 킴이 아는 사이임이 밝혀진다면, 내 정보의 출처로 의심받는다.

장 킴 대표와의 약속을 지키려면 어느정도 연기를 해야한다.

“김장석 대표님이요?”

난 짐짓 모른 척하며 물었다.

“네. 유니콘벤처스라고, 저희 배달의 겨레 주요 투자사 중 한 곳입니다. 김장석 대표님 덕분에 이번 골드앤실버의 투자유치도 진행되고 있고요.”

다행히, 눈치 못 챈 박이한 이사가 친절히 설명한다.

그러고보니 내게 이렇듯, 자세하게 밝히는 이유란 뭘까.

다 들켰으니 거리낄게 없다는 건가.

“다만, 아직 확정이 된 건 아닙니다.”

박이한 이사가 강하게 못박았다.

여기서 난 그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아직 결정 난 일이 아니니, 건들지 말아달라는 뜻이군.’

이건 아까 전 성경호 팀장의 입장과도 일치한다.

“투자라는 건 분명 저희에게 좋은 소식입니다. 하지만.”

박 이사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내 눈을 보며 말을 이었다.

“투자사가 아직은 언론노출을 꺼리고 있습니다. 확정 될 때까지는 웬만하면 언급자제를 요청했습니다.”

혹시나 투자가 무산되거나 투자규모의 축소 등 여러 변수가 존재하기 때문일까.

골드앤실버나 배달의 겨레 모두 신중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그래서 제게 기사를 내지 말아달라, 말씀하시려는 겁니까?”

허나, 그건 그들의 사정일 뿐이다.

취재를 모두 마친 기사를 내지 말라는 건, 안타깝지만 들어줄 수 없다.

내 말투만으로도 충분히 이런 의사를 알아먹었겠지.

“아뇨. 저희가 어찌 기사를 내지 말라 말씀드리겠습니까. 그렇게 무리한 부탁은 드리지 않을 겁니다. 그저- 기사를 좀 늦춰주셨으면 합니다.”

문득 배달갑 매각건을 취재할 때가 생각났다.

그 때 딜리버리 빌런 측 고문, 김재승 변호사도 이와같은 부탁을 했었지.

“얼마나 늦춰야 합니까?”

사실 알고 있다.

내가 미래의 보도자료를 받은 게 사흘 전이다.

또 앞으로 사흘 후인, 다음주 월요일.

배달의겨레는 투자유치에 성공했다는 자료를 발표할 거다.

“······오늘 저녁까지, 골드앤실버 측에서 투자확정에 대한 통보를 주기로 했습니다. 그러니 그 이후, 늦어도 내일오전 기사로 내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투자 확정은 오늘이었나.’

생각보다 빠르다.

하긴 사이에 주말이 껴있으니 그럴 수 있다.

어쨌든 박이한 이사가 이 대박사건을 주말기사로 내달란 소리엔, 마음이 동하질 않는다.

나로썬 전혀 이점이 없는 얘기기 때문이다.

‘조회수도 안나오는 시기에 기사를 내달라니.’

그렇다면 역시 정당한 거래를 해야지.

“제가 기사 공개를 미룬다면. 전 뭘 얻을 수 있습니까. 배달의 겨레측에서 제게 해주실 수 있는 걸 알고 싶은데요.”

친한 업체라 해서 간단히 ‘그럼, 그렇게 해드리도록 하죠’라고 배려할 생각은 없다.

성호경 팀장이 날 대하는 태도나 대우는 나쁘지 않다.

하지만 그게 기사를 미룰 동기는 되지 못한다.

“······”

박이한 이사가 성경호 팀장의 얼굴을 쓱 쳐다본다.

눈으로 뭔가 통신이라도 하는 걸까.

두사람이 말없이 서로 바라보고 있는 걸, 보다못한 내가 끼어들었다.

“그럼 제가 제안하죠. 기사를 그 정도 미뤄드릴 테니, 나중에 한 번. 제게 정보를 주시죠.”

“정보 말입니까?”

박 이사가 묻는다.

“투자금이 400억입니다. 이걸로 단순히 인건비만 내실 생각은 아닐테고. 계획을 갖고 자금운용을 할 거라 생각하는데요.”

말뜻을 알아들은 박 이사가 고개를 끄덕인다.

난 더 정확하게 못박기로 했다.

“행동에 나설 때······ 그 때 제게 얘기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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