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 미튜브에서 방송을 하고 있었어요
성경호 팀장이 내게 미리 말해줬던 대로.
박이한 이사는 참 멋진 사람이었다.
특히 일처리에 있어서, 쓸데없는 망설임 대신 신뢰감을 주는 자신감이 엿보였다.
그 덕분에 나와 배달의겨레의 밀약이 맺어졌다.
장 킴 대표와는 비교도 안될 만큼 간단히 말이다.
난 성경호 팀장의 안내가 있기 전까지 기사를 내지 않는, 엠바고에 동의.
박이한 이사는 내게 언젠가 정보를 주기로 했다.
“그럼, 확인되는 대로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기자님!”
대화를 나눴던 카페에서 나온 후.
헤어지기 전 성경호 팀장이 허릴 곱게 숙여 내게 인사했다.
성 팀장은 늘 매너가 있었지만, 이렇게 깍듯한 모습은 처음이다.
나에겐 꽤 부담스러웠지만, 뭐라 말할 부분은 아니었다.
“알겠습니다. 빠른 연락 기다리겠습니다.”
“물론입니다. 기자님. 제가 성 팀장에게 바로 전달하겠습니다.”
박이한 이사가 옆에서 거들었다.
“혹시 골드앤 쪽에서 오늘 내로 연락이 안오면, 그것도 전해드리겠습니다.”
“네. 부탁드리겠습니다.”
깔끔한 마무리였다.
‘하긴, 배달의 겨레로써는 더 물러설 곳이 없던 거겠지.’
그들과 헤어진 뒤.
강남 먹자골목을 빠져나오며 생각했다.
난 이미 모든 정보를 갖고 있고, 배겨 측에선 부정할 방도가 없다.
최대한 회사에 불리하지 않게 일을 조절해나가는 게 최선이었을 거다.
‘자, 이제 기사만 미리 준비해둘까.’
난 강남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광화문 KGT기자실로 이동했다.
평소 거의 만원석이었던 KGT기자실이, 오늘따라 한산했다.
‘금요일이라서 그런가?’
매체중엔 금요일 오후에 주간회의를 하는 곳도 있다.
뭐, 그게 아니라면 일부러 불타는 금요일을 즐기기 위해 일찍 퇴근했을 수도 있고.
원래는 해선 안되는 일이지만, 기자라는 직업특성상 불가능한 건 아니다.
“어, 주 후배!”
기자실에 먼저 와있던, 김기문 선배가 날 보곤 손을 흔들었다.
“선배, 안녕하십니까.”
내가 반응하자, 기문 선배가 자리서 일어나 다가왔다.
“오오 그래. 오랜만이구만!”
최근 기문 선배와 코코아톡으로는 자주 대화를 나누고 있다.
다만 직접 만나는 건 꽤 오랜만이었다.
“그러고보니 내가 인터넷을 돌아다니다가 재밌는 걸 봤다네!”
기문 선배가 자신의 휴대전화를 조작했다.
그리곤 내게 화면을 내밀었다.
거기엔 어떤 인터넷 커뮤니티의 게시물이 표시돼 있었다.
[님들이 이 사람이 주진형 기자라고 함]
게시글 제목 아래로 내 사진이 담겨있다.
“어…… 이 사진……”
“왜 유메프 기자간담회에서 찍힌 모양이구만. 아주 잘나왔어.”
사진은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마이크를 들고 질문하는 모습이었다.
그 때 터졌던 플래시세례가 이 사진을 위한거였나.
그리고 이어서 본문 글엔,
[이분이 유메프 채용갑질 처음 취재한 기자라 함. 사진은 유메프 기자간담회 때 찍힌듯]
이라고 짤막한 두 문장이 적혀있었다.
손가락으로 웹페이지 스크롤을 좀 더 내리자 댓글들이 수십개 달려있었다.
[와 존잘. 취재도 잘했는데 얼굴도 잘하네?]
[이런 멋진 기자들이 좀 많아졌으면 좋겠다. 우리나란 기레기가 넘 많아]
[이분 질문 던진게 개웃김. 유메프 아주 가지고 놀았음]
[오 잘생겼네. 부럽다. 직업도 있고]
[디지털투모로우? 라는 좀 듣보 언론사인데 내는 기사는 다 단독이더란 ㄷㄷㄷ]
낯간지러운 말들도 있었다.
물론 기분이 나쁜건 전혀 아니다.
기문 선배 앞에 내색할 순 없어도.
기자로써 대중에게 인정을 받아간다는 사실이 무척 기뻤다.
“선배, 이건 어디서 보신겁니까?”
내가 감정을 숨기고 차분히 물었다.
“허허, 자주가는 커뮤니티에 올라왔다네. 거기 이용자수가 꽤 큰 곳인데 이제 주 후배도 유명인이구만!”
메이버에 검색하면 얼굴까지 뜨는 기문 선배에 비할바는 전혀 아니다.
이 일은 분명 감사한 일이지만, 내가 자만할 정도는 못됐다.
“에이, 아닙니다.”
“허허. 아니긴. 그보다 주 후배 영상도 있는 것 같던데 말이지.”
“옛?”
내 영상이 있다니, 이건 또 뭔가.
“지상파 뉴스 영상에 주 후배 질문하는 장면도 같이 찍혔던데?”
“아니, 보통 기자들 질문은 편집을 할텐데 왜?”
“모르지. 주 후배 질문이 유독 독했으니까 그랬을 수도 있고.”
기자란 직업은 자신의 이름을 걸고 기사를 쓰는 게 일이다.
그러나 내가 모르는 사람까지 내 얼굴을 안다는 건 달갑지 않다.
연예인들처럼 괜히 어딘가에서 뜬금없이 욕먹고 있을까 겁나기도 하고.
“아무튼 선배, 오늘따라 기자실이 더 휑한 것 같습니다? 아무리 금요일이어도 그렇지.”
난 다시 한 번 기자실을 둘러봤다.
이제 보니 안에서 근무중인 기자수를 열손가락을 셀 수 있을 정도.
이 근방 가장 넓은 KGT기자실의 현황이 이정도라면, 다른 곳들은 안봐도 뻔하다.
SGT는 세네명 정도 있을 테고.
“아무래도 요즘 좀 잠잠하지 않나. 통신이든 인터넷이든. 뭐 O플러스가 티마 인수한다고 했다가 빠지는 바람에 김이 새기도 했고 말이네. 후후 그것도 주후배가 썼던 기사아닌가?”
기문 선배가 내게 친절히 답했다.
즉, 이슈가 없으니 기자들도 안일해졌단 얘긴가.
물론 어딘가에서 이슈를 만들기 위해 뛰어다니고 있을 기자들도 있겠지.
그렇지만 평소 이곳에 출근도장을 찍듯 죽치고 있던, 그 사람들은 어디로 갔냐 이거다.
‘이거, 배달의 겨레 기사를 빨리 터트려줘야 겠는데?’
그래.
어차피 기자는 출근시간도 퇴근시간도 없다.
난 사라진 그들에게, 지금 여유를 즐겨두라 말하고 싶었다.
“주 후배는? 금요일인데 일찍 퇴근 안하는가?”
기문 선배의 물음에 내가 솔직하게 대답했다.
“선배. 아마 오늘쯤, 흥미로운 기사가 터질 겁니다. 그거 보려면 지금 작업을 해야되서요.”
내 말에 기문 선배의 눈이 커진다.
단박에 눈치 챈 거다.
“오, 주 후배. 역시 또 뭔가 있구만!”
“네. 지금 폭탄 만들러 갑니다.”
난 마치 독립운동 하던 애국투사처럼 경건히 말했다.
“역시, 주 후배구만. 혹시 통신쪽?”
담당 분야 기사인지, 아닌지.
기문 선배가 관심을 갖고 물었다.
하지만 기문 선배랑 관련없는 인터넷 분야 기사다.
“인터넷입니다. 후후.”
“호오 그런가! 그럼 기대해보겠네!”
관련없다는 걸 확인한 기문 선배가 격려했다.
기자실 내 많은 빈 자리 중.
난 주변에 사람이 한 명 도 없는 자릴 택해 앉았다.
오히려 잘됐다.
괜히 쓰던 기사를 누군가가 볼 일도 없을 테고.
난 가방에서 노트북을 꺼내고 본격적으로 기사 작성에 들어갔다.
[배달의 겨레가 세계적인 투자은행 골드앤실버로부터 400억 원의 투자를 받았다]
발문부터 적어 내려간다.
투자를 받는 일엔 복잡한 설명이 필요없다.
투자처와 투자사, 투자규모만 명확히 밝히면 그것만으로 충분.
그렇기 때문에 사실 기사를 쓰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다.
[배달의 겨레 박이한 CFO(최고재무관리자)는 골드앤실버가 주도한 컨소시엄으로부터 약 3500만 달러, 한화 400억 원 규모의 투자를 받았다고 이날 밝혔다]
박이한 이사의 이름을 언급함으로써 신뢰성을 올린다.
[IB(투자은행) 업계에 따르면, 배달의겨레에 투자했던 유니콘벤처스의 장 킴 대표가 이달 국내에 입국하자마자 골드앤실버PIA 한국지사 대표인 지현제 상무와 만나것으로 알려진다]
[업계는 장 킴 대표가 지 상무를 설득해 투자가 진행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난 금융업계라는 여러 입들을 빌려 다른 근거들도 채워넣었다.
특히 유니콘벤처스 장 킴 이란 이름은 중요하다.
기존 배달의겨레 투자사이기도 하고 스타트업 투자계의 큰 손.
업계 관계자들이 좋아할만한 대목인 까닭이다.
[한편 배달의겨레는 작년 TV광고비와 규모확장에 기존 투자금 대부분을 소모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까지 기사를 써놓고 난 손을 놓았다.
기사의 전체적인 틀은 모두 갖춰졌다.
허나 박이한 이사로부터, 아니 성경호 팀장으로부터 연락이 왔을 때.
좀 더 세부적으로 채워놓을 내용들이 남았다.
‘그건 그때가서 할 일이고.’
난 시간을 확인했다.
아직 오후 4시.
기사 쓰는데에 30분 정도 밖에 걸리지 않은 거였다.
보도자료를 서너개 처리한 시간과 비슷했다.
평소 발제기사를 작성하는 데에 적어도 2시간.
길게는 3-4시간 걸리던 것의 반도 안된다.
‘시간도 남았겠다, 영기한테나 전화해볼까.’
난 온라인 기사작성기에 접속해 작성중인 기사를 올렸다.
제목은,
[작성중)배달의겨레, 골드앤실버로부터 400억 투자]
단순하게 적어놨다.
혹시나 대표나 팀장이 출고하지 않도록, 작성중 상태로 저장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대충 정리를 마친 난, 휴대전화로 영기에게 통활 걸었다.
-뚜르르르……
수차례, 수신음이 울렸는데도 영기는 무응답이었다.
근무시간 중엔 이런 일이 없었기에, 묘한 느낌이 들었다.
‘보통은 통화 거절 문자라도 보내놓는데 말이지.’
난 발신을 종료하고, 코코아톡으로 영기에게 메시질 보냈다.
[주진형 : 영기씨? 어디야? 전화 안받는데 무슨 일 있어?]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 봐도 답장은 오지 않았다.
메시지를 읽지 않았단 표시조차 그대로 남아있었다.
‘많이 바쁜가? 인터뷰중일 수도 있나.’
그렇게 생각한 난 일단 기다려보기로 했다.
난 거의 1시간 여 동안 뉴스를 확인했다.
그렇지만 이후로도 영기로부터 연락은 오지 않았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지?”
결국 난 자리서 일어났다.
기자실 밖으로 걸어나간 후.
난 급히 김정효 팀장에게 전활 걸었다.
-어어 진형아. 올려둔 기사는 봤다.
연결이 되자마자 김 팀장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 팀장. 보셨습니까.”
-어, 다쓴 것 같던데, 지금 당장 안올릴거냐?
기사의 작성중 상태를 본 김 팀장이 내게 물었다.
“네, 정보보고로 올리겠습니다만, 배달의겨레 측에서 확정날 때까지만 미뤄달라 부탁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지금 구구절절 다 설명할 수 없다.
어차피 정보보고에 축약해 올릴 예정이었다.
나중에 미리 정보를 주겠다는 약조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그래? 확정은 언제 나는데?
김정효 팀장은 약간 의문스럽다는 듯 되물었다.
“아마 오늘 내로 날 겁니다. 전달받는 대로 알려준다했으니, 제가 바로 보고드리겠습니다.”
-그래 알았다.
이 말을 끝으로 김 팀장이 통화를 마무리지으려 했다.
내가 황급히 그를 불렀다.
“아 팀장, 그게 아니라 따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어? 뭔데?
“지금 영기씨랑 연락이 안되는데, 혹시 무슨 일인지 아십니까?”
-영기랑? 어어? 글쎄. 나한테도 딱히 말 없던데. 왜? 급한 일이야?
“아닙니다. 그런 건 아닌데 갑자기 두절이 돼서……”
그동안 취재나 기사는 좀 아쉬웠어도, 연락만큼은 확실했던 영기다.
군대처럼 철저하게 보고를 중시하는 기자세계에서 나름 그거 하난 인정할만 했는데.
갑자기 이렇게 돼 버리니
-걱정 말고 있어. 나도 연락해볼테니까.
“네, 알겠습니다.”
그 순간.
내 휴대전화에 진동이 왔다.
난 귀에서 전화길 떼고 화면을 봤다.
[후배 박영기]
영기의 연락이었다.
“아 팀장, 지금 영기씨 전화왔습니다. 제가 괜한 걱정한 모양입니다.”
-그래, 그래.
난 김정효 팀장과의 통화를 끝내고, 바로 영기의 전활 받았다.
“어, 영기씨. 바빴어? 연락이 잘 안되네?”
내가 먼저 꾸짖듯 말문을 열었다.
-…………
영기는 어쩐지 말이 없었다.
지나치게 긴 침묵이 수화기 너머에서 넘어왔다.
“영기씨? 뭐야? 아무 말도 안들리는데?”
통신에 문제가 있나 싶어 얘기해봤지만, 그런 건 아니었다.
-선배……
영기가 말하는 분위기에서, 단박에 이상함이 느껴졌다.
“어, 영기씨. 왜그래. 뭔데?”
난 최대한 부드러운 말투로 바꿔 그에게 물었다.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어요……제가……
무슨 일이냐고 더 물어봐야 소용없을 것 같다.
난 직접 만나보기로 했다.
“영기씨. 지금 어디야? 내가 그쪽으로 갈게.”
30분 정도 걸려 난 신촌의 한 전통주점에 도착했다.
안에 들어서자마자, 대학생들 사이 유일한 정장차림의 영기가 눈에 들어왔다.
그의 앞엔 막걸리 병과 어묵탕이 하나 놓여있었다.
‘근무시간 중에……’
일을 미뤄두고 혼술이라니.
혼내야할 부분이지만, 우선은 왜이러는 건지 사정부터 들어야 했다.
“영기씨.”
내가 다가가 이름을 불렀다.
그러자 영기가 고갤 들어 날 본다.
난 그 얼굴을 보고 흠찟, 놀랐다.
‘……울었냐 설마.’
눈가 옆으로 눈물자욱은 그대로 말라있었고, 눈동자는 충혈돼 있다.
아니 그냥 퉁퉁부운 눈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선배.”
공허하고 우울한 영기의 목소리가 내게 들렸다.
난 테이블 자리에 앉았으며 그에게 말했다.
“그래, 말해봐. 갑자기 연락도 안되서 걱정했잖아.”
“……저……오늘 고등학교 동창을 만났어요.”
영기가 시선을 바닥에 깔고 입을 열었다.
난 가만히 그의 말을 들어주기로 했다.
“절 2년 동안 왕따시켰던…… 그놈이었어요.”
“뭐?”
“그놈이…… 미튜브에서 방송을 하고 있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