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 그 자식, 같이 부숴 버리겠어요
셀 수 없이 밀려든 코코아톡 메시지만큼, 전화도 계속 걸려왔다.
모르는 번호의 경우 거절메시지를 보내고 받지 않았다.
하지만 아는 선배 기자들의 전화는 일단 받기로했다.
오랜만에 이디넷 백봉사 선배가 준 연락을 시작으로, 녹두일보 최경태 선배, 마주경제 정광현 선배 등등.
내용은 별 거 없었다.
-기사 잘봤다. 진형아. 근데 기사 사실확인 된거야? 배겨 지금 전화 안받던데.
-너 뭐하는 놈이냐, 금요일 저녁에 기사내는 거 맛들렸네?
-야~ 주진형. 이거 어떻게 알았냐? 너 진짜 대단하다.
백봉사 선배는 전화폭격 받고 있을 배달의겨레 성경호 팀장 대신, 내게 전화한 거였다.
이전에도 그랬듯, 내게 농담섞이 쓴소릴 하는건 경태 선배다.
꼭 편안히 쉬려고 업무를 일찍 마치는 금요일에 기사를 낸다고 성화였다.
그 외에도 오랜만에 목소리 듣는 사람들도 있었다.
-주 기자님~ 이런건 진짜 어떻게 아시는거예요?
유메프 이일형 홍보팀장 환영회 때 통성명 한, 뉴데이트 이수경 기자였다.
“노력과 끈기로 알아내는 거죠.”
영등포 고시텔로 들어가는 골목길.
걸어가며 전활받은 난 시큰둥한 태도로 대답했다.
기사 하나 냈다고 이렇게 전화를 건건, 단순히 칭찬이나 축하하기 위함은 아닐거다.
수경 또한 뭔가 별다른 이유가 있을 터.
난 빨리 그 본론을 듣고 싶었다.
“죄송한데 제가 고시텔에 살아서요. 전화 끊어야 할 것 같습니다. 시끄럽게 하면 욕먹거든요.”
그럴듯한 이유를 대서 수경을 재촉한다.
이 말을 들은 수경이 당황했다.
-에? 그래요? 아, 저, 기자님. 혹시 이번 주말에 시간되세요?
“음, 따로 준비할 게 있어서 바쁠 것 같습니다.”
지금 난 미튜브BJ 윤태현을 털겠다는 일념으로 가득하다.
당연히 주말 동안 녀석을 훅 보내버릴 자료를 수집하고 기사를 구상해야 한다.
-아······그러시구나. 그, 그럼 혹시 다음 주는요?
“글쎄요, 뭐 그때가 돼 봐야 알 것 같습니다만. 무슨 일때문에 그러시죠?”
너무 빙빙 둘러말한다.
내게 알아내고 싶은 게 있는 건가.
아니면 부탁하고 싶은게 있는 걸까.
-아, 아니에요. 제가 기자님 여유있을 때 다시 연락드릴게요. 그래도 돼죠?
곰살맞게 구는 상대에게 냉대할 순 없었기에.
난 그러라고 대답했다.
솔직히 수경이 뭣 때문에 이러는진 모르겠다.
허나, 뭐 지금당장 고민할 필욘 없겠지.
일이 밝혀지면 그 때가서 생각해도 늦지 않다.
‘그래, 일단은 윤태현이다.’
난 조용히 고시텔 방안에 들어와 가방을 내려놨다.
가방에서 노트북을 꺼내 놓고 전원을 켠다.
“자. 아까 다 못본 것부터 확인을 해볼까.”
영기가 막아서 보지 못한, 오늘자 윤태현 방송영상.
난 구동을 마친 노트북을 조작해 미튜브 사이트에 접속했다.
그리고 내가 봤던 그 문제의 영상을 찾았다.
‘영기한텐 미안한 일이지만, 꼭 봐둬야겠어.’
왜 영기가 뒷부분을 보지 못하게 했는진 모른다.
분명 들키고 싶지 않은 장면이나 일들이 있었던 거겠지.
하지만 알아둬야 했다.
그래야 더 철저하게 윤태현에게 복수를 할 수 있을 테니까.
‘이 정도 부근이었는데.’
난 미튜브 영상재생기의 재생바를 오른쪽으로 슬슬 옮겼다.
곧 영상이 내가 봤던 마지막 장면으로 전환됐다.
[아 벗어봐 새끼야. 맨날 했던거 이제와서 하기 싫냐? 여기 보시는 분들이 보여달래잖아]
내 미간에 주름이 졌다.
그리고 그 이후 장면.
난 왜 영기가 그토록 서둘러 시청을 막았는지 알아차렸다.
[오랜만에 좀 맞자! 아! 야! 이제! 좀! 기억나냐? 어? 아, 진짜! 매가 약이죠? 여러분?]
윤태현이 영기를 일으켜 세우더니 그대로 등과 엉덩이를 발로 가격하고 있었다.
약하게 차는 것 같지도 않았다.
영기는 고통에 찬 신음소릴 냈고 이내 엉덩일 붙잡고 주저앉았다.
[앙김우티 : ㅋㅋㅋㅋㅋㅋㅋ 매가 약!]
[빌리해링띠용 : 찰지게 잘 때린다 태현이형. 역시 고기도 먹어본 놈이 잘 먹는다고]
[리틀소간지 : 기자라며. 기자가 왜 저렇게 찌질함?]
영상 내 채팅창에는 여러 저급스러운 말들이 오가고 있었다.
“후하.”
난 그냥 영상을 일시정지 시켰다.
멈춘 장면에는, 윤태현이 영기 허리춤에 빠져나온 팬티를 잡아당기고 있었다.
이건 더 볼 가치가 없다.
가슴속에 끓어오르는 분노가 기사의 방향을 어떻게 잡을지, 너무도 명확히 알려준다.
[욕설․폭력은 기본...도 넘은 미튜브 방송]
난 노트북 메모 프로그램에 생각해둔 제목을 옮겨적었다.
분명 윤태현을 이 기사의 중심에 둘 계획이지만, 직접적인 겨냥은 하지 않을 거다.
다른 저급한 BJ들의 방송도 모두 끌고 들어와야 한다.
다신 이딴 쓰레기같은 방송들이 미튜브에 올라오지 않도록.
고글도 각성할 수 있을 거다.
‘그럼 다른 BJ들 방송도 훑어 볼까.’
난 몸씻는 것도 잊은 채 그대로 날새서 미튜브를 봤다.
다음날 점심 즈음.
난 휴대전화 알람소리에 잠을 깼다.
고시텔에서 시끄럽게 울어대는 휴대전화는, 시간을 불문하고 언제나 민폐다.
“어, 여보세요.”
잠 덜깬 목소리로 전활 받는다.
-선배. 저 영기입니다.
익숙한 영기의 목소리였다.
아직 목이 잠긴 내가 침을 몇 번 삼킨 뒤 대답했다.
“어어, 영기씨. 무슨 일이야?”
-선배가 말씀하셨던, 것들 다 했습니다. 영상 신고, 스크린샵 캡쳐, 문제있는 영상 URL까지 땄어요. 선배 메일로 보내놨습니다.
“뭐!? 벌써?”
난 침대서 벌떡 상체를 일으켜 세우며 소리쳤다.
영기가 정말 기대 이상으로 빠르게 일을 처리한 거다.
적어도 일요일 저녁이나 돼야 끝날 거라 생각했는데.
하루도 쓰지 않고 모두 했다니.
“어어, 일단 확인할게.”
난 경황없는 상태로 일어났다.
작은 고시텔방 책상위, 올려져있던 노트북의 전원을 누른다.
‘새벽 4시였나? 5시였나······너무 늦게잤어.’
마지막엔 영상에 제대로 집중도 못하고 꾸벅꾸벅 졸 지경이었다.
다행히 씻고 잠자리에 들긴 했지만, 정작 기사내용으로 쓸만한 성과는 못거뒀다.
-그럼 전 더 확인해보고, 다시 연락드릴게요.
“어- 알았어. 나도 메일 보고 얘기해줄게.”
통화를 끝내고 노트북으로 이메일함을 확인한다.
영기의 말대로 그가 보낸 이메일이 도착해있었다.
[선배, 윤태현 방송 자료입니다]
난 상세내용을 보기 위해 마우스로 메일 제목을 클릭했다.
거기엔 내가 딱 원했던 자료들이 모두 들어있었다.
윤태현이 심한 욕설을 쓰며 방송한 영상 제목들, URL은 물론.
그가 방송콘텐츠라 내세운 성희롱, 폭력, 재물손괴 등 엽기적인 범죄행위들까지.
‘이걸 12시간도 안되서 다 했다고?’
대충 세어도 영기가 본 영상수가 100개는 돼 보였다.
이걸 다 보고, 갈무리하고, 신고까지 했다니.
‘드디어 내가 원하는 집중력을 보여주는 군.’
어제 침울 밑바닥까지 뚫고 내려가던 영기가 달라졌다.
그나마 긍정적인 신호가 잡힌거다.
게다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아래는 윤태현과 방송회사를 만들어 활동하는 BJ목록입니다. 이 사람들 영상도 몇개 확인해봤는데 윤태현과 비슷한 내용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첨부합니다]
적힌 그대로, 메일 아래엔 다른 미튜브BJ들의 영상 주소들이 적혀져 있었다.
난 몇개의 링크주소를 눌러 영상을 확인해봤다.
그 결과는 아주 만족스러웠다.
내가 밤새 인터넷을 헤매며 찾아다녔던 내용들이, 이 메일안에 모두 담겨져 있었다.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 지금 바로 가자.’
결정이 섰다.
난 망설임없이 휴대전화길 들었다.
그리고 영기에게 다시 전화했다.
“영기씨, 지금 어디야?”
-넷? 아 저 집인데요. 도봉구입니다.
“도봉구? 알았어. 1시간 반 뒤에 대학로에서 보자.”
-1시간 반 뒤요?
“그래, 노트북 챙겨나와.”
-아, 넷!
군기가 바짝든 영기의 대답이 돌아왔다.
통화를 마친 난 양볼을 손바닥으로 찰싹 때렸다.
“나도 정신 똑바로 차리고 가자.”
1시간 반 뒤.
대학로에 위치한 큰 규모의 프랜차이즈 카페.
내가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서자, 바로 영기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녀석은 노트북에 집중하고 있어 내가 들어온 줄은 눈치채지 못했다.
“영기씨.”
“앗! 선배, 오셨어요.”
영기가 자리에서 일어나 허릴 숙였다.
“아냐, 아냐. 앉아 영기씨.”
난 영기가 자리한 테이블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짐을 다 푼 뒤.
바로 이야기에 들어가기로 했다.
“영기씨가 보내 준 메일 잘 봤어. 솔직히 보고 놀랐어. 꼼꼼하게 정리도 잘 해놨고, 유효한 자료도 많이 찾아놨더라.”
“아, 그런가요?”
영기가 머쓱한지 고갤 붉혔다.
“어. 요 근래 나아지곤 있었지만, 이 일을 가장 잘했어.”
이건 내 진심이었다.
단시간에 이렇게 상세히 자료조사를 하는 건, 정말 쉽지 않다.
게다가 내 요청이 없었음에도, 추가인원 조사를 해왔다.
이는 영기가 기사의 구조와 흐름을 체득하고 있단 증거다.
“가, 감사합니다.”
영기는 내가 칭찬에 몸둘바를 모르겠다는 듯 고갤 숙였다.
“그렇게 고개 숙이지마. 영기씨.”
“넷?”
“누누이 말했지만, 기자는 어느때나 당당할 수 있어야 돼. 한 나라의 대통령 앞에 서더라도 떨지말고. 동등한 입장임을 떠올려야 해. 기자란 그런거야. 우리가 비록 이름없는 매체에 소속돼 있다해도. 취재원들에게 매달려야 할 상황이 있다해도. 속으론 당당해야 돼. 그래야 휩쓸리지 않고 기사를 쓸 수 있으니까. 우린 그런 존재야 영기씨.”
“······네.”
영기가 굳은 표정으로 얼굴을 들었다.
난 그의 눈을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그래. 좋은 자세야. 자, 난 이정도면 자료가 충분히 모였다고 생각해. 곧장 기사를 써도 된단 얘기지.”
“넵. 그럼 기사 작성은?”
내가 손으로 영기를 가리켰다.
“영기씨, 당신이 써야지.”
“제, 제가요?”
“이거 왜이래. 지난 번 소셜커머스 MD기사도 잘만 써놓고서.”
“그건······”
말하고 싶은 바는 잘 안다.
MD기사는 이렇게 공격적인 내용이 아니었다.
영기로써는 이런 사회고발 기사가 처음인 거다.
막막하다 싶은 거지.
“걱정하지마. 그때처럼 내가 서포트 할 거니까. 나도 영상보고 대충 감이왔어.”
내 말에 영기가 안심하는 듯 보였다.
“제목만 들어도 느낌 올거야. 영기씨도 나와 비슷한 생각한 것 같으니까. ‘욕설․폭력은 기본, 도 넘은 미튜브 방송’이거 어때?”
내 설명에 영기가 고갤 끄덕였다.
“네, 좋은 것 같습니다.”
“그래, 윤태현을 메인디쉬로 놓고 나머지 조사한 BJ들은 사이드디쉬로 집어넣자. 실명 공개는 하지말고, 그냥 윤모씨, 김모씨. 이 정도 수준만 되도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거야.”
“아, 알겠습니다.”
“영상캡처가 필요한데, 얼굴은 다 모자이크 처리해서······ 음, 영기씨.”
내가 조심스레 물어봤다.
“네?”
“영기씨가 나온 영상, 그 장면을 기사에 넣을 수 있겠어?”
이 질문을 하기 위해서.
영기로썬 쉽지 않은 선택일 거다.
내 말대로 모자이크 처리를 한다해도, 미튜브에서 검색하면 금방 누군지 드러난다.
결국 자신의 창피함을, 굴욕감을 이겨내고 기사를 쓸 수 있겠느냐.
난 그렇게 묻는 거다.
“네.”
영기의 대답은 간결했고, 빨랐다.
“뭐, 뭐?”
오히려 놀란 건 나였다.
난 영기가 한참을 고민할거라 생각했다.
헌데 아무렇지않게 수긍해버리다니.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인가.
“정말? 정말 괜찮다고?”
“네. 선배. 많이 생각해봤어요. 도대체 왜 난 이모양일까. 왜 난 잘못한게 없는데 이렇게 당하기만 하는 걸까. 그래서 알아차린 답은 결국 저였어요.”
“저? 영기씨 당신 말하는 거야?”
“네. 제가 문제였던 거예요.”
아니, 아니.
난 고갤 세차게 저었다.
“아니야, 영기씨. 왕따는 무조건 가해자 잘못이야. 영기씨가 잘못한 건 없어. 그건 지나친 생각이야.”
헌데 영기는 살짝 웃으며 그런게 아니라 설명했다.
“왕따를 한 윤태현이 나쁜게 맞아요. 하지만 그 일을 겪고도 지금까지 달라지지 못한 건 누구의 탓이 아니라 제 잘못이에요. 나쁜놈이 변하지 않았다면 나라도······변해야 하는 거였어요.”
이어서 악에 받친 영기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제 저만 망가지진 않을래요. 그 자식, 같이 부숴 버리겠요.”